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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직 꿈에서 깨지 않았다

Author: 핸드드립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2 11:00:08

제2화 아직 꿈에서 깨지 않았다

100전 100패.

'이제부터 진짜 다 꼬신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을 뜨자 이상한 곳에 서 있었다. 새하얀 공간이었다.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없었다. 그냥 하얬다.

“……뭐야?”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어디야?”

“꿈입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도 이상하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분명 보고 있는데,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남자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시우 씨.”

“네?”

“반갑습니다.”

“누구세요?”

“중요하지 않습니다.”

“꿈인데요?”

“네.”

“그런데 왜 이렇게 진짜 같죠?”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다가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시우 씨, 정말 다 꼬시고 싶으세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요?”

“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니요.”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니, 꼬시겠다는데 뭘 그렇게까지 신중하게 생각해요?”

“좋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디선가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그럼 계약하시죠.”

“계약이요?”

“예.”

“뭔 계약인데요?”

“소원 계약입니다.”

“아.” 나는 곧바로 서류를 받아 들었다. 남자가 잠시 나를 바라봤다.

“……안 읽어 보십니까?”

“꿈인데요, 뭐.”

“그래도 읽어 보시는 게 좋을 텐데요.”

“괜찮습니다.”

나는 서류를 넘겨 가장 아래쪽에 있는 빈칸을 찾았다.

[계약자 : 강시우]

“여기 사인하면 돼요?”

“네.”

“사인하면 진짜 다 꼬실 수 있어요?”

“정확히는 100명입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100명이나요?”

“예.”

“남녀 상관없이요?”

남자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건 계약 내용을 확인하셔야죠.”

“아, 꿈인데 뭘.”

나는 그대로 사인을 했다. 강시우. 사인이 끝나는 순간 계약서가 붉게 빛났다.

“어?”

내 손에서 계약서가 사라졌다.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진짜요?”

“축하드립니다.”

“와.”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그동안 나를 거절했던 여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흔아홉 명. 그리고 조금 전의 서미현까지. 정확히 백 명. 나는 씩 웃었다.

“이제부터 내가 다 꼬신다.”

“예.”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껏 꼬시십시오.”

“감사합니다!”

“단.”

“네?”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아까까지 친절하게 웃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즐거워 보였다.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그 순간 허공에 커다란 글자가 떠올랐다.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능력 : 유혹】

【사용 가능 횟수 : 100회】

【대상별 유효기간 : 7일】

“오.” 나는 감탄했다. “진짜 능력 같네.”

꿈인데도 꽤 디테일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런데 다음 문장이 나타났다.

【사용 가능 대상 : 남성】

…….

나는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다.

【사용 가능 대상 : 남성】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기요.”

“네.”

“이거 오타죠?”

“아닙니다.”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고 쓰려다가 잘못…….”

“정확합니다.”

“왜요?”

“계약 내용에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조금 전 내가 사인했던 계약서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글자가 아주 작게 적혀 있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계약서를 얼굴 가까이 가져가 한참을 읽었다.

제1조. 계약자는 계약 기간 동안 지정된 조건에 따라 총 100명의 남성을 유혹할 수 있다.

“…….” 나는 다시 읽었다. 총 100명의 남성을 유혹할 수 있다. “…….” 다시. 남성을.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기요.”

“네.”

“이거 계약서 글씨가 너무 작은데요?”

“읽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건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잖아요!”

“꿈에서는 가능합니다.”

“무슨 개소리예요!”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는 계약서를 다시 확인하다 아래쪽을 발견했다.

제2조. 계약자는 계약 후 어떠한 경우에도 계약을 철회할 수 없다.

“잠깐.”

제3조. 계약자는 계약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잠깐!”

제4조. 계약자는 계약서를 읽지 않은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부담한다.

“잠깐!!!”

나는 계약서를 집어 던졌다.

“취소해요!”

“불가능합니다.”

“왜요?”

“계약하셨으니까요.”

“꿈인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계약이 유효해요?”

“그건 계약서에…….”

“읽지 말라고!”

나는 머리를 감쌌다. 남자 100명이라니.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으…….”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니, 꿈이었다. 이건 분명 꿈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으아아아악!!!”

그렇게 나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허억!”

침대 위였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내 방. 천장. 책상.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양말. 현실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

정말 끔찍한 꿈이었다. 남자 100명을 꼬신다니.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이런 개꿈이 다 있어.”

그때였다. 띠링.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무심코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 메시지였다.

【계약이 정상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

아주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용 가능 횟수 : 100회】

【사용 가능 대상 : 남성】

【대상별 능력 유효기간 : 일주일】

“…….”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이불을 다시 덮었다.

“다시 잘래.”

꿈에서 깨면 분명 진짜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 이후로도 문자가 몇 통 더 와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하나씩 확인했다.

【능력 「유혹」의 발동 조건을 안내합니다.】

【1. 대상을 정확하게 인식합니다.】

【2. 대상의 얼굴을 확인합니다.】

【3. 대상에게 시선을 고정합니다.】

【4. 마음속으로 ‘유혹한다’를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조건 충족 시 능력이 즉시 발동됩니다.】

나는 한참 동안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 다시 읽었다.

【능력 「유혹」】

“…….” 다시 읽었다. 【대상 : 남성】 “…….”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아니야.'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꿈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어젯밤 이상한 남자가 꿈에 나왔다. 계약서를 보여줬다. 나는 내용을 읽지도 않고 사인했다. 그리고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 잠에서 깨어났더니 휴대폰에 계약 완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말이 되는가? 안 된다. 전혀.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였다.

'아직 잠이 안 깬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추리였다. '그래.' 분명 그랬다. 나는 지금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에서 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2단계 꿈이었다. 아마 조금만 더 자면 진짜 현실에서 눈을 뜰 것이다.

“좋아.”

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불도 예쁘게 덮었다. 베개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

잠이 안 왔다. 나는 한쪽 눈을 떴다. '왜 안 자지?' 다시 눈을 감았다.

……

잠이 안 왔다. 이번에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자는 척하면 잠이 올 수도 있어.' 나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잠든 사람처럼 누워 숨도 천천히 쉬었다. 스으으읍. 후우우우. 스으으읍. 후우우우.

……

5분이 지났다. 나는 눈을 떴다.

“…….”

안 잔다. 꿈에서 깨기 위해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온다. 이건 시스템 오류였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혹시 꿈에서 시간을 확인하면 깨어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다. 정확히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튼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8시 17분.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오전 8시 18분.

“오.” 시간이 갔다. 나는 잠시 감탄했다. “꿈치고는 디테일한데?”

하지만 아직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았다.

“으악!” 차가웠다. 엄청나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깰 만도 한데.' 볼을 꼬집었다.

“아야!” 다시 꼬집었다. “아!” 이번에는 조금 세게 꼬집었다. “아아악!”

나는 볼을 감싸 쥐고 거울을 노려봤다.

“……이상하다.”

꿈에서는 아프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지금 내 볼은 분명히 아팠다. 아주 현실적으로. 나는 잠시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요즘 꿈 기술이 많이 발전했나?'

아니다. 말이 안 됐다. 나는 머리를 감쌌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띠링.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메시지를 확인했다.

【능력 사용 가능 횟수 : 100회】

“…….” 나는 화면을 껐다. '스팸이야.'

띠링. 다시 메시지가 왔다.

【대상별 능력 유효기간 : 7일】

“…….” 나는 화면을 껐다. '악성 스팸이네.'

띠링.

【동일 대상에게 능력 재사용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

“그래.”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정교한 악성 스팸이야.”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꿈이 아니라면 누군가 내 휴대폰을 해킹했다는 뜻이었다. 아마 현우겠지. 어젯밤 내가 100번째로 차인 이야기를 듣고 놀리려고. 나는 즉시 김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갔다. 뚜르르르.

“여보세요?”

“김현우.”

“왜 아침부터.”

“너 지금 어디야?”

“집이지.”

“진짜?”

“……뭐?”

“너 나한테 장난쳤지?”

잠시 침묵.

“뭔 장난?”

“내 휴대폰 해킹해서 이상한 문자 보내고 있잖아.”

“내가 왜?”

“어젯밤에 내가 술 마셨잖아.”

“그래서?”

“그때 내 핸드폰 비밀번호 봤지?”

“안 봤는데?”

“그럼 꿈속에 들어왔어?”

“……뭐?”

“아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현우는 이런 장난을 칠 인간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휴대폰 해킹 같은 걸 할 능력도 없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럼 누가 보낸 거지?' 잠시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생각하면 질 뿐이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실이 아닌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아주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고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양치질을 하던 중 휴대폰이 또 울렸다. 띠링. 나는 칫솔을 문 채 화면을 확인했다.

【능력 사용을 권장합니다.】

“푸웁!” 치약 거품이 거울에 튀었다. 나는 황급히 입을 헹구고 화면을 노려봤다.

“……누가 봐도 나 놀리는 거잖아.”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첫 번째 대상을 선택하십시오.】

나는 화가 났다. “그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장난을 치겠다는 거지? 좋다. 나는 휴대폰을 향해 말했다.

“선택하면 어쩔 건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봐.”

역시였다. 그런 능력이 현실에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현관문을 열었다.

“출근이나 하자.”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회사에 가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퇴근하고, 어쩌면 또 새로운 여자에게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완벽하게 평범한 하루.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옆집에 사는 남자였다.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얼굴은 안다. 나는 무심코 생각했다.

'대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문자 내용이 떠올랐다. 상대를 정확하게 인식한 후, 마음속으로 '유혹한다'라고 선언합니다. 나는 멈칫했다.

“…….”

남자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니지.'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잠시 후 문이 닫혔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옆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 '설마.' 그냥 딱 한 번만 확인해 보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꿈이거나 스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유혹한다.'

띠링.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화면을 확인했다.

【대상 001이 지정되었습니다.】

【능력 「유혹」이 발동되었습니다.】

【남은 유효기간 : 6일 23시간 59분 59초】

“…….”

나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저기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우리…….” 그 남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 얼굴이 아주 조금 붉어졌다. “원래 아는 사이였나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큰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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