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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살아있다는 것.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1 19: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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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다가 불려 나갈 일도, 차가운 철 침대 위에서 고통받을 일도… 사람을 죽이는 일도… 피를 볼 이유도, 아플 이유도 더 이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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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가 살짝 말을 멈추다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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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팔도 다리도 아파요."

"늙어서 그런 거야. 별 생각 마."

"… 몇 년 전에 아이들과 함께 전쟁 영화를 봤습니다. 물론 실제와는 거의 달랐지만… 저, 그걸 보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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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으로 손가락 마디를 후벼파며 말하는 김정우의 모습은 불안하고 불안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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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옥 같은 일상이 그립다니….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잖아요? 그런데 전 말입니다…."

피가 후두둑 떨어지자, 김정우가 고통에 인상을 살짝 쓰며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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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2시간 자도, 리더에게 매번 혼이 나고, 형님께 놀림당하여도… 매일 피비린내를 맡아도……… 그때가 조금 더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살아갈수록 더욱 더."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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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가 양손으로 머리를 잡으며 고통스러워했다. 

⁠

"알아요, 압니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죽은 송장과 다를 바 없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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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듯, 후벼 파여 피가 나는 손을 닦지도 못하고,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말하는 김정우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김정우가 말하는 저 인생 속에는 분명 이시안도 함께인데, 

그저 꿈속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은 착각 같았다. 

분명 군데군데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영화 속에서 '병기'는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믿고 싸운다는 게… 참, 우스웠습니다. 실상은 그딴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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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안이 김정우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옷소매를 아무렇게나 찢어 김정우의 손을 칭칭 감았다. 그 솜씨는 예나 지금이나 허술해 김정우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니 칭칭 감긴 손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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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올 때까지 풀지 마라. 확인할 거니까. 명령이야."

"…… 그냥 풀리면?"

"처맞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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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가 볼을 긁적이며 벌써 풀리려고 하는 낡은 천 조각을 자신의 손으로 더욱 강하게 감았다. 

⁠

"아, 누님. 참고로 그 영화에 나오는 누님은 굉장히 정의감이 넘칩니다."

"나 원래 정의감 넘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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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가 잠시 침묵했다.

⁠

"저는… 두뇌파로 나오고, 형님이 굉장히 추남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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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더러워진 바닥을 발로 쓱쓱 밀던 이시안이 헛웃음을 쳤다.

"뭐? 진짜 웃기네."

"그리고 리더랑 큰형님이 죽…마고우?로 나옵니다."

"죽마고우?"

"가장 친한 친구 같은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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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이시안의 표정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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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순 구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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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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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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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 2시간, 2시간 만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는 이시안에 화가 났다. 

박시온은 이시안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2시간 동안 집 지키는 개처럼 꼼짝도 못 하고 있었는데. 

⁠

"뭔데? 왜 그러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잖아요!"

"아."

"아~ 아!?"

"그래도 건덕지는 구해왔어. 준비해. 가자."

"……… 버, 벌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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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의 대가는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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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바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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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민아는 퍽 섭섭한 표정을 했다. 

⁠

"바로 못 갈 이유가 뭐 있어?"

"아쉬워서 그러지. 좀 더 놀다 가."

⁠

투정 부리자, 이시안은 김만철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김만철은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기시감. 

그래, 그 모습에 박시온이 이곳에서 느꼈던 미묘한 기류를 이곳을 떠날 때쯤이야 눈치챘다. 

⁠

"됐어, 정우하고도 이미 인사했어."

"… 그렇구나."

"오늘 저녁은 고기인데도?"

"지금 내려가야 해."

"내일 일찍 가면 되잖아."

"왜 이렇게 질척거려? 짜증 나."

⁠

이시안이 결국 짜증을 내자, 양민아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이시안의 고갯짓에 박시온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재빠르게 가방을 챙기고 나왔다. 

이시안은 예나 지금이나 한번 결단했으면 무르는 법이 없었다. 

아니, 물러도 까마귀 부대에는 해당 사항이 없기에 더는 말을 얹힐 수 없었다. 

⁠

"김정우는 걱정하지 마."

⁠

이시안은 이해하지 못할 말을 툭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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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두 사람이 떠난 다음 날, 아침부터 아이들의 소란에 김만철이 텃밭을 돌보다 급히 나오자 새벽같이 나온 김정우가 꾸벅 인사하며 나타났다. 

⁠

"정우? 왜? 시안이네는 어제…."

"압니다."

"아…?"

"그… 혹시, 제가 할 일은 없겠… 을까요?"

⁠

김정우의 손에 이상하게 칭칭 감긴 천 조각은 어제 소매가 사라진 이시안의 옷의 천과 같았다. 그것을 눈치챈 김만철이 눈이 휘게 웃었고, 뒤늦게 나타난 양민아가 헤드락을 걸며 김정우에 매달렸다.

⁠

"당연히 있지! 자식아!"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거야?"

⁠

그 말에 김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은 '병기'로서 지킬 것도 숨길 것도 많은 김정우의 버릇임을 알기에 더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이시안을 만난 이후, 무언가 개운해 보이는 모습은 마음 한구석의 무거운 돌덩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

"아, 대장님. 부대장님."

"어허! 이제 편하게 형, 누나라고 부르라니까."

"그게… 바다라는 곳 가보셨습니까?"

"바다?"

"그곳에는 거대한 도넛을 끼고, 물을 타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기계가 있다고 해요."

"엉?"

"기대되네요."

⁠

김정우가 어색하지만 미소를 짓는 모습에 양민아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괜히 팔꿈치로 멀쩡한 싹을 뽑는 김정우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

"그럼 오늘 아침은 정우가 좋아하는 고기찜 먹을까?"

"좋은데?"

"기대하겠습니다."

"좋아, 솜씨 발휘 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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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아의 말에 아이들도 환호하며 꺄르르 웃었다. 

언제나 꿈꿔왔다. 전쟁이 끝난 이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뒤섞여 사는 삶을. 

그 꿈에 들어오기 꺼렸던 소중한 아이가, 겨우 용기 내 한 발짝 들어섰다. 

겨우 한 발짝이지만 그 용기가 너무 기뻐서 김만철이 흙을 닦아내는 척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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