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7화 아무나 붙잡았다
그렇게 점점 나의 연애 불가 마감 기한이 다가왔다.
【남은 시간 : 3시간 42분 18초】
“…….”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
48시간. 처음에는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나가 보니 생각보다 짧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만 하다가 48시간이 증발했다. 마치 마감 전날 밤샘 과제처럼, 시간은 계획한 순간에는 안 가다가 손 놓는 순간 광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지난 이틀 동안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첫 번째 후보, 잘생긴 남자.
“안 돼.” 너무 위험하다. 괜히 능력이 제대로 발동해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 어쩌지?
두 번째 후보, 평범한 회사원.
“더 안 돼.” 회사에서 계속 마주친다. 옆집 남자로 이미 평생 쓸 고생을 다 썼다.
세 번째 후보, 멀리 사는 남자.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교통비가 들잖아.”
능력에 걸린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올 수도 있었다.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심지어 해외에 있어도.
[대상 002] 한국에 계시죠?
[대상 002] 저 지금 공항이에요.
“으아아아악!” 나는 후보에서 즉시 삭제했다. 국경까지 넘어올 기세라면 이건 연애가 아니라 국제 추격전이었다.
그렇게 후보는 계속 탈락했다. 잘생겨서 탈락. 젊어서 탈락. 직장이 있어서 탈락. 차가 있어서 탈락. 심지어 “너무 건강해 보여.” 이런 이유로 탈락한 남자도 있었다. 이쯤 되면 남자를 고르는 게 아니라 신체검사 불합격자를 찾는 수준이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조건이 하나 있었다. 나를 좋아하게 되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남자. 그러니까 남자는 남자인데, 최대한 남자 같지 않은 남자.
“…….” 나는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 출근길, 회사 근처에서 자주 마주치는 할아버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였다.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
잠시 생각했다. 괜찮았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다. 일단 나보다 훨씬 연상이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다닐 가능성도 낮았다. 아마도. '허리가 아프실 수도 있고.'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인생이 나를 여기까지 몰아넣었다.
【남은 시간 : 2시간 17분 43초】
“젠장.”
나는 다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할아버지가 나를 좋아하게 된다.”
상상해 봤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시우야.”
“…….”
“오늘도 보고 싶었단다.”
“…….”
“우리 손 한번 잡아 볼까?”
“으으.” 나는 온몸으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안 돼.”
역시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안 된다. 나는 다시 다른 후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없었다. 지나가는 남자를 볼 때마다 자동으로 심사가 시작됐다.
'저 사람은 젊다.' 탈락.
'저 사람은 나보다 덩치가 크다.' 탈락.
'저 사람은 너무 잘생겼다.' 즉시 탈락.
'저 사람은 나한테 관심을 가지면 진짜 귀찮을 것 같다.' 탈락.
'저 사람은 뛰는 속도가 빠를 것 같다.' 탈락.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남자를 고르는 게 아니라 재난 대피 인원을 선별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소개팅 앱이 아니라 좀비 아포칼립스 생존자 명단을 짜는 것 같았다.
그때 띠링.
【남은 시간 : 1시간 03분 12초】
“벌써?!” 나는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아니.”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침착하자. 분명히 방법이 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려다가 멈췄다. '뭐라고 검색하지?' 나를 좋아해도 부담스럽지 않을 남자. …….
이런 검색어를 입력했다간 계정이 정지될 것 같았다. 검색창을 닫았다.
그러다 문득 창밖으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끼익. 끼이익.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는 할아버지.
나는 창문에 바짝 붙었다.
“…….”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폐지를 줍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저분이라면.”
잠시 후.
“아니야.”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강시우.”
하지만 띠링.
【남은 시간 : 37분 49초】
“아, 씨발.”
나는 다시 창밖을 봤다. 할아버지는 아직 있었다.
“…….”
띠링.
【남은 시간 : 21분 03초】
“…….”
나는 현관문을 바라봤다. 휴대폰을 바라봤다. 다시 창밖을 봤다.
“아니.”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건 아니야.”
하지만 다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보이는데 전부 위험해 보였다. 그나마 저 할아버지가 제일 안전했다. 안전 문제로 어르신을 저격하고 있는 내 모습이 이미 인간으로서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였지만, 지금은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신발을 신었다.
“이건 연애가 아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생존이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띠링.
【남은 시간 : 9분 42초】
나는 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리어카를 끌고 가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응?”
나는 그 앞까지 달려가 숨을 헐떡였다.
“저기요.”
“왜 그러냐?”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봤다.
【남은 시간 : 8분 57초】
“…….”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 아프냐?”
“아니요.”
“근데 왜 그러고 있냐?”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유혹한다.' 이 네 글자를 마음속으로 외우면 된다. 그러면 끝이다. 일주일. 딱 일주일.
“…….”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나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경고】
【대상 지정까지 남은 시간 : 8분 41초】
【시간 초과 시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나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다시 휴대폰을 봤다. 그리고 결국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왜?”
“아닙니다.”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얘가 왜 이래?”
나는 도망치듯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안 돼.”
그래, 차라리 평생 연애를 못 하는 게 낫다. 남자면 몰라도. 아니, 남자도 싫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더 안 된다. 어떤 문턱은 절대 넘으면 안 된다는 걸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쓰러졌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 7분 12초】
“…….”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결심했다.
“그래.”
평생 연애 못 하면 어떠냐. 어차피 지금까지 백 번 차였다. 101번째가 없다고 해서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난 포기한다.”
나는 휴대폰을 멀리 던졌다.
“대상 지정 안 해.”
그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띠링.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설마, 새로운 협박인가?
화면을 확인했다.
【시스템 안내】
【대상 미지정 시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당신은 평생 사랑에 빠질 수 없습니다.】
“…….” 나는 벌떡 일어났다. “잠깐.”
사랑에 빠질 수 없다? 연애를 못 하는 것과 사랑에 빠질 수 없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전자는 상대가 없는 거고, 후자는 심장이 아예 파업하는 거였다.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집어 들고 창밖을 바라봤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남은 시간 : 6분 03초】
“…….”
나는 신발을 다시 신었다. 강시우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침 저 멀리서 꼬마 남자애 한 명이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남자.”
인간으로서의 마지노선이 조용히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는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휴대폰.
【남은 시간 : 3분 17초】
“잠깐!”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나갔다.
“얘야!”
꼬마가 멈춰 섰다.
“네?”
나는 꼬마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정신없이 외쳤다. '유혹한다!'
띠링.
【미성년자는 대상 지정이 불가능합니다.】
“…….” 나는 굳었다. 그나마 이 시스템에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다.
꼬마도 나를 올려다봤다.
“아저씨.”
“왜?”
“왜 잡아요?”
“…….”
나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
“미안하다.”
“뭐가요?”
“너는.” 나는 꼬마의 어깨를 한 번 토닥였다. “그냥.”
“네?”
“재밌게 놀아.”
“……?”
꼬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얘들아!”
“왜?”
“이상한 아저씨가 나 잡았어!”
“야!”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쳤다.
“이상한 의미 아니야!”
이미 늦었다. 꼬마들과 어른들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 향했다. 오늘부로 이 동네에서 나는 요주의 인물로 등재된 것 같았다.
“…….”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 2분 41초】
“아.”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너무 멀고!”
남자는 남자면 된다. 아니, 이제 조건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젊었든, 나이가 많든, 옆집이든, 회사원이든, 이제 상관없었다.
“아무나!”
나는 길을 뛰어다니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정면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깔끔한 셔츠, 회사원처럼 보이는 차림.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다.
나는 잠시 멈췄다. '……잘생겼는데?'
하지만 띠링.
【남은 시간 : 1분 53초】
“젠장!”
나는 다시 달렸다. 남자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저기요?”
나는 그대로 그의 앞에 서서 숨을 헐떡였다.
“잠깐만요.”
“네?”
“죄송한데.”
“……네?”
나는 그의 얼굴을 정확히 바라보고 속으로 외쳤다. '유혹한다.'
띠링.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화면을 확인했다.
【대상 002 지정 완료】
“…….”
됐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살았다.”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기.”
“네.”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근데 왜 저를…….”
나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뭐가요?”
“일주일만.”
“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닙니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쳤다.
“어?”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나는 더욱 빠르게 뛰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띠링.
【대상 002 유효기간 : 7일】
나는 달리면서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숨이 찼다.
“절대로.”
뒤에서 남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안 돌아봐!”
“제 이름이라도……!”
“알 필요 없어!”
띠링.
【대상 002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더 빨리 달렸다. 인생 최고 기록을 오늘 두 번째로 갈아치우는 중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두 번째, 그리고 절대로 원하지 않았던 일주일짜리 연애가 시작됐다.
제9화 18,500원나는 그 남자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다시 살펴봤다. 이름은 윤도하. 프로필 사진은 한 장, 그것도 본인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의 카페 창가,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태 메시지는 없었다. 카카오스토리도 없었다. SNS 링크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아무것도 없었다.“……심심하게 사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프로필을 눌렀다. 사진은 여전히 한 장이었다. “그래도 카페는 괜찮네.”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 문득 깨달았다.“잠깐.” 내가 왜 남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형사처럼 분석하고 있지?나는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3초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더 자세히 봤다.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 이름. 상태 메시지.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나는 손을 멈췄다.“어?”노래가 좋았다. 정확히 내 취향이었다.“이 노래도 듣네.”나는 잠시 음악을 들었다. 잔잔했다. 시끄럽지 않고,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었다. '취향이 좀 비슷한가?'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그대로 굳었다.“…….” '어쩌면.'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좀 잘 맞을지도…….'“미쳤나?” 나는 즉시 휴대폰을 뒤집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강시우.” 나는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정신 차려.”윤도하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능력을 썼으니까.
제8화 왜 안오지?시우는 그대로 도망쳤다. 남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참을 달린 뒤에야 멈췄다.“하아… 하아…”나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없다.“안 쫓아오는 건가?”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첫 번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뒤부터 나를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찾아왔다. 집 앞에도 있었다.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내가 갑자기 붙잡았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런데 안 따라온다.“……이상한데.”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도.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뒤쪽을 확인하면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온갖 각도로 미행을 체크했지만, 정작 나를 미행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없다.”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없어.” 우리 층에 도착했다. “진짜 없다.”나는 현관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철컥,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를 한 번,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다행이다.”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능력에 감사했다.“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도 좀 배우는 게 있겠지.”
제7화 아무나 붙잡았다그렇게 점점 나의 연애 불가 마감 기한이 다가왔다.【남은 시간 : 3시간 42분 18초】“…….”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48시간. 처음에는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나가 보니 생각보다 짧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만 하다가 48시간이 증발했다. 마치 마감 전날 밤샘 과제처럼, 시간은 계획한 순간에는 안 가다가 손 놓는 순간 광속으로 사라졌다.나는 지난 이틀 동안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첫 번째 후보, 잘생긴 남자.“안 돼.” 너무 위험하다. 괜히 능력이 제대로 발동해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 어쩌지?두 번째 후보, 평범한 회사원.“더 안 돼.” 회사에서 계속 마주친다. 옆집 남자로 이미 평생 쓸 고생을 다 썼다.세 번째 후보, 멀리 사는 남자.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교통비가 들잖아.”능력에 걸린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올 수도 있었다.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심지어 해외에 있어도.[대상 002] 한국에 계시죠?[대상 002] 저 지금 공항이에요.“으아아아악!” 나는 후보에서 즉시 삭제했다. 국경까지 넘어올 기세라면 이건 연애가
제6화 선택하지 않겠습니다그 뒤로 나는 현우와 일주일 밤을 함께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현우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일주일을 함께 살았다. 세입자도 이렇게 안 산다.처음에는 현우도 하루 이틀 정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이 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오늘도 오는 거지?”“…….”셋째 날.“현우야,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넷째 날.“치킨?”“어제도 먹었는데.”“피자?”“그제 먹었는데.”“한우?”“……몇 시까지 갈까?”배신이 이렇게 쉬웠다. 나는 현우의 식비를 대가로 안전을 확보했다. 사실상 인간 보디가드를 한우로 매수한 셈이었다. 문제는 이 보디가드도 완벽한 방패는 못 됐다는 것이다.띠링.[옆집 남자] 오늘도 친구분이랑 계세요?“…….”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현우
제5화 왜 하필 옆집이냐나는 현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꿈. 정체불명의 남자. 계약서. 남자 100명을 꼬실 수 있는 능력. 휴대폰 문자. 옆집 남자. 아침부터 시작된 추격전. 그리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까지.설명을 모두 끝냈을 때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이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응.”나는 안도했다. 역시 김현우였다. 내 절친.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간.“다행이다.”“너 이거 주작이지?”“…….” 나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솔직히 말해.”“진짜라고.”“카메라 어디 있어?”“없어.”현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천장, TV, 냉장고 위, 심지어 화장실 쪽까지.“유튜브 찍는 거 아니야?”“내가 무슨 유튜버야.”“요즘은 다 찍잖아.”“내가 남자한테 쫓기는
제4화 현우는 나의 방패다나는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게 위험했다. 아침에 이미 한 번 도망쳤다. 버스도 세 번 놓쳤다. 골목까지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지각까지 했다.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왼쪽, 없음. 오른쪽, 없음. 뒤쪽, ……없음. 다시 왼쪽을 봤다. 혹시 모르니까. 없었다. '좋아.' 일단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시우] 어디쯤이야?잠시 후 답장이 왔다.[현우] 거의 다 왔어.[시우] 몇 정거장?[현우] 두 정거장.나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두 정거장.' 버스로는 얼마 안 걸린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시우] 빨리 와.[현우] 왜?[시우] 그냥 기다리고 있어.잠시 후.[현우] 미친 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는 건 상관없었다. 남자한테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그때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현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현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