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제기랄, 가만히 있지 못하겠느냐!”“가만히 있으면…… 제 손으로 했다고 하실 것이 아닙니까!”해린의 외침이 열녀문 아래에 울렸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이미 나온 말은 거둘 수 없었다.“지금 어른들께서 보고 계시옵니다. 저는 손을 내밀지 않았사옵니다. 남편께서 붙잡으셨고, 저는 거절하였사옵니다!”수염이 희끗한 문중 어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도윤아, 그만 놓아라.”도윤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어르신께서도 저 여자의 고집을 보셨지 않습니까.”“보았네. 자네가 상처 난 손을 억지로 펴는 것도 보았고.”그 말에 도윤의 손이 잠시 멈췄다.“어르신, 이는 집안의 법도를 세우는 일이옵니다.”“법도라 하더라도 남의 손을 억지로 찍게 하면 훗날 그 문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정씨 부인이 날카롭게 끼어들었다.“그 말씀은 이 아이가 어른들을 능멸해도 내버려 두자는 것이옵니까?”“능멸과 강제 지장은 다른 문제요.”어른은 천천히 말했다.“내가 이 자리에 앉은 것은 며느리가 스스로 맹세하는 것을 보려 했기 때문이지, 다친 손을 붙들고 먹에 밀어 넣는 일을 증언하려 한 것이 아니오.”해린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싸워 주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른은 문서의 효력과 가문의 체면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가 도윤의 손을 멈추게 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도윤이 마침내 손목을 놓았다.갑자기 힘이 풀리자 해린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연화가 달려와 받쳤지만 다친 팔로는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함께 방석 위에 주저앉았다. 해린은 연화의 팔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숨을 고르지 못했다. 손바닥에서는 피가 흘렀고, 손목에는 손가락 자국이 선명했다.“마님, 아…… 마님, 손을 보여 주시옵소서.”연화가 소매에서 깨끗한 천을 꺼냈다. 아이의 손이 떨려 매듭이 잘 묶이지 않았다. 해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연화의 손등을 가볍게 눌렀다.“천천히 해도 된다.”
그가 엄지손가락을 펴려 하자 해린은 손을 꽉 오므렸다. 어제 사기 조각에 베인 자리가 벌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연화가 앞으로 뛰어오려 했지만 하인이 길을 막았다.“대감마님! 그 손은 의원께서 움직이지 말라 하셨사옵니다!”“종이 감히 주인의 일에 끼어드느냐!”도윤이 소리쳤다. 해린은 손목이 꺾이는 통증에 어깨를 떨었다. 숨을 들이켜려 했으나 가슴이 막힌 듯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아……! 손이, 손이 찢어집니다. 놓으시옵소서……!”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스스로 놀랐다. 제발이라는 말을 한 것이 몇 번이나 되었던가. 어제도 그랬고, 그보다 전에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마다 도윤은 부탁을 들은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더는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처럼 굴었다.해린은 입술을 다물었다. 고통을 참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저 사람에게 더는 자신의 두려움을 구경거리로 내주고 싶지 않았다.“이 손으로 찍으라 하시는 것이옵니까?”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이미 다친 손으로…… 어른들 앞에서 억지로 찍으시겠다는 것이옵니까?”도윤의 손에 잠깐 힘이 멎었다.“네가 순순히 내밀면 될 일이다.”“그럼 놓으시옵소서. 제가 스스로 내밀지 보시면 되지 않사옵니까.”도윤은 손을 놓지 않았다.해린은 그 침묵을 문중 어른들이 모두 듣고 있기를 바랐다. 아무도 대신 거절해 주지 않더라도, 적어도 누군가는 자신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도윤은 하인에게 해린의 어깨를 붙잡으라고 했다. 두 손이 양쪽에서 내려오자 해린은 몸을 비틀었고, 무릎이 방석 끝을 벗어나 차가운 돌에 부딪쳤다. 멍든 자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 그녀가 중심을 잃는 사이 도윤은 붕대의 끝을 잡아당겼다.“그 천을 풀면 안 되옵니다!”연화가 울먹이며 외쳤다.“의원께서 상처를 막아 놓으셨사옵니다. 대감마님, 제발……!”“입을 다물어라!”도윤이 고함쳤지만 연화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인이 그녀를 붙잡으려 하자 아이는 다친 팔을 품에 안고 몸
“네가 글을 몰라서 읽어 준 줄 아느냐?”도윤의 말에 해린은 고개를 들었다.“제 이름이 적힌 종이이니 제 눈으로 읽겠습니다.”수염이 희끗한 문중 어른이 손을 내저었다.“보여 주게. 읽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서리는 정씨 부인의 눈치를 보다가 문서를 건넸다. 해린은 다치지 않은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읽어 준 조항 외에도, 본인이 뜻을 충분히 알고 스스로 수락하였으므로 이후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녀는 그 대목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스스로 수락하였다…….”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해린은 종이를 들어 보였다.“이곳에 이렇게 적혀 있사옵니다. 그런데 제가 거절하면 연화를 내보내고 친정에 불효한 딸이라는 서찰을 보내시겠다고 하셨사옵니다. 그것이 어찌 스스로 받아들인 일이 되옵니까?”정씨 부인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감히 시어미의 말을 협박이라 하는 것이냐?”“그 말씀이 협박이 아니라면, 제가 거절해도 연화를 내보내지 않으시고 아버지께 거짓 서찰을 보내지 않으실 것이옵니까?”정씨 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집사를 돌아보았다.“저 계집을 앞으로 데려오너라.”연화가 움찔했다. 해린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연화는 아무 잘못이 없사옵니다.”“네가 저 계집을 끼고 도니 분수를 잊은 것이 아니냐. 오늘 네가 끝내 맹세하지 않으면, 저 아이는 이 집에서 더는 네 곁에 있지 못할 것이다.”하인 둘이 연화 쪽으로 다가갔다. 연화는 다친 팔을 가슴에 붙인 채 뒤로 물러섰다.“마님, 소인은…… 소인은 괜찮사옵니다.”괜찮을 리 없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고, 하인 하나가 팔을 잡으려 하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해린은 무릎을 짚고 일어나려다 아픔에 몸을 굽혔다.“윽…… 연화에게 손대지 마시오!”평소보다 큰 목소리가 열녀문 아래에 울렸다. 해린은 숨을 고르며 정씨 부인을 보았다.“저 아이는 어제도 제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다쳤사옵니다. 오늘 또 무엇을 하시려는 것이옵니까?”“네가 맹세하면
“윤씨 해린은 남편 서도윤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며, 정실의 지위를 내려놓고 첩의 분수를 지킬 것을 맹세한다. 또한 서씨 가문 안에서 있었던 일을 밖에 알리지 아니하고…….”“잠시만요.”해린이 말을 끊자 도윤이 인상을 썼다.“또 무슨 말이냐?”“제가 어떤 일을 밖에 알리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하는지 여쭙고 싶사옵니다.”정씨 부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집안의 일을 밖에 떠들지 말라는 뜻을 모르느냐?”“어제 대청에서 제 손이 다친 일도 그 안에 들어가옵니까?”서리가 고개를 숙였다. 문중 어른 중 한 사람이 헛기침을 했다.“연화가 다친 일과, 의원께서 제 목덜미에 약을 바르신 일도 말하지 말라는 뜻이옵니까?”도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어른들 앞에서 또 흉한 일을 들추겠다는 것이냐?”“무엇을 감추라는지 알아야 맹세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네가 자꾸 말대꾸를 하니 일이 커지는 것이다.”해린은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어제 자신을 끌어당기던 손이 그의 옷소매 아래에 있었다. 그 손으로 그녀의 팔을 잡았고, 그 손으로 지장을 찍게 하려 했다. 도윤은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다친 이유를 말하는 것조차 남편을 거역하는 일로 만들고 있었다.“남편께서는 제게 정실 자리를 내놓으라 하셨사옵니다. 그것을 거절한 일이 어찌 상처를 입어야 할 죄가 되는지, 아직 듣지 못했사옵니다.”“윤해린!”그가 이름을 날카롭게 불렀다. 해린은 잠깐 어깨를 굳혔다가, 그 목소리와 현준이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가 얼마나 다른지 깨닫고 입술을 다물었다. 같은 이름이었지만 하나는 사람을 붙잡아 끌어내리려 했고, 다른 하나는 잠깐이나마 그녀가 자기 자신으로 서 있게 해 주었다.정씨 부인이 부채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오늘은 네 잘잘못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가문을 어지럽힌 일을 바로잡는 자리다.”“그렇다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묻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옵니까?”“네가 또 말꼬리를 잡는구나.”“어머님께서는 제게 맹세를 요구하시면서도, 제가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나도…….”말끝이 끊겼다. 해린은 고개를 돌려 창호를 바라보았다. 밤새 버티던 마음이 새벽의 고요 속에서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나 연화가 다시 빗을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숨을 고르자, 울음 대신 묘한 분노가 차올랐다.남편은 다른 여인을 정실로 맞겠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그것을 가문의 법도라 불렀다. 그런데 그 법도를 세우는 데 왜 자신의 지장이 필요한가.그 질문만큼은 오늘 끝까지 물을 생각이었다.***열녀문으로 가는 길은 안채의 북쪽 담을 돌아 나가면 되었다. 시집온 뒤 해린은 그 문 앞에서 명절마다 향을 올렸다. 오래전 서씨 가문에 절개를 지킨 여인이 있었다고 들었고, 그 여인의 이름보다 가문의 영예를 먼저 외우도록 배웠다.오늘 새벽에는 그 문을 향해 가는 길마다 하인들이 서 있었다.집사가 작은 가마를 준비해 놓았지만 해린은 타지 않았다. 가마에 오르면 남의 손에 실려 가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녀가 걸음을 옮기자 집사는 잠깐 난처한 얼굴을 하더니 앞장섰고, 연화는 한 걸음 뒤에서 그녀의 보폭에 맞췄다.마당을 지나던 하녀 둘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중 하나가 해린의 붕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 집사의 눈길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해린은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의 상처를 본 사람은 많았으나, 그 일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열녀문 아래에는 이미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정씨 부인은 향로가 놓인 탁자 뒤에 앉아 있었고, 문중 어른 셋이 양옆을 지켰다. 서리는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고 있었는데, 해린이 가까워지자 손을 멈췄다. 탁자 위에는 두 장의 문서가 펼쳐져 있었다.도윤은 어머니 뒤쪽에 서 있었다. 해린을 본 그의 눈길이 목덜미와 손바닥을 훑었지만, 얼굴에는 걱정보다 짜증이 먼저 스쳤다. 그 곁에 선 소영은 화려한 비녀를 꽂고 있었다. 해린이 혼례 뒤 친정에서 받아 온 은비녀를 떠올리게 하는 무늬였다.다만 그녀의 은비녀는 어젯밤 작은 상자 안에 휘어진 채
남쪽 별실의 문이 세 번 두드려진 것은 아직 하늘에 푸른 기운조차 돌기 전이었다. 해린은 잠결에도 그 소리를 알아들었고, 몸부터 움츠렸다.어젯밤부터는 발소리 하나에도 상처 난 손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 누군가 문밖에 서서 허락을 구하는 두드림이 아니라, 안에 있는 사람이 깨어 있는지 확인하는 소리였다.어젯밤 집사가 돌아간 뒤에도 몇 번이나 들었던 발소리가 문턱에서 멎자, 그녀는 이불 아래로 손을 움츠렸다. 의원이 새로 감아 준 붕대가 손바닥에 붙어 있어 손가락을 구부릴 때마다 살갗이 당겼다.“윤씨 부인. 묘시가 멀지 않았사옵니다.”문밖의 여인은 안채에서 심부름을 맡는 하녀였다. 평소라면 해린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하던 아이였지만, 오늘은 집사의 말을 외워 온 듯 숨도 고르지 않고 덧붙였다.“정씨 부인께서 머리도 단정히 빗고 나오시라 하셨사옵니다. 문중 어른들께서 기다리실 터이니 늦지 마시라고…….”“……알았다. 더 재촉하지 않아도 나갈 것이다.”해린이 대답하자 문밖에서 한동안 기척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녀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 끝내 돌아갔고, 그제야 문갑 곁에 앉아 밤을 지새운 연화가 몸을 일으켰다. 다친 팔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졸던 아이의 눈꺼풀은 퉁퉁 부어 있었다.“마님, 저 아이가 새벽부터 세 번이나 왔사옵니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도 자꾸 재촉하는 것이…….”“내가 달아날까 두려운 것이겠지.”해린은 이불을 걷다가 무릎에 번지는 통증 때문에 잠시 멈췄다. 어제 대청에서 바닥에 부딪친 자리가 밤새 굳어 있었고, 목덜미의 화상은 속적삼이 스칠 때마다 열이 올랐다. 의원이 약을 발라 주었으나 상처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었다. 연화가 급히 다가와 그녀의 팔을 받치려 하자 해린은 먼저 아이의 다친 쪽을 살폈다.“그 팔로는 나를 붙들지 마라.”“소인은 괜찮사옵니다.”“괜찮은 사람이 밤새 잠결에도 아프다고 신음하느냐.”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해린은 더 묻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날 밤 의원이 남긴 약 냄새는 방 안에 남아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