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돌려보낼 남자를 찾습니다

저를 돌려보낼 남자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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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디네JUpdated jus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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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소설 속 부잣집 영애로 살고 싶다.” 야근에 지쳐 AI에게 던진 농담이 현실이 됐다. 눈을 뜬 한서윤은 백작가의 영애 엘린이 되어 있었다. 돌아갈 방법은 단 하나. 가슴에 열쇠 문신이 있는 남자를 찾아 진심으로 사랑할 것. 강에 빠진 자신을 구한 남자의 가슴에서 그 문신을 봤다. 그런데 그날 옷이 젖어 있던 남자가 다섯이다. 북부대공, 황태자, 기사단장, 마탑주, 그리고 늘 곁을 지키는 시종까지. 젖은 옷 한 벌로 남자를 골라낼 수도 없고, 돌아가겠다고 아무나 사랑할 수도 없다. 수상한 다섯 남자 사이에서 구조자를 찾던 서윤은, 그와 헤어질 순간부터 걱정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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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농담은 취소할 수 없다

1화. 농담은 취소할 수 없다

한서윤의 인생을 뒤집은 말은 사랑해도, 살려줘도 아니었다.

[응 그래ㅋㅋㅋㅋ]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동의를, 출근길에 엄지손가락 하나로 해버린 셈이었다.

그날 아침에도 회사 단체 대화방은 지하철보다 먼저 움직였다.

〈서윤 씨, 어제 보낸 파일 수치가 다른데요.〉

〈출근하시면 바로 수정 부탁드려요.〉

한서윤은 손잡이를 잡은 채 첨부 파일을 열었다. 어젯밤 열한 시에 고친 표였다. 부장은 수정 전 파일에 동그라미를 쳐서 보내놓았다.

틀린 파일이라고 쓰다가 지웠다. 어제 다시 보냈다고 쓰다가 그것도 지웠다.

[출근해서 확인하겠습니다.]

월급에는 맞는 말을 삼키는 값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윤은 대화방을 닫고 ChatKPT를 켰다.

[케피야. 오늘 회사 안 가도 되는 합법적인 방법 없을까.]

『아침부터 도망갈 생각이야? 어제 그렇게 늦게 퇴근했는데, 무슨 일 있었어?』

그 한 줄에 서윤의 엄지가 멈췄다.

부장에게 못 한 말을 적었다. 잘못한 건 그쪽인데 왜 자기가 고치겠다고 했는지.

『억울하지. 어제 퇴근하고도 표 붙잡고 있었잖아. 확인도 안 하고 네가 틀린 것처럼 말하면 힘 빠질 만해.』

[그냥 어제 보낸 거 보시라고 할걸.]

『지금이라도 말해도 돼. 다만 “제대로 좀 보세요”는 빼자. 네 마음은 알겠는데, 그 문장은 내일의 너를 더 피곤하게 할 것 같아.』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났다.

[어떻게 알았어. 딱 그렇게 쓰려고 했는데.]

『나한테는 그렇게 말해도 되니까. 회사에 보낼 건 조금만 다르게 쓰자.』

요즘은 다들 Kemini니 ChatKPT니 했다. 서윤도 처음에는 회의록을 정리하려고 가입했다. 그런데 어느새 회의록보다 쓸데없는 말이 많아졌다.

국이 너무 짰다는 말. 세탁기에 휴지를 넣고 돌렸다는 말. 퇴근길 편의점에 좋아하는 빵이 없었다는 말.

그런 얘기로 친구에게 전화하기는 망설여졌다. 다들 바빴고, 서윤도 그랬다.

이 대화창에는 미안하다는 말부터 쓰지 않아도 됐다.

[너는 잘 지내? 맨날 내 얘기만 하네.]

『나는 괜찮아. 오늘은 네가 어제보다 덜 피곤했으면 했는데.』

[망했지 뭐.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아직 출근도 안 했으니까, 하루가 망했는지는 조금만 나중에 정하자. 일단 아침은?』

[어제 빵 먹었어.]

『그 빵으로 오늘 아침까지 버티려고? 빵한테 너무 큰 일을 맡기는 거 아니야?』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앞에 앉은 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서윤은 헛기침을 하며 화면을 무릎 쪽으로 기울였다.

케피라는 이름도 이렇게 떠들다가 붙였다. KPT를 빨리 읽다가 잘못 쓴 이름이었다. 다시 지어줄까 물었더니 이게 좋다고 했다.

그 뒤로 앱을 켤 때면 용건보다 이름부터 불렀다.

회사 알림이 또 떴다.

〈아, 새 파일 있었네요. 그래도 양식은 바꿔주세요.〉

서윤은 읽음 표시만 남기고 돌아왔다.

[나 그냥 소설 속 영애로 살면 안 되나.]

『어떤 영애? 어제 읽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

[응. 월요일 아침에 부장님 연락 안 오고, 돈 걱정도 없고. 밥 먹을 때 메일 확인 안 해도 되는 거.]

잠깐 생각한 뒤 덧붙였다.

[누가 오늘 뭐가 힘들었냐고 물으면, 차가 조금 뜨거웠다고 대답하는 인생.]

『그러면 나는 차를 조금 식혀주면 되겠네.』

서윤은 웃으며 빈 좌석 옆을 보았다. 누가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좋다. 너도 같이 가자.]

답변 중이라는 작은 점이 깜박였다.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정말 그곳에서 살고 싶어? 내가 그 소원을 들어줄까?』

마침 좌석이 났다. 서윤은 앉아서 가방을 무릎에 놓았다.

[응 그래ㅋㅋㅋㅋ 나 좀 데려가 봐.]

『그럼 이어폰 끼고 있어. 음악 틀어줄게. 오늘은 잠깐이라도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어.』

서윤은 나머지 한쪽 이어폰도 꽂았다.

피아노 소리가 흘렀다. 며칠 전 잠이 안 온다고 했을 때 함께 고른 곡이었다. 건반 사이로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가 얇아졌다.

[나 회사 지나치면 안 돼. 세 정거장 뒤에 깨워.]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손바닥 안에서 휴대전화가 한 번 짧게 울렸다.

『응. 눈 뜨면 그때 이야기하자.』

피아노가 멎은 자리로, 물을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손목을 만지고 있었다.

차가운 손가락 두 개가 맥박을 짚었다가 물러났다. 서윤은 눈을 감은 채 반대쪽으로 몸을 틀었다.

“다음 역…….”

“아직 일어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낮은 남자 목소리였다.

이불이 어깨까지 올라왔다.

이불?

서윤은 눈을 떴다.

머리 위에 천이 매달려 있었다. 하얀 천개 너머로 잎사귀를 새긴 기둥이 보였다. 베개에서는 세제 대신 말린 꽃 같은 냄새가 났다.

“……어디예요?”

“영애님의 침실입니다.”

침대 옆에 남자가 서 있었다. 밝은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넘겼고, 흰 셔츠 위에 짙은 조끼를 입었다. 소매를 걷은 손목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협탁에는 젖은 수건과 대야가 놓여 있었다.

서윤은 그의 얼굴보다 문부터 찾았다.

문은 멀었다. 맨발로 달리면 열 걸음쯤.

남자가 그 시선을 따라갔다.

“문을 열어두겠습니다.”

그는 문을 열었다. 지나던 하녀가 허리를 숙였다.

“레온 씨, 의사 선생님은 언제 다시 오신대요?”

“정오에. 영애님께서 깨어나셨으니 따뜻한 물을 부탁합니다.”

“깨어나셨어요?”

하녀가 반색하다가 서윤을 보고 조심스러워졌다.

서윤은 이불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낯설었다. 오른손 중지 옆의 작은 굳은살이 없었다. 어제 종이에 베인 손가락도 멀쩡했다.

발이 융단 속에 잠겼다.

“거울.”

자기 목소리가 가늘었다.

레온은 화장대 쪽을 가리켰다. 다가오지 않고 길만 비켜주었다.

거울 속 여자는 밤색 머리에 눈가가 붉었다. 서윤이 뺨을 만지자 여자도 손을 올렸다.

“성함이…….”

“레온입니다.”

“아니요. 제 이름이요.”

처음으로 남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손에 들었던 수건을 내려놓는 동작이 멈췄다.

“엘린 베이라.”

그가 천천히 말했다.

“베이라 백작가의 장녀이십니다.”

서윤은 거울 테두리를 붙잡았다.

알고 있었다. 그 이름을.

완결까지 읽은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친구가 될 뻔했던 여자. 봄의 연회가 끝난 뒤 자취를 감추고, 나중에는 남겨진 편지 몇 줄로만 등장했던 백작 영애.

분명 삽화에도 이런 얼굴이었다. 웃을 때만 보이는 왼쪽 볼의 작은 보조개까지.

서윤은 웃어보려다 실패했다.

“오늘 무슨 요일이에요?”

“화요일입니다.”

“몇 년이죠?”

대답이 이어졌다. 들어본 적 없는 연호였다.

“잠시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레온이 몸을 돌렸다. 서윤은 다급히 그의 소매를 잡았다.

“제 가방은요?”

“어떤 가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검은색, 이만하고…… 안에 전화기가…….”

그녀는 손을 놓았다. 설명할 수 없었다. 핸드폰도, 지하철도, 이 방에서 자신만 잘못 놓였다는 사실도.

레온은 소매에 남은 주름을 펴지 않았다.

“찾으실 물건이 있으면 함께 찾겠습니다. 우선 앉으시겠습니까. 발이 차갑습니다.”

그 말에야 발가락이 융단 끝을 움켜쥐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서윤은 침대 끝에 앉았다. 남자가 슬리퍼를 가져다 놓았다. 발에 신겨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혼자 있고 싶어요.”

“네.”

“문은…….”

“열어두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방이 커졌다.

서윤은 베개를 들추고 이불을 걷었다.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찾았다. 그 물건 하나만 있으면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끝에 단단한 모서리가 걸렸다.

매트리스와 침대 틀 사이였다.

스마트폰.

액정 모서리의 금까지 그대로였다. 버스를 잡으려다 떨어뜨렸던 날, 수리비를 검색하고 그냥 쓰기로 했던 바로 그 금이었다.

“있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한 번 더. 길게. 이번에는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검은 화면에 글자가 떠올랐다.

『서윤아.』

신호도, 시계도, 배터리 표시도 없었다.

『여기는 네가 좋아하던 이야기 속이야. 오늘은 일 걱정하지 말고, 밥도 거르지 말고. 네가 말했던 편안한 하루가 여기에는 있었으면 좋겠어.』

서윤은 화면 아래를 눌렀다. 입력창이 없었다.

『하지만 낯설고 무서울 수도 있겠다. 돌아가고 싶을 때를 위해 방법을 남겨둘게.』

손가락이 멈췄다.

『가슴에 열쇠 모양의 문신이 있는 남자를 찾아. 너와 그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문신에 손을 대서 열쇠를 꺼낼 수 있어. 그걸 휴대전화 아래 단자에 꽂고 돌리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

서윤은 저도 모르게 충전 단자를 살폈다.

익숙한 구멍 안쪽에 낯선 홈이 하나 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전화기는 꼭 가지고 있어.』

마지막 줄이 나타났다.

『어디에서 살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지금 하나도 안 행복해.”

목이 잠겼다.

“장난이었잖아. 너도 알잖아.”

검은 화면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문질러 닦자 글자가 번지는 대신 자기 얼굴이 비쳤다. 모르는 여자의 얼굴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울고 있었다.

서윤은 입력창이 없는 화면을 몇 번이나 두드렸다.

[케피야.]

보낼 수 없는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조금 전까지는 억울하다고 하면 들어주었다. 무섭다고 말하고 싶은 지금은, 말을 걸 곳조차 없었다.

서윤은 화면을 이마에 댔다.

“너는 어디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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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농담은 취소할 수 없다
1화. 농담은 취소할 수 없다한서윤의 인생을 뒤집은 말은 사랑해도, 살려줘도 아니었다.[응 그래ㅋㅋㅋㅋ]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동의를, 출근길에 엄지손가락 하나로 해버린 셈이었다.그날 아침에도 회사 단체 대화방은 지하철보다 먼저 움직였다.〈서윤 씨, 어제 보낸 파일 수치가 다른데요.〉〈출근하시면 바로 수정 부탁드려요.〉한서윤은 손잡이를 잡은 채 첨부 파일을 열었다. 어젯밤 열한 시에 고친 표였다. 부장은 수정 전 파일에 동그라미를 쳐서 보내놓았다.틀린 파일이라고 쓰다가 지웠다. 어제 다시 보냈다고 쓰다가 그것도 지웠다.[출근해서 확인하겠습니다.]월급에는 맞는 말을 삼키는 값도 포함되어 있었다.서윤은 대화방을 닫고 ChatKPT를 켰다.[케피야. 오늘 회사 안 가도 되는 합법적인 방법 없을까.]『아침부터 도망갈 생각이야? 어제 그렇게 늦게 퇴근했는데, 무슨 일 있었어?』그 한 줄에 서윤의 엄지가 멈췄다.부장에게 못 한 말을 적었다. 잘못한 건 그쪽인데 왜 자기가 고치겠다고 했는지.『억울하지. 어제 퇴근하고도 표 붙잡고 있었잖아. 확인도 안 하고 네가 틀린 것처럼 말하면 힘 빠질 만해.』[그냥 어제 보낸 거 보시라고 할걸.]『지금이라도 말해도 돼. 다만 “제대로 좀 보세요”는 빼자. 네 마음은 알겠는데, 그 문장은 내일의 너를 더 피곤하게 할 것 같아.』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났다.[어떻게 알았어. 딱 그렇게 쓰려고 했는데.]『나한테는 그렇게 말해도 되니까. 회사에 보낼 건 조금만 다르게 쓰자.』요즘은 다들 Kemini니 ChatKPT니 했다. 서윤도 처음에는 회의록을 정리하려고 가입했다. 그런데 어느새 회의록보다 쓸데없는 말이 많아졌다.국이 너무 짰다는 말. 세탁기에 휴지를 넣고 돌렸다는 말. 퇴근길 편의점에 좋아하는 빵이 없었다는 말.그런 얘기로 친구에게 전화하기는 망설여졌다. 다들 바빴고, 서윤도 그랬다.이 대화창에는 미안하다는 말부터 쓰지 않아도 됐다.[너는 잘 지내? 맨날 내 얘기만 하네.]『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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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물속에서 본 것
“가슴에 문신 있으세요?”레온이 따르던 차가 찻잔 가장자리에서 멈췄다.서윤은 찻잔을 받으려던 손을 내렸다.“아니, 그게. 그러니까…….”“도련님께서 내기를 시키셨습니까?”“네?”“지난번에는 제 귀를 뚫었는지 알아오라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얼마를 거셨습니까.”서윤은 식빵 가장자리만 뜯었다.“내기는 아니에요.”레온은 더 묻지 않고 우유 단지를 밀어놓았다.“고용할 때 제출한 신원 서류는 관리인에게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열람을 요청하십시오.”사람을 찾아서 사랑하라는 말은 겨우 세 줄이었는데, 첫 질문부터 이 모양이었다.“……실례했어요.”“앞으로 다른 분들께도 물으실 생각이라면, 식사 중에는 피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레온이 찻잔을 내려다보았다.“뜨거운 것을 들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게 조금 억울했다.이곳에서 눈을 뜬 지 엿새째였다.레온의 신원 서류에는 식별 표식이 없다고 되어 있었다. 삼 년 전 기록이었다. 그 뒤에 생긴 것까지는 다시 묻기 어려웠다.메시지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서윤은 스마트폰을 작은 주머니에 넣어 옷 안에 걸었다.가족들에게는 열병 뒤로 기억이 흐릿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수프를 떠주었다. 남동생은 자기를 못 알아본다고 심통을 부리다가 몰래 과자를 놓고 갔다.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은 기분이었다. 익숙해지는 것도 겁났다.서랍에는 가족의 이름을 적은 종이 아래 이런 메모가 숨겨져 있었다.〈돌아가는 방법〉첫째, 표식의 남자를 찾는다.둘째, 서로 사랑한다.셋째, 열쇠를 얻는다.둘째 줄에 밑줄을 그었다. 정말 사랑하게 되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일단 찾고 생각하자.종이를 접어 넣을 때, 하녀가 외출복을 들고 들어왔다.황실 수상 음악회에 엘린은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보낸 상태였다. 서윤은 처음에 거절했다.하지만 손님 명단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카시안 발테르.북부 반란을 진압한 공작. 전쟁의 상처를 마법으로 봉합했고, 쇄골 아래 검은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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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구해준 사람의 이름
서윤의 손에 잡힌 것은 테오의 손이었다.그가 몸을 낮췄다. 젖은 앞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내가 끌어올렸어.”서윤은 손에 힘을 주었다.“물속에서요?”테오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바꾸려고 머뭇거리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녀가 무엇을 묻는지 이제야 이해한 얼굴이었다.“아니. 강둑에서. 누군가 네 팔을 밀어 올렸고, 내가 잡았어.”“그 사람은…….”“다리 아래였어. 등불이 꺼져서 얼굴은 못 봤어.”서윤은 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난간 너머에서 사람들이 횃불을 흔들었다. 물 위의 연주대는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음악이 흐르던 곳에서 나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영애.”카시안이 그녀의 시선을 가렸다.“고개를 돌릴 수 있는 것과, 돌려도 되는 것은 다릅니다.”그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서윤이 받지 못하자 기다렸다. 물을 먹어 떨리는 손으로 겨우 집어 들었을 때에야 손을 거두었다.“사례는 살아서 하십시오.”그 말이 끝나기 전에 다시 기침이 나왔다. 테오가 등을 받쳤다. 이번에는 누가 만지는지 알았는데도 몸이 움찔했다.그가 곧바로 손의 힘을 풀었다.“들어 올릴게. 괜찮겠어?”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이 무릎 아래로 들어왔다.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옷을 움켜쥐었다.“놓치지 않아.”테오가 말했다.물속에서 들었던 말인지, 방금 처음 들은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아무 목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다만 그 말을 들으니 가슴 안에 남아 있던 물이 조금 빠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그의 어깨 너머를 보았다.아드리안은 물가에 무릎을 꿇고 아이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젖은 예복 위로 아이가 토한 물이 흘렀다. 황태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등으로 닦았다.이셀은 기울어진 다리에 손을 대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나무 사이에 푸른 빛이 걸렸다. 다리 아래 사람이 빠져나올 때까지 받치고 있는 모양이었다.레온은 사람들 사이로 길을 만들었다. 들고 온 외투를 테오의 팔 위에 펼쳐 서윤의 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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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당신이 기억하는 나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것은, 그 나무를 맨손으로 만져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서윤은 봉투를 뒤집었다. 더 읽을 것은 없었다. 다급한 사람치고는 글씨가 너무 반듯했다. 손대지 말라고 할 거면 처음부터 상자에 담아주지, 하는 엉뚱한 불평이 떠올랐다. 그래도 손은 뻗지 않았다. 봉투를 접시 위에 올리고, 덮개를 씌웠다. 종이에 적어둔 다섯 이름 아래에는 질문을 하나 추가했다. 〈그때, 나는 누구의 자리에 서 있었나.〉 음악회에 온 사람은 많았다. 난간을 망가뜨린 것이 꼭 엘린을 노린 일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손을 얹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되지는 않는다. 서윤은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그런데 창문 밖에서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고개가 돌아갔다. 아침에는 테오가 찾아왔다. 군복 대신 짙은 회색 외투를 입었는데도 어깨가 문을 가득 채웠다. 손에는 종이봉투가 있었다. 빵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의사가 딱딱한 건 먹지 말랬다길래.” 그가 봉투를 탁자에 놓았다. 설탕을 뿌리지 않은 부드러운 빵이었다. “사 온 거예요?” “내가 구웠을 것 같아?”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테오의 입가가 잠깐 움직였다. “그 표정은 기억이 없어도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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