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 #4. [수상한 건물주, 누구지?]

Share

#4. [수상한 건물주, 누구지?]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0 11:17:22

경신은 뿌듯하게 이 귀여운 커플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화야는 규련의 팔을 톡톡 치면서 작게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빠, 너무 이상하지? 나 이런 룸메 만나서 어떡해.”

“왜? 일단 한 달 버텨봐. 로또 번호도 안다잖아?”

병실로 들어와 정숙한 자세로 반듯하게 서 있는 화야는 비슷한 두려움을 품고 있는 규련의 팔짱을 꼭 낀 채 작게 중얼거렸다.

“저기, 경신 양. 저 기숙사 아니면 갈 곳이 없어요. 혹시 진짜 계속 기숙사에서 지내실 건가요?”

“화야, 나 스물한 살이야. 너 재수해서 스물세 살이고. 과거에 친구였으니까 반말할게. 화야 너도 편하게 말해.”

경악을 품은 화야의 눈빛은 경신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한규련은 달랐다. S대 의대생답게 눈에 총기를 품고 경신을 신기하게 관찰만 하고 있었다.

“화야의 나이도 알다니! 완전 보살님이시네. 로또 번호 왠지 맞을 것 같아! 하하!”

“규련 오빠, 잠시 조용히 좀 해봐. 지금 그게 문제야?”

물질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화야는 규련을 향해 사납게 눈총을 쏘았다.

“저기, 학생. 정말 신기가 내린 사람 맞아요? 정체가 뭐예요?”

규련의 질문에 경신은 그제야 그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순서였는데, 그들과의 거리만큼 마음과 시간도 아직 필요해 보였다.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성은 청주 경(慶) 씨에, 이름은 새롭다 신(新). 경신이에요. 제가 전생의 기억은 있는데 현생 기억은 없네요. 학생증 보니까 국어교육과 4학년이래요. 만나서 반가워요.”

“뭐 알고 있겠지만, 난 수학교육과 송화야.”

“난 화야 남자친구, S대 의대 본과생 한규련이야.”

둘은 쭈뼛거리며 경신에게 인사를 건넸고,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곧 둘만의 대화를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전생이 진짜 있는 거야? 의사잖아, 말해봐.”

“나 아직 의대생이야. 게다가 그런 미스터리한 분야는 내 전공 밖이라고.”

둘은 경신이 있든 말든 여전히 수거리며 경신의 눈치를 보았다.

“오빠, 참, 아까 그 건물주님은 가셨어?”

“응, 주말까지 아예 이사할 때 쓰라고 차도 빌려주고 가셨어.”

“진짜 귀인이시다. 입원 수속까지 해주셨다며?”

“고마운 분이지.”

경신은 이리 어리고 아직 풋풋한 대학생 시절로 돌아와 이 둘을 보니 엄마 미소로 절로 나왔. 예전에 둘이 결혼해서 잘 살았던 일들과 화야가 자궁이 약해 아기를 낳지 못해 안타까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잠깐, 화야의 임신이 문제가 아니었다.

경신 자신이 잊고 있었던, 직면한 문제가 의식 위로 올라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성모 마리아님도 아니고 경신 자신이 무슨 그런 축복을 받았을까, 내가 아니겠지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아니나 다를까, 다시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서 간호사 두 명이 나타났다.

“자, 경신 임산부님. 산부인과 진료받으러 가실 시간입니다.”

***

역시 냉철한 화야의 합리적인 의심 비슷한 그 무언가는 어쨌든 기정사실이 되었다.

물론 경신이 죄를 지었다는 뜻도 아니었고, 임신을 반기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세간 사람들은 미혼모의 임신이라고 하면 걱정부터 할 것이고, 우리나라 정서상 아직 보수적인 시선이 남아 있기에 일반적으로는 충격적인 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경신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놀라 자빠질 만한 사건이 바로 임신이었다.

“나 큰일 났다. 이번 생에는 일찍 죽으면 안 되는데.”

경신은 전생에서의 패턴대로라면 단명할 팔자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규련은 황당한 표정으로 경신을 바라보며 간호사가 준비해 온 휠체어를 건네받았다.

“죽긴 왜 죽어요? 살리려고 병원 왔으니까 일단 휠체어에 타기나 해요!”

버럭 걱정을 해주는 규련 덕분에 경신은 정신을 차리고 앞에 놓인 휠체어에 오르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병으로 죽나? 병원 신세라니.”

경신의 혼잣말에 규련과 화야는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자꾸 그런 말 할래요? 임신했다면서요. 좋은 생각만 해야 하는 거예요. 요즘은 일찍 발견하면 못 고치는 병 거의 없어요.”

“맞아요, 보살님! 병원 온 김에 검사 다 받아봐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규련과 화야를 바라보자 경신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저들 입장에서는 오늘 처음 본 이상한 여학생일 텐데 저리 걱정해 주고 있다니.

경신은 일단 자신에게 가족이 생긴 것이 확실한지 의사에게 직접 듣고 싶다고 생각하며 배 위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병원 복도를 걷던 그때.

Rrr Rr Rrr-.

갑자기 규련은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

“하하, 태······ 하······ 아니 건물주님. 저 이사는 주말에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병원 복도를 지나가다 걸려 온 전화를 받기 위해 규련이 잠시 휠체어를 화야에게 맡기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아, 그 쓰러졌던 여학생은 지금 검사받고 있습니다.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연신 경신의 눈치를 보며 규련은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화의 중심에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규련의 통화 소리를 들으며 경신은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 주니 이번 세상도 살 만하다고 생각하며 손으로 배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성인이 되어 대부분은 보호자 동의를 받을 일이 거의 없지만, 병원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입원을 위해 병원에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보호자가 필요했다.

경신은 오늘 보호자로 추정되는 규련이 VIP 병실에 입원도 시켜주고 산부인과까지 인솔해 주니 고맙기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규련과 화야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경신을 바라보았다.

“하하, 태······ 하······ 아니 건물주님. 경신 양은 잘 돌보겠습니다.”

누군데 저리 정중하게 통화를 하는 걸까.

자신을 잘 돌본다고?

“건물주? 태······ 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23. [갓물주와 밤에 피는 장미]

    화려한 조명과 진한 향수 냄새가 엉킨 S방송국 JW소속사 위주로 쓰는 전용 대기실.서정민은 제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린 후배의 어깨를 슬며시 끌어안았다. 살결이 마찰하며 나는 은밀하고 축축한 소리가 단단히 닫힌 대기실 문 안쪽에 야릇하게 울려 퍼졌다.“선배님······ 진짜 미칠 것 같아요. 존경합니다.” “하흣, 말만 잘하지······.”입가에서는 매끄럽고 아찔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정민의 눈빛은 냉정할 만큼 서늘했다.키스 한번도 안 하면서도 절정에 달해 번들거리는 남자의 표정을 마주하기 싫어 그녀는 유연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뒤에서 해줘.” “네, 선배님. 원하는 대로요.”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등 뒤에서 밀려드는 저돌적인 자극이 척추를 따라 찌릿하게 내달렸다.어린 남자의 거친 패기를 즐기는 것은 정민에게 그저 팽팽하게 당겨진 일상의 지루함을 터뜨리는 가벼운 취미 생활에 불과했다.엎드린 그녀의 시선이 대기실 벽면에 걸린 모니터로 향했다. 화면 속에는 막 사전 녹화를 마친 초특급 신인 그룹 ‘에스트렐라’의 무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압도적인 비주얼, 거친 짐승 같은 피지컬, 완벽한 성량까지. 단숨에 가요계를 씹어 삼킨 사내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정민의 허리를 굳건히 잡고 속도를 올리던 후배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모니터를 바라보며 헐떡였다.“······너, 에스트렐라랑 친해?”정민이 아래에서 밀려드는 쾌감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낮게 묻자, 후배는 허탈한 한숨을 섞어 쓰게 웃었다.“아니요······ 같이 데뷔했지만 솔직히 넘사벽이라. 이제는 그냥 우러러볼 뿐이죠.” “너희도 꽤 대단하잖아.” “저희는 소속사 빨로 버티는 중이죠. 듣기로는 저 에스트렐라 멤버들, 집안까지 전부 엄친

  •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22. [압도적인 그, 치명적인 그녀]

    처음 쓰러졌을 때, 규련은 ‘건물주님’의 도움으로 그녀를 무사히 입원시켰다고 했다.퇴원하는 날, 앞마당을 점령했던 멋들어진 검은색 독일제 명품 SUV 역시 그 정체 모를 건물주님의 선의였다.그 모든 호의의 배후가 태하라는 남자였다니. 경신은 차분하게 침대에 걸터앉아 화야를 빤히 바라보았다.“표정 보니 이미 눈치채셨네요. 맞아요, 보살님.”“그럼 나 퇴원할 때 탔던 그 어마어마한 차도 혹시······.”“네. 보살님 쓰러지셨을 때 보살님을 직접 안고 병원까지 데려다준 것도 그 사람이에요.”탄식이 절로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직접 안고 병원까지?악연만큼이나 무서운 게 인연이라더니, 어쩌면 이토록 우연이 겹치고 겹칠 수 있을까.“아, 어떻게 난 태하 씨에게 그런 신세를······.”처음 본다는 뻔뻔한 소리나 늘어놓고,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도망칠 궁리만 했다니.경신은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그날 태하 씨가 얼마나 애틋하게 구셨다고요. 공주님처럼 귀하게 대하셨어요. 보살님이랑 사이 안 좋다고 신신당부해서 그동안 입이 근질거려 죽는 줄 알았다고요.”“허, 헐······. 나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니? 태하 씨가 나를 고, 고, 공주님처럼?”“대박 멋졌다니까요. 완전 영화 한편 찍었죠.&rd

  •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21. [중력에 이끌리듯 운명도...]

    벌써 3월 4주 차 금요일이었다.S대 학생생활관 한편, 여학생 기숙사의 아침은 오늘도 여지없었다. 2월 말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져 온 이 어수선한 풍경은 이제 완벽한 일상이 되어버렸다.“보살님!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아, 나 정말 미치겠어!”오늘도 경신은 격렬한 이불킥에 여념이 없었다. 죄 없는 이불에 화풀이하는 경신을 향해 화야가 따끔한 일침을 날리며 아침을 열었다.“임산부가 아침부터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계속되는 모닝 이불킥은 폐 건강에 해롭다고요. 먼지 날리잖아요!” “미안해, 화야. 근데 정말 미칠 것 같아. 나 어떡하면 좋니?” “뭘 어떡해요. 그냥 MH 엔터에 가서 두고 온 물건들 찾아오면 끝날 일인데!”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악수까지 하면서 ‘바이 바이’ 하고 쿨하게 돌아섰는데······ 이제 와서 다시 가라고? 그 민망함은 온전히 내 몫이잖아. 그냥 새로 살까? 아님 없는 대로 살까?” “그 말만 벌써 일주일째거든요? 지겹지도 않아요? 가서 찾아오는 게 정답이에요!”경신도 알고 있었다. 화야는 언제나 옳다는 것을.지난주, 소강당에서 쓰러지며 안경을 두고 온 것은 물론 핸드폰까지 떨어뜨린 게 분명했다.다시 사면 그만이겠지만, 멀쩡한 돈을 길바닥에 버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핸드폰엔 고작 한 달 남짓이지만 그녀의 새로운 인생사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저장된 인연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포기하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하지만 문제는 그곳을 다시 제 발로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연을 끊으려 작정했는데, 물건 때문에 다시 엮이러 가다니.“그냥 다녀오세요.” “휴······ 화야.” “사실, 가고 싶잖아요?”화야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경신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실 그날,

  •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20. [나쁜 남자와 얽힐 준비]

    태하는 들뜬 마음을 갈무리하고 VIP 관계자석으로 돌아왔다. 사람 좋은 마호와 MH 엔터테인먼트의 유일한 아티스트인 에스트렐라 멤버들은, 평소 AI처럼 무미건조하던 태하의 희귀한 반응을 두고 수군거리기 바빴다.“태하 님, 그 여학생 몸은 괜찮은 겁니까?” “어.” “진짜 성격 화통하던데, 생일 파티 때 초대하신 그 과외 선생님 맞죠?” “그래.”시온과 도국의 질문까지는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정기범은 날이 서 있었다.“그 여자랑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여학생, 선생님, 그리고 '그 여자'. 모든 화살표가 한 인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태하는 팔짱을 낀 채, 조금 전까지 경신이 서 있던 빈자리를 묵묵히 응시했다.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절대 다가오지 말라고 했는데, 기억을 잃고 먼저 나타난 그녀였다.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당부. 요즘은 나쁜 남자가 대세라는 엉뚱한 궤변.이어 그의 입가에 희미하지만 매혹적인 미소가 번졌다. 어떻게 그녀를 공략해야 할지 선명한 이정표가 보였다.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칠 만큼 어리석은 남자가 아니었으니까.“잘해 보려고.”그렇게 팔짱을 끼고 선전포고를 하듯 정기범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예전부터 거슬렸는데. 여전히 정기범은 수컷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우와, 상남자.” “남자는 직진이죠.” “태하 님, 순정파군요. 하하!”휙, 태하가 고개를 돌려 수다 삼매경에 빠진 멤버들에게 따가운 눈빛을 보냈다. 자신과 경신에 대해 가볍게 떠드는 꼴을 단 한마디도 들어줄 요량이 없었다.“다들, 조용히 해.”서늘한 경고 한마디면 충분했다. 소강당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고, 오디션은 무거운 긴장감 속에 이어졌다.태하는 다시 곱씹어 보았다. 경신이 한 말을 말이다.“Hombre malo(나쁜 남자)······. 그거 해줘야겠네.”경신의 목소리를 되새기던 태하의 입술 사이로 낮은 혼잣말이 슬그머니 새어 나왔다. *** 경신은 회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도망치듯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의 기

  •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19. [이런저런 남자들! 이제 제발 안녕!]

    경신이 너무 진지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바람에 대기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도윤은 그 정적을 비웃듯 다시 경신에게 다가와, 만개한 노란 국화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런······ 예쁜아, 우와. 감동인데? 나 방금 눈물 날 뻔했잖아. 그래, 고마워.”오늘 경신은 도윤의 낯선 민낯을 보긴 했지만, 그나마 남아있던 좋았던 기억조차 얼룩질까 두려워 더는 과거를 들추지 않기로 했다. 그를 폄하하는 것도 멈추기로 했다. 온 힘을 다해 그를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으니까.그때, 눈치 없는 현수가 다시 다가와 경신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독설을 내뱉었다.“너, 볼일 끝났으면 어서 꺼져. 시시한 너 따위를 상대할 정도로 여기 사람들 한가하지 않거든? 설마 관심 끌어보려고 아픈 척 연기한 건 아니지?”아, 저 어여쁜 입술에 칼날이라도 달린 걸까. 사람 심장을 콕콕 쑤셔대는 말을 어쩜 저리도 찰지게 할까. 아마 태하나 도윤이 경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못견디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경신은 아가들에게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 피한다!’는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현수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현수 씨, 내가 시시하다면서 왜 그렇게 신경을 써요? 원래 세상은 내 맘 같지 않은 거에요. 자꾸 그렇게 심술부리면 얼굴 더 못생겨져요.”여자들만의 서늘한 기 싸움 끝에 승자는 역시나 경신이었다.“야! 너 뭐라고?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현수가 다시 발끈하며 달려들려던 찰나, 쾅ㅡ! 태하가 과격하게 일어서며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굉음을 냈다.“아, 시끄럽게.”의자 하나로 상황을 평정한 태하는 나른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좌중을 훑었다. 그 시선이 어찌나 서늘한지 경신의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그가 다정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순간이었다.“아, 놀라라. 태하 씨, 젊어서 그런가 힘이 넘치시네?”“자자! 나도 피곤하고 지쳤다. 오디션 마무리해야 하니까 다들 돌아가!”얼른 태

  •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18. [과거에게 보내는 상냥한 이별]

    태하는 지금 눈앞이 캄캄했다.기억조차 온전치 못하다는 경신이 제 품 안에서 종이 인형처럼 힘없이 꺾여 쓰러지다니. 대기실로 안고 들어가 소파에 그녀를 뉘어두고 119를 부르려던 찰나, 다행히 경신이 가늘게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평소에도 이렇게 위태롭게 살았던 건지, 제 가슴 한구석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정신이 들어?”이 와중에 마호와 도윤, 그리고 현수까지 줄줄 사탕처럼 뒤를 쫓아오는 바람에 대기실은 이미 포화 상태라 더 정신 없을 것 같았다.“아······ 네. 괜찮아요. 하하.”사람들과 시선을 맞추는 것조차 버거워 보일 정도로 기력이 쇠한 건지, 경신은 그저 해사하게 웃으며 눈만 깜뻑거렸다.“예쁜이가 몸이 약하네. 현수 씨, 아까 너무 긁어댄 거 아니야?” “도윤 씨! 그냥 저 여자애가 혼자 쓰러진 거라니까!”그때, 쿵ㅡ!경신의 안색을 살피던 태하가 싸늘한 눈빛으로 소파 테이블을 거칠게 걷어찼다. 둔중한 타격음이 정적을 깨부수었다.“쉿, 환자 앞이야.”단 한 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서릿발보다 날카로웠다. 태하의 폭발 직전인 감정을 읽어낸 듯,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이 일순간 숨을 죽였다. 태하는 서늘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어 보다 경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원래 빈혈이 좀 있어서 그래요. 바쁘실 텐데 폐를 끼쳤네요.”경신의 사과가 떨어지기 무섭게 도윤이 다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태하와 경신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민 그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그나저나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저번엔 연예인 뺨치게 화려한 스타일이더니, 오늘은 청초한 모범생 버전이네?” “연예인 뺨을 쳐요? 제가요?”자신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상태에서 말을 섞을수록 의아한지 경신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마호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더니 경신에게 건넸다.“우리 경신 양은 실제로도 과 수석을 하는 모범생이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