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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조작된 과거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6 13:24:15
다음 주 발표 자료를 맡았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기분 좋았다.

오전 내내 자료를 정리하다가 팀장이 내 자리 앞에 멈췄다.

“한 대리.”

“네.”

“잠깐 이것 좀 볼래요?”

그가 내민 건 지난 분기 프로젝트 자료였다.

“이 수치가 이상해서.”

파일을 확인하자 내가 작성했던 보고서 일부가 보였다.

그런데 낯선 문장이 끼어 있었다.

**[대표 지시로 우선 검토.]**

나는 화면을 다시 봤다.

“이거 제가 쓴 거 아닌데요.”

“그래요?”

“네. 원본 확인해 볼게요.”

내 컴퓨터에 저장된 최초 파일을 열었다.

역시 해당 문장은 없었다.

수정 이력을 확인하자 내가 최종 제출한 뒤 다른 계정에서 문장이 추가돼 있었다.

팀장의 표정이 굳었다.

“누가 수정했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군가 과거 자료만 보면 내가 처음부터 대표의 도움을 받아 일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원본 보존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인사팀에도 확인 요청할게요.”

팀장이 나를 잠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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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786화. 의장님의 꽃이 사라졌다

    월요일 오전 7시 20분.한서윤은 거실 식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토요일 꽃꽂이 수업에서 가져온 화병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그런데 차도현이 만든 화병에서 꽃 한 송이가 사라져 있었다.“어?”서윤은 화병을 가까이 살폈다.분명히 연분홍색 장미가 꽂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그녀는 식탁 아래를 내려다봤다.바닥에는 장미꽃 한 송이가 떨어져 있었다.꽃잎은 조금 구겨져 있었고 줄기 끝에는 이빨로 문지른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호두?”소파 아래에 있던 호두가 고개를 내밀었다.서윤은 장미를 집어 들었다.“너 이거 건드렸어?”호두는 대답 대신 꼬리를 흔들었다.그때 도현이 침실에서 나왔다.“아내, 무슨 일입니까?”서윤은 장미를 들어 보였다.“당신 꽃이 없어졌어.”도현은 식탁 위 화병을 확인했다.“떨어진 겁니까?”“아마 호두가 건드린 것 같아.”도현은 바닥과 화병의 위치를 살폈다.“고양이가 닿을 수 있는 곳에 둔 것이 문제였군요.”“그러게. 내가 생각을 못 했어.”도현은 꽃을 받아 들었다.“호두가 씹었다면 입안을 확인해야겠습니다.”서윤은 곧바로 호두를 안아 올렸다.“호두야, 이거 먹었어?”호두는 얌전히 안겨 있었다.두 사람은 떨어진 꽃잎과 줄기를 확인하고, 혹시 삼킨 부분이 있는지 살폈다.도현은 화병 2개를 고양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방으로 옮겼다.“앞으로 꽃은 고양이들이 닿지 않는 곳에 두겠습니다.”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꽃 종류도 다시 확인해야겠어.”도현은 휴대전화로 수업에서 사용한 꽃 목록을 확인했다.고양이에게 위험할 수 있는 꽃이 포함되어 있다면 집 안에 두지 않는 편이 안전했다.“확인되기 전까지는 따로 보관하지요.”“알았어.”서윤은 호두를 내려놓았다.“우리 호두 때문에 당신 작품이 망가졌네.”도현은 비어 있는 화병을 바라봤다.“다시 꽂으면 됩니다.”“속상하지 않아?”“꽃 한 송이보다 호두가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서윤은 미소 지었다.“맞아.”오전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785화. 의장님의 첫 번째 오답

    금요일 오후 8시 10분.거실 테이블 위에는 같은 소설책 2권과 한서윤이 준비한 노트가 놓여 있었다.차도현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서윤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다 읽었어?”“네. 방금 끝냈습니다.”“어땠어?”“예상과 다른 결말이었습니다.”서윤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당신도 범인 못 맞혔지?”도현은 책을 내려놓았다.“범인이 누구인지 맞히는 이야기만은 아니었습니다.”“그 말은 못 맞혔다는 뜻이네?”“아내.”“응?”“독서 모임을 시작하시지요.”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알았어. 오늘은 내가 진행할게.”그녀는 노트를 펼쳤다.“먼저 각자 예상했던 결말부터 이야기하자.”도현은 자신이 적어 둔 메모를 꺼냈다.“저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역무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왜?”“당시 운행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고, 편지가 발견된 장소에도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아니었잖아.”“그렇습니다.”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편지 받은 여자가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어.”“결과적으로 그 추측도 틀렸습니다.”“맞아.”서윤은 웃으며 펜을 들었다.“그러니까 오늘은 둘 다 오답이네.”도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습니다.”“의장님도 소설 앞에서는 틀릴 수 있구나.”“당연한 일입니다.”도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다만 다음에는 조금 더 정확하게 추리해 보겠습니다.”서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다음에도 추리소설 읽으려고?”“아내께서 로맨스 소설을 고르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기억하고 있었어?”“약속했으니까요.”토요일 오후 11시 40분.서윤은 서점의 로맨스 소설 코너 앞에 서 있었다.남편과 함께 읽을 다음 책을 고르는 중이었다.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하려고 했다. 하지만 책장을 살피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도현이 어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지 궁금해졌다.서윤은 책 3권을 꺼내 계산대 위에 놓았다.첫 번째는 오랜 친구가 연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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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오후 7시 30분.한서윤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거실로 나왔다.차도현은 서재에서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도현 씨, 그거 뭐야?”“아내와 함께 읽을 책입니다.”서윤은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갔다.“벌써 골랐어?”“네. 어제 말씀하셨으니까요.”도현이 건넨 책은 280페이지 분량의 장편소설이었다.표지에는 비가 내리는 기차역이 그려져 있었다.제목은 ‘마지막 열차가 떠난 뒤’였다.“추리소설이야?”“사람이 사라진 뒤 남겨진 기록을 따라가는 이야기라고 합니다.”“당신이 좋아할 만한 책이네.”“아내도 흥미롭게 읽으실 것 같아 골랐습니다.”서윤은 책 뒷면의 소개를 읽었다.20년 전 폐쇄된 기차역에서 발견된 편지 한 통.편지의 수신인을 찾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드러나는 이야기였다.“재미있겠다.”“다만 조건이 있습니다.”서윤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조건?”“서로 먼저 읽은 내용을 알려 주지 않는 겁니다.”“스포일러 금지?”“그렇습니다.”서윤은 웃었다.“알았어. 그럼 어디까지 읽을까?”“우선 80페이지까지 읽고 이야기하시지요.”“오늘?”“이번 주 금요일까지면 충분하겠습니다.”서윤은 책을 받아 들었다.“좋아. 금요일 저녁에 우리 둘만의 독서 모임이네.”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약속하겠습니다.”화요일 오전 10시 40분.서윤은 회사에서 문화사업 시범 전시의 후속 개선안을 작성하고 있었다.오재민 주임이 정리한 자료에는 방문객 설문과 참여 상점 의견이 구분되어 있었다.서윤은 자료를 읽다가 한 부분에서 멈췄다.전시 참여 상점 가운데 한 곳에서 사진 자료의 추가 사용을 문의한 내용이었다.“오 주임.”“네, 한 총괄님.”“이 사진을 다른 행사에도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인가요?”“네. 참여하셨던 가게에서 지역 행사에 활용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그럼 사진의 권리 관계부터 확인해야겠네요.”오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촬영자가 별도로 있는 사진도 포함돼 있습니다.”“그렇다면 가게 주인분의 동의만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783화. 여섯 사람이 읽는 한 권의 책

    토요일 오전 10시 20분.한서윤은 평소보다 일찍 서점에 도착했다.오늘은 영업을 마친 뒤 첫 독서 모임이 열리는 날이었다.참가자는 6명. 오후 6시 20분부터 7시 50분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다.서윤은 미리 준비한 의자와 테이블의 위치를 확인했다.독서 모임을 위해 평소 서점 배치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안쪽 테이블 2개를 붙이고 의자 6개를 배치하는 정도였다.그녀는 통로를 걸어 보았다.책장 앞을 지나 출입문까지 이동하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이 정도면 괜찮겠네.”서윤은 테이블 위에 작은 안내문을 놓았다.‘오늘 오후 6시 20분부터 예약 독서 모임이 진행됩니다.’이어서 계산대의 영업시간 안내를 확인했다.일반 손님을 받는 시간은 평소처럼 오후 6시까지였다.독서 모임 때문에 영업시간을 줄이지 않기로 한 결정도 그대로 유지했다.오후 1시 30분.차도현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서윤은 계산대에서 고개를 들었다.“도현 씨, 오늘 일찍 왔네?”“오후에 별도 일정이 없어 들렀습니다.”도현은 안쪽에 놓인 테이블을 바라봤다.“오늘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지요?”“응. 저녁에.”“준비는 끝났습니까?”“거의. 책만 한 번 더 확인하면 돼.”서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가리켰다.이번 모임에서 읽을 책은 일상 속 선택과 관계를 다룬 에세이였다.참가자들은 각자 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가져오기로 했다.“아내도 모임에 참여하십니까?”“아니. 오늘은 공간만 제공하기로 했어.”“그렇군요.”“모임 진행은 운영자분이 하실 거야. 나는 시작할 때 안내만 하고.”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역할을 구분하신 건 잘하셨습니다.”서윤은 웃었다.“당신한테 배웠지.”도현은 창가 책상으로 걸어갔다.“그렇다면 저는 평소처럼 책을 읽겠습니다.”“응. 당신 자리 비워 뒀어.”오후 4시 10분.서윤은 새로 들어온 책을 진열하고 있었다.한 손님이 계산대에 책 2권을 올려놓았다.“사장님, 오늘 저녁에 독서 모임이 있나 봐요?”“네. 처음으로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782화. 서점에 찾아온 뜻밖의 제안

    토요일 오후 4시 10분.한서윤은 계산대에서 새로 들어온 책의 가격표를 정리하고 있었다.창가에는 차도현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가끔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릴 만큼 서점 안은 조용했다.그때 출입문이 열렸다.“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들어온 사람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베이지색 재킷에 짙은 갈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여성은 책장을 둘러보다가 서윤에게 다가왔다.“혹시 여기서 그림 전시도 하셨나요?”“네. 얼마 전에 공동 전시를 진행했어요.”“아, 맞군요. 제가 조금 늦었네요.”여성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지인이 여기서 그림을 봤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벌써 끝났나 봐요.”“네. 2주 동안 진행했어요.”“다음 전시 계획도 있으신가요?”서윤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정해진 일정은 없어요.”여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명함을 꺼냈다.“저는 동네에서 작은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서윤은 명함을 받아 들었다.“그러시군요.”“회원들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공간을 찾고 있는데,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요.”서윤은 서점 안을 둘러봤다.“몇 분 정도 모이시나요?”“보통 6명에서 8명 정도예요.”“정기적으로 모이시는 건가요?”“한 달에 2번 정도요.”여성은 덧붙였다.“물론 공간을 그냥 사용하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대관료가 필요하다면 지불할 생각입니다.”서윤은 잠시 생각했다.서점은 주말에만 운영하고 있었다. 독서 모임을 받으려면 영업시간과 다른 손님들의 이용을 함께 고려해야 했다.“운영 방식부터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그럼 검토해 주실 수 있을까요?”“네. 모임 시간과 진행 방식을 보내 주시면 살펴보겠습니다.”여성은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오후 5시 30분.여성이 돌아간 뒤 서윤은 명함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도현은 읽던 책을 덮고 다가왔다.“아내, 무슨 제안을 받으셨습니까?”“독서 모임을 여기서 하고 싶으시대.”“정기 대관입니까?”“응. 한 달에 2번 정도.”도현은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781화. 오래된 사진 속의 약속

    토요일 오후 5시 40분.한서윤은 서점 계산대에 앉아 방금 찍은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창가에서 책을 읽는 차도현의 모습이었다.18년 전 오래된 서점에서 촬영된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니 차이가 더욱 선명했다.젊은 시절의 도현은 혼자 책을 읽고 있었고, 지금의 도현은 서윤이 운영하는 서점에 앉아 있었다.서윤은 두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웃었다.“도현 씨.”“네.”“당신은 책 읽을 때 자세가 거의 안 변했어.”도현은 책에서 시선을 들었다.“그렇습니까?”“응. 고개를 조금 숙이는 것도 똑같아.”“오랫동안 익숙해진 자세라 그렇겠지요.”서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그런데 옛날 사진을 보니까 궁금한 게 생겼어.”“무엇입니까?”“그때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어?”도현은 책장을 넘기려던 손을 멈췄다.“갑자기 그걸 묻는 이유가 있습니까?”“그냥. 지금의 당신이랑 얼마나 달랐는지 궁금해서.”도현은 잠시 생각했다.“그때는 제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지금도 그렇잖아.”“그렇군요.”“그럼 변한 게 없네?”도현은 책을 덮었다.“있습니다.”서윤은 그를 바라봤다.“뭔데?”“그때는 일을 마치고 돌아갈 집에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서윤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지금은 다릅니다.”“나 때문에?”“아내와 호두, 구름이 때문이지요.”서윤은 웃었다.“호두랑 구름이까지 꼭 넣어야 해?”“빼놓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현의 옆으로 다가갔다.“그럼 오늘도 우리 집에 같이 돌아가자.”도현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마감 시간까지 20분 남았습니다.”“알아. 조금만 더 기다려.”“기다리고 있겠습니다.”월요일 오전 10시 10분.회사에서는 문화사업 시범 전시의 최종 결과 보고가 진행됐다.윤석재 본부장과 남기준 과장, 정하린 대리가 회의실에 모였다.서윤은 운영 결과를 정리한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이번 시범 전시는 예정된 2주 동안 운영됐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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