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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화. 세 개의 선택지만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30 20:12:08

다음 밤.

도현은 예상과 전혀 다른 걸 꺼냈다.

세 장의 작은 카드.

아무 글자도 없었다.

“이게 뭐예요?”

“오늘 당신이 고를 건 세 가지뿐입니다.”

“뭔데요?”

도현은 카드를 뒤집지 않았다.

“첫째, 시작할지 말지.”

“네.”

“둘째, 오늘 강도를 낮음·중간·높음 중 하나.”

“네.”

“셋째.”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중간에 멈출지 말지.”

나는 잠시 카드를 봤다.

“그 뒤는?”

“제가 정합니다.”

“진짜?”

“네.”

“카드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상징입니다.”

나는 웃었다.

“요즘 주인님 이런 거 좋아하네.”

“당신이 선택을 많이 해야 편해지는 사람이라.”

그가 카드를 손끝으로 밀었다.

“오늘은 선택 개수를 줄여보려고 합니다.”

나는 첫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시작.”

두 번째.

“높음.”

도현의 시선이 바로 올라왔다.

“확실합니까?”

“네.”

“오늘 컨디션은?”

“괜찮아요.”

“통증 범위는?”

“중간.”

“좋습니다.”

그는 카드를 치웠다.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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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04화. 답을 알려주지 않는 사람

    첫 멘토링 대상은 프라하가 아니었다.파리였다.서윤은 화상회의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클레어 뒤랑.파리 운영기획팀 부팀장.서른둘.최근 두 분기 동안 신규 계약 조정안을 가장 많이 작성한 사람 중 하나였다.화면이 켜지자 클레어가 먼저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한 총괄.”“네. 편하게 하세요.”“조금 긴장됩니다.”“왜요.”“한 총괄이 멘토라서요.”서윤은 바로 노트북 옆에 놓인 메모를 봤다.[답을 대신 주지 말 것.]인사팀에서 보낸 문장이 아니라.자기가 회의 직전에 직접 적어놓은 문장이었다.“그럼 긴장한 채로 시작하죠.”클레어가 잠깐 웃었다.“네.”“오늘 가져온 주제는요?”화면에 자료가 공유됐다.파리 쪽 대형 브랜드와의 신규 계약.계약 자체는 매력적이었다.문제는 일정.브랜드 쪽이 요구하는 오픈 시점에 맞추려면 현재 파리 인력만으로는 부족했고, 최소 두 팀이 한 달 가까이 야근해야 했다.클레어가 말했다.“저는 거절하는 쪽이 맞다고 생각합니다.”서윤은 바로 물었다.“왜요.”“현재 인원으로는 무리입니다.”“그럼 끝났네요.”클레어가 멈칫했다.“네?”“무리면 거절하면 되잖아요.”“그런데 매출이 큽니다.”“그럼 무리라는 판단이 바뀝니까?”클레어가 입을 다물었다.서윤은 본능적으로 말을 이어가려 했다.이 정도 계약이면 세 가지 대안이 있고.일정 조정을 먼저 제안하고.그게 안 되면 범위를 분할하고.그것도 안 되면 신규 채용 비용까지 계산해서—입을 열기 직전.자기가 써놓은 메모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답을 대신 주지 말 것.서윤은 입을 다물었다.클레어가 기다렸다.몇 초.서윤이 물었다.“그러면 지금 선택지가 몇 개 있다고 봐요?”클레어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화면을 내려다봤다.“거절하거나.”“네.”“받거나.”“그게 전부예요?”“아마.”서윤은 또 답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느꼈다.아니.중간이 있잖아.일정을 바꾸고.범위를 나누고.브랜드 쪽 부담을 늘리고.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03화. 낮춘 숫자를 다시 올리라는 사람

    회의실 공기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서윤은 화면에 떠 있는 숫자를 한 번 보고.맞은편에 앉은 이사를 봤다.“그래서.”그가 말했다.“다음 분기 목표를 다시 상향하자는 겁니다.”현재 목표보다 11퍼센트 높은 수치.파리와 뮌헨의 신규 계약을 동시에 늘리고.프라하 운영팀이 임시로 낮춘 승인 속도도 원래대로 되돌리는 안이었다.서윤은 펜을 내려놓았다.“근거가 뭡니까.”“시장 반응이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시장 말고.”“네?”“우리 조직이 그 속도를 다시 받을 수 있다는 근거.”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옆에 앉은 예린은 자료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맞은편 이사가 말했다.“지난 분기 자발적 이탈이 거의 없었습니다.”“한 분기입니다.”“그래도 지표는 좋습니다.”“그래서 사람을 다시 최대치로 쓰자는 겁니까?”“최대치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서윤은 화면을 가리켰다.“여기.”파리 신규 계약 증가율.뮌헨 확장 일정.프라하 검토 건수.“이 세 개를 동시에 올리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됩니다.”그 이사가 표정을 굳혔다.“한 총괄은 계속 보수적으로만 가려는 겁니까?”“아니요.”서윤은 바로 대답했다.“지속 가능한 만큼만 가려는 겁니다.”“그러다 기회를 놓치면요?”“놓치는 기회보다.”이번에는 예린이 고개를 들었다.서윤은 그대로 말했다.“한 번 망가진 운영 체계를 복구하는 비용이 더 큽니다.”몇 초.아무도 말하지 않았다.그때.회의실 끝에 앉아 있던 도현이 입을 열었다.“한 총괄.”서윤이 고개를 돌렸다.“네, 의장님.”회사에서의 목소리.딱딱하고.깔끔했다.도현은 물었다.“현재 목표를 유지할 경우 예상 매출 차이는.”서윤은 준비한 숫자를 바로 말했다.“상향안 대비 약 6.4퍼센트 낮습니다.”“운영비.”“8.1퍼센트 낮습니다.”“추가 채용.”“상향안은 최소 열두 명. 현행은 세 명 이하입니다.”“오류율 추정은.”“상향안 쪽이 더 높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아직 모델링 중입니다.”도현이 고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02화. 먼저 건넨 쪽

    서윤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현은 이미 침실에 없었다.협탁 위에는 물컵만 놓여 있었다.그 옆.접힌 종이 한 장.서윤은 베개에 기대앉은 채 종이를 집었다.[아홉 시 회의. 먼저 나갑니다.]끝.서윤은 종이를 뒤집어봤다.아무것도 없었다.“이게 다야?”혼잣말을 하다가.괜히 웃었다.요즘 도현이 뭔가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 게 익숙해졌는데.그래도.이렇게 메모 한 줄만 남기고 먼저 나간 건 오랜만이었다.서윤은 휴대폰을 들었다가.다시 내려놨다.굳이 답장할 필요는 없었다.어차피 몇 시간 뒤면 회사에서 볼 테니까.*오전 회의는 예상보다 짧게 끝났다.서윤이 회의실에서 나오자.복도 건너편에서 도현이 걸어오고 있었다.다른 이사 두 명과 함께였다.서윤은 그대로 지나가려 했다.도현도 회사에서는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한 총괄.”“의장님.”짧게.그게 전부였다.그런데.스쳐 지나가는 순간.도현의 손에 들린 파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베이지색.모서리가 조금 구겨진 얇은 파일.어젯밤 서재에 들고 들어갔던 종이와 비슷한 색이었다.서윤은 순간 뒤를 돌아봤다.도현은 이미 몇 걸음 지나간 뒤였다.그런데.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딱 한 번.고개를 돌렸다.눈이 마주쳤다.서윤은 바로 입술을 다물었다.도현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그대로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갔다.“진짜 신경 쓰이게 하네.”서윤이 작게 중얼거렸다.뒤에서 예린이 말했다.“뭐가.”서윤이 깜짝 놀라 돌아봤다.“언제 왔어요?”“방금.”“아무것도 아니에요.”예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 말 요즘 안 쓰기로 하지 않았어?”“누가.”“차 의장.”“그걸 왜 한예린이 알아.”“당신이 전에 말했잖아.”서윤은 잠깐 멈췄다.“내가?”“응.”“언제.”“기억 안 남.”“그럼 됐어요.”예린은 웃으며 지나갔다.*저녁.서윤이 집에 먼저 들어왔다.서재 문은 열려 있었다.그 순간.걸음이 자동으로 그쪽으로 갔다.도현은 아직 오지 않았다.책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01화. 먼저 닫힌 문

    서윤이 집에 들어왔을 때.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도현은 보이지 않았다.“도현 씨?”대답 대신.서재 쪽에서 짧은 소리가 났다.탁.문 닫히는 소리.서윤은 가방을 내려놓고 그쪽을 봤다.“뭐 해요?”이번에는 대답이 왔다.“잠깐만 기다리십시오.”“왜.”“정리할 게 있습니다.”서윤은 눈썹을 올렸다.도현이 자기 서재 문을 닫는 건 드문 일이었다.회사 통화라도 하나.그렇게 생각하고 코트를 벗었다.그런데.휴대폰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화면도 꺼져 있었다.서윤은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일 분.이 분.결국.“진짜 뭐 해.”문이 열렸다.도현이 나왔다.손에는 종이 한 장.“뭐예요?”“아무것도 아닙니다.”“그럼 왜 문까지 닫았어.”도현은 종이를 뒤집어 들었다.“당신이 보면 안 되는 거라서.”서윤의 눈이 바로 커졌다.“내가 보면 안 되는 거?”“네.”“왜.”“아직 안 끝났습니다.”“그림?”도현이 잠깐 그녀를 봤다.“비슷합니다.”“보여줘.”“안 됩니다.”“조금만.”“안 됩니다.”너무 단호해서.서윤은 오히려 웃었다.“주인님이 숨기는 거네.”“숨기는 게 아니라.”도현은 종이를 다시 서재 안에 두고 나왔다.문을 닫았다.이번에는 잠그지는 않았다.“완성되면 보여드리겠습니다.”“언제.”“모릅니다.”“또 몰라.”“네.”서윤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며 그를 봤다.“나 오늘 저 문 계속 신경 쓰일 것 같은데.”“그러십시오.”“안 말려?”“제가 닫았습니다.”도현의 시선이 서재 문으로 한번 갔다가.다시 서윤에게 왔다.“궁금해하는 것도 예상했습니다.”숨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하….”도현이 바로 알아챘다.“왜.”“또 먼저 정했잖아.”“문 닫는 걸?”“응.”“그게 좋습니까.”서윤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금.”도현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그렇군요.”*저녁은 배달이었다.둘 다 늦게 들어온 날.도현은 식탁에 찜닭 그릇을 놓고.서윤은 밥을 덜었다.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00화. 거울 속에서 먼저 본 것

    도현이 서재 문을 열어둔 채 안에서 뭔가를 옮기고 있었다.서윤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소리를 들었다.“뭐 해요?”대답이 없었다.대신.드르륵.무거운 게 바닥 위를 움직이는 소리.서윤은 가방을 소파 위에 올리고 서재로 갔다.문 앞에서 바로 멈췄다.“이게 뭐야.”도현이 세워놓은 건.사람 키보다 조금 큰 전신거울이었다.테두리가 거의 없는.단순한 거울.원래 침실 옷장 안쪽에 작은 거울은 있었지만.이 정도로 큰 건 처음이었다.“거울.”“그건 알아.”“그럼 왜 묻습니까.”“갑자기 왜 샀냐고.”도현이 거울 각도를 조금 조정했다.“그림 볼 때 쓰려고.”“그림을 왜 거울로 봐.”“좌우 뒤집어서 보면 이상한 부분이 잘 보입니다.”서윤은 잠깐 거울을 봤다.자기 모습.그 옆에 서 있는 도현.둘 다 그대로 비쳤다.“오.”“왜.”“생각보다 크네.”도현은 거울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이 정도는 돼야 전신이 보입니다.”서윤은 거울 앞으로 갔다.코트도 아직 벗지 않은 상태.회사에서 돌아온 그대로.“여기 세워둘 거예요?”“아마.”“내가 옷 볼 때도 써도 되지?”“거울인데 왜 허락을 받습니까.”“주인님 거니까.”도현의 시선이 거울 속 서윤에게 갔다.“집에 있는 건 같이 쓰는 겁니다.”서윤이 웃었다.“그 말 좋네.”“요즘 당신은 뭘 말해도 좋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다 좋은 건 아니거든.”“예를 들어.”“지금처럼 분석하는 거.”도현이 아주 조금 웃었다.“알겠습니다.”서윤은 코트를 벗었다.의자 등받이에 걸어놓고.다시 거울을 봤다.도현은 바로 뒤쪽에 서 있었다.눈이 마주친 건.직접이 아니라.거울 안에서였다.몇 초.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윤이 먼저 물었다.“왜 봐요.”“당신도 봅니다.”“나는 거울 보는 거고.”“거울 속 저를.”들켰다.서윤은 웃었다.“조금.”“왜.”“그냥.”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서윤이 바로 정정했다.“뒤에 서 있으니까.”“그게 이유입니까.”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399화. 먼저 골라놓은 자리

    도현이 맞잡은 손에 힘을 준 건 잠깐이었다.서윤은 그대로 한 걸음 가까워졌다.“왜.”“무엇이.”“또 당겼잖아.”“당기고 싶어서.”서윤이 웃었다.요즘은 정말.이런 대답이 빨랐다.이유를 돌려 말하지도 않고.자기가 하고 싶어서.자기가 골라서.그게 전부였다.“주인님.”“네.”“오늘은 여기까지?”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서윤의 손을 놓았다.“일어나십시오.”“갑자기?”“네.”“왜.”도현은 이미 소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보여드릴 게 있습니다.”서윤도 따라 일어났다.“새 도구?”“아니.”“그럼 뭐.”도현은 침실도.서재도 아닌.복도 끝 작은 방으로 향했다.원래는 거의 쓰지 않던 방이었다.큰 창 하나.낮은 수납장.벽에는 아무것도 없었고.한쪽에 작은 러그만 깔려 있었다.서윤이 문 앞에서 멈췄다.“여기?”“네.”“왜 갑자기.”도현이 불을 켰다.방 중앙에는.낮은 등받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평범한 목재 의자.새것이었다.서윤은 그걸 보다가.도현을 봤다.“이거 언제 샀어요?”“오늘 왔습니다.”“뭐 하려고.”“앉으려고.”“누가.”“당신.”서윤의 눈썹이 올라갔다.“나?”“네.”“왜.”도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대신.의자 위치를 아주 조금 돌렸다.창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대각선.방 안쪽도.창밖도 같이 보이는 각도.“이 자리.”“응.”“제가 골랐습니다.”서윤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나한테 안 물어보고?”“네.”“왜.”“물어보고 싶지 않았습니다.”몇 초.서윤은 그냥 그를 봤다.“주인님.”“네.”“그 말 좋다.”“무엇이.”“물어보고 싶지 않았다는 거.”도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싫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그러면 바꾸면 되잖아.”“맞습니다.”“근데 일단 주인님이 정한 거잖아.”도현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서윤은 의자를 다시 봤다.“앉아봐?”“아직.”멈췄다.도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제가 말하면.”서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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