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열여덟, 가장 가까웠지만 끝내 서로의 마음을 묻지 못했다. 스물여덟, 바닷가 마을로 돌아와 카페를 준비하던 하루는 설계 담당자로 나타난 렌과 십 년 만에 재회한다. 낯선 전화번호와 어른이 된 얼굴. 그런데 펜을 찾으면 말없이 건네는 손과 사소한 다정함은 여전하다. 자신을 떠났던 사람에게 다시 기대고 싶지는 않은데, 하루는 자꾸 렌의 다음 방문을 기다린다. 이름 붙이지 못했던 첫사랑이,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View More문은 세 번쯤 밀어야 열렸다.
두 번째까지 꿈쩍도 않던 것이 세 번째에는 바닥을 길게 긁으며 움직였다. 하루는 문고리를 붙든 채 어깨로 문을 받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와 같은 마른 나무 냄새에, 밤사이 식은 실내의 서늘한 공기가 섞여 있었다.
창문을 가리고 있던 선반을 치운 덕분에 오늘은 입구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얼룩진 유리 너머로 낮은 방파제가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끝에는 낚싯대를 든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하루는 문이 다시 닫히지 않도록 벽돌을 받친 뒤 한동안 그 풍경을 바라봤다.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빈 건물에 건넨 인사가 생각보다 크게 돌아왔다. 괜히 헛기침을 한 하루는 가방을 내려놓고 소매를 걷었다.
예전에는 작은 식당이었다고 했다. 벽에는 메뉴판을 떼어 낸 자국이 남아 있었고, 주방과 홀 사이에는 빛바랜 나무 선반이 붙어 있었다. 식당이 문을 닫은 뒤 한동안 창고로 쓰이다가, 그마저도 그만둔 지 몇 년이 지난 건물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다른 매물도 보여 주겠다고 했었다. 주차하기 편한 곳도 있고, 설비를 이만큼 손보지 않아도 되는 곳도 있다며 열쇠 꾸러미를 뒤적였다.
하루는 그때도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유리 아래로 들어온 햇빛이 바닥 한가운데까지 닿아 있었고, 창을 조금 열자 어디선가 배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중개인이 다음 건물의 위치를 설명하는 동안에도 하루는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어머니가 잘 도착했느냐고 보낸 메시지였다.
하루는 창문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화면으로 보니 바다보다 유리의 얼룩이 더 선명해서, 소매 끝으로 한 군데를 문질러 보다가 그만두었다.
도착했어. 오늘 설계 담당자 만나.
답장을 보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약속까지 십오 분쯤 남아 있었다. 하루는 오는 길에 산 캔커피 두 개를 가방에서 꺼내 창가의 낮은 턱에 세웠다. 하나는 우유가 든 것, 하나는 블랙이었다. 상대의 취향을 모르니 두 가지를 준비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 옆에 건물 도면과 메모장을 펼치고, 지난밤 적어 둔 목록을 다시 읽었다. 콘센트 위치와 주방 동선, 좌석 수 옆에는 고쳤다 지운 흔적이 여러 겹 남아 있었다. 하루는 목록 아래의 빈 곳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혼자 와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
마지막 글자에서 잉크가 흐려졌다. 종이 귀퉁이에 동그라미를 몇 번 그려 봤지만 자국만 희미하게 남았다.
“하필 오늘.”
볼펜을 흔들던 참에 밖에서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약속보다 조금 일렀다. 하루는 메모장을 내려놓고 손바닥에 묻은 먼지를 털며 입구로 돌아섰다.
문밖에 선 남자가 바닥의 벽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짙은색 재킷에 얇은 서류 가방을 든 차림이었다.
“문이 좀 뻑뻑해서요. 그냥 들어오시면—”
남자가 고개를 들자 하루의 말이 멎었다.
기억보다 머리가 짧았고 뺨도 조금 야위어 있었다. 흰 셔츠의 목깃과 어깨에 맞게 떨어지는 재킷이 낯설어서, 하루는 잠깐 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뒤 남자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가 다물리는 것을 보자 더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렌?”
서류 가방을 쥔 손이 남자의 몸 옆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바람에 들린 도면이 뒤에서 바스락거렸다. 하루는 돌아보지 않았다. 문밖의 얼굴을 보고 있느라 자신이 여전히 한 손을 들어 문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하루는 손을 내렸다.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대답이 나왔다.
“그러게.”
잘 지냈느냐고 물으면 되는 걸까. 반가운 얼굴을 하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될까.
어떤 말을 골라도 바로 다음에 묻고 싶은 것이 따라붙었다. 하루는 입술 안쪽을 가볍게 깨물었다가 창가의 서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 오기로 한 사람이…….”
“나야.”
렌이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하루는 그것을 받아 들고 사무소 이름부터 읽었다. 그 아래에는 익숙한 이름이, 다시 그 아래에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담당자가 바뀐다는 얘기는 들었어.”
하루는 명함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네가 올 줄은 몰랐지만.”
“기존 담당자가 당분간 현장에 나오기 어려워져서.”
“그랬구나.”
옆으로 비켜서자 렌이 문턱을 넘어왔다. 하루는 그가 가까워지는 동안에도 명함을 보고 있었다. 번호를 바꾼 지는 오래됐을 것이다. 그사이 또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이제 와서 그 숫자를 들여다본다고 알 수 있는 일은 없는데도 좀처럼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렌은 안으로 몇 걸음 들어와 멈췄다. 시선이 벽을 따라 움직이다 창가에 놓인 캔커피와 펼쳐진 메모장에 닿았다.
“여기는 네가 산 거야?”
“응.”
“카페 한다고.”
“그러려고. 아직은 이렇지만.”
하루는 빈 실내를 둘러보며 조금 웃었다. 렌은 하루를 보다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건물을 왜 샀느냐고 물을 줄 알았다. 어쩌면 왜 돌아왔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렌은 가방을 내려놓고 줄자부터 꺼냈다.
하루도 명함을 메모장 사이에 끼웠다. 오늘은 건물을 보러 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조금 생겼다.
“이쪽부터 볼래? 주방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을지 궁금해서.”
렌은 천장과 벽을 살핀 뒤 주방으로 이어지는 바닥의 높이 차이를 확인했다. 치수를 재고 도면에 적어 넣는 동작이 익숙했다. 하루는 두어 걸음 떨어져 따라다니며 준비해 온 질문을 하나씩 꺼냈다.
“이쪽 벽은 일부라도 없앨 수 있을까? 음료 만드는 곳이 조금 보이면 좋겠는데.”
“기존 도면하고 안쪽 상태를 더 확인해야 해.”
“전부 뚫지 않아도 돼. 여기서 주문받고 저쪽에서 내주면 괜찮을 것 같아서.”
하루가 공간을 가늠하려고 뒤로 물러섰을 때였다.
“잠깐.”
팔꿈치 위로 손이 닿았다. 발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뒤꿈치 바로 뒤에서 타일이 깨져 들떠 있었다. 렌은 하루가 옆으로 비켜선 것을 확인한 뒤 손을 놓았다.
“여기 밟지 마.”
“아, 못 봤네.”
하루는 소매에 생긴 주름을 내려다보다 주방 쪽으로 돌아섰다. 렌은 가방에서 표시용 테이프를 꺼내 들뜬 자리 둘레에 붙이고 있었다.
“저기도 고쳐야겠네.”
“응. 다른 데도 있는지 볼게.”
렌이 몸을 숙여 바닥을 살피는 동안 하루는 창가로 갔다. 커피 캔에 햇빛이 닿아 있었다. 두 개를 집어 들고 돌아보니 렌이 마침 일어서고 있었다.
“커피 마실래?”
“응.”
“블랙이랑 우유 든 거 있어.”
“블랙.”
하루는 검은 캔을 내밀었다.
“여전하네.”
말하고 나서야 손이 잠깐 멈췄다. 렌이 캔을 받으며 하루를 보았다. 하루는 시선을 피하듯 제 것의 따개를 당겼다.
열여덟 살에도 렌은 늘 블랙을 골랐다. 쓰지 않으냐고 물으면 별로, 하고 대답했고, 한 모금 얻어 마신 하루가 얼굴을 찌푸리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캔을 가져갔다.
하루는 입가에 남으려는 웃음을 커피와 함께 삼켰다.
“미지근해졌어.”
“괜찮아.”
렌은 캔을 든 채 창밖을 바라봤다. 하루도 나란히 서되 조금 거리를 두었다. 유리에 비친 두 사람 사이로 창틀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계속 여기 살았어?”
하루가 물었다.
“아니. 지금은 도시 쪽에.”
“어디?”
렌이 말한 역 이름에 하루는 고개를 돌렸다.
“나 지금 엄마 집에 있는데. 거기서 멀지 않네.”
“그렇네.”
“공사하는 동안만 있으려고. 오늘도 거기서 왔어.”
렌의 시선이 하루에게 돌아왔다.
“차로?”
“응. 두 시간 정도 걸렸어.”
“혼자 왔어?”
“응.”
렌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는 캔의 입구를 엄지로 문지르다가 손을 내렸다. 너는 누구와 사느냐고 물으려던 말이 목 안쪽에 걸려 있었다.
열여덟 살의 자신은 그런 질문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렌의 집에 가도 되느냐는 말도,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도 쉽게 했었다.
하루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캔을 창가에 내려놓았다.
“메모해 온 게 있는데, 같이 볼래?”
원하는 가게에 관해서는 오래 이야기할 수 있었다.
창가에는 긴 테이블을 두고 싶었고, 둘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좌석도 몇 개 필요했다. 계산대 때문에 입구가 좁아지는 건 피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혼자 운영할 생각이라 주방과 홀을 오가는 동선도 길지 않았으면 했다.
렌은 메모를 하다가 필요한 부분에서 질문했다. 하루가 손으로 테이블 너비를 그려 보이면 치수를 짚어 주었고, 가전제품을 놓을 자리에 대해서는 목록을 만들어 보내 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루의 어깨에서도 조금씩 힘이 빠졌다.
“여기는 한 자리 정도 비워 두고 싶어.”
창가 끝을 가리키자 렌이 가까이 왔다. 하루는 유리 아래의 턱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테이블을 더 놓을 수는 있겠지만 너무 붙으면 좀 그렇잖아. 혼자 온 사람이 앉을 만한 자리도 있었으면 해서.”
“옆자리하고 간격을 두고?”
“응. 책 읽거나 바다 보면서 있어도 괜찮게.”
렌이 창가에 서서 바깥을 보았다. 어깨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은 햇빛 때문에 하루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고등학교 교실도 오후가 되면 저런 빛이 들었다. 창가 맨 뒷자리까지 길게 뻗어 오는 빛이었다.
하루가 맞은편 의자를 돌려 앉으면 렌은 책을 조금 옆으로 밀곤 했다. 귀찮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필통과 공책까지 차례로 옮겨 주었다. 그러면 하루는 생겨난 자리에 팔을 포개고 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떠들었다.
“하루.”
고개를 들자 렌이 메모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하는 자리, 여기 표시해 줘.”
“아, 응.”
하루는 볼펜을 들고 도면 위에 선을 그었다. 또 잉크가 나오지 않아 같은 곳을 덧그으려는데, 검은 펜 하나가 종이 위에 놓였다.
렌은 이미 줄자를 접고 있었다. 하루는 펜을 쥔 채 그의 손을 보다가 천천히 노크를 눌렀다.
“고마워.”
이번에는 선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창가 좌석을 표시하고 여백에 간격에 관한 메모를 적는 동안에도 렌은 옆에서 기다렸다.
하루는 더 적을 것이 없는 줄을 한 번 더 읽었다. 펜을 내려놓으면 다시 렌을 봐야 할 것 같았다.
현장 확인이 끝날 무렵에는 바다의 색이 조금 짙어져 있었다. 렌이 서류를 정리하는 사이 하루는 휴대전화 달력을 열어 다음 방문 날짜를 확인했다.
화면을 내밀자 렌이 몸을 조금 기울였다. 재킷 소매가 하루의 손등 가까이 와서 멈췄다.
“이날은 괜찮아?”
“응. 나도 내려올 수 있어.”
렌은 날짜를 확인한 뒤 가방을 닫았다.
“궁금한 거 생기면 연락해. 현장 사진 보내도 되고.”
“알겠어.”
짧은 대답 뒤로 조용해졌다. 하루는 달력 화면을 끄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렌이 가방 손잡이를 고쳐 잡는 모습을 보고서야 함께 입구로 걸었다.
밖으로 나가려던 렌이 멈춰 섰다.
“문 닫을 때도 걸려?”
하루는 벽돌을 내려다봤다.
“조금. 들면서 당기면 닫히더라.”
렌은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바닥에서 다시 긁히는 소리가 났다. 하루는 그 소리가 그칠 때까지 문 아래만 보고 있었다.
“여기도 확인해 둘게.”
“응. 부탁할게.”
렌이 손을 놓자 하루는 문을 받쳤다. 이제 정말 돌아갈 차례였다. 하루는 인사를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손에 쥔 펜을 발견했다.
“렌.”
부르자마자 그가 돌아봤다. 하루는 손을 조금 들어 보였다.
“이거 가져가야지.”
렌의 눈길이 펜에 닿았다.
“다음에 줘.”
“아, 그래도 돼?”
“써야 하잖아.”
메모장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보낸 렌이 다시 하루를 보았다. 하루는 펜을 손안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렌도 같은 말을 했다.
차가 골목 끝을 돌아 나갈 때까지 하루는 문 앞에 서 있었다. 다시 조용해진 길에는 방금 전까지 차가 서 있던 자리가 넓게 비어 보였다. 바람에 문이 움직여 손바닥을 밀고 나서야 하루는 안으로 들어왔다.
도면 한쪽이 말려 올라가 있었다. 그것을 펴고 메모장 사이에서 명함을 꺼냈다. 아까 몇 번이나 읽었던 번호를 휴대전화에 옮겨 적은 뒤, 이름 칸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시노하라 렌.
저장을 누르자 연락처 목록에 이름이 생겼다. 하루는 화면을 내려놓았다가 곧 다시 집어 들었다.
오늘 와 줘서 고마워.
문장을 적고 읽어 봤다. 업무로 온 사람에게 하는 인사로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루는 더 고치지 않고 전송한 뒤 창가의 낮은 턱에 걸터앉았다.
바지 아래로 오래된 나무의 거친 결이 느껴졌다. 이 자리에도 나중에는 손님이 앉을 것이다. 의자를 놓고, 테이블 높이를 맞추고, 깨끗해진 창문 너머로 바다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손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돌아갈 때 조심해.
하루는 답장을 읽은 채 엄지로 휴대전화 옆면을 쓸었다. 다음 메시지가 올 것처럼 잠시 기다리다가 화면을 껐다.
유리에 비친 제 얼굴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하루는 입가를 손등으로 문지르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렌에게 묻지 못한 말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잘 지냈느냐는 인사도 끝내 하지 못했다.
메모장 위에 놓인 검은 펜을 집어 들었다. 빌려준 사람에게는 흔한 사무용 펜 하나일 수도 있었다. 하루는 뚜껑도 없는 그것을 한 번 돌려 보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에 돌려주기로 했으니까.
2화. 시노하라 씨집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여덟 시가 지나 있었다.하루가 현관문을 잠그고 신발을 벗는 동안 주방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식탁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하루를 보고 리모컨을 내려놓았다.“밥은 먹었니?”“아직. 오는 길에 먹으려고 했는데.”“남겨 뒀어. 손 씻고 와.”하루는 가방을 벽에 기대어 놓고 세면대로 갔다. 소매를 걷자 낮에 렌이 붙잡았던 팔이 눈에 들어왔다. 자국 같은 게 남았을 리도 없는데, 물을 틀기 전에 그 자리를 한 번 더 봤다.식탁에는 구운 생선과 채소 무침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국을 데우는 동안 하루는 밥을 담고 수저를 꺼냈다. 운전할 때는 몰랐는데, 의자에 앉고 나니 어깨와 허리가 뻐근했다.“오늘 얘기는 잘했어?”“응. 건물부터 보고 갔어.”“수리할 데가 많대?”“벽은 더 확인해야 한대. 바닥도 손볼 데가 좀 있고.”하루는 생선살을 발라 밥 위에 올렸다. 어머니는 국그릇을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그래도 제대로 봐 주는 사람이면 다행이고.”“그러게.”설계 담당자가 렌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내면 어머니가 반가워할 것 같았다. 그 애도 이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잘 지내더냐고 물을 테고, 하루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사는 곳을 들었고 일하는 사무소 이름을 알게 됐다. 열여덟 이후의 렌에 관해서는 그게 전부였다.“내일도 내려가니?”“내일은 집에 있어. 주방에 들일 기기 좀 정리하려고.”하루는 생선 가시를 접시 가장자리로 밀어 놓고 밥을 한 숟갈 더 떴다.메모장을 꺼내다 검은 펜이 함께 딸려 나왔다.하루는 책상 끝으로 굴러가는 펜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낮에는 별생각 없이 빌렸는데 집까지 가져온 지금은 제 물건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휴대전화를 열자 렌과 나눈 메시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오늘 와 줘서 고마워.돌아갈 때 조심해.하루는 대화창 위의 이름을 눌렀다. 시노하라 렌. 그 아래로 전화와 메시지 아이콘이 나타났다. 엄지가 통화 표시 가까이 갔다가
1화. 바다가 보이는 자리문은 세 번쯤 밀어야 열렸다.두 번째까지 꿈쩍도 않던 것이 세 번째에는 바닥을 길게 긁으며 움직였다. 하루는 문고리를 붙든 채 어깨로 문을 받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와 같은 마른 나무 냄새에, 밤사이 식은 실내의 서늘한 공기가 섞여 있었다.창문을 가리고 있던 선반을 치운 덕분에 오늘은 입구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얼룩진 유리 너머로 낮은 방파제가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끝에는 낚싯대를 든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하루는 문이 다시 닫히지 않도록 벽돌을 받친 뒤 한동안 그 풍경을 바라봤다.“오늘도 잘 부탁합니다.”빈 건물에 건넨 인사가 생각보다 크게 돌아왔다. 괜히 헛기침을 한 하루는 가방을 내려놓고 소매를 걷었다.예전에는 작은 식당이었다고 했다. 벽에는 메뉴판을 떼어 낸 자국이 남아 있었고, 주방과 홀 사이에는 빛바랜 나무 선반이 붙어 있었다. 식당이 문을 닫은 뒤 한동안 창고로 쓰이다가, 그마저도 그만둔 지 몇 년이 지난 건물이었다.부동산 중개인은 다른 매물도 보여 주겠다고 했었다. 주차하기 편한 곳도 있고, 설비를 이만큼 손보지 않아도 되는 곳도 있다며 열쇠 꾸러미를 뒤적였다.하루는 그때도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유리 아래로 들어온 햇빛이 바닥 한가운데까지 닿아 있었고, 창을 조금 열자 어디선가 배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중개인이 다음 건물의 위치를 설명하는 동안에도 하루는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어머니가 잘 도착했느냐고 보낸 메시지였다.하루는 창문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화면으로 보니 바다보다 유리의 얼룩이 더 선명해서, 소매 끝으로 한 군데를 문질러 보다가 그만두었다.도착했어. 오늘 설계 담당자 만나.답장을 보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약속까지 십오 분쯤 남아 있었다. 하루는 오는 길에 산 캔커피 두 개를 가방에서 꺼내 창가의 낮은 턱에 세웠다. 하나는 우유가 든 것, 하나는 블랙이었다. 상대의 취향을 모르니 두 가지를 준비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그 옆에 건물 도면과 메모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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