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분이어멈이 소반을 내려놓지 않고 문지방에 선 채로 먼저 말했다."오늘 것이 없는 것은 소인이 늦게 나와서가 아닙니다.원래 이 시각에 나옵니다.스무 해를 하루도 안 어겼습니다.소인은 묻지 않고 나르기만 했습니다.그러니까 소인은.""어멈.""…예, 부인.""내가 가져갔어요."어멈의 손에서 소반이 반 치 기울었다가 도로 섰는데, 도로 세우는 데 걸린 시간이 기우는 데 걸린 시간보다 길었다.마당 저쪽에서 총관이 그것을 보고 있다가 한경과 눈이 마주치자 허리를 굽혔고, 굽힌 채로 물러가면서 뒷걸음을 쳤다.이 집에서 스물세 해 동안 안주인에게 뒷걸음으로 물러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서야 한경이 실을 풀었다.흰 실은 두 번 감겨 있었고 매듭이 오른쪽으로 뉘어 있었으니, 매듭을 그렇게 짓는 손은 왼손잡이거나 왼손으로 잡아 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실을 풀어 소매에 넣고 종이는 찢지 않고 폈다.안에 든 것은 손톱만 한 흰 덩이 다섯이었는데, 마르고 가벼웠으며 빛에 대자 가장자리가 얕게 비쳤다.하나를 집어 손끝으로 문질러 보니 미끄러웠다.기름처럼 겉으로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살 쪽으로 스며들면서 미끄러웠고, 문지른 자리에서 살결이 잠깐 반들거리다 도로 가라앉았다.한경이 그 손가락을 코에 대지 않았다.대신 창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가 우물가에서 손을 씻었는데, 비누를 쓰지 않고 찬물에만 오래 씻었으며 손톱 밑까지 두 번 문질렀다.들어와 남은 넷을 종이에 도로 싸면서 열여섯 해를 이 집 안주인이라 불린 사람의 살결이 왜 그렇게 고왔는지를 셈해 보았다.셈이 금방 끝났다.* * *안채에는 낮에도 발이 드리워 있었는데, 그것이 걷힌 지 오래였다.대부인은 아랫목에 누워 굳은 팔을 몸 옆에 붙인 채 천장을 보고 있다가 며느리가 들어오는 기척에 고개를 반만 돌렸다.돌아간 쪽은 굳지 않은 쪽이었다.한경이 이불을 걷지 않고 머리맡에 앉아, 방 안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물었다.경대 위에 백자 합이 놓여 있
닭이 두 번째로 울고 나서야 총관이 다시 입을 열었는데, 이번에는 문장이 짧았다."…별당에서 받습니다."한경이 기름종이를 소매에 넣었다.넣는 동안 총관의 눈이 그 소매를 따라갔다가 저도 모르게 따라간 것을 알고 바닥으로 떨어졌다."작은아씨가 주세요?""…예.""언제부터.""…작년 가을부텁니다.그 전에는 안채에서 받았습니다."부엌 쪽에서 첫 물 긷는 소리가 났다.이 집이 깨는 소리였고, 총관이 그 소리에 고개를 반쯤 돌렸다가 도로 바로 했다."안에 뭐 든지는 알아요?""…모릅니다.""스무 해를 놓으면서.""소인은 놓으라 하시면 놓고, 놓지 말라 하시면 안 놓습니다.이 댁 살림을 그리 배웠습니다.배운 대로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것이 이 집인데, 그러니까 소인이 여쭤 본 적이 없다는 것이지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것이—""이레 뒤에도 놓으세요."총관이 고개를 들었다.스물세 해 동안 이 집에서 그런 명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 *별당은 해가 들어야 문을 여는 집이었다.한경이 중문을 지나 별당 마당에 들어섰을 때 방 안에서 골패 부딪는 소리가 났다.밤새 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댓돌에 신이 넷 놓여 있었고 그중 하나는 코가 젖어 있었다.문을 열자 등잔이 아직 켜져 있었다.켜 놓은 채로 아침이 든 방은 어디를 보아도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고, 술 냄새와 기름 냄새와 사람 냄새가 한 겹씩 앉아 있었다.여자 셋이 한꺼번에 일어섰다.육설만 앉은 채로 패를 뒤집었다."…언니가 여긴 웬일이세요.""물어볼 게 있어서.""지금요?""응."연옥이 패를 모아 소매에 넣고 일어섰고, 나머지 둘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나가면서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았는데, 인사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 *한경이 소매에서 기름종이를 꺼내 상 위에 놓았다.육설의 손이 패 위에서 멎었다.멎은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가 패를 반쯤 세웠다가 도로 눕혔다."이거 어디서
이레째 되는 날 새벽에 한경은 뒤채 담 그늘에 서 있었다.아직 파랗지도 않은 하늘 아래에서 담이 검게만 보였고, 담을 따라 심은 회양목이 무릎께까지 와서 치맛단이 자꾸 걸렸다.소하가 옆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다리가 저린지 자세를 바꿨다."부인. 저 솔직히 아까부터 궁금했는데요, 이게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거냐면 어멈이 이레에 한 번이라고 했으니까 오늘이 이레째인 건 맞는데, 근데 이레라는 게 어멈이 세신 이레잖아요.어멈이 잘못 세셨으면 어떡해요.아니 어멈이 잘못 세실 분은 아닌데 그래도 사람이 스무 해를 세다 보면 한 번쯤은—""입 다물고 다리만 주물러."소하가 입을 다물고 다리를 주물렀다.주무르면서도 어깨가 한 번씩 들썩였는데, 추워서 그런 것인지 아까 하던 말이 아직 남아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뒤채 방에 불이 한 번 켜졌다가 꺼졌다.켜진 것이 잠깐이었고, 꺼지고 나서도 창호지 안쪽의 그림자가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서란은 일어나 있었다.일어나 있으면서 문을 열지 않았고, 열지 않는 채로 밖을 향해 앉은 사람의 그림자 각도였다.소하가 그것을 보고 무어라 하려는 것을 한경이 손을 들어 막았다.* * *사람이 온 것은 하늘이 잿빛으로 한 겹 밝아지고 나서였다.등을 들지 않았고 걸음에 소리가 없었으며, 담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담에서 반 자쯤 떨어져 걸었다.담 밑은 밤새 이슬이 앉아 발자국이 남는다.그것을 아는 사람의 걸음이었다.뒤채 문 앞에 이르자 그 사람이 허리를 굽혔다.굽히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굽힌 김에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댓돌 오른쪽 귀퉁이에 놓았다.기름종이였고 흰 실로 두 번 감겨 있었다.놓고 나서 그가 손끝으로 댓돌 귀퉁이를 한 번 쓸었다.흙이 묻었을까 보아 쓴 손이 아니라, 놓은 것이 반듯한지 보느라 쓴 손이었다.스무 해를 같은 자리에 놓은 손은 그렇게 움직인다.* * *돌아서는 데서 그가 걸음을 멈췄다.담 그늘에서 한경이 나와 마당 가운데에 서 있었다.새벽빛이 아직 얕아 얼굴
이튿날 사시에 육가 대청에 문중 어른이 일곱 모였다.작은댁 육겸이 소집했고, 명분은 어공에서 빠진 집이 종가 노릇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큰댁 어른이 상석에 앉았고 나머지가 좌우로 앉았으며, 육정이 아랫자리에 방석 하나를 놓고 앉았다.한경은 대청에 들지 않고, 곁방 문을 반 뼘 열어 놓고 그 안에 앉았다."조카."큰댁 어른이 부채를 무릎에 놓은 채로 먼저 물었다."어공이 빠진 것이 사실인가.""사실입니다.""그러면 종가 몫도 다시 헤아려야 하지 않겠는가.""헤아리셔야지요."육정이 그 말을 하고 나서 무릎 옆의 보퉁이를 풀었다.종이가 나왔다. 한 장이 아니었다.* * *"…무엇인가, 그것은.""세찬 장부입니다."육겸의 어깨가 한 번 움직였고, 앉은 자세가 반 뼘 뒤로 갔다."세찬을 왜 여기서.""헤아리자 하셨으니 헤아리는 것입니다, 숙부님."육정이 종이를 한 장씩 폈고, 펴서 상 위에 옆으로 늘어놓았다.스무 장이 넘었다.늘어놓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기묘년부터입니다.해마다 섣달에 종가에서 문중으로 나가는 세찬이고, 큰댁에 두 짐, 작은댁에 한 짐, 나머지 댁에 반 짐씩이 예입니다.""그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예.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육정이 세 번째 장을 손끝으로 짚었는데, 짚은 자리에 붉은 표가 하나 있었다."기묘년에 작은댁이 한 짐 반을 가져가셨습니다.그해에는 흉년이라 종가가 반 짐을 더 얹었고, 얹은 것이 문서에 적혀 있으니 이것은 아무 흠이 아닙니다.그런데 이듬해에도 한 짐 반이 나갔습니다.그해는 흉년이 아니었고요."육겸이 찻잔에 손을 댔다가 놓자 잔이 소반에서 반 치 밀렸다."…그 이듬해에도 한 짐 반.그다음 해에도 한 짐 반. 스무 해입니다.""조카.""숙부님.""…""제가 지금 숙부님을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나무랄 일이면 진작 아뢰었을 것이고, 진작 아뢰지 않은 것은 종가가 얹어 드린 것을 종가가 세는 것이 예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한경이 곁
그날 밤 서하당에 육정이 왔고, 문 앞에서 옷자락이 문설주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넉 달 전 여름밤에 처음 들었던 것과 같은 소리였는데, 그때는 문지방 안쪽에 한 발만 들여놓고 섰던 사람이 오늘은 두 걸음을 들어와 섰다.관복을 벗고 속적삼 위에 얇은 것만 걸쳤는데, 머리를 풀었고 씻고 온 사람의 냄새가 났다.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부인.""앉으세요.""…""거기 서 계시면 내가 올려다봐야 하잖아요."육정이 앉았다. 앉는 데 오래 걸렸다.소반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고, 잔이 둘 놓였는데 저녁에 우린 것이라 김이 없었다.둘 다 손대지 않은 잔이었다.* * *"…낮에.""예.""…내가 알고 있었소."한경이 그를 봤는데, 등불이 낮아서 눈 밑 그늘이 짙었다.보고 나서 잔 하나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식었어요."육정이 무릎 위에서 두 손을 겹치고 나서, 겹친 손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숙부님은 문중 어른이고, 문중 어른이 이 집에 드시면 아랫것을 부리시는 것이 예로부터 있어 온 일이며, 있어 온 일을 두고 조카가 무어라 하면 그것이 문중에 가고 문중에 가면 어머니께 가는 까닭에, 하여 나는 이 일을 알고도—""나리.""…""찻잔이요."육정의 입이 다물리고, 다문 자리에서 턱이 한 번 움직였다.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데, 잔이 소반에 닿는 소리가 두 번 났다.방에 촛불이 하나였는데, 심지가 타면서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그칠 때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무서웠소."세 글자였다."…열넷짜리 아이가 밤에 물을 긷는 소리를 내가 들었소.서재에서 들었고, 듣고 나서 창을 닫았소.닫으면 안 들리니까.""…""그러고 잤소, 부인.나는 그러고 잤소."육정이 거기서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낮에 광대의 흉을 문지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손이 무릎에 그대로 있었다.문지를 데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한경이 소반 너머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위로 폈다."이리 와 보세요."육정이 움직이
낮에 육가 사랑에는 문중 문서가 펼쳐져 있었다.작은댁 어른 육겸이 아랫목에 앉았고 육정이 그 맞은편이었다.오십 줄에 살이 두툼하고 목이 짧은 사내였는데, 자색 옷이 아니라 갈색이었고 그 갈색이 값나갔으며 손가락에 낀 것이 셋이었다.한경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안주인이 사랑에 드는 법은 없었다.종이 뒤에서 무어라 아뢰려다 말았다."조카며느리."육겸이 먼저 웃었다.화를 내지 않았다.화를 내려면 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얼굴에 없었다."어른께 여쭐 것이 있어서요.""여쭈시게. 내 조카가 요즘 부인 말은 잘 듣는다더구먼."육정이 왼쪽 광대의 흉을 엄지로 문질렀다.* * *"저희 안채에 버들이라고 열넷짜리가 있습니다."방이 조용해졌다. 육정이 고개를 들었는데, 든 얼굴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가, 반 박자 뒤에 아는 얼굴이 되었다.한경이 그것을 봤다.'…알고 있었네.'"버들이라.""어른께서 이 집에 드실 때마다 그 아이를 부르신다고요.""부르지."육겸이 찻잔을 들었는데, 드는 손에 낀 반지가 살에 파묻혀 있었다."내가 이 집 어른일세.아랫것 하나 부르는 데 조카며느리한테 아뢰어야 하는가.""부르셔서 뭐 하시는데요.""조카며느리.""묻는 겁니다.""허."육겸이 웃으면서 육정 쪽으로 눈을 돌렸다.조카를 보는 눈이 아니라, 개를 데려온 사람을 보고 있었다."자네 처가 오늘 좀 이상하구먼."육정이 무릎 위에서 두 주먹을 쥐었고, 쥔 것을 숙부가 보지 못하게 소매로 덮었다."숙부님.""말해 보게.""…"거기서 말이 나오지 않았고, 한경은 남편을 보지 않았다.보면 지금 이 사람이 무너지는 것을 봐야 하고, 그것은 나중에 봐도 되는 일이었다.* * *한경이 반 걸음 들어가자 소반 모서리가 치맛단에 닿았다."어른.""…""손 좀 보여 주시겠어요."육겸의 웃음이 반쯤 남은 채로 얼굴에 걸렸다."무어라?""손요. 지금 찻잔 드신 그 손.""조카며느리가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