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강루인은 며칠 동안 어디도 가지 않고 호텔에만 머물렀다. 심지어 함지율조차 만나지 않았다. 주영도가 혹시라도 주변에 사람을 붙였을 수도 있기에 그저 혼자 조용히 있었다.하지만 도망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강루인을 세상 밖으로 끌어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주영도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곧바로 이유를 만들어서 강규덕을 구속시켜버렸다.연상미가 아는 거라곤 돈을 쓰는 방법뿐이었다. 회사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의지할 곳이 사라지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수희였다.아들이 불효자이긴 해도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수희도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연상미가 울면서 말했다.“얼른 루인이를 찾아야 해요. 강씨 가문에서 루인이를 키웠고 시집도 잘 보내줬잖아요. 딸 된 도리로 모른 척하면 안 되죠. 주씨 가문에서 나서준다면 규덕 씨한테 아무 일 없을 거예요.”이수희는 감정이 격해진 듯했다.“루인이한테 말하면 안 돼.”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밖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없다고 간병인의 휴대폰으로 바깥에 불거진 외도 소동을 다 봤다.강루인이 주씨 가문에서 편히 지내지도 못하는데 이런 일로 찾아가기까지 한다면 폐만 더 끼치는 게 아니겠는가?이수희의 태도에 연상미가 언성을 높였다.“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어머님은 강루인 그년 걱정만 하세요? 규덕 씨가 어머님 친아들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규덕 씨한테 무슨 일 생기면 우리 모녀 어떻게 살아요? 주영도가 바람을 피웠으니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요? 강루인이 그 죄책감을 이용해서 주영도더러 규덕 씨를 빼내라고 하면 되잖아요. 분명 방법이 있는데 왜 자꾸 아무 쓸모 없는 체면을 신경 쓰는 건데요?”이수희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연상미가 계속 협박했다.“만약 규덕 씨를 빼내지 못한다면 혜미 데리고 해외로 나갈 거예요. 나중에 자식 하나 없이 외롭게 살게 되면 후회하지나 말아요.”이 말을 남기고 병원을 떠났다.“어르신, 진정하세요.”간병인은
차성열이 말했다.“주씨 가문이 안북에서 세력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법을 무시할 수는 없죠. 이혼 결정권이 대표님한테 있는 게 아니라고요. 지금 루인이한테 힘이 돼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에요. 루인이가 이혼을 원한다면 제가 끝까지 도울 겁니다.”차성열이 앞으로 나서며 또박또박 말했다.그 말에 주영도의 까만 눈동자에 폭풍우가 몰아칠 듯한 음산한 기운이 서렸다.차성열이 애정을 담은 말투로 말했다.“대표님, 루인이를 아끼는 사람이 세상에 많고도 많아요.”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영도의 주먹이 차성열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나는 차성열의 멱살을 잡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말했지? 마음에 품지 말아야 하는 사람은 품지 말라고. 루인이는 내 와이프야. 네 그 지저분한 생각은 접어.”차성열이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지저분한 생각요? 주영도 씨와 비교하면 우린 훨씬 순수하죠. 먼저 의리 없이 굴고 루인이의 진심을 짓밟아 놓은 건 영도 씨예요. 아니, 따지고 보면 영도 씨도 의리는 있어요. 다만 죽은 전 여친한테만 있었을 뿐이죠. 그 여자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깊었으면서 그때 왜 헤어졌대요? 차라리 함께 따라갈 것이지. 진짜로 따라갔다면 영도 씨를 더 높이 쳐줬을 거예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냥 겁쟁이였죠.”‘두 여자를 다 가지겠다고? 네가 뭐 왕이라도 되는 줄 알아? 후궁들도 결국에는 정세 유지를 위한 매개체일 뿐인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독차지하려 하다니.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어?’“주영도 씨는 루인이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주영도가 또다시 주먹을 날렸다. 차성열도 맞기만 하는 나른한 성격이 아니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주먹을 날리며 난투극을 벌였다. 서로 봐주는 것 없이 주먹을 날린 탓에 결국 둘 다 상처를 입었다.좋아하는 남자가 싸우는 모습을 본 원효정이 가만히 있지 못했다.“영도 오빠, 그만해. 성열
한편 구아정의 상태가 안정되었다.의사가 말했다.“환자분은 안정이 필요합니다. 흥분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주영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병실 안.구아정이 눈을 떴다. 안색이 창백했고 몹시 쇠약해 보였다.“오빠한테 또 신세를 졌네.”주영도가 침대 앞에 서서 말했다.“내 명의로 된 섬이 하나 있는데 사계절 내내 날씨가 온화해서 휴양하기 딱이야. 몇 달 가서 쉬다 오는 게 어때?”그 말에 구아정의 안색이 확 변했다.“무슨 뜻이야? 날 가두기라도 하겠단 말이야?”주영도가 돌려서 말했다.“기사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잖아. 한동안 멀리 가 있으면 사람들도 널 잊을 거야.”그러고는 그녀의 가슴팍으로 시선을 옮겼다.“의사 선생님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 네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해.”구아정이 거절했다.“싫어. 안 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숨어 지내야 해? 그리고 그 기사 누가 터뜨렸는지 조사해봤어? 날 무너뜨리려고 작정했단 말이야.”“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신경 쓰지 마.”주영도는 한번 결정한 일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전용기 준비해줄게. 거기 부족한 게 없을 거고 네가 준비해야 하는 것도 없어.”“안 갈래, 나. 여긴 언니가 머물렀던 곳이야. 떠나고 싶지 않아.”그녀는 주영도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격렬하게 저항했다.이럴 때일수록 떠나면 더욱 안 되었다. 떠난다면 강루인에게 지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주영도는 한없이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면서 거절을 용납할 수 없는 듯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구아정, 난 지금 너랑 상의하는 게 아니야. 연정이 심장을 네가 잘 지켜야지 않겠어?”그의 차가운 시선에 구아정은 보이지 않는 손에 목이 졸린 듯 더 이상 반항할 수가 없었다. 결국 누그러진 태도로 물었다.“그럼 날 보러 올 거야?”주영도는 약속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시간 되면 갈게.”“나 언제쯤 다시 돌아올 수 있어?”“때가 되면.”그는 정확한 기한을 알려주지 않았다.이번만큼은
박정금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강루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강루인의 휴대폰은 물론이고 가방까지 모두 주영도의 차 안에 있었다.강루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곧장 주영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느리와 아들 모두 전화를 받지 않으니 박정금은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선샤인 빌리지에서 나온 강루인은 차를 그녀의 아파트 단지 밑에 버려두고 택시를 잡아 함지율을 찾아갔다. 혹시라도 최지호에게 들킬까 봐 함지율이 일하는 로펌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불러냈다.강루인을 본 함지율이 물었다.“아니. 꼴이 왜 또 이래? 이혼하겠다고 하니까 시댁에서 뭐래?”그녀는 종업원에게 물 한잔을 부탁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서야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손으로 입가에 묻은 물을 닦고 말했다.“영도 씨는 죽어도 이혼 안 하겠대. 아까 날 방에 가둬두기까지 했어.”함지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야? 이젠 감금이라도 하겠다는 거야?”“지금 그 사람 얼굴도 보기 싫어. 나 호텔 방 하나만 잡아줘.”강루인이 목적을 얘기했다. 주영도가 선샤인 빌리지로 돌아왔을 때 강루인이 없는 걸 보면 집으로 찾아올 게 뻔했다.쉬운 부탁이라 함지율은 흔쾌히 들어주었다.강루인은 함지율의 휴대폰으로 차성열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한 다음 사과했다.차성열이 물었다.“내가 도울 일은 없어?”강루인은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연락할게요.”...강루인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주영도가 알게 된 건 두 시간 뒤였다. 박정금의 연락을 받고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박정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루인 걔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더라? 날 밀쳐버린 바람에 하마터면 허리를 삐끗할 뻔했어. 내가 부르는데도 듣는 척도 안 하고 가버리는 거 있지?”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화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 치솟았다. 평생 귀하게 대접받던 사람이 언제 이런 모욕을 당해봤겠는가.주영도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돌아가기 전까지 문을 열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
구아정은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주영도가 잠깐 넋을 놓은 틈에 강루인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 차 문을 박차고 내렸다.주영도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구아정은 강루인을 독기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구아정이 차에서 내리는 주영도를 붙잡았다.“오빠, 나 악플 때문에 너무 힘들어.”그는 그녀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 시선이 줄곧 강루인에게만 향해 있었다.“노 비서, 아정이를 집까지 데려다줘.”버려진 구아정은 주영도가 강루인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았다.강루인이 거의 뛰다시피 빨리 도망쳤지만 그래도 주영도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가 뒤에서 그녀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집에 안 가고 어디 가?”강루인이 몸부림쳤다.“놔. 여긴 내 집이 아니야. 이 손 놓으라고.”주영도가 허리를 숙이더니 그대로 그녀를 어깨에 들어 올렸다. 그녀는 발로 차고 때리면서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내려놔.”그녀의 주먹질에 얼굴이 다 일그러졌는데도 내려놓지 않았다.거꾸로 매달린 바람에 피가 머리로 쏠려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영도 오빠...”구아정은 주영도를 다시 한번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 철저히 버려진 쪽은 그녀였다.강루인은 그렇게 거꾸로 매달린 채로 집으로 들어와 침실 침대에 내던져졌다. 나가려고 벌떡 일어나자 주영도는 다시 그녀의 발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그녀가 발길질해도 주영도에게 쉽게 제압당하고 말았다.전투 장소가 차에서 침대로 옮겨갔다. 그런데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구아정이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숨을 헐떡이던 주영도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강루인의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고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다.주영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가 결국 침대에서 내려왔다.이 결과는 강루인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가 가버리면 그녀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됐다.그는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침실을
박정금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실랑이 끝에 주영도는 겨우 강루인을 차에 태웠다.“나 내릴래.”주영도가 명령했다.“출발해.”노윤환은 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앞뒤 좌석을 분리하는 칸막이를 올렸다.“내리겠다고!”강루인이 칸막이를 힘껏 두드렸다. 하지만 노윤환은 못 들은 척했다.‘난 청각 장애인이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주영도는 그녀의 손목을 잡자마자 확 잡아당겼다.“조용히 해.”그녀는 손목을 비틀며 뿌리치려 애썼다.“이혼 서류에 도장 찍어. 그럼 조용히 할게.”말하면서 다른 손으로 주영도의 어깨를 밀쳐냈다.“이거 놔.”그녀가 저항하며 주영도의 등 상처를 건드린 바람에 주영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핏기가 가셨다.“놓으라고!”주영도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그녀를 세게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은 다음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막아버렸다.“읍...”몸부림치자 그는 움직이지 못하게 뒤통수를 꽉 잡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거친 말을 집어삼키려는 듯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아챈 강루인은 그의 입술을 세게 물어버렸다.고통스러운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주영도가 경고의 눈빛을 보내도 강루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세게 깨물었다.곧이어 피비린내가 입안 가득 퍼졌다. 주영도는 결국 강루인의 매정함을 이기지 못하고 놓아주었다.자유를 얻은 순간 강루인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소리가 아주 찰지고 쩌렁쩌렁했다.운전석의 노윤환도 정확하게 들었다. 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볼이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뒷좌석.주영도는 고개를 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붉어진 볼과 피가 맺힌 입술이 오히려 더 요염해 보였다.강루인은 손등으로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 눈시울이 붉어졌고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주영도, 대체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자기가 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자도 되는 여자라 생각해?’주영도가 고개를 돌렸는데 눈빛이 여전히 어두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