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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ผู้แต่ง: silver구슬

#1. [(프롤로그) 폭풍우 치는 날에]

ผู้เขียน: silver구슬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09-20 11:15:52

20XX년 1월 28일.

겨울비가 유리창을 깨부술 듯 사납게 몰아치는 밤이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마천루를 집어삼킬 듯 쏟아지는 장대비는 30층 펜트하우스의 두꺼운 유리를 매섭게 때렸다. 바깥은 혼돈 그 자체였으나, 차단된 실내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과 뜨거운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무드등 빛 아래, 묵직한 침묵을 찢고 나오는 것은 오직 서로의 몸이 노골적으로 마찰하는 소리와 찰나의 날카로운 신음, 그리고 가쁘게 얽히는 호흡뿐이었다.

그리고 그 은밀한 열기의 중심에는 조각보다 비현실적이고 오만한 실루엣의 남자, 태하가 있었다.

조명 아래 매끄러운 윤기를 띠는 그의 너른 어깨와 굳건하게 다듬어진 근육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듬어진 포식자의 피지컬이었다. 세상의 모든 빛을 삼킨 듯한 검은 눈동자는 오로지 제 밑에서 파들거리는 경신에게만 지독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신아, 예쁘네.”

낮게 낮춘 중저음이 그녀의 귓가를 기분 좋게 긁으며 흩어졌다.  

“······태하 오빠, 그런 말도 듣기 싫어.”

분명 일주일 전에 떠나려고 했는데.

그의 전화를 피하고, 마음의 벽을 겹겹이 쌓으며 그를 멀리하려 애썼지만 본능 앞에 이성은 무력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태하의 생일 파티장 구석에 서 있었고, 취기 어린 그를 부축해 들어온 이 은밀한 침실에서 결국 완전히 먹혀버리고 있었다.

태하는 25번째 생일 선물로 ‘경신’을 원한다며 마지막 이 순간에도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처음인데, 그리고 마지막인데.

경신의 손에 들려 있던 초라한 넥타이핀 케이스는 이미 바닥 어딘가로 나뒹굴어 잊힌 지 오래였다.

“Va a ser duro porque es tu primera vez. (처음이라 힘들 거야.) 그리고 안 참을 거니까.”

한국어가 아직도 서툰 태하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크고 기다란 손이 경신의 가녀린 허리를 부서뜨릴 듯 움켜쥐었다. 

살갗이 짓눌릴 정도로 거센 악력이었다. 폭주하려는 본능을 겨우 억누르듯, 그늘진 어깨너머로 쏟아지는 그의 호흡은 당장이라도 살을 태워버릴 듯 뜨거웠다. 

다정하려 애쓰고 있지만, 이미 이성을 집어삼킨 열기는 가려지지 않았다.

“오빠, 대신 이 밤이 지나면······ 정말 끝이야. 알겠지?”

경신의 차분한 목소리가 거친 빗소리를 뚫고 울렸다. 애절함과 체념이 진하게 엉킨 물음에,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찰박이는 백색소음처럼 둘의 밑으로 깔렸다.

“그래. 걱정 마.”

태하가 서늘한 확답을 던짐과 동시에 참아왔던 열기를 폭발시키듯 그녀의 깊은 곳까지 단숨에 집어삼켰다. 예고 없이 일방적이고도 깊숙하게 파고드는 지독한 압박감에 경신의 사고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오빠, 조금만······ 천천히······!”

“글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나도 처음이라.”

자신을 위해 25년을 참았다니. 이렇게 아름답고 세상 꼭대기에 머무는 다 가진 남자에게 따르는 여자는 많았을 텐데, 지독하게도 경신 자신에게만 순정을 바친 그였다.

미안하고 또 고맙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에게 격이 맞지 않는 자신은 이제 사라져야 할 때였으니.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경신의 허벅지를 틀어쥔 태하의 손아귀 힘도 거침없이 강해졌다. 마찰하는 살결 사이로 아슬아슬한 열기가 터져 나왔고, 경신은 자신을 온통 짓눌러오는 압도적인 무게감 속에서 하얗게 시야를 흐렸다.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저들의 관계 역시 되돌릴 수 없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단언컨대 이별치고는 지나치게 가학적이고, 지독하게 화려하며, 미치도록 뜨거운 밤이었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형제처럼 자란 시간은 이미 오래전 변질되었다. 스페인으로 입양되었던 그가 완벽하게 다듬어진 남자가 되어 돌아왔을 때, ‘가족애’ 따위는 기화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보육원 주인의 딸이었던 경신은 이제 천애 고아가 되어 그의 후원에 의지하는 처지였다.

“오빠가 나한테 준 거 다 돌려줄게.”

태하는 야속한 표정을 지으며 움푹 파인 그녀의 목덜미에 거칠게 얼굴을 묻고 낮게 긁히는 소리로 읊조렸다.

“Lo que te estoy dando no me cuesta nada. Disfrútalo. (내가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넌 그냥 누려.)”

“신데렐라는 질색이야······ 끝내는 게 정답이지.”

순간, 실내의 온도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경신의 이별 선언에 반응하듯 태하의 눈빛이 차갑고 서늘하게 일렁였다.

그의 뜨거운 손길이 척추를 따라 느릿하게 쓸어내릴 때마다 온몸의 소름이 바짝 돋았다.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타들어 가는 소리였다. 

태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잔물결 치는 입술을 집어삼켰다. 남아있는 숨 한 자락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려는 듯 집요하고 거친 입맞춤이 이어졌다.

“오늘 너, 후회 안 하겠어?”

한계를 넘어선 그는 허기진 포식자와 다름없었다. 경신이 시간을 달라고 애원했을 때 그는 기꺼이 절제하며 그녀의 마음이 자라길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이 이별 통보라면,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완전한 소유와 폭주뿐이었다.

경신 역시 그를 미치도록 사랑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그의 미래에 자신은 거머리 같은 걸림돌일 뿐이었다. 

스페인 양부모의 막대한 유산, 미국 명문 음대 졸업, 그리고 국내 기획사 인수까지. 

빛나는 그의 앞날에 '고아 출신 여대생'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줄 수는 없었다. 주변의 은근한 멸시와 보이지 않는 압박에 경신의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경신이 몸을 비틀며 저항하려 할수록 그녀의 허리를 조여오는 태하의 팔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그는 절박하게, 낙인을 찍듯 그녀의 온몸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오늘은 후회 안 해.”

이 밤을 보내는 것, 그리고 그와 이별하는 것.

“다시는 네 눈앞에 안 나타나. 단, 네가 돌아오면 절대 안 놔줄 거야.”

거칠어진 빗줄기 아래 두 사람의 숨결이 지독하게 얽혀갔다. 

경신은 자신을 부서뜨릴 듯 안아 오는 태하의 축축하고 넓은 등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꼭 끌어안았다.

***

한 달 뒤, 20XX년 2월 28일.

계절의 경계에 선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창밖에는 장마철을 연상케 하는 굵은 빗줄기가 퍼붓고 있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자극적으로 때리는 소리가 병실의 적막을 깨트렸다.

서울 대한 종합병원 VIP 병실. 정적만이 흐르던 공간에 정체 모를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바스락거리는 이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헝클어진 갈색 머리에 멍한 눈동자를 한 경신이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협탁 위를 더듬거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곤 콧등 위로 고정했다.

“어? 난 분명 죽었었는데······.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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