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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남겨진 사람의 몫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26.04.2026 17:57:36

햇살이 유난히 맑던 아침이었다.

하지만 도윤의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병실. 하얀 벽, 고요한 기계음,

그 속에 놓인 빈 침대 위엔 그녀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도윤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장례는 단출했다.

가족이 없었고, 친구도 알려진 이 없었다.

결국, 유일하게 상주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그 이도윤이었다.

연고자: 없음.

가족 관계: 없음.

상주: 이도윤.

그 문서를 보며 도윤은 무너졌다.

그녀가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지냈는지 그제야, 고스란히 가슴으로 느껴졌다.

며칠 후.

도윤은 백시아의 물건이 남아있는 작은 원룸에 혼자 있었다.

좁은 방, 낡은 책상,

깔끔하게 정리된 책들과 옷들,

그리고 손때 묻은 작은 서랍장.

그는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었다.

첫 번째 칸, 두 번째 칸엔 별다른 건 없었다.

세 번째 칸. 그 속엔 작은 종이상자가 있었다.

누렇게 바랜 흰 봉투 하나와 접혀 있는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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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대행   75. 그 사람이 사라졌다

    도윤이 없었다.아무 연락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시아는 그 사실을 처음엔 믿지 않았다.단순히 휴대폰을 두고 나갔을 수도 있고,회의가 길어진 걸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썼다.하지만 오후가 넘어가고, 밤이 깊어가도 도윤은 돌아오지 않았다.“…거짓말이지.”식탁 앞에 멍하니 앉은 백시아는 도윤이 아침에 놓고 간 텀블러를 끌어안았다.그 안엔 아직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이 아침의 온기가, 지금 이 순간의 불안함을 더 날카롭게 파고들었다.그녀는 급하게 휴대폰을 들어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은 통화할 수 없는 번호입니다."자동 응답만 반복될 뿐이었다.그 다음은 회사. 게임 회사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그녀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도윤 씨, 오늘 출근하셨나요?”상대 직원이 말끝을 흐리더니 작게 대답했다.“오늘… 안 오셨는데요? 출장 같은 일정도 안 잡혀 있었고…”시아는 그 순간,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침에… 분명히 집을 나섰단 말이야.’그녀는 곧장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도윤의 운동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지갑도, 카드도 그대로.“……의도적이야.”누군가, 도윤을 데려간 것이다.그 시각, 조진혁은 경찰서에서 시아의 집 주변 CCTV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도윤이 출근했다던 아침, 그 건물엔 낯선 차량 하나가 짧게 정차했다.5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진 그 차량.그 속에서 누군가를 억지로 태우는 장면은 포착되지 않았지만차량의 유리창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실루엣은 조진혁의 눈을 멈추게 했다.“…도윤 씨.”그는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백시아: 여보세요. ]“지금 어디에요?”[ 집이요. 도윤 씨가… 사라졌어요. ]진혁은 단숨에 일어났다.“지금 바로 갈게요. 절대 나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알겠어요. ]시아는 통화를 끊은 뒤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자신의 곁에 있던 단 한 사람이,자신을 지키겠다고

  • 아내 대행   74. 의심의 시작, 감정의 균열

    밤공기는 차가웠다.여름의 끝자락, 습기와 열기가 뒤섞인 도시 속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얼어붙은 심장을 안고 살아갔다.시아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거실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커튼 틈 사이로 도시의 불빛이 얼룩처럼 번졌다.“도윤 씨, 자요?”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마치, 아무도 듣지 않기를 바라는 속삭임처럼.도윤은 방 안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흰 티셔츠에 바지만 걸친 채, 피곤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안 자고 있었어요.”“……내가 괜히 무서운 말만 한 건 아니죠?”“……아뇨. 무섭긴 해요. 하지만… 더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시아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그 사람이 누군지는 아직 말 못 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있어요.”“뭔데요?”“그 사람은… 내가 잃은 것보다 내가 가진 걸 부수는 걸 더 좋아해요.”도윤은 그녀의 말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대신 다가가 그녀 옆에 앉았다.“그럼 이제부터 내가 가진 걸로 당신이 부서지지 않게 막을게요.”“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알아요. 그래도 하려고요.”시아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품에 기대는 게 허락된 사람처럼.다음 날. 진혁은 시아의 옛 기록을 다시 들춰보고 있었다.‘그 여자… 정말로 다 털고 나온 걸까?’서울지방청 기록보관실 안,먼지를 뒤집어쓴 서류철 사이에서 그는 하나의 오래된 수사기록을 꺼냈다.‘백시아 – 정식 수사 이력 없음 관련자 사망 – 용의선상 제외’진혁의 눈이 좁아졌다.“말이 되냐고…”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도윤 씨 집 주변 CCTV, 복구 완료됐습니다.이상 장면 한 건 발견. 영상 전송 드릴게요.진혁은 바로 영상을 열었다.그리고… 눈이 흔들렸다.복도 끝, 잠깐 모습을 드러냈던 누군가 낯설지 않은 실루엣.‘이 사람… 어디서…’그는 곧바로 또 다른 파일을 열어 과거 특정 사건 관련자 사진을

  • 아내 대행   73. 누군가 보고 있다

    도윤의 품에 안겨 있던 시아는 마치 온몸이 무너져 내린 듯 말없이 떨렸다.그는 그녀를 더 꼭 감싸 안았다.그 품 안에서 그녀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그저 조용히,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중처럼.“이젠… 정말 끝났을까.”시아가 낮게 중얼였다.“끝난 게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단단했다.그 말에 백시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그토록 오랜 시간, 아무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준 적 없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도망쳐 온 과거가, 그리 쉽게 끝을 맺게 두진 않을 거라는 걸.며칠이 지났다.시아는 도윤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이제는 숨지 않았다.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다.도윤은 그녀를 위해 식사를 만들고, 함께 걷고, 말을 아꼈다.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눈빛과 손길은 늘 먼저 다가왔다.그런 평온한 어느 날 저녁,그녀는 거실 창가에 앉아 하늘이 붉게 물든 걸 바라보다, 느낌을 받았다.누군가 보고 있다.시아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창밖, 건너편 빌라 옥상. 희미한 그림자가 스치듯 사라졌다.심장이 철렁했다.“...도윤 씨.”시아가 작게 불렀다.“응?”“방금... 누가 우리 집을 보고 있었어요.”도윤은 즉시 창가로 다가와밖을 살폈지만, 이미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착각일 수도 있어.”“아니에요. 그 시선, 알아요. 나, 그런 시선에 익숙해요.”도윤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럼 오늘은 내 방에서 자요. 그 방은 창이 작으니까. 내가 바로 옆에 있을게.”그날 밤, 시아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새벽 세 시. 도윤은 조용히 일어나 현관문에 보안 체계를 한 번 더 점검하고거실 조명 하나를 은은하게 켰다.그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백시아를 위해 침대 머리맡에 앉아 그녀가 잠들 때까지 머물렀다.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그럼 내가 어떻게 해. 당신이 불안해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냥 자.”“…나 진짜 이상한 여자

  • 아내 대행   72. 그림자, 다시 걷다

    한동안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녀온 바다 이야기도, 그녀의 편지 내용도 그 어떤 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말하면 사라질 것 같았다.마치, 그날의 바람과 물결, 그리고 백시아의 마지막 목소리까지도.그는 조용히 일상으로 복귀했다.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코드를 짜고, 피규어 먼지를 털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커피를 내리고…그 모든 순간들 사이사이, 시아는 조용히 숨어 있었다.“그래도 밥은 잘 챙겨 먹네.”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도윤은 손에 들고 있던 국자를 떨어뜨렸다.“형…?”“왜, 사람 놀래냐?”현관에 기대선 남자는 조진혁이었다.수척해진 얼굴, 짙어진 눈 밑 그림자. 하지만 여전히 또렷한 눈동자.“당신, 내가 연락 몇 번이나 했는지 알아?”“…미안해요. 생각 정리 좀 하느라.”“정리 됐어?”“…아니요. 아마 평생도 안 될 것 같아요.”진혁은 대꾸 없이 그의 앞에 앉았다.“이거 마셔요.”도윤은 조용히 컵을 내밀었다.따뜻한 보이차. 시아가 자주 마시던 향.조진혁은 그 향을 맡는 순간 잠시 눈을 감았다.“여전히, 그녀의 시간 속에 살고 있네요.”“형도 마찬가지잖아요.”진혁은 피식 웃었다.“그래. 근데… 난 이쪽 일이 직업이니까. 당신처럼 그렇게 안고만 있을 순 없어.”도윤은 고개를 숙였다.“그런데 말이야.”진혁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그날 이후… 누가 당신 집 앞에 계속 꽃을 두고 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들었어?”“…꽃이요?”“그래. 붉은 장미.”도윤의 눈동자가 조용히 떨렸다.그건 백시아의 서명이었다.살인을 저지른 후 남기던 붉은 조화 한 송이.“누군지는 확인 안 됐지만, 그게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놓여 있다는 게 문제야.”“누구…일까요.”도윤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진혁은 그의 표정을 살피다 천천히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사진. 흐릿하게 찍힌 인물.후드티를 눌러쓴 뒷모습.“얼굴은 안 나와. 하지만… 몸짓, 걸음걸이 그녀와 꽤 비슷해.”“그럴 리가 없어요. 형도 알잖아요.

  • 아내 대행   71. 남겨진 사람의 몫

    햇살이 유난히 맑던 아침이었다.하지만 도윤의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병실. 하얀 벽, 고요한 기계음,그 속에 놓인 빈 침대 위엔 그녀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도윤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그녀의 장례는 단출했다.가족이 없었고, 친구도 알려진 이 없었다.결국, 유일하게 상주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그 이도윤이었다.연고자: 없음.가족 관계: 없음.상주: 이도윤.그 문서를 보며 도윤은 무너졌다.그녀가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는지,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지냈는지 그제야, 고스란히 가슴으로 느껴졌다.며칠 후.도윤은 백시아의 물건이 남아있는 작은 원룸에 혼자 있었다.좁은 방, 낡은 책상,깔끔하게 정리된 책들과 옷들,그리고 손때 묻은 작은 서랍장.그는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었다.첫 번째 칸, 두 번째 칸엔 별다른 건 없었다.세 번째 칸. 그 속엔 작은 종이상자가 있었다.누렇게 바랜 흰 봉투 하나와 접혀 있는 흑백사진 한 장.사진 속엔 백시아가 웃고 있었다.어릴 적, 지금보다 훨씬 맑은 눈동자.도윤은 손끝으로 사진을 쓰다듬었다.그리고 봉투를 열었다.안엔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도윤에게.’도윤아. 이 글을 네가 읽고 있다는 건 내가 옆에 없다는 뜻이겠지.미안해. 내가 마지막까지도 너를 아프게 하게 돼서.처음 널 만났을 땐, 난 숨는 데만 익숙한 사람이었어.도망치고, 버리고, 지우고.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그걸로 스스로를 지켰어.근데 널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누군가 곁에 있고 싶단 생각을 했어.네가 건네준 말들, 따뜻하게 웃던 얼굴,어색하지만 매일같이 밥 챙겨주던 손길.그 모든 게, 나한테는 기적이었어.도윤아.내가 살아온 시간 대부분은 어두웠지만,너와 함께한 그 시간만은 빛이었어.고마워. 정말 고마웠어.도윤은 편지를 쥔 손을 떨었다.숨을 참고 버티던 감정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오열도, 비명도 아니었다.그저 너무 조용한

  • 아내 대행   70. 안개가 걷힌 자리에 남은 것

    다음 날. 시아는 도윤 몰래 집을 나섰다.새벽 공기는 차고 습했다.긴 코트를 걸친 그녀는 골목 안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였다.목적지는 하나. 조진혁.그는 시아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약속 장소로 나왔다."조형사."시아가 먼저 말했다.“윤강이 움직였어요. 그리고 도윤을 노리기 시작했어요.”진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예상보다 일찍 시작해야겠네요.”“……작전 준비된 거예요?”“거의요. 당신만 결심하면 돼요.”그 말에 시아는 한참을 침묵했다.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빛바랜 새벽빛이 건물들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이번엔, 내 쪽에서 덫을 놓을게요."“위험해질 수 있어요.”“알아요. 하지만... 더는 도윤이 다치게 할 수 없어요. 이번엔 진짜로 끝내야 해요.”며칠 후. 도윤은 회사를 조퇴했다.백시아가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가 평소처럼 조용히 나갔다면 보통이면 점심쯤 연락을 했을 텐데,이번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현관엔 그녀의 구두가 없었다.거실도, 방도 비어 있었다.도윤은 초조하게 휴대폰을 쥐었다.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지만"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기계음만 반복될 뿐이었다.그는 허겁지겁 나섰다.밤 8시. 서울 변두리의 버려진 공장 부지.시아는 그곳에서 윤강을 기다리고 있었다.머리는 묶지 않았고, 코트 안에는 칼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진혁은 멀찍이 숨어 모든 장면을 감시하고 있었다.이건 덫이었다.윤강을 끌어내어, 그를 끝장내기 위한 덫.그리고 그때.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실루엣. 윤강이었다.그의 눈빛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마치 이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느긋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래, 역시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 당신은… 항상 정면으로 오는 사람이었지.”“넌 왜 도윤을 건드린 거야.”시아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왜 나로는 부족했어?”“그건 말이야…”윤강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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