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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Penulis: moominkiller

1화 유월

Penulis: moominkiller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02 09:50:04

차일 아래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가 명주의 무릎을 스쳤다.

명주는 정청 가운데 앉아 있었다.

아침에 그 자리에 방석이 놓였고 그 뒤로 아무도 방석을 옮기지 않았다.

마당에는 차일이 셋 섰다.

굵은 기둥에 줄을 매어 넓은 무명천을 하늘처럼 팽팽히 당겨 둔 것이라, 유월 볕이 거기서 한 번 걸러져 마당 절반이 옅은 그늘에 잠겼다.

그 그늘마다 상이 들어차고 상 위에 그릇이 놓이고 그릇마다 뚜껑이 덮였다.

뚜껑 틈으로 김이 새고, 기름에 지진 것들이 노랗게 포개지고, 꿀에 재운 과실이 볕에 윤을 냈다.

부엌 쪽에서 기름 냄새가 밀려왔다가 바람이 바뀌면 장독들 쪽의 짠 냄새로 바뀌었다.

무슨 연회인지 분명 누군가가 말해 주었으나, 말해 준 사람의 얼굴만 옅게 남고 정작 말은 기억나지 않았다.

치마가 연둣빛이었다.

아침에 시녀 둘이 들고 와 펼쳐 보인 것 중 육정이 고른 색.

소매 끝에 은실로 넝쿨을 놓았는데 그 실이 빛을 받으면 물처럼 흘렀다.

머리는 낮게 틀어 백옥 비녀 하나를 질렀고, 귀 뒤로 내려온 잔머리 한 올이 목의 푸른 기 위에 얹혀 있었다.

치맛자락이 움직일 때마다 백단에 매화 향이 얕게 번졌다.

가슴 아래를 두른 치마허리에서 은실 넝쿨이 가는 줄기를 치고 올라, 숨이 들 때마다 잎사귀 한 장이 옅게 부풀었다가 숨이 날 때 가만히 가라앉았다.

상 사이를 지나던 여자들이 정청 앞에서 걸음이 늦어졌다가, 일행이 소매를 당기고 나서야 두어 번 더 돌아보며 지나갔다.

명주는 그것이 제 외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곱다는 말을 들었으니, 시집온 후에도 온 집안 식구들이 자신의 외모를 아름답다 하였으니, 나리도 내게 아름답다 하였으니.

"부인이십니까."

낯선 여자가 상 너머에서 몸을 기울였다.

명주가 그쪽을 향해 반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이미 웃고 있었다.

"소문이 과하다 했더니 오히려 모자랐습니다.

그늘에서 기른 옥이 이런 빛일까요.

희다는 말만 듣고 왔는데 희기만 한 것이 아니라 푸른 기가 돌고, 눈매가 관자놀이까지 이리 길게 흐르는 줄은 아무도 말해 주지 않던데요."

여자가 제 말에 취해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부채 위로 눈이 명주의 얼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명주는 웃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웃으면 웃었다고 할 것 같고 안 웃으면 안 웃었다고 할 것 같았다.

목이 마르다고 느끼고 옆을 돌아보자 가까이 서 있던 삼월이 바로 잔을 들어 왔다.

잔을 입술에 대어 주고 두 모금 넘기자 삼월이 다시 잔을 입술에서 떼었다.

입가에 흐른 것을 단이가 수건으로 눌렀다.

명주는 잔이 어디에 놓이는지 보지 않았다.

볕이 차일 무명 위에서 느리게 끓었다.

기름 냄새와 단내가 섞인 더운 바람이 정청 안까지 늘어지게 드나들었고, 상 사이 어디선가 나른한 웃음소리가 일었다가 잦아들었다.

낮 동안 종 둘이 와서 차일 줄을 두 번 고쳐 맸다.

두 번째에는 상째 반 자를 옮겼다.

해가 마당을 건너가는 동안 명주의 자리에는 그늘이 그대로 있었다.

누가 시킨 일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손이 등 뒤로 왔다.

육정이었다. 언제 왔는지 명주는 몰랐다.

그의 손이 등 아래쪽, 옷끈 매듭이 있는 자리에 놓였다.

손바닥이 닿은 데서 옷이 얕게 눌리고, 그 아래로 숨이 한 번 들어갔다 나왔다.

손의 온기가 비단 두 겹을 지나 살에 닿기까지, 잠깐이 걸렸다.

"먼 길에 고단하셨겠습니다."

육정이 여자 쪽을 보고 말했다.

"안사람이 사람 많은 데를 오래 못 견딥니다."

"아이고, 그럼 제가 실례를."

"실례랄 것 있습니까.

저기 새 상을 봐 두었으니 그리로 가시지요."

여자가 웃으며 물러갔다.

명주가 고개를 들었다.

육정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썹 사이가 조금 좁아져 있었다.

십 년 동안 그가 무언가를 살필 때 그랬다.

"덥소?"

"아니오."

"목이 마르오?"

"아니오."

"그럼 뭐가 하고 싶소."

명주가 잠시 생각했다.

"들어가고 싶습니다."

육정이 손을 뗐다.

그리고 종을 불렀다.

명주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안채로 걸었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이야기가 끊겼다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이어졌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섬돌 앞에서 신을 벗었다.

삼월이 받아 들었다.

치맛단이 흙에 닿을 뻔했으나 단이가 먼저 걷어 올렸다.

해가 기울고 손님이 다 빠진 뒤에도 명주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서 상 걷는 소리가 났다.

그릇이 포개지고, 차일 줄이 풀리고, 천이 접히는 소리.

소리가 하나씩 줄다가 마지막에는 비질 소리만 남았다.

비질 소리는 오래 갔다.

등이 켜졌다. 행랑 쪽에 둘, 중문에 하나.

중문에서 소리가 났다.

내다보니 육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반 걸음 떨어져, 아이 하나가 그의 그림자를 밟듯 붙어 왔다.

여자아이였다. 열대여섯쯤.

적삼 어깨가 젖어 있었고 신도 젖어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신에서 찌걱, 찌걱, 소리가 났다.

물 밟은 신이 마른 흙을 디딜 때 나는 소리.

그 소리가 하나씩 마당을 건너와 마루 앞에서 멎었다.

명주가 마루로 나갔다.

아이가 마당 가운데서 멈췄다.

중문의 등이 아이의 왼쪽에 있어서 얼굴 반이 어두웠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흙이 한 줄 묻어 있었다.

왼쪽 뺨, 광대 아래로.

손등으로 닦은 자국.

육정은 명주를 보지 않았다.

등 뒤의 아이도 보지 않았다.

중문과 안채 사이 어디쯤에 시선을 둔 채로 입을 뗐다.

"오늘부터."

"이 아이가 이 집에 있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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