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지 삼 개월이 지났을 무렵, 남동생이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가족들은 그제야 나를 떠올렸다. 언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정한 투로 메시지를 보냈다. “동생이 매우 아파.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에게 골수이식 좀 해줘. 그러면 엄마, 아빠도 네가 훔친 돈 문제는 더 이상 꺼내지 않을 거야.” 아버지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지만, 나는 끝내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차가운 욕설을 뱉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날개라도 달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쫓았더니 연락 한번 없구나.” 어머니는 계속되는 통증에 괴로워서 우는 남동생을 달래면서, 속으로는 씁쓸하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를 삼키지 못했다. “네 누나 같은 배은망덕한 자식이 널 위해 숨어 있다가 나타나지 않을 테니, 엄마가 땅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반드시 찾아낼 거야.” 하지만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다. 내가 집에서 쫓겨나던 그날 밤, 얼마나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는지. 그 긴 밤을, 맨발로 마당에 서서 현관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는지. 문은 결국 열리지 않았고, 나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가족들은 정말로 땅을 파헤쳐 나를 찾아냈다. 두꺼운 얼음 밑에 갇혀 차갑게 굳어버린 내 시체를.
View More나는 집 안을 떠돌았다. 예전에는 이 집에서 내가 머무를 곳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가 밀려왔다. 매번 딱 하룻밤만 지내고, 지레 가족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겁내며 학교 기숙사로 서둘러 돌아가던 나 자신이 어리석고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가족들과 조금 더 소통했다면, 이 모든 오해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마침내 빈사 상태의 언니를 발견했다. 언니의 안색은 창백하고 푸르스름했으며, 바이탈 사인이 약했다. 구급차가 도착해서 언니를 병원으로 이송해 갔다. 중환자실 앞에서도 부모님은 여전히 다투고 있었다.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연서에게 골수를 기증하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더라면 그 애가 자살을 시도했겠어?” 아빠는 엄마를 향해 분노하며 소리치며 아빠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럼 너는 잘했어? 네가 소민이를 집에서 내쫓지 않았다면, 우리 아들이 병상에 누워 있지도 않았을 거야!” 엄마는 미친 듯이 아빠를 때리며 울부짖었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세 아이 중 하나는 실종되고, 하나는 응급실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있고, 또 하나는 죽어가고 있어.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거지?” “이혼하자.” “넌 정상적인 엄마가 아니야.” 아빠는 피로와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엄마는 아빠의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아들이 병원에 누워 있는데, 지금 나랑 이혼하겠다고?” “내가 이제 늙어서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으니까 싫어진 거야?” “내가 무능하다고? 그럼 넌 제대로 된 아빠였어?” “넌 연서만 예뻐했잖아. 소민이가 못생겨서 싫었던 거지!” 나와 언니는 공중에서 부모님이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가 남동생을 편애하고 나와 언니에게는 무관심했다고 비난했다. 엄마는 아빠가 자신이 늙어서 싫어한다고 되받아쳤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님 두 분은 역시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언니의 자랑이던 예쁜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 언니는 내 주먹에 맞아 욕실 벽을 뚫고 밖으로 날아가면서 도망치려 했지만, 나는 언니를 놓치지 않았다. 나는 계속 뒤쫓아가고, 언니는 계속 소리쳤다. “귀신이다!” 언니는 비명을 질렀지만, 자신이 이미 나와 같은 존재, 즉 귀신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언니는 계단을 따라 1층 거실로 도망쳤다. “아빠! 엄마! 살려주세요!” 그녀는 본능적으로 아빠에게 달려갔지만, 그대로 아빠의 몸을 통과해 버렸다. 언니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멈칫하더니, 다시 돌아서서 엄마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치고 손을 뻗어도, 부모님은 여전히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며 설전만 벌이고 있을 뿐 언니를 알아채지 못했다. “부연서! 넌 이미 죽었어!!” 내가 악에 받쳐 외친 말은 언니의 가슴을 망치처럼 내려쳤다. 사실 언니는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다만, 거의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언니의 거짓말 때문에 죽게 됐고, 덕분에 나는 몇 달 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이렇게 쉽게 죽을 리 없어! 나는 너무나 뛰어난 사람이야!” 언니는 미친 듯이 위층으로 달려가 자기 몸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갑자기 언니는 무언가 생각난 듯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으며 나에게 애원했다. “소민아, 언니가 잘못했어. 정말로 잘못했어.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줘.” “다음 달이면 전국 발레 대회가 있어. 만약 결승에 진출하면 국립예술종합학교 공연예술대학 무용원에 특별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어.” “내 재능과 미모로 세상을 놀라게 할 거야. 이렇게 어린 나이에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금 죽을 순 없어.” “내가 죽으면 아빠 엄마
하지만 이제 엄마가 드디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했다. 비록 그것이 동생을 위해서 나온 말일지라도. ...2025년 4월 13일, 폭우, 내가 죽은 지 103일째 집에서는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못할 바에야, 언니 부연서가 골수 이식을 위해 적합성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엄마가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만약 적합 판정을 받으면 부연서가 골수를 기증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부연서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경악하며 대답했다. “저더러 골수를 기증하라고요? 그건 제 발레리나의 꿈을 짓밟는 거잖아요! 제 인생을 망치라는 말이에요!” 아빠는 언니를 아끼며 말했다. “대회를 마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보자.” “연서 너도 누나잖아! 동생을 위해 이 정도 희생도 못 해?” “연서는 곧 무용 대회에 나갈 거야. 그건 아이의 꿈이야!” “아들 목숨보다 연서의 꿈이 더 중요해?” ...엄마와 아빠의 다툼은 점점 격렬해졌다. 나는 부연서의 뒤에서 떠올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연서는 욕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곧은 머릿결과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언니는 우리 부모님에게서 완벽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겨우 두 살 차이였지만, 부연서는 이미 풍만한 몸매를 자랑했고, 블로그에 수많은 구애자가 줄지어 있었다. 가만히 부연서를 바라보던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부연서는 부모님의 외모를 물려받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으니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언니를 처음 본 것은 내가 여덟 살 때였다. 부연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 마. 공주님이라고 불러야 해!” 그때 언니는 부모님과 함께 외할머니가 사는 농장으로 휴가를 왔다. 예쁜 머리에 하늘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하얀 토끼 귀가 달린 양산을 쓰고 있었다. 언니는 마치 마을 상점에 전시된 예쁜 인형 같았고, 아니,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헤어질 때, 부연서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밖으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드디어 나를 찾아낸 걸까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몇 달 동안 이곳을 맴돌며 나는 지쳐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직 내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서일까? 혹은 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해 천국도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관심은 내 발밑에 있는 내 시체가 아니라 강아지 하니가 입에 문 카드에 쏠려 있었다. 엄마는 하니의 입에서 카드를 빼앗아 들고는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야 무서워졌나 보네. 이렇게 편지를 써서 사과하려고?” “알고 있어, 네가 근처에 숨어 있는 거. 그만 숨지 말고 빨리 나와!” 나는 숨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들 눈앞에 서 있었다. 엄마는 카드를 열었다. 카드 안에는 아기자기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그리고 내 이름, ‘소민’이 적혀 있었다. [엄마, 꼭 다음 페이지를 넘겨주세요.]카드의 뒷면에는 은색 목걸이가 붙어 있었고, 하트 모양의 펜던트가 조명에 반짝였다. 그날, 내가 쫓겨난 날 밤에 이 카드를 몰래 엄마에게 두고 가려고 했었다. 곧 명절이 지나면 엄마의 생일이었고, 그때쯤이면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까. 내가 항상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엄마의 생일을 챙긴 적은 한 번도 없어서 그 목걸이 값은 내가 침대 시트 천 장을 빨아 모은 돈으로 샀다. 오랜 시간 찬물로 빨래를 한 덕분에 내 손가락은 동상으로 얼었고, 피부는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내 선물을 보는 엄마가 내 마음을 알지 못했다.“나를 달래려는 거야? 좋아, 성공했어. 하지만 네가 동생에게 골수를 기증해야만 착한 딸이 될 수 있어.” 살아 있었다면, 이런 말은 내가 꿈에서도 바랐던 말이었다. 엄마의 착한 딸이 되는 것.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이미 죽었고, 나를 찾지 못할 테니까....
엄마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금세 도착했고, 명건 아저씨와 아빠를 모두 연행했다. 이번 폭행 사건으로 인해 삼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다. 처음에는 분노에 차 있었던 엄마도 상황 설명을 듣고 나서는 한발 물러서며 선처를 택했다. 조서를 작성하던 경찰은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경찰은 엄마에게 물었다. “따님인 부소민 양이 실종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석 달이요! 새해 첫날 집에서 돈을 훔쳐 달아났어요. 내가 몇 마디 꾸짖었다고 삐쳐서 나가서는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죠.” 엄마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들이켜며 성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따님과 연락을 시도해 본 적은 있습니까?” “그건... 잘못한 애가 먼저 와서 싹싹 빌어야지 우리가 왜 먼저 연락해야 합니까?” 엄마는 형형한 기세로 눈알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병원에 있는 아들은 여전히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딸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생각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애는 살인자예요. 당장 체포해 주세요!” “골수 이식을 고의로 미루고 동생을 죽게 만들려는 거잖아요!” ...나는 테이블 위에 앉아 발을 흔들며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얼마나 악랄한지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를 낳을 때부터 난산으로 고생했으니 나는 불길한 아이였고, 내가 젖을 먹을 때는 엄마의 가슴을 깨물어서 상처를 냈으니 잔인한 아이였고, 내 외모는 엄마처럼 예쁘지 않으니 추한 아이라는 결론이었다. 엄마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개돼지 같았다. 자기가 낳았지만 어리석고, 못생기고, 탐욕스러운 존재...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천장을 향해 누웠다. 천장의 알루미늄 패널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갸름한 얼굴형, 파란 눈, 금발 머리... 마치 페르시안 고양이 친칠라를 떠올리게 했다. “응, 확실히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네.” 나는 혼잣말을 하며
“정말이야?! 이 배은망덕한 계집애가 장례식까지 와서 남자랑 어울려? 진짜 정상이 아니라니까!” 엄마는 언니의 말을 듣자마자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가 왜 이렇게 늘 분노로 가득 차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난 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엄마가 겪은 고통은 아빠를 사랑했기에 아빠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기로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엄마는 항상 그 고통을 내 탓으로 돌렸다.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항상 이랬다.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기면 탓할 사람이 필요했고, 확실한 증거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모든 나쁜 일의 원인은 다 나였다. 이때, 아빠가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늘 침묵을 지키던 아빠가 말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혹시 소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아빠의 낮고 떨리는 목소리에 엄마와 언니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아빠,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우리에게 먼저 연락이 왔겠죠. 그런데 딴 사람을 찾아갔다는 건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부연서가 단호히 말했다. “아마도 아빠가 자기를 쫓아낸 것에 아직도 앙심에 품고 있을 거예요.” 언니의 말이 끝나자 아빠는 묵묵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을 빨아들인 뒤, 아빠는 담배를 눈 덮인 땅 위에 던지고는 발끝으로 거칠게 눌러 껐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SUV로 돌아가 문을 세게 닫았다. 아빠의 행동은 몹시 불쾌하다는 뜻이었다. ...SUV는 곧 레이지 모텔 앞에 멈췄다. 부연서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내가 분명히 여기 있을 거라 확신하며, 내가 붙잡혀 나오면서 당황해 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듯했다. ‘니엘대학교? 그런 명문 대학이 어떻게 길거리에서 몸을 함부로 굴리는 저런 애를 받아들일 수 있겠어.’언니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비웃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 시골 모텔은 늘 마약 중독자나 거리의 여성들이 숨어 지내는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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