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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시험관 해도 되잖아

Author: 도화
점심이 가까워졌을 무렵 하시윤은 집주인의 전화를 받았다. 집주인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윤 씨,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 집이 왜 이 꼴이 됐어?”

하시윤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집주인이 분통을 터뜨렸다.

“직접 와서 봐. 문짝을 부숴놨고 안의 물건도 다 때려 부쉈어.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까 시윤 씨네 가족들이 와서 그런 거라던데? 이 손해 시윤 씨가 다 배상해야지. 와서 계산해야 하니까 빨리 와.”

하시윤은 크게 놀란 척했다.

“저 어제 집에 없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그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지금 밖이라 못 가요. 그럼 이렇게 하죠. 손해액을 먼저 계산해서 알려주세요. 제가 그쪽에 전화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볼게요.”

책임을 회피하려는 뜻이 없는 하시윤의 태도에 집주인도 화가 조금 가라앉은 듯했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은 지 30분쯤 뒤 집주인이 문자로 손해액을 보냈다.

하시윤은 그 집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집주인이 얘기한 손해액은 터무니없이 부풀린 금액이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하병우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하병우의 욕설이 들려왔다.

“이 짐승만도 못한 년아, 무슨 낯짝으로 나한테 전화해?”

하시윤이 말했다.

“어제 우리 집에 가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을 다 때려 부쉈어요?”

하병우가 크게 화를 냈다.

“그딴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들어와서 네 엄마랑 동생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그 일 못 하게 막는 수가 있어.”

하시윤의 목소리가 그보다 더 차가웠다.

“우리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 병상에 있던 엄마 앞에서 나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 못 지키면 천벌 받아 죽겠다고 맹세했던 거 잊었어요?”

하시윤이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 귀신 같은 거 제일 잘 믿잖아요. 진짜 말처럼 될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

“닥쳐!”

하병우가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을 때 사실 이혼을 결심했었다. 하병우에게 부담이 될까 봐 이혼하려 했던 게 아니라 딸이 조금이라도 편히 살 수 있게 재산을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하병우가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봤고 남은 인생에는 재혼 따위 절대 하지 않으며 딸만 위해서 살겠다고 맹세했다.

결국 어머니는 마음이 약해져 이혼을 포기했다. 세상을 떠난 후 재산은 전부 하병우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두 달도 안 되어 조경순과 하민지가 집에 들어왔다.

하시윤은 그때야 알았다. 자상하고 남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 않던 아버지가 얼마나 교활한 사람인지. 그는 이미 밖에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하민지가 하시윤보다 두 살밖에 어리지 않았는데 그동안 집 안팎에서 아주 즐겁게 지냈다.

새어머니가 들어온 후 하병우도 서서히 본색을 드러냈다.

서정우를 서씨 가문에 보낸 뒤 사실은 하시윤마저 다른 곳에 팔아넘기려 했었다.

하시윤은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심호흡하고 이렇게 말했다.

“집주인이 손해액을 계산해서 보냈어요. 이 돈 안 내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어제 당신이 물건 부순 거 관리사무소랑 이웃들이 다 봤으니까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말아요.”

“감히!”

하병우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지더니 다시 협박했다.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잘리고 싶은 모양이구나.”

하시윤이 말했다.

“안 그래도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사원인지라 월급은 적고 잡일이 아주 많았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더 좋은 일을 했을 테지만 지난 3년간 그들의 방해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너, 너...”

하병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시윤은 집주인이 계산한 손해액을 그에게 알려줬다.

“30분 안에 돈 안 보내면 바로 신고할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두고 보세요.”

...

서지혁이 회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 누군가 회의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가 서류를 두 손으로 건네며 말했다.

“대표님, 요청하신 자료입니다.”

“그래.”

서지혁이 서류를 받아들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먼저 몇 가지 데이터를 대조하고 보고서를 검토했다.

일을 거의 마무리한 뒤에야 건네받은 서류를 펼쳤다. 몇 페이지밖에 넘기지 않았는데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사실 4년 전 그 일이 터졌을 때 서지혁은 이미 하씨 가문을 조사했었다.

당시 파티에서 하시윤이 그의 방에 나타난 게 정말 우연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성격에 절대 하병우의 회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서류를 다 넘기기도 전에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출장 갔다가 돌아온 서인준이 웃으며 들어왔다.

“형.”

그러고는 책상에 털썩 걸터앉았다.

“형, 4년 전 그 여자를 집에 들였다면서? 그리고 그 여자랑 또 아이를 낳는다던데 사실이야?”

서인준이 혀를 끌끌 찼다.

“정우를 살리려면 아이를 낳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 그런데 꼭 이런 방식이어야 해? 시험관 해도 되잖아. 까짓거 돈 좀 더 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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