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지우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지율이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해일과 은재는 그를 위로하며 고생하고 있는 그 시간..... 이솔은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이솔은 버스 창문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은 유리에 부딪혀 눈부신 반짝임을 만들고, 도심은 점점 멀어지며 산과 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또 여행을 가도 되는 걸까....”
그녀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 작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돌아가면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지난 휴가 때 우연히 보았던 강릉의 바다는 아직도 선명했다.
거센 파도 대신 잔잔하고, 바람도 부드러워 마음을 편하게 해주던 그 순간.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다시 찾아갈 이유가 있었다.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 해일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훨씬 선명해질 거라 믿으며, 이솔은 스스로도 놀
시간은 쉼 없이 흘러, 봄은 여름으로, 여름은 가을로, 가을은 다시 겨울을 지나 어느덧 또 한 번의 봄을 맞이했다.큰 사건 하나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나날들이었다.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변화가 있었다.현목의 인간 딸과 백도진은 결혼식을 올린 뒤, 궁 안의 밀폐된 공간에서 그녀가 뱀파이어로 변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후 신혼여행을 떠났다.한편, 그와는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지우 역시 뱀파이어로 변하며 이성을 잃고, 본능만 남은 채 죄수들의 사형 집행을 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그 사실을, 이솔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솔은 그저 행복한 것들만을 보고, 듣고, 느끼며 지우의 불행이 같은 시간 위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은재는 IT 개발자이자 사형 집행관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 모두에 자부심을 느끼며 뱀파이어로서의 삶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었다.백도진과 현목의 딸이 결혼한 후 이솔은 지율에게 입양되어 인간이지만 정식으로 뱀파이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그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해일과 연인이라는 것과 지율이 가장 믿는 인간이라는 것 현목의 딸도 인간이었다는 것 등의 이유가 받아들여지면서 이솔은 지율의 딸로서 앞으로의 미래를 과거 보다 자유롭게 그려갈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해 했다.하지만, 이런 따뜻하고 아무런 사건이 없는 일상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법이었다.뱀파이어들의 궁에서 고위 관료 뱀파이어들은 갑작스러운 왕의 호출에 모여들기 시작했다.‘왕께서 무슨 일로.....’‘우리 잘못한 것 없는데.... 이보게 우리 뭐 실수한 것 있나?’‘없어.... 최근에는 아무 일도 없이 아주 안정된 날이 이어졌네.’
카페 루비 아워 지하 감옥에서 죄수 지우를 감시한 지도 어느덧 닷새째였다.그동안 해일에게서 쏟아진 온갖 잔소리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나날을 보낸 도진은, 이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그래서 궁에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하소연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하나같이 같았다.‘이번 기회에 해일님께 제대로 배워라.’모두가 모른 척하기 바빴다.“난 왜 공무원이 된 거야.......”도진은 한숨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노트북 자판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이럴 거였으면 그냥 은재 형 따라 회사나 다닐걸......”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타자를 치고 있던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왔다.“은재가 그렇게 좋으면, 지금이라도 공무원 때려치우지?”도진은 깜짝 놀라 거의 의자에서 튀어 오를 뻔했다.언제 다가온 건지조차 알 수 없게, 해일은 이미 그의 뒤에 서 있었다.해일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도진의 어깨 위에 팔을 얹고, 내려다보고 있었다.“아... 하, 핫.... 해일님!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잔뜩 기합이 들어간 도진의 모습은 어딘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지만, 해일은 오히려 표정을 더욱 굳혔다.그는 천천히 소파에 앉아 등을 깊게 기대고,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그래~~”해일이 느릿하게 웃었다.“당연히 열심히 해야지~!”누가 보더라도 적당히 좀 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해일은 거만함을 온몸으로 드러낸 채 도진을 바라보았다.“죄수 관리는 잘 하고 있지?”
해일은 오토바이를 몰아 루비 아워로 향하며 착잡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아직 이솔을 자신의 뒤에 태워 본 적도 없었는데, 죄수부터 태우게 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아휴... 내 팔자야....”지율이 이 광경을 보면 펄쩍 뛰어오를 게 분명했다. 그 생각에 한숨은 더 깊어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루비 아워에 도착한 해일은 기절한 지우를 안아 올려 안으로 들어서자 자신의 예상대로 지율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입을 살짝 벌린채 해일과 지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형.... 뭐야? 지우 씨가 왜 형한테 안겨 있어?”지율의 질문에 오히려 해일 쪽이 더 당황했다.“너, 그 표정 뭐야!!”해일이 버럭 소리쳤다.“난 이솔 씨밖에 없어! 이 죄수는 그냥 기절시킨 거라고!!”지율은 눈초리가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뭐... 형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지하 감옥에 내려 놓고 와.”해일도 지금 여기서 더 설명했다가 꼬이기만 할 것 같아 일단 지우를 지하 감옥에 들여보내기 위해 루비 아워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은재도 뱀파이어 죄수들의 폭주 소식을 듣고 회사에 휴가를 낸 상황이라 루비 아워에서 대기하고 있던 참이었다.그래서, 해일에게 안겨서 들어오는 지우를 보자 헛웃음이 나오기는 했지만 일단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현목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현목님. 루비 아워에 방금 해일 형이 도착했고요. 교도소에서 탈출한 여자 죄수는 일단 루비 아워 지하 감옥에 수감해 두었습니다. 궁 쪽 교도소 정리가 끝나면 오셔서 데려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잠시 후, 현목의 낮고
해일이 돌아온 후 모두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잠시 뒤로 미뤄둔 채, 저마다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그러나 같은 시간, 미래를 위해 서로를 위하고 마음을 나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가 있었다.뱀파이어 세계의 본궁 뒤편, 죄인들을 가두는 감옥 한구석. 햇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차가운 의자 위에 지우는 멍한 눈빛으로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지우는 그저 지율을 좋아하는 마음에,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 호소했을 뿐이었다.그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고, 설령 알고 있었다 한들 이렇게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질문은 하루에도 수천 번씩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감옥은 여전히 어두웠고, 지우의 시간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법과 죄인들의 형량을 관리하는 뱀파이어 고위 관료 백도진은 지난 두 달여 동안 지우가 감옥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해 왔다.그는 매일같이 보고서를 작성했고, 간수들에게서 지우에 대한 특이 사항은 없었는지 보고를 받은 뒤 그 내용을 다시 서류로 정리했다.“하.... 인간 여자 한 명 때문에, 내 일이 하나 더 늘었어....”백도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상사인 도윤각에게 제출할 서류들을 다시 펼쳤다.문장 하나, 수치 하나까지도 빠짐없이 훑어보며 틀린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하기 시작했다.윤각의 승인을 받으면 뱀파이어 관련 사건을 다루는 인간 변호사와 판사에게도 해당 내용이 공유되어야 했다.그 탓에 백도진은 정신없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보고서를 작성했고, 사
이솔은 자신의 곁을 지키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윤이 무척 고마웠다.처음 하윤이 하이브리드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미안한 얼굴로 자신을 찾아와 모든 상황을 털어놓는 하윤을 위로해 준 것은 오히려 이솔이었다.그래서 해일이 칩거에 들어간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서운한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솔은 결국 그 부분에 대해 하윤에게 처음으로 작은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이솔아... 내가 정말 미안...”머쓱하게 웃어보이는 하윤을 보며 이솔은 결국 웃어버렸다.오늘은 금요일이었다.하윤은 금요일 밤을 이솔과 함께 보내기 위해 루비 아워에서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루비 아워는 이미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SNS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덕분에 가게 안에는 인플루언서로 보이는 손님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사진을 찍느라 자리를 옮기고, 영상 촬영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이 이어졌다.하윤은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속으로 생각했다.‘요즘 젊은 사람들은 알다가도 모르겠군.’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솔에게로 옮겨갔다.이솔은 바쁜 와중에도 손님들을 차분하게 응대하며 직원들을 능숙하게 이끌고 있었다.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이곳을 지탱하는 중심처럼 보였다.최근 해일의 칩거로 이솔은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바쁜 일 속으로 자신을 던져 불태우고 있었다.어제는 지율이 그녀와 하윤을 불러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김 매니저, 그동안 정말 많이 고민해 봤어요..... 그래서 이제는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김 매니저가 저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저 역시 김 매니저를 딸처
새로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뱀파이어 세계는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하이브리드 뱀파이어들의 등장은 그 중심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반은 인간이고 반은 뱀파이어라는 존재.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순혈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그들의 등장을 두고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분위기는 점차 환영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이미 비교적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이 시대에, 정체가 불분명한 존재들이 방치된 채 사고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뱀파이어 세계에 정식으로 등록시켜 체계적인 관리와 감시 아래 두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루비 아워를 찾는 뱀파이어 손님들 사이에서도 하이브리드 뱀파이어의 등장은 단연 화제였다.곳곳에서 관련 이야기가 오갔고, 그들이 이솔과 해일의 만남을 지지한다는 소식까지 퍼지자 가게 안은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그 순간, 루비 아워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온 해일은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곧장 지율에게 다가갔다.“지율아!! 너 알고 있었지!!”억누르지 못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목소리였다.분명 화가 나 있었고, 그 안에는 당혹감과 배신감이 뒤섞여 있었다.그 표정을 본 지율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하다가, 곤란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형...... 일단 진정부터 하고. 우리 자리로 가서 이야기하자.”지율은 자연스럽게 해일의 팔을 잡아 살짝 끌며, 동시에 은재를 향해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루비 아워 안의 시선들이, 하나둘 그들에게로 모이기 시작하고 있었다.은재는 여유롭게 버그를 하나씩 찾아 수정하며 일에 깊이 집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