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수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지만 시종은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범수란은 자신의 외모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비록 그녀가 굉장한 미인이라는 것에 동의하기는 하나, 매번 이렇게 아랫사람들을 떠볼 때면 짜증이 나기도 했다.매번 범수란이 자신 없는 척, 걱정되는 척하면 그들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그녀의 미모를 칭송해야 나중에 괴롭힘을 안 당할 수 있었다.범수란의 성격을 잘 아는 연향은 다급히 말했다.“아가씨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으신 분입니다! 섭정왕이 아무리 미색을 멀리하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분도 사내이지 않습니까. 무릇 사내라면 아가씨의 미모를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지요!”“그게 정말이니?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고?”범수란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얼굴로 말했다.연향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정색해서 진지한 어투로 답했다.“당연히 사실이죠! 소인은 장담합니다! 소인이 비록 아둔하기는 하나, 주워들은 얘기가 있습니다.”“무슨 말이지?”범수란이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연향이 말했다.“천하의 영웅은 미인계에 약하다는 말이 있지요! 섭정왕 전하는 전장을 평정한 영웅이니 아가씨와는 천생연분이 아닙니까!”“연향, 역시 넌 내가 가장 아끼는 시종답구나!”범수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연향에게 포상을 내려주었다.현란한 입놀림으로 오늘도 포상을 받아낸 연향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가장 아끼는 시종이란 범수란의 말은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만약에 그녀가 눈치가 조금만 없고 말재주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저택 어딘가에 파묻혔을 것이다.예전에 범수란 신변의 시종들은 한달에 한번 바뀌었다. 나중에 연향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그녀가 얼마나 마음 졸이며 살아왔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연향이 또 한번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고 속으로 안도하고 있을 때, 범수란이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또 물었다.“내 듣기로 이번에 섭정왕과 함께 온 사람 중에 그 성녀도 있다던데, 연향 네
마차 안 범수란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흑기군에게 말했다.말을 마친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녀는 이 정도 말하면 병사들이 순순히 섭정왕의 행적을 고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관아 입구를 지키던 흑기군은 주저없이 검을 빼들며 싸늘히 말했다.“병사들은 명을 따르라!”“예!”그러자 관아에 남은 모든 흑기군이 검을 빼들었다.살기등등한 분위기가 고조되자 마차 밖 호위가 다급히 말했다.“아가씨, 빨리 돌아갑시다. 저들은 정말 피를 볼 생각이에요!”범수란은 한 번도 이런 상황을 겪은 적 없고 이런 푸대접을 받은 적 없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살짝 분노한 목소리로 마부에게 명령했다.“관저로 돌아가자!”소식을 듣고 정성들여 단장하고 왔건만 섭정왕의 얼굴도 못 보고 그의 병사들에게 무례한 대접을 받았으니 참으로 자존심이 상했다.돌아가는 길, 범수란은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종은 조용히 옆에서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관아에도 없고 이미 성설성을 떠났으면 전하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이냐? 설마 창주성으로 가셨을까?”“아가씨, 그러면 오히려 저희에게 잘된 일 아닌가요?”창주 지부는 창주성 내에 위치해 있었다. 범수란은 할머니 댁에 놀러 온 상황이었다.그래서 할머니로부터 섭정왕이 창주로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이른 아침에 성설성으로 달려온 것이다.범수란은 한숨을 쉬고는 마차 안에 비치된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연향아, 섭정왕 전하도 내 얼굴을 좋아하시겠지?”연향은 다급히 말했다.“물론이죠, 아가씨. 아가씨의 미모는 이 나라에서도 따라올 자가 없어요. 창주에서 아가씨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섭정왕께서도 아가씨를 보시면 분명 다른 사내들처럼 아가씨에게 푹 빠질 거예요!”연향의 말에는 아부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일부분은 사실이었다.범수란은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래서 창주에서도 적지 않은 청년들이 그녀에게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천천히 치유되고 있었다.물론 그것은 온사가 공간 안에서 석방한 영기 때문이라는 것을 백성들은 알지 못했다.다만 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어머니, 몸이 뻣뻣하던 것이 많이 해소가 되었어요.”“나도 그래. 이번에 관아에서 보급한 목탄을 태우니 방이 정말 따뜻하구나.”“아버지, 손에 동상을 입었었는데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나도 기침이 멎고 목안도 그다지 쓰리지 않구나!”“오늘 받아온 탕약이 쓸모가 있었나 보네요. 역시 성녀 전하와 섭정왕 전하께서 오시니 그 탐관오리들도 괜히 헛수작을 부리지 못한 것이겠죠.”“섭정왕 전하와 성녀 전하는 참으로 좋은 분들이야!”“맞아요!”“그럼 내일도 가서 죽과 탕약을 마시고 올까요? 탕약이 좀 쓰긴 하지만 몸이 따뜻해지니 더 마시고 싶어요!”“걱정 말거라, 아가. 섭정왕 전하께서는 내일 또 가도 좋다고 하셨지 않니!”“너무 잘됐네요!”이날 밤, 성설성 백성들은 드디어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잠들지 않아도 되었다.그리고 이날 밤 근래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창주의 다른 곳은 아직도 폭설로 고통받는 백성들이 많았다.그들은 잠시나마 성설성의 상황을 안정시켰지만 다른 지역의 재난은 지속 중이었다.온사와 북진연은 성설성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그들은 출발했다.출발하기 전, 북진연은 병사와 물자를 남기고 떠났다.지금 남겨둔 보급 물자로 적어도 한달은 충분히 살 수 있는 양이었다.그 한달 사이에 그들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후속 지원을 기다려도 되고 백성들이 스스로 극복하고 일어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온사와 북진연은 대오를 이끌고 성설성을 떠났다.그들이 너무 일찍 떠났기에 날이 밝자마자 관아로 달려온 사람들은 허탕을 치고 말았다.관아 밖의 한 마차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섭정왕 전하가 어디로 가셨는지도 모른단 말이냐?”관아에 남은 흑
“왜 섭정왕이 직접 군을 이끌고 재난 구제에 나섰는지 궁금했는데 저런 귀인을 호송하기 위함이었군!”성설성의 한 높은 누각 위, 화려한 의복을 차려 입은 노부인이 난간 앞에 서서 관아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뒤에서 심복이 오늘 알아낸 정보를 보고하고 있었다.“노부인, 현령 나으리는 완전히 폐인이 되었고 관아도 섭정왕과 흑기군이 장악하였으니 얼마 못가 그들은 성 전체를 조사하려 할 것입니다. 저희가 계속 이곳에 남아 있다가는 섭정왕이 뭔가 낌새를 눈치챌 것 같습니다.”노부인의 등 뒤에는 보고를 하는 호위를 제외하고도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중년 사내가 있었다.그는 앞으로 다가가 노부인 범씨를 부축하며 말했다.“섭정왕 일행이 너무 갑자기 와서 아마 중서령께서도 아무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단은 그 물건들을 숨겨두고 창주성으로 철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재난 구제가 끝나고 섭정왕이 돌아간 후에 다음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범씨도 같은 생각이었다.“철수야 당연한 일이지만 옥중에 갇힌 그 녀석이 함부로 입을 못 열게 해야 해. 그 아이에게 신호를 보내거라. 이미 그들 진영에 잠입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아이가 움직이는 게 훨씬 수월할 게야.”중년 사내가 주저하며 말했다.“범 현령은 공자의 친부인데 공자께서 정녕 그러려고 할까요?”범씨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서자인 셋째는 원래 무능하고 어리석은 놈이었다. 술에 취해 잠깐 정신이 나가서 그 아이가 태어난 게지. 내가 없었다면 아마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눈밭에 얼어 죽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셋째에게 사무치는 원한만 품고 있으니 아비라고 해서 주저하지 않을 게야.”중년 사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예,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범씨 노부인은 나가려는 사내를 다시 불러세웠다.“잠깐.”사내가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예, 노부인. 따로 지시할 것이 더 있으십니까?”범씨는 사내에게 손짓하여 다가오게 한 후, 그의 귓가에 대고 뭐라 속삭였
부인은 아들이 저주받거나 미쳤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온사가 그 말을 했을 때 감격의 눈길을 보냈다.“그럼 의원님, 제가 뭘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아들을 잘 달랠 수 있을까요?”소년은 양팔이 잡힌 상태에서도 계속 발광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에게까지 공격 성향을 보이는 걸 보니 상태가 매우 심각해 보였다.“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나요?”온사는 다른 의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소년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반달 정도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잠깐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밤에는 자주 악몽을 꾸다 깨어나요.”여인이 울며 말했다.온사는 소년을 잠시 관찰하다가 등 뒤에 있는 다른 백성들에게 시선을 돌렸다.역시나 줄을 서고 있던 백성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그것은 호기심이 아닌 두려움의 눈빛이었다.이 백성들 사이에도 소년과 같은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한둘은 아닌 것 같았다.일부 사람들은 두려워서 이곳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나왔다고 해도 감히 말을 못 꺼냈을 수도 있었다.온사는 주변을 둘러보고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했다.그녀는 부드럽게 여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아이를 달래는 일은 제게 맡기세요. 일단은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준비를 해가지고 올게요.”자리를 뜨기 전, 온사는 흑기군을 시켜 모자에게 풍한 탕약을 주어 먹이게 했다.그러고는 그녀 자신은 뒤돌아서 북진연에게 다가갔다.북진연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실 그 여인이 아이를 데리고 온사에게 다가갔을 때부터 그는 그녀가 혹여 위험에라도 처할까 봐, 면밀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만약 그들 모자가 온사에게 공격을 시도했다면 바로 다가가서 처단했을 것이다.상황을 파악한 그는 온사가 뭘 하려는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래서 온사가 앞으로 다가오자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입을 열었다.“네가 하고 싶은 거라면 뭐든 하거라. 내가 여기 있으니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나선 흑기군들이 창을 땅에 꽂았다.위엄 있는 모습에 혼란스럽던 사람들이 점차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그들은 자발적으로 줄을 서고 비록 뒤로 갔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앞사람을 밀치거나 하지 않고 뜨끈뜨끈한 죽과 물자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렸다.뜨끈뜨끈한 죽과 물자가 끊이지 않고 보급되자 그제야 백성들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탕약 막사도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었다.엄동설한이 지속되자 수많은 백성들이 동상과 풍한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래서 탕약은 끓여도 끓여도 부족할 정도였다. 의원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흑기군 열 명이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데도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그런데 이때, 줄을 서서 탕약을 기다리던 사람들 뒤에서 한 여인이 아들을 끌고 강제로 온사의 앞으로 달려왔다. 흑기군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자 그녀는 절망한 목소리로 통곡하며 애원했다.“의원님! 제발 제 아들 좀 봐주십시오! 아이가 많이 아파요! 제발 제 아들 좀 살려주십시오!”여인의 등 뒤에는 열 살 남짓한 소년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미친 사람처럼 포효하고 있었다.“다 꺼져! 꺼지란 말이야! 모든 게 가짜야! 가짜라고!”“식량은 없고 목탄도 없어! 약도 없고 재난 구제? 그딴 게 어디 있다고!”“모든 게 거짓인데 눈만 진짜야! 눈이다!”“정말 아름다운 설경이네요! 어머니, 이거 보세요.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였어요!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하하하!”소년의 모습을 본 온사와 의원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재해가 가져온 생존 압력이 극한에 당하면 사람은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초조해하고 공포에 빠지거나 환각증세를 보이기도 했다.성설성 관료들의 무책임한 방관은 백성들의 고통을 극에 달하게 하였고 백성들은 절망에 휩싸였다.소년은 딱 봐도 환각을 보고 있었다.“저 사람들 다 꺼지라고 해요, 어머니!”온사는 모자의 앞을 가로막은 흑기군에게 손을 저었다.여인은 아들을 이끌고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