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고은서는 서연정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만약 자신과 곽승재 사이에 두 아이가 있었다면 아마 자신도 쉽게 이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더군다나 서연정과 곽현수 사이에는 이익 관계도 얽혀 있었다. 그 당시 곽 회장이 서씨 가문에 지분을 증여했기 때문에 서연정이 이혼을 하게 되면 가문에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높았다.GS 그룹으로서도 회장과 회장 부인의 이혼이라는 스캔들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은서는 사실 서연정에게 묻고 싶었다. 그때 곽현수와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렇게 단호하게 떠나려 했는지를. 하지만 서연정은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고 마침 하인이 저녁 식사 준비에 관해 물으러 왔으며 곽승연도 강아지를 안고 다가왔기 때문에 고은서는 그 궁금증을 마음속에 묻어두었다....호원에서 라이트문 아파트로 돌아온 고은서는 곽승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서연정이 그녀에게 해준 손문호에 관한 이야기들을 곽승재에게 전달해 주었다.서연정이 곽승재가 마음속에 의문은 품고 있겠지만 결코 직접 묻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며 고은서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건 사실상 곽승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고은서는 스스로 메신저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곽승재는 그다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난 별로 관심 없어.”고은서는 곽승재가 어머니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설득하려 하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말했다.“승재 씨보고 관심 가지라는 게 아니라 손문호를 다시 조사해달라고 말하려고 했던 거야.”그러고는 자신이 곽승연과 함께 펫숍에서 손문호를 마주쳤던 일을 이야기했다.“그 사람이 나랑 관련된 곳에 자꾸 나타나는 게 너무 우연 같지 않아서 좀 이상해.”곽승재는 조사하겠다고 대답하고 곧이어 물었다.“너 이틀 연속으로 동물병원이랑 펫숍 다니고 또 쿠아 사건에 관해 물어봤다며. 여시은에게 뭔가 하려는 거야?”고은서는 솔직하게 말했다.“여시은은 분명 나와 여 대표님 관계에 대해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손문호에게 조금 호기심이 있다고 말했다.사실 고은서는 손문호가 송민준과 전혜라와 아는 사이인지 알고 싶었다. 직접 묻기는 너무 이상해 보여서 고은서는 돌려서 물었다.“사모님, 손 선생님이 북성에서 생활하거나 일한 적이 있나요?”서연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내가 알기로는 없는데... 은서 너 왜 그런 걸 물어봐?”고은서는 웃으며 사실대로 답했다.“최근에 일이 좀 있었는데 북성 쪽 사람들과 관련이 있어서 손 선생님이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했어요.”몇 달 전, 고은서는 손문호가 경마장에서 찍힌 CCTV 화면을 가지고 서연정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서연정은 더 질문하지 않고 손문호에 대해 말해주었다.손문호는 어머니와 함께 해성에서 살았고 아버지가 없어서 어린 시절이 꽤 힘들었다. 그 뒤에 서 씨 집 근처에 이사 와서 살게 되면서 두 집은 왕래를 시작했다.어느 겨울, 서연정이 실수로 강에 빠졌을 때 손문호 어머니가 목숨 걸고 구해주다가 그 과정에서 감기에 걸려 병을 얻게 되었다.서씨 집안의 경제 사정이 손가네보다 퍽 나았기에 원래 손가를 많이 돌봐주던 그들은 더욱 그들을 신경 쓰게 되었다.서연정의 아버지는 심지어 손문호를 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에게서 골동품 복구 작업 기술을 배우게 하기도 했다.“그러면 사모님이 곽 회장님과 결혼하기 전에 손 선생님이 고백이라도 한 적 있나요?”고은서는 궁금한 부분에 대해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전미자가 말하길 서연정은 젊었을 때 주변에 이름난 미인이었고 손문호는 그녀와 가까이 지내며 그녀 집의 보살핌을 받았기에 일찍부터 마음을 품었을 것이라 했다.옛일을 떠올린 듯 서연정의 얼굴에 옅은 쓸쓸함이 스쳤다. 그녀는 손문호가 진심을 보였지만 자신은 거절했다고 말했다.서연정은 손문호에게 이성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고 단지 좋은 친구로 여기며 손 어머니를 은인으로 생각하는 데 그쳤다.“내가 결혼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는 축복해 줬고 여자친구도 사귀었어.”서연정이 말했
서연정은 곽승연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언니랑 너무 즐겁게 보내다가 엄마는 잊은 줄 알았지 뭐야.”“그럴 리 없어요!”이윽고 몇 사람은 거실로 들어섰고 곽승연은 서연정에게 지난 이틀 동안 고은서와 함께 다녀온 곳이나 먹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기분 좋은 모습을 보였다.서연정은 고은서가 이틀 동안 곽승연을 잘 보살펴준 것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전에 승연이 상태가 안 좋을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까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 은서야, 고맙다.”“사모님, 그렇게까지 감사하실 필요 없어요. 전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 승연이가 스스로 감정을 잘 조절하게 된 거예요.”이야기를 나누던 중 하인이 곽승연의 강아지를 데리고 돌아오자 승연이는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며 기쁘게 뛰어가 쓰다듬기 시작했다.그 틈을 타 고은서는 방금 펫숍에서 손문호와 마주친 이야기를 꺼냈다.서연정은 조금 놀란 듯 물었다.“그 사람이 왜 거기에 갔지?”고은서가 답했다.“사모님과 승연이를 보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승연이 강아지한테 줄 간식이나 용품을 사러 갔대요.”“그리고 시모님, 저를 한눈에 알아보셨어요. 혹시 저랑 승재 씨에 대해서 그분께 말씀하신 적 있으세요?”서연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전에 한 번 행사에서 마주쳤는데 그때 마침 네가 상을 타서 TV에서 다시 보기로 방송되고 있었거든. 그래서 그때 언급했었어.”고은서는 손문호가 펫숍에 나타난 게 왠지 우연 같지 않았다.예전에 경마장에서 나타난 적도 있었고 마재경 사건 때도 접선 장소 근처에서 목격된 바 있었다. 곽승재가 확인해 본 결과 손문호가 그 장소들에 간 데는 명분이 있었다고는 했지만 고은서는 여전히 수상하게 느껴졌다.“사모님, 승연이가 그러던데 Y 국에 계실 때 그분께서 두 분을 많이 챙겨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 온 분인데 감정적으로 조금이라도 흔들리신 적 없으세요?”고은서는 예전에도 서연정에게 손문호에 관해 물은 적이 있었고 그때도 서연정은 그녀의 호기심을 나무
고은서의 질문에 곽승연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우리가 Y 국에 있을 때 손 아저씨가 늘 짬을 내서 집에 들르곤 했어요. 가끔은 밥도 사주시고요. 저한테 선물도 자주 사주셨는데 너무 비싼 건 엄마가 다 거절하셨어요.”“승연이는 그 사람 좋아해?”고은서는 못내 궁금해서 물었다.서연정의 말로는 손문호가 예전에 그녀 아버지의 제자였고 가족과도 오랫동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게다가 손문호가 수년 동안 결혼도 하지 않은 건 분명 서연정 때문이었다.그런데 서연정은 곽현수와 그토록 사이가 나쁘면서도 이혼하지 않은 건 자식 때문일까?곽승연은 뒤를 살짝 살펴보더니 조용히 말했다.“손 아저씨는 저랑 엄마한테 관심도 많고 잘 챙겨주시긴 해요. 그런데 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빠랑 엄마가 자주 싸운 것도 다 손 아저씨 때문이에요.”“전 아빠랑 엄마가 싸우는 게 싫어요.”곽승연은 조금 슬픈 듯 말했다.고은서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너 때문이 아니야. 그분들 사이의 문제는 어른들끼리의 일이지 너랑은 상관없어. 부담 갖지 마. 앞으로 기분 안 좋을 때마다 언니한테 전화해.”곽승연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차에 올라탄 고은서는 곽승연을 호원 저택으로 데려다주었다. 곽승연이 집을 나온 지 이틀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고 약속한 복귀 시간이 된 것이다.차가 호원에 들어서자 고은서는 곽승연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막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안에서 곽현수가 걸어 나왔다.짙은 색의 긴 외투를 입은 그는 병이 막 회복된 탓인지 예전처럼 기운 넘치진 않았지만 여전히 위엄 있는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이미 마주친 이상 모른 척할 수도 없는지라 고은서는 거리감 있는 태도로 인사했다.“곽 회장님.”곽승연도 조용히 아빠를 불렀다.곽현수는 곽승연을 쳐다보며 물었다.“옷이 왜 이렇게 더러워?”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곽승연은 긴장한 듯 고은서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고은서는 곽승연의 손을 잡고는 대신 설
박미화라는 사람은 아마 여시은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진실을 말해준다면 여시은의 가면을 벗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박미화가 진실을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여시은에게서 위협을 받지 않는 상황이어야 했다.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고은서는 여시은 본인 스스로 뭔가를 드러나게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고은서는 일부러 자신의 행적을 굳이 숨기지 않고 다음 날에도 퀸을 안고 다시 동물병원을 찾았다.그리고 여시은이 예전에 들렀던 적이 있는 펫숍에도 들렀다.“손 아저씨.”고은서가 고양이 통조림을 고르고 있을 때 갑자기 곽승연이 부드럽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개를 돌린 고은서는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바로 서연정의 오랜 친구이자 구혼자였던 손문호이었다.고은서는 손문호를 멀리서 본 적도 있고 사진으로도 봤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에 영상통화에서 봤던 사진보다 실제 모습이 더 야윈 느낌이었고 예술가적인 우아함이 느껴지는 신사적인 외모였다.곽승연을 보자 그는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승연아, 여기서 웬일이니? 어머니랑 같이 왔니?”곽승연은 고개를 저으며 고은서의 팔을 끌어안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언니가 데려왔어요. 저희 같이 퀸이 먹을 고양이 캔을 사러 왔어요!”손문호는 그제야 고은서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가볍게 살펴본 뒤 마치 기억이 난 듯 말했다.“고은서 씨 맞죠? 연정이가 얘기한 적 있어요. 예전에 자기 며느리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도 승재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하던데요.”고은서는 서연정이 손문호에게 자신과 곽승재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조금 놀랐을뿐더러 손문호가 자신을 알아본 것도 의외였다.“저는 승연이랑 승재의 삼촌 되는 사람이에요. 손 씨이고요. 승연이처럼 그냥 아저씨라 불러도 괜찮아요.”손문호는 부드러운 말투로 덧붙였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아저씨도 물건 사러 오신 거예요?”손문호는 미소
이후 이틀 동안, 곽승연은 계속 고은서와 함께 있었다.고은서가 유일 측 중요업무를 처리할 때면 곽승연은 얌전히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며 옆에서 방해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일이 많지 않을 때면 곽승연을 고아원에 데려가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사교 능력을 키울 기회를 주었다.두 사람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KK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은서의 요구에 따라 KK는 이전에 여시은 집에서 일했던 가정부들을 조사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여시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에 대해 불리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 했다.어쨌든 여시은은 여씨 가문의 귀한 딸이었고 여재훈도 과거 그녀를 매우 아꼈기에 누구도 함부로 입을 놀려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게 하지 않았다.KK는 은서에게 이전에 해성에서 일하던 박미화라는 가정부가 얼마 전 XX 국으로 파견된 이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새로운 정보도 전했다.소문에 따르면 박미화는 여시은의 지시로 그곳에 남겨졌다고 했지만 그녀의 가족은 모두 해성에 있으며 정상적으로는 굳이 외국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KK 말에 따르면 박미화의 가족은 그녀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으나 박미화는 그저 그쪽이 급여가 더 높아서 계속 있고 싶다고 얼버무릴 뿐이라는 것이다.‘XX 국이라면 전에 게임 계약권을 따내러 갔을 때 여시은도 그곳에 한동안 머물렀는데 그때 해성에서 데리고 간 가정부를 결국 거기에 남겨두었나?’고은서는 여시은의 성격상 정말 마음에 드는 가정부였다면 그렇게 멀리 두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엔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의구심이 든 고은서는 KK에게 박미화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보라고 했다. 직접 박미화와 연락을 취해 그녀가 왜 귀국하지 않으려 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아보고 싶었다.전화를 끊은 후 고은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곽승연에게 말했다.“우리 동물병원에 잠깐 들를까? 퀸이 요즘 밥을 잘 안 먹어서 검사 좀 받아보려고.”곽승연은 퀸을 무척 좋아했기에 고은서의 제안에 당연히 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