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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처음 보는 웃음

Author: Rionh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6 18:20:42

#7화. 처음 보는 웃음

한시준은 이번에도 예약 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직원에게 재킷을 맡긴 뒤 곧장 VIP룸으로 들어가려던 그는 복도 중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그걸 왜 거기다 넣어."

서아였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준비실이었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안쪽의 모습이 틈새로 보였다.

서아는 드레스를 입기 전이었다.

검은색 가운을 걸친 채 화장대 앞에 서 있었고, 옆에는 젊은 남자 직원이 얼음통을 들고 있었다.

"제가 분명 냉동실이라고 들었는데요."

"술 보관하는 냉동실에 케이크를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

"차가우면 다 똑같은 줄 알았죠."

남자 직원이 억울한 얼굴로 얼음통 안을 보여줬다.

그 안에는 한쪽이 찌그러진 작은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겉면에 묻은 크림이 얼어붙어 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서아는 그것을 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참으려는 듯 고개까지 돌렸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진짜 미쳤나 봐."

웃음이 터졌다.

소리 내어 웃는 얼굴이었다.

눈꼬리가 휘고, 입술이 크게 벌어졌다. 한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시준은 복도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에덴에서 서아는 매번 웃었다.

그가 방에 들어가면 웃었고, 술잔을 건네면서도 웃었다.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웃었고, 다른 여자가 자신의 옆에 앉았을 때도 완벽한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 웃음은 달랐다.

보기 좋게 계산된 각도도 없었고, 상대의 기분을 맞추려는 목적도 없었다.

서아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지 않고 웃고 있었다.

눈가에 힘이 풀리고, 몸까지 조금씩 흔들렸다.

남자 직원이 케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먹을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걸 누가 먹어."

"누나 생일이라 샀는데."

"내 생일 다음 달이야."

서아가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남자 직원의 팔을 가볍게 밀기까지 했다.

"날짜도 모르면서 뭘 샀어."

"미리 축하한 걸로 하죠."

"그럼 네가 다 먹어."

두 사람의 대화는 가벼웠다.

서아는 상대의 잔을 채우지도 않았고, 듣기 좋은 말을 골라 하지도 않았다.

그저 편하게 말하고 웃었다.

남자 직원도 그녀의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준은 자신도 모르게 준비실 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순간 뒤에서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사장님?"

준비실 안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서아가 문 쪽을 돌아봤다.

시준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표정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웃음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눈꼬리가 내려오고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그가 매주 보던 미소였다.

"일찍 오셨네요."

서아가 말했다.

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서아 옆에 서 있는 남자 직원에게 향했다.

남자는 시준의 눈빛을 받자 얼음통을 든 손에 힘을 줬다.

실장이 분위기를 살피며 말했다.

"VIP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시준은 준비실 안을 한 번 더 본 뒤 돌아섰다.

서아가 뒤에서 말했다.

"금방 들어갈게요."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VIP룸 문이 열린 것은 십 분 뒤였다.

서아는 짙은 붉은색 드레스로 갈아입고 있었다. 머리도 길게 풀었고, 입술에는 선명한 색을 더했다.

준비실에 있던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서아는 평소처럼 시준의 옆에 앉아 술병을 들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시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아가 잔에 술을 따르다 고개를 들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까 뭐가 그렇게 웃겼어."

서아의 손이 잠깐 멈췄다.

"보셨어요?"

"봤어."

"직원이 실수해서요."

"그게 그렇게 재밌어?"

서아는 술병을 내려놓았다.

"상황이 좀 웃겼어요."

"나한테도 얘기해봐."

"별거 아니에요."

"뭔데."

서아는 얼어붙은 케이크 이야기를 짧게 설명했다.

방금 전 준비실에서 웃으며 했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시준은 조금도 재미있지 않았다.

서아 역시 웃지 않았다.

단지 손님이 궁금해하니 상황을 정리해 알려주는 얼굴이었다.

"끝이야?"

"네."

"아까는 그렇게 웃더니."

서아가 그를 바라봤다.

"그때는 웃겼으니까요."

"지금은 안 웃기고?"

"한 번 웃고 끝났어요."

시준의 손가락이 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들으면 같은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서아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조차 자신을 위한 웃음이 아니었다. 방 안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표정이었다.

시준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지난주 스스로 정한 대로 오늘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웃으라고 하지 않고, 가까이 오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을 때 서아가 어떤 얼굴을 하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작하기도 전에 답을 봤다.

서아는 자신이 없는 곳에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까 그 남자 누구야."

"직원이요."

"이름."

서아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김민우요."

"오래 알았어?"

"일 시작할 때부터 봤으니까 삼 년쯤 됐죠."

"친해?"

"같이 일하니까요."

대답은 짧고 분명했다.

시준은 질문을 멈췄다.

더 물으면 서아가 이유를 알아챌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신도 왜 그 남자의 이름과 관계가 궁금한지 설명할 수 없었다.

서아가 그의 빈 잔을 확인했다.

"오늘은 술 안 드세요?"

"네가 마셔."

서아는 자신의 잔에 술을 조금 따랐다.

한 모금 마신 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서아가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유지했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지자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오늘 기분 안 좋으세요?"

"아니."

"그런데 왜 말이 없어요?"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려고."

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뜻이에요?"

"네가 알아서 뭘 하는지 보려고."

서아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

그다음 술병을 들고 잔을 채웠다.

"저는 손님이 원하는 걸 해드리는 사람이에요."

"내가 원하는 게 없으면."

"편하게 쉬게 해드리죠."

"말도 안 하고?"

"원하시면요."

시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결국 이것도 접객이었다.

말을 원하면 대화하고, 침묵을 원하면 함께 조용히 있어주는 것.

서아는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에게 맞는 태도를 고를 수 있었다.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 역시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잔이 비면 조용히 채웠고, 얼음이 녹으면 새것으로 바꿨다. 손길은 부드럽고 정확했다.

시준은 눈을 감은 채 조금 전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눈꼬리가 휘어지던 얼굴.

고개를 뒤로 젖힐 만큼 터져 나오던 웃음.

자신의 앞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한시준 부사장님."

서아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시준이 눈을 떴다.

서아가 손을 뻗어 그의 셔츠 소매에 붙은 작은 먼지를 떼어내고 있었다.

"주무세요?"

"아니."

"피곤해 보여서요."

그녀가 손을 거두려는 순간 시준이 손목을 잡았다.

서아는 놀라지 않았다.

시준이 다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준비실에서 봤던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왜요?"

서아가 물었다.

시준은 손목을 놓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이상하시네요."

"뭐가."

"말도 안 하고, 계속 얼굴만 보고."

서아는 작게 웃었다.

평소와 똑같은 미소였다.

그 순간 시준은 그것이 싫어졌다.

전에는 가짜라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어디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진짜 웃음을 본 뒤에는 달랐다.

이 미소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게 됐다.

"그렇게 웃지 마."

서아의 미소가 잠시 멈췄다.

"어떻게요?"

"지금처럼."

"제가 뭘 했는데요?"

"하기 싫은데 웃는 거."

서아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미소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시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어떤 표정을 해야 해요?"

시준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표정이 아니었다.

준비실에서 본 웃음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터져 나온 것.

돈도, 명령도, 계산도 필요 없었던 반응.

"아까처럼."

결국 입 밖으로 나왔다.

서아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민우랑 있을 때처럼 웃으라고요?"

남자의 이름이 서아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자 시준의 표정이 굳었다.

"그놈이랑 있을 때만 그렇게 웃어?"

"그건 왜 궁금하세요?"

"대답해."

서아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술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부사장님이 웃기면 웃겠죠."

가벼운 말투였다.

시준의 눈이 낮아졌다.

"내가 웃겨야 한다?"

"진짜로 웃는 건 시켜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서아는 잔을 내려놓았다.

"지난번에 제가 말했죠."

"뭘."

"계산하지 않은 걸 보여달라고."

그녀의 입가에 다시 접객용 미소가 걸렸다.

"웃음도 똑같아요."

서아는 몸을 조금 가까이 기울였다.

붉은 입술이 시준의 귓가에 닿을 듯 멈췄다.

"돈 내고 받을 수 있는 건 지금 이거예요."

부드러운 숨결과 함께 그녀가 웃었다.

완벽하게 예쁘고, 완벽하게 가짜인 미소였다.

"다른 걸 원하시면 부사장님이 직접 만들어내셔야죠."

서아가 몸을 물렸다.

시준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그 미소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예약 시간이 끝나자 서아는 다음 방으로 향했다.

문이 닫힌 뒤에도 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화나게 만드는 것도 실패했다.

다른 여자를 보여주는 것도 실패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방법조차 실패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전과 달랐다.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

진서아가 돈을 받고 보여주는 미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실수 하나에도 참지 못하고 터뜨리던 웃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잊은 얼굴.

시준은 테이블 위의 잔을 천천히 돌렸다.

다음에는 진서아를 흔들 생각이 없었다.

웃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웃음의 이유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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