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새벽 두 시 라디오가 없어지던 날, 톱배우 류하진이 내게 다가왔다. 그날부터 시작된 비밀스러운 전담 작가 생활. 화면 밖의 그가 내게만 보여주는 다정한 비밀들이 쌓여가기 시작한다.
View More「밤 열 시입니다. 오늘은 제가 쓴 글을 남이 외워서 들려줘요. 그것도 제가 지운 줄만 골라서요. 도망갈 데가 없습니다.」일요일은 길었다. 월요일은 더 길었다."월요일 밤에 뭘 말한다는 건데."다래가 일요일 저녁에 물었다. 나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같은 수건을 세 번째 개는 중이었다."몰라.""새벽 두 시에 방송국 계단에서, 톱배우가, 내가 먼저 말할게요, 월요일 밤에. 이게 뭘 것 같아. 다음 주 일정?""……일정일 수도 있지.""해온아. 너 수건 뒤집어서 개고 있어."수건을 내려놨다. 다래는 한숨을 쉬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백일장 발표 기다릴 때 해 주던 거다.월요일 새벽 두 시 반, 나는 창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지금쯤 검은 차가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을 거다. 네 시간을 달려 항구로, 일곱 시 첫 배로 섬으로. 그 사람은 오늘도 문 잠긴 극장에 들어갈 거고, 평상에서 아버지한테 녹음기를 건넬 거다. 그리고 네 시 마지막 배를 타고 돌아온다.종이를 폈다. 오프닝을 써 보려고 했다. 한 줄도 안 나왔다. 귀퉁이에 시각만 적었다. 02:31.월요일 오후 다섯 시 반에 문자가 왔다. 우리는 문자를 급할 때만 쓴다.[배에서 내렸습니다. 밤 열 시, 7층 회의실. 불은 켜지 말고 계세요.]급한 일이구나. 그 사람한테도.*밤 아홉 시 오십 분. 7층은 비어 있었다.월요일 밤이라 직원들은 다 퇴근했다. 복도 불은 절반만 켜져 있었다. 나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시킨 대로 불을 안 켰다.어두운 회의실은 처음이 아니다. 첫 방송 날에도 불을 껐다. 그날은 화면 빛이 있었고 스무 명이 있었다. 오늘은 창밖 불빛뿐이고 나 혼자다.긴 탁자 맨 끝, 낮에 일하는 내
「새벽 두 시입니다. 걷다 보니 여기예요. 불 꺼진 방송국 옆문 앞. 오늘은 물어보러 온 게 아니라, 안 묻겠다고 말하러 왔습니다.」그 메모에 답을 쓰는 데 사흘이 걸렸다.작가님, 요즘 저한테 묻고 싶은 게 있죠. 있다. 열 개쯤 있다. 그런데 안 묻기로 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없어요」라고 쓰면 거짓말이다. 나는 수요일 밤에 한 줄, 목요일 밤에 한 줄을 쓰고 둘 다 줄을 그었다. 금요일 저녁에야 창틀에 종이를 끼웠다.[~~없어요~~][~~있어요~~][있는데, 종이에는 못 써요.]답은 한 시간 만에 왔다.[그럼 걸으면서 하죠. 내일 촬영 끝나고요. 운동화 신고 오세요.]그래서 칠월 십일일 토요일 밤 열한 시 반, 나는 운동화를 신고 달무리엔터 건물 뒷문에 서 있었다.하진은 까만 모자에 까만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까만 티셔츠에 까만 바지. 가로등 밑이 아니면 안 보일 차림이었다."그림자가 걸어오는 줄 알았어요.""그게 목적입니다.""저는 흰 티 입었는데요. 저만 보이잖아요.""작가님은 보여야죠. 제가 따라가야 하니까."마스크 때문에 표정이 안 보였다. 눈만 보였는데 눈이 조금 휘었다. 요즘은 눈만 봐도 안다."어디로 가요?""정한 데 없습니다. 발 가는 대로요."우리는 걷기 시작했다.토요일 밤의 큰길은 아직 시끄러웠다. 술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택시가 줄지어 섰다. 하진이 모자를 조금 더 눌렀다. 우리는 큰길을 버리고 한 블록 안쪽 길로 들어갔다. 거기는 조용했다. 문 닫은 가게들이 유리창만 내놓고 있었다. 빵집, 안경점, 세탁소, 꽃집. 불 꺼진 유리마다 걸어가는 두 사람이 비쳤다. 흰 티 하나와 그림자 하나.한 칸 띄우고 걸었다. 벤치에서 띄우던 그 한 칸이다. 걸을 때는 그
「낮입니다. 불 꺼진 부스는 낮에 보면 더 조용해요. 편지 열 통을 한 줄로 놓았습니다. 글씨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복도 끝 창틀의 종이는 그다음 날 답이 와 있었다.내가 줄 그어 남긴 「손은 왜 그랬어요」 밑에, 2B 연필로.[~~복도가 좁아서요.~~][좁지 않았습니다.]그 사람도 줄을 긋는다. 밑이 보이라고 긋는다. 나는 그 종이를 지갑에 넣었다. 명함 옆 칸에. 그러고 일주일을 둘 다 아무 일 없는 얼굴로 다녔다. 복도에서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었고, 종이에서는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새끼손가락 얘기는 누구도 다시 안 꺼냈다.그렇게 칠월 팔일 수요일이 됐다.아침에 마 피디님한테서 전화가 왔다."해온아, 오늘 시간 되냐. 자료실에 사연함 정리하는데 네가 좀 와 봐야겠다. 네 연필통도 여기 있고.""연필통요? 저 다 챙겨 나왔는데요.""아니야, 하나 있어. 그리고 보여 줄 것도 있고. 됐어, 좋아. 두 시까지 와."대답도 안 했는데 끊겼다. 피디님은 석 달 만에 통화해도 어제 본 사람 말투다.*방송국 5층은 그대로였다.복도 형광등은 다섯 개 가운데 여전히 두 개가 나가 있었다. 석 달 넘게 아무도 안 갈았다. 우리 팀 책상 자리에는 다른 프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지원 선배의 바퀴 의자만 구석에 밀려나 있었다. 선배는 회의 가고 없다고 했다."왔냐. 살쪘네. 새 직장 밥이 좋냐.""안 쪘어요.""됐어, 좋아. 이리 와."피디님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지하 자료실까지 내려갔다. 문을 여니 냄새가 먼저 나왔다. 먼지하고 오래된 테이프 냄새. 두 해 동안 매일 맡던 냄새다. 그리고 사월 어느 월요일에 한 사람 소매에서 맡았고, 유월 첫날 섬 극장 문틈에서 또 맡은 냄새다.창 없는 방 가운
「저녁입니다. 복도 끝 창이 주황색이에요. 누가 창틀에 종이를 끼워 두고 갔습니다. 읽기 전에 주위부터 살폈어요.」칠월 첫 주 수요일 아침, 나는 비상계단에서 못 볼 걸 봤다.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 계단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6층과 7층 사이 계단참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세하 씨와 상우 씨였다.세하 씨가 보자기에 싼 네모난 걸 상우 씨 가슴에 밀어 넣고 있었다."받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싼 거야. 달걀말이 터진 건 못 본 척하고 먹어.""……회사에서는.""회사니까 주지. 오빠 어제도 김밥 한 줄로 때웠잖아. 하진이가 다 말해 줬어."상우 씨는 보자기를 두 손으로 받았다. 받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깨지는 걸 받는 손이었다. 귀는 말할 것도 없이 빨갰다. 목까지 빨갰다.나는 숨을 죽이고 한 칸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운동화 밑창이 끽 소리를 냈다.둘이 동시에 돌아봤다."……안녕하세요.""아, 작가님이구나. 놀랐잖아."세하 씨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웃었다. 상우 씨는 보자기를 등 뒤로 숨겼다. 숨겨지는 크기가 아니었다. 양옆으로 귀퉁이가 다 나왔다."저 아무것도 못 봤어요. 계단만 봤어요.""봤어도 돼요. 작가님은 우리 편이잖아."그때 아래층에서 구두 소리가 올라왔다. 또각또각. 홍보팀 다희 씨 구두다. 이 건물에서 저렇게 빠르게 걷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세하 씨 얼굴이 굳었다. 다희 씨는 대표님한테 뭐든 말하는 사람이다. 점심 메뉴까지 보고한다는 소문이 있다.나는 계단참으로 뛰어 올라가 상우 씨 등 뒤의 보자기를 낚아챘다. 가슴에 안았다. 다희 씨가 모퉁이를 돌아 올라왔다."어, 다들 여기서 뭐 하세요?""엘리베이터가 점검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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