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영애님, 붉은 갈기 팩은 제국 북부의 야만적인 늑대 부족으로, 사악한 고대 마수를 부리는 무자비한 자들입니다. 발타자르가 자금줄이 차단되고 정치적으로 고립되자 결국 제국을 파멸로 몰아넣을 반란을 감행하려는 모양입니다!"
아리아는 밀서를 찻상 위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 깊은 곳에서 차가운 은빛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전생에서 발타자르는 아리아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가문의 자산을 완전히 침식한 뒤, 바로 이 붉은 갈기 팩을 불러들여 수도를 피바다로 만들고 카시안의 황위를 뺏으려 했었다. 전생의 비극과 동일한 무대가 다시 한번 펼쳐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의 아리아는 전생처럼 무력하게 당하는 희생양이 아니었다.
"사흘 뒤... 황실 개천제 축제날이로
카시안은 제 가슴팍의 붕대를 내려다보았다. 붕대 틈새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대속의 낙인'의 잔향. 카시안은 제 가슴에 왜 이런 기괴한 낙인이 새겨져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발타자르의 사술에 맞서다 생긴 흔적이려니 생각할 뿐이었다.카시안의 시선이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로 향했다.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흘 전 지하 심문실로 들어설 때만 해도 자신을 완벽하게 경계하고 차갑게 선을 긋던 아리아였다. 그러나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전과 다른 깊은 슬픔과, 복잡한 흔들림이 서려 있었다.카시안은 그 눈빛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자신이 전생에 그녀를 위해 영혼을 바쳤다는 사실도, 그녀가 그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 리가 없었다.하지만 카시안은 아리아가 자신을 보며 그런 복잡한 눈빛을 할 때마다 가슴이 찢겨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어째서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아리아?"카시안의 낮고 굵은 음성이 정적을 갈랐다."마치... 내가 너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나조차 알지 못하는 깊은 슬픔을 품고 나를 바라보는 이유가 뭐냐?"아리아의 눈동자가 거세게 동요했다.전생을 전혀 모르는 남자. 자신이 왜 아리아에게 이토록 목숨을 바쳐 직진하는지도 모른 채, 오직 현재의 본능과 집착으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사내.아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아무것도 아닙니다, 전하.""거짓말이다."카시안은 침대에서 일어나 아리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상체를 단단히 덮은 붕대 위로 알파의 야생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왔다.카시안은 손을 뻗어 아리아의 우아한 턱을 지그시 쥐어 올렸다. 전생에 그녀를 강압적으로 지배하려 했던 손길이 아니었다. 혹여나 그녀가 상처 입을까 봐, 살포시 감싸 쥐는 안달 어린 손길이었다."네가 나를 경멸하든, 내 손길을 쳐내든 상관없다고 했다."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가 붉은 열기를 띠며 번뜩였다."하지만 네가 나를 바라보며 그런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은 견딜 수가 없어
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붉은 피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아리아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이번엔 절대로... 너를 혼자 두지 않을 테니... 내 곁에서... 아프지 마라..."카시안의 거대한 체구가 의식을 잃고 아리아의 품 안으로 툭 무너져 내렸다.아리아는 제 손등에 떨어진 카시안의 뜨거운 피와 눈물의 온기를 느끼며, 멍하니 그를 안아 들었다.전생에 자신을 버렸다고 믿었던 남자. 자신을 무심하게 외면하고 세라피나를 선택했다고 믿었던 그 알파 킹.그러나 진실은, 카시안이 자신의 영혼을 사그라뜨리며 아리아의 저주를 홀로 짊어진 채 지옥의 한가운데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아리아의 자색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며, 얼어붙어 있던 그녀의 심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쾅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카시안..."아리아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전생의 오해와 비극 뒤에 숨겨져 있던 가장 참혹하고 고결한 진실이 마침내 수면 위로 완전히 밝혀진 순간이었다.지하 심문실의 석벽 사이로 서늘한 밤바람이 들었다.발타자르의 영혼이 완벽히 소멸하고 사 사로운 흑마법 독기가 산산이 부서진 자리에는, 어두운 고요만이 무겁게 내리앉아 있었다.아리아는 제 품에 의식을 잃고 무너져 내린 카시안을 단단히 감싸 안고 있었다. 칠흑 같은 제복 위로 붉게 번진 피와, 그의 가슴 중앙에 선명하게 새겨진 은빛과 검붉은색의 '대속의 낙인'.아리아의 떨리는 손끝이 카시안의 차가운 뺨을 스쳤다.'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요, 카시안?'루나의 영능력을 통해 목격했던 전생의 환영. 자신을 외면하고 세라피나를 선택한 줄로만 알았던 전생의 그 남자는, 사실 지하 감옥 밖에서 아리아의 저주를 제 영혼으로 받아내며 홀로 피를 토하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아리아의 품에 쓰러져 있는 이 현재의 카시안은 그 전생의 기억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전생에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어째서 제 가슴에 이토록 지독한 낙인이 새겨져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아리아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회귀 직후 완벽하게 각성한 아리아의 루나 영적 감각은, 카시안의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문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식별해 냈다.그것은... 자신의 영혼에 걸려있던 흑마법 저주를 누군가가 제 영혼으로 대가 없이 끌어안았을 때만 생겨나는 '영혼 대속(代贖)의 낙인'이었다."이... 이게 무슨..."아리아의 손이 떨려왔다.카시안이 아리아의 떨리는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피로 물든 단단한 손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죔쇠처럼 얽어 쥐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으나, 오직 아리아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서늘할 정도로 맑고 절박했다."괜찮아... 아리아..."카시안의 낮게 떨리는 목소리가 피범벅이 된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다치지... 않았다면... 되었다...""전하, 당신 몸에 있는 이 낙인은 대체..."아리아가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카시안의 가슴팍을 더듬으려 할 때였다.카시안의 몸 안에서 사나운 알파 마력과 흑마법 독기가 충돌하면서, 카시안의 영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파편들이 은빛 인광이 되어 공중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그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각성한 루나의 마력과, 대속의 낙인이 반응하여 아리아의 뇌리 속으로 직접 흘러 들어가는 전생의 차가운 진실이었다.파아앗—!아리아의 자색 눈동자 속으로 거대한 전생의 잔상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전생의 그 어둡고 음습했던 지하 감옥.아리아는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몸의 감각은 이미 마비되어 있었고, 가슴을 죄어오는 흑마법 저주의 통증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감옥 문이 열리며 칠흑 같은 로브를 두른 카시안이 걸어 들어왔었다.전생의 아리아는 카시안이 자신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알아서 처리해라"라는 한마디만 남긴 채 뒤돌아섰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완벽한 무심함과 방관이었다고 믿었었다.그러나 아리아의 뇌리 속으로 흘러 들어온 카시안 시점의 전
"내가 왜 너희 따위에게 그것을 밝혀야 하지? 어차피 내 가문은 몰수당했고, 내 권력은 무너졌다. 하지만 아리아... 네가 완벽하게 승리했다고 착각하지 마라."발타자르의 황금빛 눈동자에 미친 듯한 광기가 피어올랐다."네 어머니가 왜 죽었는지 아느냐? 네 영혼에 걸린 그 사악한 저주가 겨우 남부의 성석 하나를 정화했다고 완벽히 사라졌을 것 같으냐? 멍청한 계집 같으니!"아리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그때, 아리아의 옆에 서 있던 카시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지옥의 유황불처럼 사납게 타오르고 있었다.카시안의 거대한 손이 철창 문을 거칠게 쥐어잡았다. 고대 룬 문양이 새겨진 굵은 흑철 문이 카시안의 악력을 견디지 못하고 오도독 소리를 내며 이그러졌다."입 다물어라, 발타자르."카시안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공기를 얼려버렸다."네놈의 미천한 입에서 내 여인의 이름을 함부로 올리지 마라. 네가 혀를 놀릴 때마다 네 뼈마디를 하나씩 부러뜨려 주마.""하하하! 카시안! 불쌍한 애송이 황제!"발타자르는 카시안의 살벌한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기 어린 소리로 웃어댔다."네놈은 아무것도 모른다! 네놈이 그 영애를 제 품에 안으려 할수록 그 영애가 얼마나 비참하게 찢겨나가는지... 네놈의 그 사나운 알파 마력이 오히려 그 영애의 영혼을 가로막는 독이라는 것을!""뭐라고?"
기사단장 베른 경과 영주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어 가슴에 대고 무릎을 꿇었다.아리아는 오만하고 고결한 표정으로 왕관을 집어 들어 제 머리 위에 스스로 올려놓았다. 남의 손에 의해 씌워지는 왕관이 아닌, 오직 스스로의 힘과 지략으로 일구어낸 진정한 '두 번째 왕관'이었다.그때, 저택 정원 입구에서 웅장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며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호위 기사도 없이 홀로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왔다.카시안이었다.그는 황제의 화려한 로브도, 오만한 태도도 모두 내려놓은 채, 오직 아리아를 수호하는 개인 기사의 검을 차고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카시안은 아리아의 발치 아래 다가가, 기사로서의 예를 갖추어 깊이 고개를 숙였다."축하합니다, 내 여왕이시여."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오직 아리아만을 향한 영원한 집착과 복종이 서려 있었다."당신이 쓴 그 두 번째 왕관이 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내가 당신의 가장 강한 방패이자 무자비한 검이 될 것입니다."아리아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인 알파 킹 카시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전생의 비극과 무심함, 지하 감옥의 오한을 완벽하게 딛고 일어선 아리아의 입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냉혹한 승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기대하겠습니다, 카시안 전하."아리아의 서늘한 음성이 푸른 하늘을 울렸다."내 두 번째 왕관 아래
"네가 나 없이도 완벽한 지배자라는 것을 안다. 내 도움 따위는 단 한 조각도 필요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붉은 눈물이라도 흘러내릴 듯이 절박한 빛이 피어올랐다."그러니 내가 네 기사가 되겠다, 아리아.""예?"아리아의 자색 눈동자가 순간 당황으로 크게 벌어졌다.카시안은 대강당 복도 한가운데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제국의 모든 귀족들과 황실 기사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한복판에서, 제국 최고 지배자인 알파 킹이 단 한 여인의 발치 아래 다시 한번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카시안은 아리아의 작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올려 제 이마에 대었다. 늑대 부족에 있어 이것은 지배자가 신하에게 행하는 치욕이 아니라, 한 사내가 자신의 영혼과 목숨을 바쳐 여왕에게 바치는 가장 고결하고 절대적인 복종의 맹세였다."네가 내 루나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네 발치 아래 무릎을 꿇는 정식 수호 기사가 되겠다."카시안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복도를 울렸다."네가 구축한 그 완벽한 왕국에서, 네 발끝을 더럽히는 모든 사악한 것들을 베어내는 가장 사나운 검이 되어주마. 그러니 네 곁을 떠나라는 말만은 하지 마라... 제발, 아리아."그것은 알파 킹 카시안의 오만이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이전의 오해와 무심함에 대한 참회, 그리고 이번 생에서 그녀를 절대 잃지 않겠다는 처절한 구걸이었다.복도 멀리서 이 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