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Author: 류한나
"고은서, 이제 그만해! 대체 언제까지 소란 피울 거야?”

곽승재가 버럭 화를 내며 타박하자 고은서는 말없이 냉소를 지었다.

자기 와이프를 대하는 태도가 어쩌면 남보다 더 못할 수 있단 말인가?

“승재야, 화내지 마.”

고은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백유미가 먼저 말을 꺼내더니 설명을 보탰다.

“은서 씨, 승재가 오늘 내 생일 파티에 참여하려고 찾아온 건 아니야. 사실 우리 아빠가 오랜만에 보고 싶다고 해서 가볍게 저녁이나 같이 먹으려고 집으로 초대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어. 게다가 은서 씨가 다쳤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 걸려 서둘러 해명하러 달려왔거든. 다 내 탓이니까 이제 그만 화 풀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긋나긋한 말투로 사과하는 백유미의 모습은 진정성이 가득했다.

고은서는 3년 전에도 백유미가 집까지 찾아와서 똑같은 변명을 했던 거로 기억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침실이었다.

당시 백유미의 말을 듣고 나서 나란히 서 있는 선남선녀를 보자 열이 확 올랐다.

이내 악을 쓰며 백유미에게 꺼지라고 했고, 탁자에 놓인 꽃병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꽃병에 머리를 부딪힌 백유미는 피를 철철 흘리며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곽승재는 노발대발하면서 곧바로 백유미를 안고 병원으로 데려가 몇 날 며칠이나 돌봐주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화를 돋우는 말이었지만, 이제 고은서의 마음에 아무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미소 짓는 여유까지 되찾았다.

“유미 씨, 멀리서 해명하러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애썼네. 나 화 안 났어. 아버님께서 승재를 식사에 초대하셨다며? 얼른 가 봐. 연장자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백유미는 고은서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살짝 당황했다.

곽승재도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상황이란 말이지?

자신에게 혼났는데 울고불고 떠들기는커녕 백유미와 밥 먹으러 가라고 흔쾌히 보내주기까지 하다니?

분명 2시간 전만 해도 집으로 불러들이지 못해 2층에서 뛰어내리는 소동까지 벌였는데 말이다.

지금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 전략을 시전하는 건가?

고은서의 의도를 파악한 곽승재는 피식 웃더니 백유미를 향해 말했다.

“가라고 했으니 얼른 출발하자.”

말을 마치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백유미는 머뭇거리다가 고은서에게 치료 잘하라는 형식적인 인사말만 하고는 곽승재를 따라갔다.

이를 본 이미숙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모님, 아무리 화가 나도 백유미 씨와 같이 가라고 하면 어떡해요?”

“저 화 안 났는데요?”

고은서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3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다시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곽승재에게 집착하고, 그의 대답만 애타게 기다리는 일은 더는 없을 것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싶든 누구와 함께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앞으로 그녀는 오직 본인과 가족만을 위해 살 테니까.

“아줌마, 나 너무 배고픈데 맛있는 거 좀 만들어 줄래요?”

고은서가 물었다.

정신병원에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약 외에 매일 먹는 거라고는 묽은 미음 한 그릇뿐인지라 배불리 먹지 못한 탓에 위암까지 걸렸었다.

지금 그녀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속을 달래줄 맛있는 요리였다.

이미숙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요... 바로 준비할게요.”

“저도 도와줄게요.”

고은서는 이미숙과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 발길을 다시 돌린 곽승재가 눈살을 찌푸린 채 서 있는 모습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호통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만약 고은서가 더 큰 소란을 피우면 어떻게 혼내줄지까지 미리 계산을 마쳤다.

그러나 울고 불기는커녕 음식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다니?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무조건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했다.

곽승재는 질린 나머지 다시 뒤돌아서 점점 멀어져 갔다.

...

배 터지게 식사를 마친 고은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두드렸다.

배불리 먹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느낌일 줄이야!

정신병원에서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는 건 둘째치고, 여태껏 곽씨 일가에서도 차마 마음껏 먹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곽승재의 관심을 받으려고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빠, 나 키 168에 몸무게 45kg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까 모델 몸매라고 하던데?”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곽승재의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하긴, 곽승재와 무슨 상관이지?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밥도 편하게 먹지 못하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멍청했다.

그나마 새로운 삶이 주어져 모든 것을 해탈했기에 망정이지...

앞으로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고, 절대로 스스로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방으로 돌아온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482화

    고은서는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생일을 입력하자 문이 정말 열렸다.집 안은 온통 곽승재의 흔적으로 꽉 차 있었다.냉장고에는 여전히 채소가 가득했고, 주방의 수납장을 열어보니 안쪽에는 요리 레시피가 잔뜩 적혀 있었다. 전부 고은서가 좋아하는 요리들이었고 심지어 훠궈 소스를 만드는 비법도 적혀 있었다.고은서는 천천히 수납장을 닫고 곽승재의 서재로 향했다.서재의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살펴보니 전부 다 고은서의 사진이었다.일부는 고은서가 지난번에 곽승재의 생일 때 선물한 사진첩에 있는 사진과 같은 거였지만, 일부는 고은서 본인조차 본 적이 없는 사진이었다.대체 어디서 난 건 지는 모르겠지만, 고은서가 웃는 사진도 있었고, 드럼을 치는 사진도 있었고, 난초꽃 앞에 서서 향기를 맡는 사진도 있었다.이때는 두 사람이 이혼하기 전이었다. 고은서가 밖에서 할머니와 같이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자신을 찾으러 온 곽승재한테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꽃향기를 맡고 있는 고은서의 모습을 찍은 거였다.그리고 천천히 사진을 내려놓다가 책상 위에서 글로 빼곡한 편지지 한 장을 발견했다.그건 곽승재의 필체였다. 고은서의 생일 전에 쓴 글인 것 같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물하지 않았다.고은서는 편지를 손에 들었다.서두에는 생일 축하 같은 축복의 말이 적혀 있었고, 본론에는 의외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 적혀 있었다.‘은서야, 이런 말을 하면 네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널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도 자비감이 들었어. 대체 어떤 남자가 너 같은 여자한테 어울릴 수 있는지 상상이 안 갔거든.두 번째로 널 만났을 때는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널 따라서 뒤뜰로 갔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는지 고민, 또 고민했어...네 머리핀을 갖고 널 찾아갔을 때, 사실 너무 긴장됐어. 하지만 난 자존심이 강한 놈이라서 성아연의 말을 듣고 네 장난감이 됐다는 수치심이 들었지.심지어 널 찾

  • 어게인, 비긴   제1481화

    고은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여, 머리를 끄덕였다.“알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고 결정되면 말씀드릴게요.”고준석은 고은서의 손을 꼭 잡고 조금 야윈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다.“은서야, 네 옆에는 항상 내가 있으니까, 마음이 복잡하거나 우울하면 꼭 할아버지한테 얘기해. 혼자 끙끙 앓지 말고.”고은서는 그 말을 듣고 할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다음날, 고은서는 회사로 돌아갔다.고은서가 겪은 일은 회사 사람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는지라 출근하자마자 다들 모여 괜찮냐고 물었다.고은서는 직원들의 관심에 감사의 뜻을 전했고,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그리고 낮에는 급한 서류들을 우선으로 처리했고, 비서한테 헤드헌팅 회사에 연락해서 전문 경영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전하라고 했다.고은서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다. 회사 일은 잠시 회사 사람들한테 맡기고 자신은 시야도 넓힐 겸 외국으로 가기로 했다.그러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라이트문 아파트로 돌아가서 한창 웃으며 미숙 아줌마한테 괜찮다고 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문을 열어보니 곽승재네 집의 도우미 아줌마였다. 바로 옆집에서 살고 있으니 미숙 아줌마와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해졌다.미숙 아줌마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 아줌마는 곽승재가 매일 신선한 생선과 채소를 사라고 했지만, 안 돌아온 지 꽤 됐고, 비서와도 연락이 되지 않아 계속 장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그 말은 즉, 마침 고은서가 돌아왔으니 대신 물어봐 줄 수 없냐는 뜻이었다.고은서는 지난번에 곽승재의 집으로 갔을 때, 냉장고에서 많은 식재료를 본 적이 있었다.그때 곽승재는 분명 도우미 아줌마와 할머니가 산 거라면서 자신은 모른다고 했지만, 도우미 아줌마는 곽승재가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었다.“오빠가 식재료는 왜 샀어요?”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일 때문에 늘

  • 어게인, 비긴   제1480화

    고은서가 담담하게 박지연에게 물었다.“승재 오빠 장례식은 어떻게 됐어?”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박지연이 조심스레 사실을 털어놓았다.곽씨 일가 사람들 전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육현석이 곽승재의 장례식을 맡게 되었다고 말이다.혹시라도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될까 우려한 그들은 곽승재의 사망 소식을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았으며 성대한 추도식이나 장례 행렬 없이 조용히 저택 내 정원에 사진을 놓고 가까운 가족과 친구 몇 명만 참석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서연정은 현장에서 바로 실신했고 늘 위엄 있던 곽현수는 하룻밤 사이 머리가 반쯤 하얘졌다.전미자는 바로 병을 얻었고 죽음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곽승연은 그저 오빠가 먼 곳에 출장 갔다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이 이야기를 들은 고은서는 곽씨 일가 사람들을 찾아가 보겠다는 말도, 곽씨 저택에 가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병원에서의 치료에 성실히 임했다.약도 잘 챙겨 먹고 상처 치료도 잘 받았고 식사도 빠뜨리지 않았다.다만 말수가 줄었을 뿐, 겉보기엔 마치 곽승재의 죽음이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퇴원하는 날, 박지연은 고은서가 걱정스러운지 고씨 저택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고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뜻에서였다.“나 정말 괜찮아.”고은서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곽승재는 나랑 내 아이의 생명을 앗아갔던 사람이야. 이 일로... 그 빚을 다 갚은 거지. 그 사람과 나는 이제 완전히 끝난 거야. 그 사람은 더는 나에게 빚진 게 없어. 그러니까 나 정말 괜찮아.”고은서는 웃고 있었지만, 박지연의 눈에는 그녀가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다.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은서야, 참지 말고 그냥 실컷 울어.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거 아니야...”고은서가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정말 괜찮아.”하지만 박지연의 고집을 못 이긴 그녀는 결국 고씨

  • 어게인, 비긴   제1479화

    고은서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박지연은 곽승재가 폭발 직전 특수요원에게 구조되어 중환자실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현석 씨는 왜 곽승재의 장례를 언급하는 거지?’그녀는 문득 자신이 아직 꿈에서 깨지 못한 건 아닌가 싶었다.‘이건 전부 허상이야.’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고은서가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한 채 가슴을 쓸어내렸다.‘직접 곽승재의 상태를 보지 못하니 불안감이 극대화되어 이상한 꿈만 꾸는 거야. 내일 아침에 직접 담당 의사에게 가서 그의 상태를 확인하면 이런 악몽도 멈추겠지…’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병실로 돌아가려 했으나, 고은서의 발은 마치 땅에 붙기라도 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렸다.다리에 힘이 빠져 벽에 설치된 핸드레일을 잡지 않는다면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고은서의 이상 징후는 박지연과 육현석의 시선을 끌었다.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한 박지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곧장 그녀에게 달려왔다.“은서야, 괜찮아? 정신 차려!”고은서는 박지연에게 안긴 채 병상에 몸을 뉘었다.몸이 잔뜩 굳어 말조차 내뱉지 못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곽승재에 대한 생각뿐이었다.고은서는 표정도, 목소리도, 반응조차 없는 상태였다.“은서야, 제발 이러지 마…”더는 참지 못한 박지연이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난 네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그동안 숨긴 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은서야…”육현석도 쉬이 말을 잇지 못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그 사람은 네가 이렇게 아파하길 원하지 않을 거야… 제발 너라도 괜찮아져야 해…”하지만 고은서는 귀를 닫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눈을 감고, 꿈에서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다.이게 전부 악몽이면 좋겠다 생각하며, 제발 누군가가 자신을 이 악몽에서 깨워주길 바랐다.박지연이 고은서의 차가운 손을 꼭 붙잡고 흐느꼈다.“은서야, 제발… 제발 정신 차려줘…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하지만 고은서는 이미

  • 어게인, 비긴   제1478화

    송민아가 잔뜩 충혈된 눈으로 입을 열었다.“우리 오빠도 꽤 불쌍한 사람이야. 이번에도 심하게 다치고, 뼈도 여러 군데 부러지고, 돌에 깔려서 오른팔 근육이랑 인대가 전부 끊어졌어. 앞으로 오른손으로 펜조차 들 수 없을 거래…”그 말을 들은 고은서는 폭발 당시 송민준이 온몸으로 자신을 끌어안던 순간을 떠올렸다.남자가 손으로, 그리고 팔로 자신을 감싸안으며 보호해 주던 순간 입은 부상이 분명했다.“난 오빠가 왜 너와 네 가족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몰라. 하지만 오빠가 널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어. 몸을 던져가며 널 지킨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오빠가 선택한 일이니까 넌 너무 부담 갖지 마. 물론, 이 일로 오빠가 저지른 짓이 사라지진 않겠지만…”순간 송민준이 전생에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일,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외할아버지를 해치려 한 것을 떠올린 고은서는 차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하지만 마음속의 분노가 짙게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녀는 문득 송민준이 타인에게 지배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늘 전혜라의 말에 순응하듯 움직이곤 했다.그곳에는 아마 고은서가 알지 못한 진실이 있을 것이다.“그냥… 나 대신 구해줘서 고맙다고 전해줘.”그 외엔 할 말이 없었다.감사하다는 마음조차 그에게는 과분한데, 송민준이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고은서의 마음이 움직일 리가 만무했다.이번 생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의 진심이 아니었다 해도 외할아버지가 전생처럼 다칠 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섬뜩했다.고은서의 복잡한 마음을 알아챈 송민아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그저 고은서의 상태를 묻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다 병실을 떠났다.이후 박지연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그녀는 고은서와 송민아 사이의 대화를 묻지 않았다.그저 작은 도시락을 꺼내며, 웃는 얼굴로 말할 뿐.“이것 좀 먹어봐. 너 너무 말라서 속상해.”평소처럼 다정하고 안정적인 박지연의 태도에 고은서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의심을 접기로 했다.곽

  • 어게인, 비긴   제1477화

    검사를 마친 고은서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는 시간이 꽤 오래 지난 뒤였다.병실로 돌아온 그녀는 박지연의 정신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이틀 내내 자신을 돌보느라 지쳤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른 고은서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는 박지연에게 말했다.“지연아, 너무 피곤하면 집에 가서 좀 쉬어. 여긴 간병인도 있으니까 괜찮아.”그러자 박지연이 고은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그냥… 네 검사 결과가 좀 걱정돼서. 너무 오래 쓰러져 있었잖아.”고은서는 특별히 불편한 곳이 없었다.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깨어나지 못한 이유도 그 꿈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난 대체 왜 그런 꿈을 꾼 걸까… 왜 전생에는 알지 못했던 승재 오빠의 모습들을 보게 된 거지?’순간 곽승재가 칼로 심장을 찌른 모습을 떠올린 고은서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평온하던 마음이 다시금 불안에 잠식되는 것 같았다.“지연아, 우리… 승재 오빠 보러 갈래? 면회 못 해도 상관없어. 그냥… 어디 있는지만 알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박지연은 고은서의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그녀를 말렸다.“너무 조급해하지 마, 은서야. 시간도 너무 늦었는데 일단 좀 쉬자, 응?”“너 설마…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건 아니지?”고은서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박지연을 바라보았다.오늘따라 박지연이 어딘가 이상했다.하지만 그녀는 태연히 잔에 물을 따르며 대답했다.“내가 숨기긴 뭘 숨겨, 어차피 가도 못 볼 텐데. 난 그냥… 가서 곽승재 씨 상태가 심각하단 얘기를 듣게 되면 네가 힘들어할까 봐 그러는 거지.”고은서가 뭔가를 더 물으려는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송민아를 발견한 박지연이 환히 웃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아, 왔어? 얼른 와서 은서랑 대화 좀 나눠. 난 간호사 쌤한테 오늘 복용할 약 더 있나 확인해 볼게.”박지연이 병실을 나가자 고은서가 문 너머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지연이 어딘가 좀 이상해… 내게 뭔가를 숨기고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