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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무인도의 밤 1

작가: 묵온
last update 게시일: 2026-06-16 16:16:17

천지가 노호(怒號)하고 있었다.

세상을 통째로 아가리에 넣고 씹어 삼킬 듯 맹렬하게 포효하는 폭풍우는.

두 남녀의 가냘픈 목숨줄을 싣고 요동치던 얄팍한 거룻배를 기어이 무인도의 벼랑 끝으로 무자비하게 내동댕이쳤다.

눈을 뜨고 있어도 아득한 절망만이 밀려오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귀청을 찢어발기는 천둥소리와 함께 시퍼런 번개가 섬의 기암괴석을 때리며 번뜩일 때마다.

파도와 비바람에 난도질당한 두 사람의 처참한 몰골이 원귀(寃鬼)처럼 창백하게 허공에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자연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인간의 알량한 신분이란 한낱 수수깡에 불과했다.

삼석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검은 바닷물을 헤치며.

혼절한 채 사시나무처럼 떠는 안방마님 인영을 억센 등판에 둘러업었다.

이 여인만은 살려내야겠다는 원초적인 수컷의 본능이 그의 두꺼운 허벅지를 움직이게 했다.

삼석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절벽 아래.

짐승의 아가리처럼 쩍 벌어진 깊은 동굴 속으로 맹수처럼 뛰어들었다.

동굴 안에는 바깥의 미쳐 날뛰는 아수라장과는 달리, 등골이 오싹할 만큼 무거운 적막이 고여 있었다.

오직 밖에서 바위를 깨부수는 성난 파도 소리만이 아득한 저승의 메아리처럼 동굴 벽을 타고 웅웅거릴 뿐이었다.

삼석은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안쪽의 평평한 암반 위에 인영을 갓난아기 다루듯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마, 마님…….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눈을 떠보십시오.”

삼석의 목소리는 바닷바람에 찢겨 탁하게 갈라져 있었다.

암반 위에 널브러진 인영은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었다.

양반가 며느리의 고고함을 지켜주던 옥빛 명주 소복은 빗물과 차가운 바닷물을 잔뜩 머금어 얼음장 같은 족쇄가 되어 있었다.

물먹은 비단은 무자비한 한기가 되어 그녀의 가냘픈 체온을 게걸스럽게 갉아먹었다.

인영의 붉디붉던 입술은 독을 품은 듯 검푸르게 죽어 있었고.

통제력을 잃은 치아가 ‘딱, 딱, 딱’ 부딪히며 동굴의 적막을 기괴하게 깨뜨릴 정도로 극심한 저체온증의 늪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이대로 반 시진만 지체하다간 심장의 마지막 온기마저 차갑게 얼어붙어 영영 멎어버릴 것이 자명했다.

“불…… 불을 피울 마른 장작 하나, 지푸라기 하나 없는 곳입니다."

"이대로 젖은 옷을 입고 계시다간 반 시진도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당장 옷을 벗으십시오. 옷을 비틀어 짜내고 차가워진 몸을 닦아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삼석의 핏발 선 다급한 외침에도.

인영은 흐려져 가는 몽롱한 눈으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고개만 가늘게 저을 뿐이었다.

아무리 죽음의 사자가 당도했다 한들, 반평생을 지엄한 사대부가의 안방마님으로 군림해 온 그녀였다.

외간 사내, 그것도 제집 앞마당을 쓸던 천한 머슴 놈 앞에서 알몸을 훤히 드러낸다는 것은.

뼛속 깊이 박힌 양반의 법도로서 죽음보다 끔찍한 능욕이요 수치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덧없고도 질긴 주저함을 읽어낸 삼석은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물먹은 거친 삼베 적삼과 바지를 짐승이 허물을 벗듯 단숨에 훌렁 벗어 던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입체감을 뿜어내는.

사내의 거대하고 탄탄한 날것 그대로의 나신(裸身)이 더운 숨결과 함께 드러났다.

삼석은 솥뚜껑만 한 두 손의 억센 아귀힘으로 삼베옷의 물기를 사정없이 비틀어 짠 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융기한 근육질 몸뚱이에 맺힌 빗물과 소금기를 벅벅 문질러 닦아냈다.

“마님, 제발 그 알량한 고집을 꺾으십시오!"

"양반의 껍데기와 체면이 목숨보다 중하단 말입니까!"

"당장 옷을 벗으십시오.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인영은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시선으로 삼석의 적나라한 알몸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생전 처음 두 눈에 담아보는.

남편 박진사의 왜소한 몸뚱이와는 차원조차 다른 펄떡이는 야생 수컷의 폭력적인 육체였다.

두려움과 수치심, 그리고 본능적인 경외감이 한데 뒤엉켜 소용돌이쳤지만.

뼛속의 골수까지 파고드는 죽음의 한기가 그녀의 얄팍한 이성을 완벽하게 마비시키고 있었다.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감각이 증발하고 온몸의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어가며 생명의 불씨가 사그라지자.

그제야 가장 밑바닥에 도사린 원초적인 생존 본능이 겹겹이 두른 양반의 도덕관념을 집어삼켰다.

“흐으으…… 춥, 춥구나…… 뼈마디가…… 뼈가 시려 부서질 것 같아…….”

결국 인영은 꽁꽁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저고리 고름을 위태롭게 풀기 시작했다.

짠물에 흠뻑 젖어 하얀 살갗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명주천을 힘겹게 한 겹 한 겹 벗어내자.

눈이 시리도록 뽀얀 여인의 나신이 동굴의 축축한 어둠 속으로 폭로되었다.

그녀는 밀려드는 수치심과 공포에 두 팔을 교차하여 솟아오른 젖무덤을 황급히 가리고.

하얀 두 다리를 한껏 오므린 채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벗어낸 명주옷을 쥐고 물기를 짜내려 애를 썼으나.

가녀린 손아귀에는 물방울 하나 짜낼 악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리 주십시오.”

삼석이 한 걸음 다가와 인영의 젖은 옷가지를 건네받고는 단숨에 무자비하게 비틀어 짰다.

그리고 물기가 가신 천 조각으로 인영의 둥근 어깨와 떨리는 등.

한 번도 볕을 보지 못한 하얀 허벅지에 맺힌 물방울들을 다급하고 거칠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사내의 투박한 손길이 연한 맨살에 닿을 때마다 인영은 벼락 맞은 듯 흠칫거리며 몸을 움츠렸으나.

혈관까지 스며든 한기는 고작 겉피부의 물기를 닦아내는 얄팍한 행위로는 물러가지 않았다.

완전히 통제력을 잃은 턱이 딱딱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동굴 벽을 긁어댔고.

창백해진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아나며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죽음의 증상이 역력했다.

“안 되겠습니다. 체온이 단 한 줌도 돌아오질 않습니다."

"마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삼석은 꺼져가는 인영의 생명줄을 붙잡기 위해 최후의 처방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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