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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 진심

얼음 속 진심

By:  들개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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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지 삼 개월이 지났을 무렵, 남동생이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가족들은 그제야 나를 떠올렸다. 언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정한 투로 메시지를 보냈다. “동생이 매우 아파.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에게 골수이식 좀 해줘. 그러면 엄마, 아빠도 네가 훔친 돈 문제는 더 이상 꺼내지 않을 거야.” 아버지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지만, 나는 끝내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차가운 욕설을 뱉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날개라도 달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쫓았더니 연락 한번 없구나.” 어머니는 계속되는 통증에 괴로워서 우는 남동생을 달래면서, 속으로는 씁쓸하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를 삼키지 못했다. “네 누나 같은 배은망덕한 자식이 널 위해 숨어 있다가 나타나지 않을 테니, 엄마가 땅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반드시 찾아낼 거야.” 하지만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다. 내가 집에서 쫓겨나던 그날 밤, 얼마나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는지. 그 긴 밤을, 맨발로 마당에 서서 현관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는지. 문은 결국 열리지 않았고, 나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가족들은 정말로 땅을 파헤쳐 나를 찾아냈다. 두꺼운 얼음 밑에 갇혀 차갑게 굳어버린 내 시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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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2025년 4월 3일, 맑음, 내가 죽은 지 93일째

나는 공중에 떠서 병실 안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 우리 부모님은 초췌한 얼굴로 무거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드님의 백혈병은 중기 단계에서 발견되어 다행히 아직 골수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병원에는 일치하는 골수가 없습니다.”

“보통 가족 간의 골수 이식이 적합도도 높고 안전합니다. 최대한 빨리 적합한 골수를 찾아야 합니다.”

“수술 가능한 일정은 가장 이르면 다음 달 8일입니다. 수술비 선납금 2,500만 원도 서둘러 납부해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병원을 나오자마자 말다툼을 시작했다.

2,500만 원은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집에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돈을 남동생의 치료비로 사용하게 된다면, 집안의 장녀인 부연서가 다니는 발레 개인 수업은 당장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부연서는 학교 응원단의 주장으로, 팀원 전원이 이번 훈련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만약 언니가 빠지게 된다면, 팀원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런 이유로 부연서가 자신의 훈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역시나, 부연서는 고개를 살짝 돌려 깊은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빠의 팔에 애교를 부리며 매달렸다.

“아빠, 나도 동생을 돕고 싶지만, 다음 달에 있을 전국 발레 대회에서 제가 입상하면 국립예술종합학교 공연예술대학 무용원에 특별 입학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국립예술종합학교 공연예술대학 무용원,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아빠의 눈이 번쩍 뜨였다.

큰딸의 명문 학교 입학은 아빠에게는 무한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역시나 아빠는 무언가 말하려다 멈추고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 부정식은 큰딸을 더 편애했다. 부연서는 출중한 외모에 고운 말씨, 학교에서는 치어리더 주장에 성적까지 우수한 ‘모범 학생’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더 편애했던 엄마는 누나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남동생은 엄마가 낳은 유일한 아들이자 직접 손수 키운 보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동생은 잘생겼고 성격도 밝았으며 눈치도 빨랐다.

이 순간, 부연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막내는 우리 집안의 보물이고, 온 가족의 총애를 받는 존재니까...’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눈빛이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우리 집안의 골칫덩이 소민이도 있잖아.”

아빠가 이내 불같이 소리쳤다.

“연서야, 당장 소민이 불러와. 막내에게 골수만 기증해주면 전에 그 돈 훔친 일은 눈 감아 주겠다고 전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말끝마다 섞인 비아냥이 공기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영혼인 상태로 가족 곁을 떠돈 지 석 달이 지나서야, 드디어 가족들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언니 부연서는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나와의 채팅창을 열고 메시지를 보냈다.

[죽지 않았으면 빨리 집으로 돌아와. 저녁 6시에 도착해서 저녁 준비해 놓고 기다려!]

가족들은 마치 합의라도 한 듯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희생할 사람은 자기들이 아닌 바로 나였으니까.

공중에 떠 있는 나는 그런 가족들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세 달 전, 엄마가 남동생의 농구공을 사주려고 가방에 넣어둔 6만 원이 사라졌다.

온 집안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부연서는 내가 몰래 엄마 방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말했다.

아빠는 집안이 엉망이 된 상황에 짜증이 나 있었고, 진위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나를 문밖으로 내던졌다.

그날 밤, 달은 보이지 않았고,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밤은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보다 더 얼어붙어 있었다.

문밖으로 내던져진 나는 눈 속에 감춰진 돌에 머리를 부딪혀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두텁게 내려 쌓인 눈은 모든 흔적을 덮어버렸다.

누구도 내 행방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따뜻한 난로 앞에서 자기들끼리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눈 아래에서 생각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언니는... 언제쯤 나를 찾으러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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