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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참가자 들어오세요.”
슈퍼스타 뮤지션, 일명 슈퍼스타 M.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장할 가수를 발굴하기 위한 오디션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매우 빠른 탈락. 이은우는 90도로 인사한 후 오디션장을 빠져나왔다. 사실 주변에서는 그가 오디션에 나간다고 했을 때 비웃음을 당했다.
“네가 가수를? 하하하.”
노래를 잘하는 건 인정. 하지만 흔히 말하는 ‘와꾸’가 아니었다.
눈을 감고 들을 때는 좋다가도, 눈을 뜨면 웬 아저씨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는 이은우가 가진 노래 실력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 주제에 가수는 무슨…”
그때 심사를 보던 이상철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이은우 씨.”
이은우가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요. 알다시피 요즘 시대에 가수가 노래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니거든….”
“괜찮습니다. 오히려 후련하네요.” “앞으로 뭐 하실 겁니까?”
“노래는 취미로 하고, 계속하던 일 해야죠.”
“그럼 제 히든싱어 한번 해볼래요? 이왕이면 좋아하는 노래로 돈 벌면 좋잖아요.”
“히든싱어요? 그게 뭐죠?”
“별건 아니고, 무대 뒤에서 저 대신 노래 좀 불러줘요. 제가 요즘 목 상태가 안 좋아서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콘서트 일정은 잡혀 있거든요. 팬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는데 마침 이은우 씨가 딱 나타나네요?”
말이 히든싱어지, 한마디로 고스트 싱어였다.
즉, 자기 대신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부르라는 뜻이었다.
당장 생계를 위해, 혹은 커리어를 위해 많은 사람이 이 제안에 혹해서 넘어간다.
하지만 은우는 아니었다.
“그건 속이는 거 아닙니까?”
“속이는 거라니? 난 지금 당신한테 기회를 주고 있는 거라고요.”
이은우는 별이 되고 싶었다.
어둠 속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빛을 갈망했다.
그래서 남들의 찬사를 받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고스트 싱어는 은우한테 또 다른 어둠일 뿐이었다.
이상철은 삿대질을 한 후 불쾌한 얼굴로 돌아섰다.
“당신은 좋은 기회를 걷어찬 거야.”
은우는 슬쩍 웃은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잠시만요. 저랑 이야기 좀 하실래요?”
“누구십니까?”
“아까 오디션장에서 노래하는 거 들었는데,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그녀는 은우에게 명함을 건넸다.
“케플라엔터테인먼트 매니저 강기연?”
“전 당신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제 외모가 이런데도요?”
특이 취향인가?
은우는 말로만 듣던 변태를 직접 보니 오히려 무서웠다.
하지만 강기연은 프로였다. 남성으로서 표은우를 본 게 아닌,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제안한 것이었다.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되죠.”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외모도 경쟁력이잖아요.”
“감동은 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감정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물론 은우 씨가 비주얼이 좋았다면 상품성이 더 높았겠지만, 고작 단점 하나가 다른 장점들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은우는 가슴이 찡해졌다.
외모가 아닌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
집으로 돌아간 은우는 다시금 생각해보니 사기꾼인 줄 알았다.
혹은 말로만 듣던 속칭 ‘아빠방’이나 술집을 소개해주는 마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연예인 매니저였다.
그녀가 건네준 명함을 들고 찾아갔더니 강남 사무실에서 그녀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서 와요!”
강기연은 은우를 데리고 회사를 소개해줬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가 없던 은우는 기연을 친누나처럼 따랐다. 강기연은 은우를 키우기 위해서 회사에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화면에 보이는 PPT가 그 증거였다.
“그래도 은우가 노래를 잘하니까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반전 매력으로 얼굴을 공개하면 어떨까요? 김호수나 주승모처럼요.”
임원진들이 침묵했다.
그러자 수장인 임 사장이 입을 열었다.
“이봐, 강 실장.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김호수는 은우에 비하면 조각미남이나 다름없어. 불쾌한 골짜기도 아니고.”
불쾌한 골짜기.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이 인간과 더 많이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은우는 로봇도 괴물도 아닌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차라리 성형을 시켜보는 게 어떨까?”
은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해체한 건 알았는데, 왜 해체했는지는 잘 몰라요.”“멤버 중 하나가 문제를 일으켜서 해체가 됐어···.”“아! 그 사건 알아요. 아주 그냥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잖아요.”지훈이 아는 체를 하다가 체인쏘에게 옆구리를 찔렸다.지훈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그래. 그 뒤로 케플라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있는 거야.”“누나, 대단한 사람이었군요.”“눈보라 멤버들하고는 지금 연락하고 지내세요?”“아니. 다들 조용히 일반인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해서 연락 안 하고 있어. 몇몇은 안 좋은 소식도 있고.”“아···.”“그래도 가끔 걔네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강기연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더는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멤버들도 그 뜻을 알아들었다.곤이 괜히 남은 감자튀김을 강기연 접시에 밀어 줬다.강기연은 피식 웃으며 그걸 집어 먹었다.표은우는 강기연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아직 30대 중반인데,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아이돌로 실패하고, 매니저로 성공하고, 그리고 그 성공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까지.그녀의 감은 오랜 경험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다.그리고 은우는 기억하고 있었다.전생에서도 강기연은 못생긴 은우에게 기회를 주려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모두가 얼굴을 보고 고개를 저을 때, 강기연만 은우의 노래를 들었다.그때는 몰랐다.그
더블유의 근황이 끝나자 이번엔 지훈의 차례였다.지훈은 학교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보컬 수업을 들었다.호흡과 발성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는 중이었다.그러면서 알게 됐다.은우가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것들이 사실은 교과서 맨 마지막 장에 나오는 기술이라는 걸.“진짜 배우면 배울수록 은우 형은 천재라니까요. 선생님들이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되면 은우 형이 부른 노래를 들어요. 그러면 싹 풀려요.”“교과서 취급이네.”“교과서보다 낫죠. 교과서는 노래를 안 하잖아요.”“그럼 한국 가면 직접 봐 줄게. 발성부터.”“진짜요? 약속했어요!”지훈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은우는 못 이기는 척 손가락을 걸었다.“두팔이 형은요? 형은 뭐 했어요?”곤이 체인쏘를 쳐다봤다.체인쏘는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었다.“흥. 비밀.”“에이, 말해 줘요.”“앨범 나오면 알게 될 거야.”체인쏘는 그 말만 하고 다시 고기를 썰었다.은우는 체인쏘의 손가락 끝을 봤다.펜을 오래 쥔 사람처럼 가운뎃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가사 쓰고 있었구나.’은우는 모른 척해 주기로 했다.곤이 고기를 꿀꺽 삼키고 손을 들었다.“그럼 형, 여기서 노래 한번 불러 줘요!”“여기서?”은우는 포크를 내려놓았다.“후··· 너희, 내가 미국에서 ‘노래 한 번만’ 소리 듣고 어떤
크리스마스이브 아침.강기연은 숙소 문을 두드려 은우를 깨웠다.“은우야. 일어나. 선물 받으러 가자.”“선물이요? 벌써요?”“응. 근데 선물이 좀 커서 공항으로 가야 돼.”은우는 영문도 모른 채 강기연을 따라 LA 공항으로 향했다.입국장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공항에서 무슨 선물을 받아? 설마 누나가 한국 가는 비행기 표를 사 준 건 아니겠지?’“누나. 대체 뭔데요?”“기다려 봐. 곧 나와.”“나와요? 선물이 걸어 나와요?”강기연은 대답 대신 전광판만 쳐다봤다.인천발 LA행 비행기의 도착 표시가 막 바뀌고 있었다.그때였다.“은우형!”곤이 저 멀리서 캐리어를 내팽
케이시는 깜짝 놀랐다.무용을 전공했지만, 춤을 접은 지는 어언 25년.정확히 말하면 조이를 낳고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런데 표은우가 자신을 일으켜 세워 춤을 추게 만들었다.그저 귀를 자극한 게 아니라, 잠들어 있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운 것이다.그러자 케이시는 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엄마, 방금 진짜 예뻤어. 나 엄마 춤추는 거 처음 봐.”“처음이니?”“응. 사진으로만 봤지.”조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케이시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조이가 왜 그토록 은우를 추천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케이시가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아쉽네요. 이 노래가 조금만 더 일찍 나왔으면 ‘라라랜드’ 같은 영화에 삽입될 수 있었을 텐데.”“나중에 그런 영화를 하나 만들어 주세요. 소닉 계열사에는 영화사도 있잖아요?”은우가 넉살 좋게 받아쳤다.강기연은 또 한 번 은우의 옆구리를 찌를 뻔했다.“그거 굉장히 좋은 생각인데요? 하지만 우선 OST 작업은 당장 알아봐야겠군요.”“엄마. 그 영화 나오면 나 카메오로 넣어 줘.”“노래는 안 하고?”“노래는 은우가 하고, 나는 지나가는 행인 1.”조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가수의 꿈을 접은 아이의 말치고는 밝았다.
“이제 재미없는 사업 이야기는 접어 두고, 우리 음악 이야기를 해 볼까요?”케이시가 다시 은우를 바라봤다.“은우 씨는 어떤 노래를 좋아해요?”“음. 가리지는 않아요. 다만 가사에 메시지가 담겨 있고, 누군가에게 희망이나 행복이 되는 노래면 좋을 거 같아요.”“작곡이나 작사도 직접 하시나요?”“할 줄은 알지만 아직 배우는 수준입니다.”그때 조이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은우가 ‘급식 래퍼’에 나온 영상이었다.“엄마, 이거 봤어? 은우가 한국에서 나간 방송이야.”“어? 그걸 어떻게 찾았어?”“나 너 팬이잖아. 이 정도는 기본이지.”은우는 민망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그거 내가 제일 흑역사라고 생각하는 건데···.”“왜? 멋있기만 하던데.”“그때 랩 가사 틀렸어.”“그래? 몰랐는데?”조이가 고개를 갸웃했다.은우만 아는 실수였다.케이시는 이미 한 번 본 영상이었다.하지만 은우에게 호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다시 보니 색다르게 보였다.“으흠~.”케이시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그 뒤 표은우와 케이시는 자연
‘뭐가 문제지?’강기연은 깜짝 놀랐다.은우가 한국말로 노래를 불렀어도 케이시는 노래의 내용을 다 이해했다.심지어 좋은 반응까지 보여 줬다.그런데 계약서를 찢었다.혹시 방금 은우한테 귓속말한 게 실례였나?아니면 처음 노래를 거부한 게 아직 마음에 걸리는 건가?강기연의 머릿속이 하얘졌다.조이도 놀라서 엄마를 쳐다봤다.“엄마?”강기연은 찢어진 계약서 조각을 멍하니 내려다봤다.C급이라도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계약서였다.그게 지금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었다.케이시가 그제야 손을 내저었다.“아! 오해하지 말아요. 표은우 씨의 노래를 들으니 이런 계약은 어울리지 않아서요.”강기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리에 힘이 쭉 풀렸다.소파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C급 계약은 가능성에 거는 계약이에요.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가수한테 소닉뮤직스의 이름만 빌려주는 거죠.”케이시가 찢어진 종이 조각을 한쪽으로 밀어냈다.“그런데 방금 노래를 들어 보니, 은우 씨는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결과더군요.”은우가 강기연에게 소곤거렸다.“누나. 저 칭찬받은 거 맞죠?”“응. 엄청난 칭찬.”&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