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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99전 99패
강시우. 내 이름이다.
나는 꽤 괜찮은 남자다. 준수한 외모, 나쁘지 않은 학벌, 그리고 중견기업에 다니는 안정적인 직장까지. 적어도 객관적인 조건만 놓고 보면 소개팅 시장에서 그렇게까지 처참한 평가를 받을 남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여자에게 아흔아홉 번 차였다.
……진짜다.
처음에는 나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횟수를 세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 고백한 선배,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동기,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 회사 근처 카페의 아르바이트생, 심지어 지나가다가 번호를 물어본 여자까지.
아흔아홉 번. 전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내 첫 번째 고백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같은 반 여자애에게 초콜릿 하나를 받았다. 정확히는 발렌타인데이였고, 반 전체에 돌린 초콜릿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왜 하필 나한테 줬지?'
그녀는 내게 초콜릿을 건네며 말했다.
“시우야, 이거 먹어.”
그날이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날 밤 나는 무려 세 시간 동안 고민했다. 고백을 할까, 말까. 하지만 결국 결론을 내렸다. 남자가 사랑을 깨달았다면 행동해야 하는 법이다.
다음 날, 나는 그녀를 운동장 뒤로 불렀다.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왜?”
그 질문을 받은 순간 나도 잠시 생각했다. 왜지?
“어제 초콜릿 줬잖아.”
“그거 반 애들한테 다 줬는데?”
“알아.”
“그런데?”
“그래서 나도 받았잖아.”
“…….”
그녀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우야, 너 초콜릿 좋아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왜 좋아해?”
“네가 줬으니까.”
그렇게 내 첫 번째 사랑은 정확히 47초 만에 끝났다.
두 번째는 조금 더 빨랐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오빠, 물 좀 따라주실 수 있어요?”
“나 몇 살로 보여?”
“네?”
“아니, 방금 오빠라고 했잖아.”
“……한 살 차이 나잖아요.”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는 나를 오빠라고 부른다.' 심장이 뛰었다. 그날 나는 그녀의 물을 세 번 따라줬고, 화장실에 다녀온 그녀의 의자를 당겨줬고, 심지어 자기가 먹다 남긴 과자도 받아먹었다. 나는 확신했다. 이건 신호였다.
환영회가 끝난 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집 조심히 들어가.”
“오빠도요!”
“그리고, 나 사실 너 좋아해.”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오늘 처음 봤는데요?”
“맞아.”
“그런데요?”
“처음 본 날 좋아하면 안 돼?”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안 되는 건 아닌데요.”
“그럼 됐네. 사귀자.”
그렇게 두 번째, 전패.
문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가 성장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반대 방향으로 성장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번 차이고 나면 신중해진다.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분위기를 살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다섯 번째 고백을 실패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다음에는 더 빨리 고백해야겠다.'
열 번째 고백을 실패했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진심을 빨리 보여주지 못한 게 문제였어.'
스무 번째 고백을 실패했을 때는 아예 확신에 이르렀다. '고백은 타이밍이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내 타이밍은 점점 빨라지기만 했다.
회사 근처 카페. 나는 그곳에서 매일 아메리카노를 샀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예뻤기 때문이다.
첫째 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둘째 날. “오늘도 아메리카노 맞으세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집에 가서 침대 위를 세 바퀴 굴렀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랑이었다.
셋째 날, 나는 결심했다.
“저기요.”
“네?”
“저 기억하세요?”
“매일 오시잖아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매일 온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니, 이건 이미 상당히 높은 단계였다.
“그럼 제 마음도 아실 것 같은데.”
“네?”
“저 좋아해요.”
“커피를요?”
“아니요.” 나는 그녀를 가리켰다. “그쪽이요.”
그녀는 내 얼굴을 잠깐 바라보더니 카운터 위를 가리켰다.
“손님, 주문 도와드릴게요.”
서른일곱 번째, 전패. 그날 이후 나는 그 카페에 가지 못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15분이면 됐지만, 나는 무려 두 정거장을 돌아서 출근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여자에게나 고백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기준도 있었다. 예쁜 여자, 착한 여자, 나에게 웃어 준 여자, 나와 대화를 나눈 여자, 나를 기억하는 여자, 나에게 길을 알려준 여자, 문을 잡아 준 여자, 우산을 같이 쓴 여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준이 조금 넓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늘 진심이었다. 한 번도 장난으로 고백한 적이 없었다. 매번 진심으로 사랑에 빠졌고, 매번 진심으로 고백했고, 매번 진심으로 차였다. 그러니까 억울했다.
나는 내 단점을 알고 있었다. 나는 금사빠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수준의 금사빠. 상대가 조금만 친절해도 호감이 생긴다. 조금만 웃어 줘도 심장이 뛴다. 눈이 마주치면? 그날 밤부터 결혼식장 위치를 검색한다.
물론 나도 안다. 이게 정상은 아니라는 걸.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랑은 갑자기 찾아오는 거니까.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이 찾아올 때마다 고백할 용기가 있는 남자였다.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용기만 넘쳤다.
오늘은 내 인생의 백 번째 도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소개팅. 나는 약속 장소인 카페에 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혹시라도 늦을까 봐 카페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더 일찍 집에서 나왔다. 거울도 다섯 번 봤다. 머리 괜찮고, 옷 괜찮고, 치아에 고춧가루도 없다. 완벽했다.
카페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녀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예쁘다.'
아니,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청순했다. 아름다웠다. 빛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카페 조명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강시우 씨?”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안녕하세요!”
“서미현이에요.”
“아, 네! 미현 씨!”
그녀가 웃으며 자리에 앉는 순간 내 심장이 멈출 뻔했다. '웃는 것도 예쁘다.' 끝났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소개팅 시작 정확히 3분 42초 만이었다.
“어떤 남자 좋아하세요?”
“네?”
“아, 이상형이요.”
“음…… 다정한 사람이요?”
'다정한 남자.' 나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다정합니다.”
“아…… 네.”
“취미는 뭐예요?”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영화.' 나는 머릿속으로 다음 주 개봉작을 검색했다.
“저도 영화 좋아합니다.”
“아, 그러세요?”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부터 좋아하기로 했다. 그녀가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음식은요?”
“파스타요.”
'파스타.' 나는 내일 점심부터 파스타를 먹기로 결심했다.
“저도 좋아합니다.”
“아…….”
“아, 그리고 저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서미현이 나를 바라봤다. 예뻤다. 아름다웠다. 사랑스러웠다. 결심이 섰다.
“미현 씨 같은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예쁘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개팅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
1차로 카페, 2차로 식사, 그리고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 나는 내내 행복했다. 그녀는 중간중간 핸드폰을 확인했고, 대화가 끊길 때마다 물을 마셨으며,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 예뻐 보였으니까.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심호흡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그동안 아흔아홉 번의 실패를 통해 나는 성장했다. 이제는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신중하게,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분위기를 살핀 뒤, 적절한 타이밍에.
“미현 씨.”
“네?”
“저 미현 씨 사랑하는 것 같아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미현 씨의 눈이 커졌다. 나는 확신했다. '놀랐구나.'
“우리 사귈래요?”
이번에는 정적이 조금 더 길었다.
“아…….”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 그게…….”
“부담스러우세요?”
“조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 첫날이니까.
“알겠습니다.”
“네?”
“천천히 만나면서 알아가죠.”
“아니, 그게 아니라…….”
“연락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나는 완벽한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중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처, 없음. 카카오톡, 없음. 인스타그램, 모름.
'어떻게 연락하지?'
그때부터 불안해졌다. 설마, 설마 나를 피하려고.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나는 즉시 소개팅 주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시우 씨?”
“저기요, 저 오늘 연락처 교환을 안 했거든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상대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그게.”
나는 불안해졌다.
“왜요?”
“안 그래도 미현 씨한테 연락이 왔는데…….”
“네!”
“시우 씨가 조금…… 부담스럽다고.”
“제가요?”
“네.”
“왜요?”
“소개팅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사랑한다고 했다고…….”
“아.”
“그리고 사귀자고 했다고.”
“아.”
“연락처도 안 물어봤는데 기다리겠다고 했다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아주 조금, 내가 뭔가 잘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연락처는요?”
“안 주신대요.”
“아.”
“미안해요.”
“아닙니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계산했다. 하나, 둘, 셋…… 아흔아홉. 그리고 오늘, 백 번째.
나는 여자에게 정확히 100번 차였다.
그녀로부터 거절 의사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현우를 불렀다. 김현우, 내 절친이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인간이었다. 물론 위로를 받기 위해서다. 아마도.
“야.”
“왜.”
“오늘 소개팅한다며?”
현우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소주잔만 들었다. 현우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다.
“……설마, 또 차였냐?”
“말 걸지 마라.”
“진짜 차였어?”
나는 말없이 잔을 비웠다. 현우는 한숨을 쉬며 내 앞에 소주를 따라 줬다.
“술이나 마셔. 너도 참…… 에휴. 이번이 몇 번째냐?”
나는 잠시 생각하다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100번째.”
철컥. 현우가 들고 있던 소주병이 멈췄다.
“……뭐?”
“100번째.”
“넌 그걸 또 세고 있냐?”
“세는 게 아니라 기록하는 거야.”
“그게 그거지, 미친놈아.”
“기록은 중요해.”
“뭐가 중요한데?”
“언젠가는 100승 100패가 될 수도 있잖아.”
“지금은?”
“100전 100패.”
“…….”
현우가 나를 한참 바라봤다. 나는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한심함, 동정, 그리고 아주 약간의 걱정. '현우는 지금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보고 있을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내일이 되면 또 사랑에 빠질 남자였다.
우리는 그렇게 술을 진탕 마셨다. 누가 계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현우였을 것이다. 좋은 친구다.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오늘 만난 서미현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를 거절했던 아흔아홉 명의 여자들까지.
갑자기 억울해졌다.
“……씨발.”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술기운에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진짜…….”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다 꼬신다.”
그렇게 여자에게 100번 차인 남자, 강시우의 길고 처절했던 연애 도전기가 끝났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제9화 18,500원나는 그 남자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다시 살펴봤다. 이름은 윤도하. 프로필 사진은 한 장, 그것도 본인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의 카페 창가,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태 메시지는 없었다. 카카오스토리도 없었다. SNS 링크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아무것도 없었다.“……심심하게 사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프로필을 눌렀다. 사진은 여전히 한 장이었다. “그래도 카페는 괜찮네.”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 문득 깨달았다.“잠깐.” 내가 왜 남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형사처럼 분석하고 있지?나는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3초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더 자세히 봤다.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 이름. 상태 메시지.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나는 손을 멈췄다.“어?”노래가 좋았다. 정확히 내 취향이었다.“이 노래도 듣네.”나는 잠시 음악을 들었다. 잔잔했다. 시끄럽지 않고,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었다. '취향이 좀 비슷한가?'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었다.“…….” '어쩌면.'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좀 잘 맞을지도…….'“미쳤나?” 나는 즉시 휴대폰을 뒤집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강시우.” 나는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정신 차려.”윤도하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능력을 썼으니까.
제8화 왜 안오지?시우는 그대로 도망쳤다. 남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참을 달린 뒤에야 멈췄다.“하아… 하아…”나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없다.“안 쫓아오는 건가?”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뒤부터 나를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찾아왔다. 집 앞에도 있었다.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내가 갑자기 붙잡았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런데 안 따라온다.“……이상한데.”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도.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뒤쪽을 확인하면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온갖 각도로 미행을 체크했지만, 정작 나를 미행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없다.”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없어.” 우리 층에 도착했다. “진짜 없다.”나는 현관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철컥,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를 한 번,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다행이다.”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능력에 감사했다.“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도 좀 배우는 게 있겠지.”
제7화 아무나 붙잡았다그렇게 점점 나의 연애 불가 마감 기한이 다가왔다.【남은 시간 : 3시간 42분 18초】“…….”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48시간. 처음에는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나가 보니 생각보다 짧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만 하다가 48시간이 증발했다. 마치 마감 전날 밤샘 과제처럼, 시간은 계획한 순간에는 안 가다가 손 놓는 순간 광속으로 사라졌다.나는 지난 이틀 동안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첫 번째 후보, 잘생긴 남자.“안 돼.” 너무 위험하다. 괜히 능력이 제대로 발동해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 어쩌지?두 번째 후보, 평범한 회사원.“더 안 돼.” 회사에서 계속 마주친다. 옆집 남자로 이미 평생 쓸 고생을 다 썼다.세 번째 후보, 멀리 사는 남자.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교통비가 들잖아.”능력에 걸린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올 수도 있었다.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심지어 해외에 있어도.[대상 002] 한국에 계시죠?[대상 002] 저 지금 공항이에요.“으아아아악!” 나는 후보에서 즉시 삭제했다. 국경까지 넘어올 기세라면 이건 연애가
제6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그 뒤로 나는 현우와 일주일 밤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현우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일주일을 함께 살았다. 세입자도 이렇게 안 산다.처음에는 현우도 하루 이틀 정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이 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오늘도 오는 거지?”“…….”셋째 날.“현우야,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넷째 날.“치킨?”“어제도 먹었는데.”“피자?”“그제 먹었는데.”“한우?”“……몇 시까지 갈까?”배신이 이렇게 쉬웠다. 나는 현우의 식비를 대가로 안전을 확보했다. 사실상 인간 보디가드를 한우로 매수한 셈이었다. 문제는 이 보디가드도 완벽한 방패는 못 됐다는 것이다.띠링.[옆집 남자] 오늘도 친구분이랑 계세요?“…….”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현우
제5화 왜 하필 옆집이냐나는 현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꿈. 정체불명의 남자. 계약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 휴대폰 문자. 옆집 남자. 아침부터 시작된 추격전.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까지.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이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응.”나는 안도했다. 역시 김현우였다. 내 절친.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간.“다행이다.”“너 이거 주작이지?”“…….” 나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솔직히 말해.”“진짜라고.”“카메라 어디 있어?”“없어.”현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 TV, 냉장고 위, 심지어 화장실 쪽까지.“유튜브 찍는 거 아니야?”“내가 무슨 유튜버야.”“요즘은 다 찍잖아.”“내가 남자한테 쫓기는
제4화 현우는 나의 방패다나는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게 위험했다. 아침에 이미 한 번 도망쳤다. 버스도 세 번 놓쳤다. 골목까지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지각까지 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왼쪽, 없음. 오른쪽, 없음. 뒤쪽, ……없음. 다시 왼쪽을 봤다. 혹시 모르니까. 없었다. '좋아.' 일단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시우] 어디쯤이야?잠시 후 답장이 왔다.[현우] 거의 다 왔어.[시우] 몇 정거장?[현우] 두 정거장.나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두 정거장.' 버스로는 얼마 안 걸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시우] 빨리 와.[현우] 왜?[시우] 그냥 기다리고 있어.잠시 후.[현우] 미친 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는 건 상관없었다. 남자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현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