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열녀문을 불태운 밤: Kapitel 1 – Kapitel 10

19 Kapitel

1화

백도겸이 윤씨 집안의 열녀문 앞에 도착했을 때, 한 사내가 흰 상복을 입은 여인을 억지로 제 품에 가두고 있었다.늦가을의 찬비가 산기슭을 적시는 밤이었다. 완공을 축하하는 붉은 비단과 등롱으로 치장한 열녀문은 윤씨 집안의 높은 담장 앞에 우뚝 솟아 있었고, 처마 아래에는 비바람을 피하도록 덮개를 씌운 횃불이 타고 있었다. 젖은 흙냄새와 기름 타는 냄새가 뒤섞인 가운데, 여인은 사내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어내며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사내는 그녀가 물러서려 할수록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흰 상복의 옷깃이 흐트러지고 한쪽 소매가 찢어졌지만, 그는 여인의 고통스러운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형수님, 왜 자꾸 저를 밀어내십니까?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여인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얼굴이 뺨 가까이 다가오자 어깨를 틀어 피했고, 손목을 움켜쥔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다 젖은 돌바닥에 발이 미끄러졌다. 그 순간 사내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대신 제 품으로 더욱 거칠게 끌어당겼다."도련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는 도련님의 형수입니다."사내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는 잠시 여인을 내려다보더니 헛웃음을 흘렸고, 이내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그놈의 형수. 삼 년입니다. 형님이 죽고 삼 년 동안 제가 형수님 곁을 지켰는데, 아직도 제게 하실 말씀이 그것뿐입니까?"여인이 턱을 붙잡은 손을 뿌리치자 사내는 이번에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수록 여인의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그는 오히려 그녀가 자신을 밀어냈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는 듯했다.백도겸은 마차의 휘장을 걷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사내는 윤씨 집안의 둘째 아들 윤시율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붙잡힌 여인은 삼 년 전 죽었다는 윤시헌의 아내, 서하경일 터였다. 도겸은 윤씨 집안과 거래한 장부에서 그녀의 이름을 여러 차례 보았으나, 실제로 마주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그가 이곳에 온 까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0
Mehr lesen

2화

"감히 누구 앞에서 싫다 좋다를 입에 올리느냐? 네가 이 집안에 들어온 날부터 네 몸도, 네 이름도 윤씨 가문의 것이다. 죽은 지아비를 따라가지 못한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살아 있는 동안 정절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하경은 정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찢어진 소매를 움켜쥐었고, 잠시 뒤 입술 사이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어머님께서는 제가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우십니까?"정씨는 대답 대신 하녀에게 눈짓했다. 하녀 하나가 곧바로 열녀문 아래에 놓인 목패를 가져왔고, 정씨는 거기에 적힌 글귀를 하경의 눈앞에 들이밀었다."네가 우리 집안에 보답할 길을 마련해 준 것이다. 저 문이 세워진 이상, 네가 죽는 날까지 정절을 지키겠다는 뜻을 온 고을이 알게 될 테니 다시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거라."하경은 목패에 적힌 물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 오래 머물자 도겸도 그 글귀를 살폈는데, 자신이 장부에서 확인했던 전답과 곡식 창고의 이름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제 친정에서 가져온 재산입니다."하경이 목패를 가리키며 말했다."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데 필요하다며 가져가셨던 전답과 곡식 창고를 열녀문을 세우는 데 쓰셨군요. 제 허락은 한 번도 구하지 않으셨으면서, 이제는 제 이름까지 저 문에 묶어 두시려는 겁니까?"정씨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하경의 혼수는 이미 윤씨 집안의 재산이라며 일축했고, 죽은 지아비의 아내가 따로 재물을 주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몰아세웠다.도겸은 그 말을 들으며 장부에 적혀 있던 거래 내역을 떠올렸다. 윤씨 집안이 하경의 혼수를 마음대로 처분했다는 의혹은 있었지만, 정씨가 직접 그 재산을 가문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니 문제는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오늘 밤부터 네 방 문을 밖에서 잠글 것이다. 고유제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들이지 말고, 음식도 내 허락 없이는 가져다주지 말아라."정씨의 명령에 하녀들이 고개를 숙였다.하경은 아무 말 없이 정씨를 바라보았다. 도겸은 그녀가 그 말을 처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0
Mehr lesen

3화

시율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도포를 입은 도겸과 뒤따라온 호위들을 알아본 그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하경의 손목을 붙잡은 채 비웃음을 지었다."백운상단의 대행수께서 이 밤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거래라면 날이 밝은 뒤에 이야기하시지요."도겸은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으나, 시율의 손아귀에 붙잡힌 하경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왼손목은 이미 붉게 부어 있었고, 손가락 사이로 피가 묻어 나왔다."거래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우선 부인을 놓아주시는 편이 좋겠군요."시율은 그 말이 몹시 우스운 듯 웃었다. 그는 하경을 제 옆으로 끌어당기며 자신의 형수이니 외인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도겸이 여인의 의사부터 확인하라고 하자 시율의 웃음이 멎었고, 하경을 붙잡은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내 집안 사람입니다. 내가 어떻게 대하든 대행수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니오."도겸은 시율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집안 사람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다치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시율이 무어라 대꾸하려는 순간, 도겸은 그의 손목을 붙잡아 엄지손가락으로 관절을 눌렀다. 시율은 갑작스러운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버티려 했지만, 도겸이 손을 아래로 꺾자 결국 하경의 손목을 놓고 말았다.하경은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찢어진 옷깃을 여미며 숨을 고르는 그녀를 확인한 뒤에야 도겸은 시율의 손을 놓았다."감히 나를 건드려?"시율이 아픈 손목을 움켜쥔 채 달려들 듯 몸을 기울였지만, 도겸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호위들에게 손짓해 하경이 물러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도련님께서 제 상단의 거래에 문제를 제기하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 눈앞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까지 묵인할 생각은 없습니다."도겸의 말투는 여전히 차분했으나, 시율은 그 안에 담긴 경고를 알아들은 듯했다. 잠시 도겸을 노려보던 그는 하경이 뒤쪽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발견하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형수님, 어디로 가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0
Mehr lesen

4화

하경은 그를 바라보았다. 불길이 기둥을 타고 오르는 동안 그녀는 시율의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고, 대신 열녀문 위에 걸린 현판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제가 원한 적 없는 문입니다."시율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집안의 명예를 망쳤다며 하경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도겸이 다시 앞을 막아서자 이번에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밀쳤다.도겸은 시율의 팔을 붙잡아 밀어내면서 뒤쪽에서 물을 나르는 하인들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불길이 처마 끝으로 번지고 있었으므로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사람부터 물리십시오. 불을 끄는 일을 방해하면 도련님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그러나 시율은 열녀문이 타는 것보다 하경이 자신의 뜻을 거역했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도겸의 어깨 너머로 하경을 바라보며, 형수를 위해 세운 문을 태워 버리고 어디로 달아날 생각이냐고 악을 썼다.하경은 다친 손목을 가슴 앞에 붙인 채 그를 마주 보았다."저 문 안에서 평생 살지는 않겠습니다."시율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웃음인지 울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고, 이내 하경에게 손을 뻗었다."그래요, 다 태우십시오. 문도 태우고 집도 태우십시오. 하지만 형수님은 못 갑니다. 형수님만큼은 절대로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그가 달려들자 하경은 몸을 틀어 피했다. 젖은 버선이 미끄러지면서 그녀의 무릎이 돌바닥에 닿았고, 시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양어깨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그러나 그의 손길은 부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하경을 다시 제 품으로 끌어당기려 했고, 여인이 고개를 돌리며 저항하자 오히려 팔에 힘을 주었다."형수님은 제 곁에 계셔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째서 모르십니까!"도겸은 곧바로 시율의 팔을 떼어 냈다. 시율이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호위들이 양쪽에서 붙잡았고, 그는 붙잡힌 채 발버둥 치며 하경에게 애원하다가 갑자기 욕설을 퍼붓기를 반복했다."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돌아오십시오! 아니, 형수님이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0
Mehr lesen

5화

하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친 손목을 가슴 앞으로 당긴 채 시율을 바라볼 뿐이었다.시율은 그 손목을 보면서도 자신이 남긴 상처를 걱정하기보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에 더 분노했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가 입술을 떨며 다시 말했다."형수님은 저를 버리실 수 없습니다. 형님이 돌아가신 뒤 삼 년 동안 누가 곁에 있었는지 잊으셨습니까?"하경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찢어진 상복의 옷깃을 여미고 몸을 바로 세웠다."도련님, 저는 도련님의 여자가 아닙니다. 한 번도 그런 적 없습니다."시율의 얼굴이 굳었다.그는 잠시 말을 잃은 듯 서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고,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하경을 향해 달려들었다."거짓말! 형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면 끝입니까!"도겸은 시율이 하경에게 닿기 전에 앞을 막았다. 시율은 그의 팔을 밀치며 몸부림쳤지만, 도겸이 멱살을 붙잡아 뒤로 밀어내자 더는 다가오지 못했다."그만하십시오. 부인께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시율은 도겸의 손아귀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번들거렸고, 입술 사이로 이를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백도겸, 네놈이 저 여자를 데려가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도겸은 시율을 놓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가 다시 달려들지 못하도록 호위들이 양옆을 막아섰다."그 말씀은 나중에 다시 듣겠습니다. 지금은 다친 사람들과 불부터 살피시지요."도겸이 마차 쪽으로 돌아섰을 때 하경은 이미 발판에 한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는 습관처럼 손을 내밀었다가,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혼자 오를 수 있다고 하자 곧바로 거두었다.하경은 다친 손목을 쓰지 않고 천천히 마차에 올라탔다. 도겸은 그녀가 안쪽 좌석에 앉은 것을 확인한 뒤 문을 닫고 마부에게 출발을 명했다.말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율이 다시 호위들의 틈을 뚫고 달려왔다. 그는 마차 옆을 붙잡으려다가 진흙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고, 다시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0
Mehr lesen

6화

하경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멀리 마을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도겸은 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그곳에서도 윤씨 집안 사람들이 저를 데려갈 수 있습니까?""찾아올 수는 있겠지요."하경의 손이 무릎 위에서 굳어졌다.도겸은 말을 이었다."하지만 제 허락 없이 객주의 문을 열거나 사람을 끌고 가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 부인께서도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시고요."하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저를 다시 보내지 않으시겠습니까?""부인께서 돌아가겠다고 결정하시기 전에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손목에 감은 천의 매듭을 한 번 더 조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도겸은 맞은편에서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여인은 조금 전까지 시율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감추지는 못했다.마차가 산길을 벗어나 넓은 들판으로 접어들었을 때, 하경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도겸도 창밖을 바라보았다.멀리 윤씨 집안의 열녀문이 보였다. 비에 젖은 밤하늘 아래에서 붉은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검은 연기가 바람을 따라 흩어졌다.도겸은 그 광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하경이 불을 지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일은 훗날 관아에서 문제가 될 수 있었고, 윤씨 집안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가 오늘 밤 직접 본 일도 분명했다. 윤시율은 형수라는 호칭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그녀의 거부를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끝내 제 뜻대로 되지 않자 폭력을 휘둘렀다.도겸은 하경에게 시선을 돌렸다."부인, 오늘 밤의 일은 언젠가 직접 설명하셔야 할 겁니다. 불을 지른 일도, 윤씨 집안에서 나오게 된 이유도 말입니다."하경은 그를 바라보았다. 도겸은 그녀가 겁을 먹고 물러설까 염려했지만, 여인은 잠시 침묵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습니다."그녀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래도 돌아가지는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0
Mehr lesen

7화

백도겸은 마차 뒤편에서 들려오던 말발굽 소리가 멀어진 뒤에도 한동안 창문을 닫지 않았다.비에 젖은 산길은 굽이마다 깊은 어둠을 품고 있었고, 호위들이 들고 달리는 횃불만이 간간이 나무 사이를 비추었다. 윤시율이 직접 말을 몰아 뒤쫓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지만, 도겸은 그 사내가 이대로 물러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열녀문이 불타는 와중에도 집안의 재산이나 사람들의 안전보다 형수를 되찾는 일에 집착하던 눈빛이 아직 선명했다.도겸은 마부에게 서쪽 산길을 따라가되 속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말라고 지시한 뒤, 맞은편에 앉은 서하경을 돌아보았다.그녀는 젖은 상복을 입은 채 창가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빗물에 풀어진 머리카락이 뺨과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었고, 찢어진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열녀문 앞에서 시율에게 붙잡혔을 때보다 얼굴빛은 더욱 창백해졌지만, 하경은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감싸 쥔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도겸은 그녀의 손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윤씨 집안의 장부를 조사하러 갔다가 낯선 여인을 마차에 태우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자신이 내민 도움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상단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알아내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었지만, 하경에게는 그 방식조차 함부로 적용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당장 무엇을 얻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일일지도 몰랐다.마차가 돌부리를 지나며 크게 흔들리자 하경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도겸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그녀가 좌석 가장자리를 붙잡아 몸을 바로 세우는 것을 보고 손을 멈췄다.가까이에서 맡은 것은 젖은 비단 냄새와 희미하게 남은 연기 냄새였다. 그 사이로 여인의 머리카락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향이 스쳤고, 도겸은 자신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거두며 약갑을 꺼냈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0
Mehr lesen

8화

도겸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약갑의 모서리를 눌렀다. 윤씨 집안의 혼수 착복을 의심하며 거래 내역을 추적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재물을 둘러싼 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장부의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 방에 얼마나 계셨습니까?""어제 낮부터 오늘 저녁까지요. 고유제에 입을 상복을 갈아입으라며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도겸은 하경의 젖은 옷깃을 바라보았다. 찢어진 상복은 오래 입어 색이 바랜 듯했고, 소매 끝에는 여러 차례 기워 붙인 자국이 있었다.열녀문을 세우는 데 막대한 돈을 쓴 집안이 정작 그 문에 이름을 올릴 여인에게는 해진 상복을 입혔다는 사실이 기이했다.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약갑을 조금 더 가까이 밀었다."우선 상처부터 씻으십시오. 그 뒤에 필요한 말씀을 나누시지요."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도겸은 그녀가 천을 갈아 감는 동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인의 고통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그 고통을 말하도록 강요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작은 주막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한층 깊어져 있었다.도겸은 호위에게 뒤따르는 자들의 움직임을 확인하게 한 뒤, 주인에게 따뜻한 물과 마른 수건, 두툼한 겉옷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주막 안에는 장작불이 피워져 있었고, 늦은 손님 몇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있었으나 그는 하경을 사람들 앞에 세우지 않았다.마차 문을 열어 주며 별도의 방에서 쉬어도 된다고 말하자, 하경은 주막 안쪽을 살핀 뒤 고개를 저었다."여기 있겠습니다."도겸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낯선 방에 들어가 문이 닫히는 순간을 그녀가 반기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추측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더 권하지 않고 마차 안에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게 했다."문은 열어 두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부르십시오."그가 처마 아래로 물러나자 호위 하나가 다가왔다."대행수님, 윤씨 집안 사람들이 갈림길까지 따라왔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둘은 되돌아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0
Mehr lesen

9화

하경이 문을 열자 도겸은 겉옷을 좌석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직접 어깨에 걸쳐 주려다가, 문득 시율이 하경의 몸을 제 뜻대로 다루던 모습이 떠올라 손을 멈췄다."젖은 옷 위에라도 걸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밤기운이 찹니다."하경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겉옷을 집어 들었다.도겸은 문을 닫아 주려다 그녀가 손잡이를 쥐는 것을 보고 손을 거두었다. 하경은 직접 문을 닫았고, 도겸은 그 작은 행동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다시 길을 떠난 뒤, 도겸은 무릎 위에 장부를 펼쳤다.윤씨 집안과 거래한 상인들의 이름, 재목과 장식품의 수량, 지급된 은전의 액수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숫자를 따라가다가 혼수로 기록된 전답의 수익이 다른 명목으로 옮겨진 부분에 손가락을 멈췄다.장부에는 전답의 수익을 관리하는 사람이 여러 차례 바뀐 것으로 적혀 있었지만, 돈이 최종적으로 모인 곳은 같았다. 윤씨 집안의 열녀문 건립 비용이었다.그가 장부를 덮으려는데 하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제 친정에서 가져온 전답도 그 안에 적혀 있습니까?"도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경은 두툼한 겉옷을 어깨에 걸친 채 앉아 있었고, 다친 손목은 깨끗한 천으로 다시 감겨 있었다."기록은 있습니다. 다만 어떤 경위로 처분되었는지 더 확인해야 합니다.""어머님께서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데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큰아들이 죽었으니 집안이 무너질 지경이라면서, 제 친정에서 가져온 곡식과 전답을 잠시 맡기라고 하셨지요."하경은 잠시 숨을 골랐다."처음에는 저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아비를 잃은 며느리가 재물부터 따진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장례가 끝난 뒤에도 돌려주시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이름으로 들어오는 수익까지 집안에서 거두어 갔습니다."도겸은 그녀의 말과 장부의 날짜를 맞추었다.혼수 수익이 윤씨 집안의 다른 거래에 섞이기 시작한 시점은 시헌의 장례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이후 수입과 지출의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1
Mehr lesen

10화

마지막 물목까지 적은 뒤 그는 종이를 건넸다.하경은 오른손으로 종이를 받아 들고 한동안 바라보았다."이렇게 적힌 것을 보니 정말 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도겸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손을 멈췄다.자신이 소유한 배 한 척의 값을 잊은 적도 없는 그였다. 그런데 눈앞의 여인은 친정에서 가져온 재산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조차 남의 손으로 다시 적어 확인해야 했다.그는 하경이 종이를 접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장부의 숫자보다 그 여인의 손에 종이가 돌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마차가 숲길로 접어들 무렵, 하경은 접어 둔 혼수 목록을 겉옷 안쪽에 넣었다.도겸은 그녀가 종이를 조심스럽게 보관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찢어진 상복 소매 안쪽에서 작은 천 조각이 드러나는 것을 발견했다. 흰 천의 가장자리는 거칠게 찢겨 있었고, 한쪽에는 검은 실로 수놓은 무늬가 남아 있었다.하경은 그 조각이 보이자 재빨리 소매를 내려 가렸다.도겸은 일부러 시선을 거두었다. 여인이 말하지 않으려는 일을 억지로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그러나 한참 뒤 하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도련님이 어젯밤 제 방에 들어왔습니다."도겸은 장부를 덮었다.하경은 창밖을 향한 채 말을 이었다."어머님께서 문을 잠그라고 하신 뒤였습니다. 밤이 깊었을 때 밖에서 빗장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하녀가 음식을 가져온 줄 알았습니다."그녀의 손이 겉옷 자락을 움켜쥐었다."그런데 도련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제가 왜 오셨느냐고 묻자, 어머님께서 저를 굶기실까 봐 걱정되어 왔다고 하셨지요."도겸은 시율이 열녀문 앞에서 자신이 하경을 먹이고 지켰다고 떠들던 모습을 떠올렸다."음식을 가져왔습니까?""작은 찬합을 들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지 않자 문 앞에 내려놓고는, 제 방에 다른 사내가 드나든 적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하경은 고개를 돌려 도겸을 바라보았다."저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도련님은 제 말을 믿지 않으셨고, 방 안을 뒤지기 시작하셨습니다."도겸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21
Mehr lesen
ZURÜCK
12
CODE SCANNEN, UM IN DER APP ZU LESE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