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서윤이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이미 밝았다.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침대 끝까지 길게 번져 있었다.몇 시인지 궁금했다.손이 습관처럼 협탁을 향했다가 허공에서 멈췄다.휴대폰이 없었다.어젯밤 거실에 두고 들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몇 시지.”옆에서 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모릅니다.”서윤이 고개를 돌렸다.도현도 막 깬 얼굴이었다.“도현 씨도 안 봤어요?”“휴대폰이 밖에 있잖습니까.”“시계.”“어제 풀어뒀습니다.”서윤은 천장을 바라봤다.평소 같으면 바로 시간을 확인했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일요일이었다.냉장고에 붙여놓은 일정도 하나뿐이었다.아무것도 안 정하기.서윤은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그럼 안 볼래.”“시간을?”“응.”“배 안 고픕니까.”“아직.”서윤이 도현 쪽으로 굴러갔다.“그리고 오늘 휴대폰 안 보기 하기로 했잖아요.”도현이 눈을 떴다.“오늘 할 겁니까?”“원래 이번 달에 하기로 했는데.”“굳이 오늘일 필요는 없습니다.”“오늘이 딱인데.”서윤은 그의 팔을 끌어와 베었다.“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으니까.”“급한 연락 확인은 한 번.”“저녁에.”“좋습니다.”결정은 그것뿐이었다.몇 시에 일어날지도.뭘 먹을지도.어디에 있을지도 정하지 않았다.서윤은 다시 눈을 감았다.“조금만 더 누워 있어요.”“좋습니다.”“잠들어도 깨우지 말고.”“알겠습니다.”“도현 씨도 자요.”“노력해보죠.”서윤이 한쪽 눈을 떴다.“또 나 자는 거 보려고?”도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들켰군요.”“오늘은 안 돼.”“왜요.”“같이 자.”서윤이 그의 눈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눈 감아요.”“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응.”결국 도현이 눈을 감았다.서윤도 만족한 듯 다시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두 번째로 눈을 떴을 때는 배가 고팠다.이번에는 둘 다 일어났다.거실로 나오자 테이블 위에 휴대폰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서윤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손끝이 닿기
차는 한동안 큰길을 벗어나지 않았다.창밖으로 지나가는 건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진 편의점과 드문드문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 신호등뿐이었다.서윤은 처음에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창밖보다 도현을 더 자주 봤다.“왜 자꾸 봅니까.”결국 들켰다.서윤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운전 잘하나 보려고.”“지금까지 몇 번이나 같이 탔는데.”“오늘은 야간 평가.”“점수는요.”“아직 채점 중.”도현이 작게 웃었다.서윤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잠시 뒤 차가 강변 쪽 도로로 접어들었다.멀리 이어진 불빛이 물 위에서 길게 흔들렸다.서윤이 몸을 조금 세웠다.“여기 좋다.”“세울까요?”“세울 데 있어요?”“조금 더 가면.”몇 분 뒤 차는 작은 주차 공간으로 들어갔다.늦은 시간이라 차도 많지 않았다.시동이 꺼졌다.갑자기 조용해졌다.서윤은 안전벨트를 풀지 않은 채 창밖을 봤다.“우리 결국 어디 오긴 왔네.”“목적지로 정하고 온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습니까.”“그건 그래.”도현도 안전벨트를 풀었다.서윤은 아직 그대로였다.도현이 물었다.“안 내립니까?”“추울 것 같은데.”“그럼 차에 있어도 되고.”“그럴까.”서윤이 그제야 안전벨트를 풀었다.몸을 도현 쪽으로 돌렸다.“근데 아까.”“네.”“집에 가면 알게 될 정도로 아쉽다고 했잖아요.”도현이 잠시 말이 없었다.“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습니까.”“그럼 잊어요?”“아니요.”“얼마나 아쉬웠는데.”“서윤.”“응.”“일부러 이러는 거죠.”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조금.”도현이 운전석 등받이에 기대었다.“그래서 더 돌아가자고 한 겁니까.”“응.”“저 기다리게 하려고?”“나도 같이 기다리는 건데.”서윤은 손을 뻗었다.도현의 재킷 깃을 한번 정리하는 척 만졌다.“공평하잖아요.”도현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별로 안 공평한 것 같은데.”“왜요.”“당신은 즐기고 있잖습니까.”“도현 씨는 아니고?”잠깐의 정적.도현
토요일 오후 여섯 시.서윤은 현관 거울 앞에서 귀걸이를 고르고 있었다.한쪽에는 작은 링.다른 쪽에는 조금 길게 떨어지는 은색 귀걸이.두 개를 번갈아 대보던 서윤이 물었다.“도현 씨.”거실에서 대답이 들렸다.“네.”“잠깐 와봐요.”도현이 재킷을 들고 현관으로 나왔다.서윤은 양손을 들어 보였다.“어느 쪽.”도현이 잠깐 살폈다.“오른쪽.”“긴 거?”“네.”“이유는?”“오늘 옷이랑 더 잘 어울립니다.”서윤은 바로 링 귀걸이를 내려놓았다.“나도 이거 하려고 했어요.”“그럼 왜 물었습니까.”“같은 거 고르는지 보려고.”“틀렸으면요.”“내가 고른 거 했겠지.”도현이 웃었다.“결국 제 의견은 참고사항이군요.”“당연하죠.”귀걸이를 착용한 서윤이 몸을 돌렸다.검은 원피스 위에 얇은 재킷.평소 출근할 때보다 조금 더 힘을 준 차림이었다.“어때요?”도현이 대답하기 전에 서윤이 덧붙였다.“오늘은 오래 봐도 돼요.”“그럼 시간이 좀 필요하겠는데.”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합격.”“뭐가.”“대답.”도현은 자신의 가방을 들었다.가방 바깥쪽에는 며칠 전 산 작은 집 모양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다.서윤도 자신의 가방을 들어 같은 장식을 흔들었다.“아직 안 뺐네.”“빼지 말라면서요.”“확인한 거예요.”“매일 확인할 겁니까.”“아마도.”서윤이 현관문을 열었다.“갑시다. 야시장.”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거의 져 있었다.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길 양쪽으로 음식 냄새가 섞여 흘러왔다.서윤의 걸음이 빨라졌다.“저기부터.”“입구부터 먹습니까.”“야시장에 왜 왔는데요.”첫 번째는 닭꼬치였다.두 사람은 하나씩 받아 들었다.서윤이 한입 먹더니 바로 도현을 봤다.“맛있어.”“맵지 않습니까.”“이 정도는 괜찮아.”도현의 것을 한번 쳐다봤다.“도현 씨 거는 무슨 맛?”“간장.”“한입.”도현이 꼬치를 내밀었다.서윤이 그대로 한입 먹었다.“내 게 더 맛있다.”“그럼 왜 먹었습니까.”“비교.”“항
침실까지 가겠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의 걸음은 빨라지지 않았다.도현은 서윤의 가방까지 한 손에 들고 있었고, 다른 손은 여전히 그녀와 맞잡혀 있었다.서윤이 그 손을 내려다봤다.“가방부터 놓고 가요.”“어디에.”“아무 데나.”“아무 데나 두면 내일 당신이 찾습니다.”“지금 그게 중요해요?”도현이 결국 웃었다.거실을 지나 가방 두 개를 소파 옆에 나란히 내려놓았다.조금 전 산 집 모양 열쇠고리가 흔들렸다.서윤은 그걸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됐어요.”“이제 됐습니까.”“응.”그런데 침실로 향하지 않았다.서윤이 오히려 주방으로 방향을 틀었다.도현이 멈췄다.“침실까지라면서요.”“목말라.”“…….”“왜 그런 얼굴 해요.”“아닙니다.”서윤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그리고 컵을 내려놓으며 도현을 바라봤다.“도현 씨도 마실래요?”“괜찮습니다.”“진짜?”“네.”서윤은 천천히 컵을 내려놓았다.그녀의 시선이 도현의 넥타이에 머물렀다.퇴근 후에도 아직 풀지 않은 채였다.서윤이 손가락을 걸었다.“그럼 이건.”매듭이 느슨해졌다.“이제 필요 없죠?”도현의 눈빛이 달라졌다.“없겠죠.”서윤은 넥타이를 완전히 풀어냈다.“오늘 회사에서.”“네.”“엘리베이터에서 둘만 있었을 때 조금 웃겼어요.”“뭐가.”“집에서는 이러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의장님이라고 부르는 거.”도현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싫습니까.”“아니.”서윤은 풀어낸 넥타이를 그의 어깨에 걸쳤다.“오히려 좋아.”“어느 쪽이.”“둘 다.”그녀가 그의 셔츠 깃을 잡았다.“회사에서는 의장님.”짧은 입맞춤.“집에서는 도현 씨.”다시 한 번.이번에는 도현의 손이 서윤의 허리에 닿았다.서윤이 입술을 떼며 웃었다.“여기는 집이니까.”“알고 있습니다.”“그럼 왜 아직도 그렇게 얌전히 있어요.”그 말이 끝나자 도현이 그녀를 끌어당겼다.이번 입맞춤은 현관에서보다 길었다.서윤의 손이 그의 어깨를 타고 올라갔다.도현의 셔츠 단추
“나도.”서윤은 웃으며 식탁으로 향했다.전복죽과 소고기죽을 나눠 놓고 마주 앉았다.둘 다 피곤해서인지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서윤은 몇 숟갈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맛있어요?”“네.”“나는 전복죽이 더 맛있다.”“바꿀까요?”“아니. 도현 씨 거 한입만.”도현이 자기 그릇을 밀어줬다.서윤은 한 숟갈 먹어보고 다시 돌려줬다.“역시 내 게 낫네.”“그럼 왜 먹었습니까.”“확인.”“제 음식은 항상 확인하네요.”“같이 먹는 사람 특권.”식사를 마치고 정말 곧바로 씻었다.침실에 들어온 서윤은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고 침대에 누웠다.“오늘은 진짜.”“잡니다.”도현이 먼저 대답했다.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뭐라고 하려는지 어떻게 알아요?”“오늘 하루 종일 들었습니다.”“이번에는 진짜라니까.”“네.”“안 믿지?”“믿겠습니다.”그 대답이 더 얄미웠다.서윤은 베개를 하나 집어 도현 쪽으로 던졌다.도현이 받아냈다.“자는 사람이 베개를 던집니까.”“이제 잘 거야.”서윤은 등을 돌렸다.도현이 조명을 껐다.이번에는 정말 오래 걸리지 않았다.몇 분 뒤 서윤의 호흡이 고르게 바뀌었다.도현도 그 옆에서 눈을 감았다.다음 날 아침.서윤이 눈을 떴을 때는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다.몸이 전날보다 훨씬 가벼웠다.옆을 봤다.도현은 아직 자고 있었다.서윤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문득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자신보다 먼저 깨어 있을 때 가끔 자는 얼굴을 봤다는 도현.이번에는 반대였다.서윤은 괜히 조금 가까이 갔다.잠들어 있을 때는 평소보다 표정이 부드러웠다.서윤이 작게 중얼거렸다.“이래서 봤구나.”“뭘.”서윤이 흠칫했다.도현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안 잤어요?”“방금 깼습니다.”“거짓말.”도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얼마나 봤습니까.”“안 봤는데.”“바로 앞에 있잖습니까.”“시간 확인하려고.”“제 얼굴에 시계가 있습니까.”서윤이 웃음을 참으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도현의 팔이
알람이 울렸다.한 번.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두 번째.서윤이 이불 속에서 손만 뻗었다.휴대폰은 손끝에 닿지 않았다.“도현 씨…….”대답이 없었다.“알람.”“들었습니다.”잠긴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그럼 꺼요.”“당신 휴대폰입니다.”“도현 씨가 꺼줘요.”도현이 겨우 몸을 일으켜 협탁 위 휴대폰을 집었다.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한 순간 움직임이 멈췄다.“서윤.”“응.”“일어나야 합니다.”“싫어.”“진짜로.”그 말투가 평소와 달랐다.서윤이 한쪽 눈만 떴다.“몇 시인데.”도현이 화면을 보여줬다.서윤이 벌떡 일어났다.“미쳤어.”“그러니까 어젯밤에—”“말하지 마요.”“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할 말 알아.”서윤은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다시 멈췄다.머리카락은 엉켜 있었고 몸은 무거웠다.새벽에 라면을 먹고.다시 잠들지 않고.그 뒤로도 한참을 깨어 있었으니 당연했다.서윤이 도현을 돌아봤다.“누구 책임이에요?”“라면 먹자고 한 사람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그 뒤는?”“제 이름 부르라고 한 사람도.”“차도현.”“네.”“오늘 말 많네.”도현이 웃었다.“빨리 씻으십시오.”평소보다 준비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서윤은 머리를 제대로 손질할 시간도 없어 낮게 묶었다.도현은 셔츠 단추를 채우며 주방으로 나왔다.“커피라도 마십니까.”“시간 없어.”“차에서 마시죠.”“좋아요.”서윤은 가방을 챙기다가 도현을 봤다.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잠깐.”그녀가 다가가 매듭을 바로잡았다.“도현 씨도 정신없네.”“누구 때문에 세 시간도 못 잤는데요.”서윤의 손이 멈췄다.“그 말 하지 말랬죠.”“어젯밤에만.”“오늘까지 연장.”“일방적이군요.”서윤은 매듭을 조금 세게 당겼다.“불만 있어요?”도현이 내려다봤다.“없습니다.”“좋아요.”넥타이를 정리하고 떨어지려던 순간 도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왜.”짧은 입맞춤이 닿았다.서윤이 눈을 깜빡였다.“지금 이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