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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의외의 발언에 서윤재가 눈을 그 짧은 찰나에 몇 번이나 깜빡였는지 모른다.
"그로 인해 살아갈 이유가 생긴 거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도 나쁘지 않아. 게다가 어차피 난 죽었었다며? 오히려 잘된 거야."
"………!"
담담하게 말한 이후 이시안의 시선은 여전히 방울 총을 가지고 노는 박시온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서윤재는 그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생전 그 급박했던 상황 속에서도 이 여자는 몇 번이나 박도윤을 보며 종종 이런 표정을 하고는 했다. 그래, 이시안은 이런 애였다.
"게다가 내 입장에서는 포상이지. 그때의 윤이를 볼 수 있으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그때의 자신은 몰랐고, 알게 된 지금에 와서 가르쳐 준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리.
"… 정말로 많이 닮았지? 하지만 키는 도윤이가 더 컸던 거 같아."
"새 여자의 키가 작나 보지."
"괜찮은 거 맞지?"
"그래서 그거에 관해 묻고 싶은데, 윤이 지금 실종 상태라며? 어딨는지 진짜 몰라?"
"만나게?"
"저 애가 지 아빠 보고 싶은 가봐."
서윤재가 납득한 듯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뭐가 그렇게 신기하고 재밌는 건지 서윤재의 집안 물건 하나하나를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만지며 즐거워하는 박시온을 바라보다 시선을 흘긋 넘겼다.
"넌 안 보고 싶어?"
다정한 물음에 이시안의 손이 멈칫했다.
「 시안아. 」
이제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환청 아닌 환청에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찼다.
"됐어."
묻고 싶은 건 많았다.
하지만 마지막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그 당시 부대원 전부가 알던 사실이라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의 이시안의 상태는 얼핏 봐도 이상했다.
기억이 드문드문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의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17년을 죽어 있었으니 이해는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말로 이 이시안이 어떻게 그때 실종된 당시 그대로 살아 돌아온 건지는 여러 가지를 위해서라도 알아야 했다.
그때의 사건을 반복할 수는 없으니까.
"유감이지만, 나도 몰라."
"쉽지 않네."
"하지만."
서윤재가 씨익 웃으며 꺼낸 편지와 사진에 익숙한 실루엣이 있어 이시안의 눈이 커졌다.
"까마귀부대와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지! 미리 연락해 둘게. 그래야 내 마음이 놓일 것 같아."
"대장도 그렇고 한지훈도 그렇고 나를 너무 애 취급하는 거 아니야?"
"어린애… 맞지 않나…? 아, 아닌가? 하지만 시온이는 진짜 어린아이인데…?"
혼란스러워하는 서윤재를 빤히 바라보던 시선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낡은 사진에 꽂혔다.
***
간혹 서윤재가 집으로 놀러 올 때, 가장 좋아하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거품 목욕.
욕조에 올라오는 부드러운 거품들이 몸에 닿을 때의 촉감이 좋았다. 자신의 집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도심 한가운데 있는 서윤재의 집은 자신의 집과는 또 달랐다.
"저기, 윤재 삼촌."
"응."
"삼촌은 저 사람이랑 친했어?"
"친했어. 당시에는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었거든."
"그건 어떤 느낌이야?"
조그마한 박도윤이 다시금 자신에게 묻는 듯했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잘게 미소를 지으며 거품이 가득 묻은 박시온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거품을 씻어냈다.
"말해줘도 지금의 넌 이해하기 어렵지."
"어린애 취급 좀 마. 나도 이제 다 컸다니까?"
"넌 충분히 어린 애야."
"하지만 그 당시에 이 나이라면 전쟁에 나갔잖아! 병기가 전쟁터에 출정한 나이는 12살이라고 되어 있었어!"
"… 지훈이, 정말 늙었나 보네. 전부 털렸어?"
"내가 대단한 거지."
으스대며 말하는 아이의 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보안을 더 강화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녁은 맛있었어?"
"말 돌리지 말고!"
"너, 네 아빠를 찾고 싶다고 했다며? 만나고 싶은 거 맞아?"
"그 여자가 말한 거야?"
"그 여자라니."
"여자잖아."
그것을 묻는 게 아닌 걸 알 텐데.
어린 녀석의 말이 영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그 동안은 왜 말하지 않았는데? 지훈이에게 말했으면 됐잖아."
"삼촌은 바쁘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안 나가잖아."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한지훈은 전쟁이 끝난 후, 전쟁에 질려 멀리 떠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본부와 연결되어 있는 연구소를 지키며 지내는 삶을 선택했다. 혹 전쟁에 관련 없는 민간인이 시설과 서류를 악용할까 선택한 길이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그 여자랑 가면… 아빠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뭐?"
"삼촌도 좀 이상하지?"
어린아이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말에 서윤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이상했어. 그도 그럴 게 지하는 누구도 갈 수가 없잖아? 그런데 그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지하에서 나왔어."
"…… 그걸 넌 어떻게 안 건데?"
"큰 소리가 났어. 삼촌이 덜렁거려서 또 사고 쳤나 했지. 그런데 막혔던 복도가 뚫려있지 뭐야, 그래서 가봤는데 그곳에 그 여자가 있었어."
박시온의 말에 서윤재가 침묵했다.
의아하고 이상했다.
연구소의 설비는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처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처분했다. 그럼에도 처분할 수 없는 기계가 남아 한지훈이 그곳의 출입구를 모두 봉쇄하고 그곳에 남아 그곳을 지켰다.
그런데 어떻게 이미 죽어 사라진 이시안이 그곳에서 나온 것이지?
어쩌면 한지훈이 생각보다 쉽게 두 사람의 외출을 허가해 준 건 그것을 알아보기 위함인가?
"…… 미안해."숨 막히는 침묵은서윤재의사과로 깨졌다. 그제야서윤재의팔을 잡은이시안의손에 힘이 풀렸고, 한지훈이 애써 웃으며 둘 사이로 쏙 들어가 분위기를 전환해 보고자이시안의어깨를 둘러맸다."둘 다 머리 좀 식혀. 둘이 너무 예민하잖아~ 일 때문인가~?""그래, 그래. 좀 쉬자."이시안은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고, 박도윤이 차마 그 손을 잡을 수 없어 멈칫하자, 한지훈이 대신 가겠다는 듯 손을 허공에서 흔들며이시안을따라갔다. 그리고서윤재도긴장이 풀린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죄송해요.""그건 내가 아니라시안이에게해야지.""……….""도윤아, 너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우는 애에게 스스로 죽겠다고 하는 건… 너무 심하잖아."서윤재의말에 박도윤은 잘못을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지금은 조금 진정하게 두고, 너 본부로 보내는 것도 내가 시안이랑 다시 이야기해 볼 게. 그러니까, 너도 진심으로 사과해. 알았지?""… 네."*****누가 저 모습을 보고 병기라고 할까?천막 틈 사이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는이시안은시간이 흘러도 어릴 적, 그이시안과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한지훈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머리를 긁적이
박도윤이 움찔했다.불과얼마 전에발견한 시체의 옷에서 나온 쪽지를 보고 샘플을 보냈었다. 그걸윤재이보다이시안이더 빨리 눈치챌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내가 잘못 본거라고 해. 그거 다른 사람이라고 하라고!"박도윤이얼어붙은듯, 대답하지 못했다. 눈이 동그래진 박도윤을 보며이시안의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적진 한가운데서 있는 것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에 맞출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널뛰었다."미쳤어? 무슨 생각이야? 그 송 효라고. 뭘 믿고보낸 거야!?""내가 약해서 의지 할 수 없으면… 내가 강해지면 의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겨우 입을 연 박도윤의 말은이시안이이해할 수 없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항상, 함께 있고 싶다는 소리야."요즘 늘 내던 짜증이나 화가 아닌, 덤덤하게 말하는 모습에이시안이잡은 팔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 지금이시안의온몸을 지배하는 이 감정을 박도윤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나도 뒤가 아닌, 네 옆에서….""말이 되는 소리를 해!""………!""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어!? 애초에 그 송 효가 진짜일 거라는 확신도 없어!""진짜가 아니면 단순히 피를 보낸 거야. 나도 나름대로 생각도 각오도 하고 보낸 거야."이시안이입을 틀어막으며고장 난듯이 멍하니 박도윤을 바라봤다.
송 효.전쟁이 막 시작될 때쯤,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는 전쟁을 이기게 해 주겠다며 실험체를받아 가서는인체공학으로 '병기'를 만들어 낸 개발 책임자.모두그를 송 박사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하지만 송 효는 마지막으로 김정우를 만들어 낸 1년 이후, 돌연 잠적했다. 그의 행방은 여전히 추적 중이지만윤재이도실마리를 잡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본부에서도 소수만 아는 그 이름이 주 학에게서 나오니 의아했다."요즘 부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아. 송 효라는 사람이 제2의 병기를 만들기 위해실험 대상을모집한다고 샘플로 피를 모으고 있다나 봐.""뭐?"이시안이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주 학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닌, 송 효가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 믿을 수없다는 것에가까웠다."의도적인가? 이쪽은 그런 소문 없어. 있었다면 위에서 그냥 있었을 리 없어.""역시 그렇게 생각하지?""그 리스트, 알 수 있어?""사실이라면.""최대한 빠르게."주 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려고 하자, 먼저 일어선이시안이주 학에게 손을 뻗었다. 기꺼이 그 손을 잡아 일어섰다.*****"야!!!빡도! 너도 들었지!?이씨완전 무리 중이라고!!! 걱정도 안 돼!? 그냥 네가 먼저 사과하라니까!?""…… 안돼. 지금 내가 먼저
"멋대로 행동하면서?"그 말에 퉁명스러운 표정을 했지만, 반박하지 않는 것에 화는 조금 누그러든 것 같아 한숨을 들이 쉬었다."그보다 뭐야~?시안이는전쟁이 끝나면 뭘 하고 싶길래, 새삼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말해주면 안돼~? 비밀로 할 게!""안돼.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고서는 말했잖아.""아니, 그건 네가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 없었어. 말해주라. 이번엔 진짜로 비밀로 할 게."*****"큰 형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둘이 살벌하게들어간 지한 시간이 넘었어! 저러다 시안이고장 나면어쩔 거야~! 형님이 가서 말려 봐~!!!"정안용이꿈적하지 않는김상팔의 팔에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자, 김상팔이 퍽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내가 말리면 시간이 더 길어질 거 같은데.""이거 완전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힘없는 남편 아니야!?"정안용이가슴팍을퍽퍽 치며괜히 얌전히 있던 김상팔에게 소리치고는 맞은 편에 얌전히앉아 있던김정우의 얼굴을 꼬집으며 제 불안감을 표출한다는 명목으로 괴롭혔다."전 혼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위험한 행동이잖습니까.""그래.얼마 전의피로도 회복되지 않을 건데.""이게 전부 공주님 때문이다.하아~ 시안아, 힘없는 나를 용서해!""윽!"정안용이&
받은 쪽지의 글씨체는 분명윤재이의글씨체다.그래서 더욱 의심스러웠다.이시안의미간이 오만상으로 찌푸려지자, 오태성이 웃음을 꾹 참으며 폼을 잡았다."박도윤은 그곳에 있어.""…… 다른 의미로 놀라운데.""뭐?"박도윤과윤재이가친했냐고 물으면,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이시안이손아귀에 있는 쪽지를 강하게 쥐며 구겼다.지금 이 모든 상황이 여간 수상한 게 아니다. 지금이시안의머릿속에서 이 상황의 조각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조각이라면 박도윤의 여자가, 박시온의 엄마가윤재이와관련 있는 여자라는 것이라는 것.그것 하나뿐이다."화, 화 난 건 아니지? 난 사실만 말했을 뿐이야! 가게 엉망으로 만들면 안 된다!?"특히 지금 자신이 걸어온 이 여정이윤재이가만들어 놓은 것이란 찝찝한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박도윤 성격에 자신의 아이를 한지훈에게 맡길 이유가 있나?이시안의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그것은 표정으로 드러났다."복잡해 보이네?"오태성이 술을 슬쩍 권하며 묻자,이시안은술잔을 툭 쳐버리고 의자에 앉았다."여러모로."오태성이 구레나룻을 긁적이며이시안을바라봤다. 그리고는이시안이툭 쳐버린 술잔을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뭐… 나도 살쾡
안으로 들어오자, 술집인 듯 여기저기 어지럽게 놓여있는 술병과 특이한 물건들에 박시온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슬쩍 손가락으로 툭 건들이자, 남자가 혀를 차며 아무거나 만지지 말라고 한 소리 하려고 했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이시안의 시선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크흠.""말해. 너 뭐야? 재이의 지인?"아무리 생각해도 유추할 수 있는 건 그쪽뿐이었다."재이? 아아, 그래, 맞아. 그쪽도 재'희'처럼 '병기'인가?"남자는 선반에서 파는 것으로 보이는 술병을 들고 뚜껑을 따더니 입으로 쑤셔 넣었다. 알싸한 냄새가 너저분한 공간을 가득 메웠다."하여간에 귀신같은 놈이네. 내 이름은 오태성. 이 가게의 주인이지."이시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오태성을 바라봤다. 지저분한 머리와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긁적이며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양은 윤재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런 이름 들은 적 없어. 윤재이는? 재이에게 직접 들어야겠어.""그건 곤란하네. 이야기가 통할 줄 알았는데, 너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트림을 '꺽' 하는 모습에 뒤에 있던 박시온도 인상을 찌푸리며 흥미롭게 보던 책을 그대로 두고 슬금슬금 이시안의 뒤로 바짝 붙었다."재희 말로는 의심이 많을 거라더니… 진짜네. 일단 물어는 둘게. 저 애는 박도윤과 무슨 관계?""…… 아들… 인데요…….""진짜냐고."오태성이 입을 막으며 탄성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가게의 과자를 박시온에게 던지자, 과자를 받아 든 박시온은 의아하게 과자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