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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건 계약
영혼을 건 계약
مؤلف: 차차빛

제1화

مؤلف: 차차빛
진지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지희가 끝내 대답하지 않자 서주훈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이어진 끝에 진지희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때 할 말이 있었어요.”

“무슨 말? 무슨 일 있었어?”

서주훈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

“이렇게 멀쩡한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서주훈은 진지희가 전화했던 이유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라가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하루 종일 곁에 있어 줘야 한다고 분명 말했잖아. 그런데도 계속 전화했던 이유가 뭐야?”

“지희야, 내가 전에 분명 말했지. 그 잘못된 마음은 인제 그만 접으라고. 나는 네 삼촌이야. 우리는 절대 남녀 사이로 지낼 수 없어.”

“다음에 또 이럴 거면 그냥 이 집에서 나가.”

말을 마친 서주훈은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방문을 세게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래층에는 진지희만 홀로 남겨졌다.

진지희는 계단을 올라가는 서주훈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삼촌, 죄송해요. 앞으로는 그럴 일 없어요. 저는... 이미 죽었거든요.”

목소리가 너무 작았기에 이미 위층으로 올라간 서주훈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진지희도 개의치 않았다.

다시 소파에 앉은 진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지난날을 떠올렸다.

사실 서주훈은 친삼촌이 아니라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진지희는 서주훈만 졸졸 따라다니며 오빠라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서주훈은 언제나 인내심 있게 바로잡아 주었다.

“오빠가 아니라 삼촌이지.”

정말로 호칭을 바꾸게 된 건 여덟 살 되던 해였다.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진지희는 서주훈의 손에 이끌려 서씨 집안으로 들어갔다.

진지희는 서주훈이 정성껏 키운 한 떨기 장미 같은 존재였고, 서주훈은 자신의 모든 사랑을 모두 진지희에게 쏟아부어 길렀다.

처음 서씨 집안에 들어왔을 때, 진지희는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라는 생각에 불안해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서주훈은 바쁜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끝까지 곁을 지키며 진지희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며 재워 주었다.

진지희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잔병치레가 잦았고, 약에 의지해 살아왔다.

열두 살이 되던 해, 서씨 집안 사람들은 약해서 늘 약을 달고 사는 아이를 계속 키울 필요가 있느냐며 하나둘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모두 서주훈에게 진지희를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서주훈은 끝내 거절했다.

차라리 독립해 집에서 나갈지언정 진지희만큼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후 서주훈은 자신의 힘만으로 SQ 컴퍼니를 창업했고, 서씨 집안의 SS그룹에 못지않을 만큼 성장시켰다.

그제야 서주훈과 집안 사람들 관계도 서서히 회복됐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학교 소풍을 갔다가 갑작스러운 산사태를 만났고,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가장 위험했던 그때, 서주훈은 자신의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속 깊이 들어와 진지희를 구해 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진지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기세로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들어주었다.

하지만 진지희의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직후의 일이었다.

그때 역시 몸 상태가 유난히 좋지 않았다.

한 번은 열이 심하게 올라 병원으로 실려 갔고, 사흘 동안 입원한 끝에 겨우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진지희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서주훈을 꼭 끌어안은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흐느끼며 물었다.

“삼촌, 저 죽어요?”

그때 서주훈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희야.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널 내 곁에서 데려갈 수 없어.”

“설령 그 사람이 저승사자, 염라대왕이라도 마찬가지야.”

“널 데려가면 내가 가서 다시 빼앗아 올 거야.”

그때의 서주훈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8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진지희를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강도가 집 안으로 침입해 진지희를 열 번이 넘게 찔렀다.

그리고 진지희는 몇 번이고 서주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몇 번이고 전화를 끊었다.

고열에 시달렸던 유하라를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유하라가 두 사람의 삶에 들어온 건 석 달 전이었다.

그날 진지희는 잠든 서주훈의 입술에 몰래 입을 맞췄고 예상과 달리 서주훈은 그대로 눈을 떴다.

서주훈은 차갑게 얼굴을 굳힌 채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니?”

이미 들킨 이상 진지희는 숨기지 않고 용기를 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서주훈의 눈에는 황당함만 가득했고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진지희를 거절했다.

진지희의 마음을 완전히 접게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맞선까지 봤다.

결국 모든 면에서 빠질 것이 없었던 유하라를 곁에 두었고, 매일 진지희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진지희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수차례 서주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그중 한 번은 유하라가 대신 전화를 받았지만 진지희는 살려 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먼저 들려온 건 유하라의 목소리였다.

[지희야, 무슨 일이야? 주훈이가 지금 나 죽 끓여 주고 있어서 전화받을 시간이 없어.]

그 말을 끝으로 유하라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전화가 끊긴 바로 그 순간, 진지희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죽은 뒤에도 미련 때문에 영혼은 좀처럼 흩어지지 않았다.

그 이상을 알아챈 염라대왕이 직접 진지희를 찾아왔고, 여자는 그 기회를 빌려 염라대왕과 거래했다.

영혼이 완전히 소멸해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는 것을 대가로, 7일 동안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자신의 마지막 생을 정리할 시간을 얻었다.

진지희는 달력이 걸린 벽 앞으로 걸어갔다.

서주훈이 조금만 더 세심하게 살펴봤다면 알았을 것이다.

그 달력에는 종이가 단 일곱 장만 남아 있었고 진지희는 천천히 달력 한 장을 찢어 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삼촌, 오늘은 삼촌과 작별하는 첫 번째 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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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을 건 계약   제24화

    결국 김주훈은 떠나고 말았다.노지희는 혼자 퇴원 절차를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주훈에게 병원비를 보냈다.김주훈은 받고 싶지 않았지만, 이어진 노지희의 한마디에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후배님도 집안 형편 어렵잖아요. 너무 무리하지 마요. 내 병원비 정도는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나 때문에 후배님이 알바를 한탕 더 뛰어야 한다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요]”김주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최근 들어 꿈꾸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자기 말과 행동도 점점 꿈속의 그 사람을 닮아가고 있었다.하지만 꿈속에서는 SS그룹의 후계자였고, 집안과 등을 돌린 뒤에도 자신의 능력만으로 새롭게 사업을 일으킨 재계의 떠오르는 루키였다.반면 김주훈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아직 졸업조차 하지 않은 가난한 대학생일 뿐이었다.기숙사로 돌아온 김주훈은 풀이 죽어 침대에 몸을 던졌다.모든 것이 분명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어째서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기숙사 밖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시간을 확인한 김주훈은 수업이 끝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창밖으로는 삼삼오오 지나가는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고, 복도마저도 청춘의 활기로 가득했다.그 모습은 적막한 기숙사 방 안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문이 갑자기 열리며 문밖의 빛이 방 안을 환하게 비추었지만, 문 뒤쪽 침대만은 여전히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몇몇 룸메이트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어떤 이는 공부 이야기를 했고 어떤 이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한동안 룸메이트 가운데 누구도 김주훈이 이미 기숙사에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시간이 더 흐른 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켜졌지만, 룸메이트는 여전히 김주훈이 돌아온 것을 보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김주훈 저 녀석, 평소엔 제일 성실한 애였는데 오늘은 왜 이래? 하루 종일 수업도 안 오더니 이 시간까지 안 들어왔네.”다른 룸메이트는 그 말

  • 영혼을 건 계약   제23화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영혼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자신이 했던 마지막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했다.아쉬움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끝내 하지 못한 말이 하나 있었다.다음 생이 있다면, 더는 그 남자를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그날 정말로 자신이 그대로 세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노지희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은 이상, 더는 김주훈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번 생만큼은 자신을 위해 살고 싶었다.노지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오후였다.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와 새하얀 천장, 손등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바늘의 통증, 그리고 옆에 걸려 있는 수액을 보는 순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고개를 돌리자 병상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김주훈이었다.김주훈은 침대 옆에 엎드려 있었는데 잠도 편히 자지 못한 듯했다.턱에는 수염이 거뭇하게 자라 있었고, 지난밤 내내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르고 다시 설렜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지금 김주훈을 바라보는 노지희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염라대왕은 찾아왔을 때 한 가지 사실을 더 알려 주었다.당시 서주훈이 거래하며 앞으로의 모든 생과 모든 재산을 대가로 두 사람의 마지막 생을 바꾸기로 했었다.그리고 원래대로라면 두 사람 모두 모든 기억을 완전히 잃어야 했다.하지만 서주훈은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몰래 자신의 기억 일부를 남겨 두었고, 어디선가 인연석 하나를 구해 두 사람의 이름까지 새겨 넣었다고 했다.그래서 노지희와 김주훈은 둘 중 한 사람은 희미한 기억만 남기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염라대왕이 찾아와 모든 진실을 알려 주었고, 노지희의 기억도 모두 돌려주었다.전생을 회상하다가 정신이 든 노지희는 다시 김주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전생에서나 이번 생에서나, 김주훈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내가 사랑할 때는 밀어내고 마침내

  • 영혼을 건 계약   제22화

    노지희는 아주 길고 긴 꿈을 꾸었다.꿈속 주인공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노지희는 꿈속의 사람들이 바로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꿈속에는 김주훈과 이름은 같지만 성은 다른 한 남자가 있었다.남자는 가난한 대학생이 아니라 SS그룹의 후계자였고, 집안을 떠나고 후계자 승계까지 포기했다.그러면서까지 자신과 이름은 같지만 성은 다른,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여자아이를 끝까지 키워 준 사람이자 가장 아끼는 삼촌이었다.남자는 그 여자아이를 키웠고, 넘칠 듯한 사랑을 주었으며, 별을 원하면 따다 줄 만큼 극진히 사랑으로 키웠다.8살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남자는 무려 10년 동안 여자아이를 키웠지만 여자아이는 염치도 없이 그 남자를 이성적인 감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아무도 여자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건 누구보다 여자애를 아껴 주던 삼촌인 그 남자도 마찬가지였다.서주훈이라는 남자는 순식간에 여자아이에게 주었던 모든 관심과 사랑을 끊기 시작했다.끊임없이 맞선을 보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모든 조건이 탐탁한 약혼녀를 집으로 데려왔다.서주훈은 그렇게 하면 여자아이가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훗날 진지희라는 소녀가 강도를 만나 집 안에서 여러 차례 칼에 찔렸을 때도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떠올린 사람은 여전히 서주훈이였다.진지희는 서주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남자는 받지 않았다.그날 서주훈은 약혼녀가 열이 났으니 하루 종일 곁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서주훈은 도대체 언제부터 진지희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된 걸까?아마도 진지희가 용기를 내 고백했던 바로 그날부터였던 것 같았다.서주훈은 점점 진지희를 차갑게 대했고, 결국 그 여자아이는 죽어버렸다.그리고 시신은 범인에 의해 옷장 안에 유기되었다.진지희는 끝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삼촌의 마지막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진지희의 영혼은 오랫동안 본인 시신의 곁을 줄곧 떠나지 못했다.영혼에게는 감정이 없는데도 노지희는 이상하게도

  • 영혼을 건 계약   제21화

    “오늘 나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노지희는 가슴속의 미묘한 감정을 애써 눌러 담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김주훈은 화끈거리는 얼굴이 아직 다 식지 않은 상태였고, 노지희의 질문을 듣자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김주훈은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노지희에게 건네며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선배, 이거 받아 줘요.”선물을 주려는 것을 본 노지희는 황급히 봉투를 다시 밀어주며 손사래를 쳐 거절하려 했다.하지만 김주훈은 마치 노지희의 행동과 생각을 이미 예상한 것처럼 곧바로 봉투 안의 물건을 꺼냈다.하얀 니트 목도리였다.자세히 보면 크기가 제각각인 뜨개질 자국이 보여 한눈에 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어진 김주훈의 말은 그 생각을 더 확신하게 했다.“지금은 여유롭지 않아서 선배한테 비싼 선물을 해 줄 수 없어요. 이 목도리는 내가 직접 뜬 거예요.”“처음 떠 보는 거라 아직 서툴러서 파는 것만큼 예쁘진 않지만, 선배가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한마디 한마디가 여우처럼 계산이 깔린 것 같았다.또한 붉게 달아오른 김주훈의 얼굴까지 더해지면, 이렇게 진심 어린 모습을 보고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적어도 다른 사람이라면 말이다.하지만 노지희는 김주훈이 내민 목도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남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당황해 손을 내저으며 얼굴까지 붉혔다.“미안한데, 이런 직접 뜬 목도리 같은 선물은 받을 수 없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는 거라면 이런 선물은 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노지희는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다.분명 완곡한 거절이었지만, 오히려 김주훈에게는 한 걸음 더 다가갈 핑계가 되었다.김주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이 품어 왔던 고백을 아무런 꾸밈도 없이 그대로 꺼내 놓았다.“그럼 선배, 나에게 선배의 남자친구가 될 기회는 줄 수 있어요?”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며 김주훈은 노지희에게 늘 진심으로 대했다.노지희가 단 한 번도 김주

  • 영혼을 건 계약   제20화

    기숙사 안에서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며 이어가던 이야기가 겨우 진정되었다.그리고 잠시 쉬려고 하던 그때 노지희의 휴대폰에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고개를 내려 확인해 보니 김주훈이었다.[선배님, 오늘 저 때문에 아침밥 다 쏟으셨잖아요. 정말 죄송해요. 괜찮으시다면 다음에 제가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도 될까요?]어깨 위로 불쑥 머리 하나가 튀어나와 노지희의 휴대폰 화면을 쓱 훔쳐보더니, 곧이어 류영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봐봐, 밥까지 사 준다잖아. 듣기로는 집안 형편도 많이 어렵다던데, 이게 좋아하는 게 아니면 뭐겠어?”김주훈의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순간, 노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이상하게도 김주훈의 집안 형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도리어 집이 꽤 잘 살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하지만 류영서가 김주훈의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말하자 노지희는 그제야 문득 떠올렸다.노지희는 김주훈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김주훈은 바로 지난해 수석이었고,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부모님을 위해 A대학교를 선택한 사람이었다.당시 이 일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효자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모에게 발목이 잡혔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다.더 좋은 학교를 선택했다면 장래가 전도유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김주훈 본인은 그런 말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김주훈은 자신의 능력이라면 학교 하나 때문에 달라질 일은 없으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그 이야기에서 김주훈의 성적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은 남자의 가정환경이었다.고등학생 때부터 김씨 집안의 생활비는 사실상 김주훈 혼자서 벌어서 댔다.그 사실을 떠올린 노지희는 먼저 호기심 많은 룸메이트를 밀어내고 재빨리 자신의 침대로 들어가 침대 커튼을 닫았다.그러고는 진지한 마음을 담아 문자를 보냈다.[정말 괜찮아요, 후배님. 곧 기말고사니까 지금은 공부에 더 집중해야 할 시기잖아요. 후배님 실력이면 장학금 받는 건 문제없을 거라고 믿어

  • 영혼을 건 계약   제19화

    트레이가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기울어졌고, 국 대부분이 반대편으로 쏟아졌으며 지나가던 남학생의 몸 위로도 뜨거운 국물이 일부 튀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지희는 화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앗!”뜨거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뜨거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김주훈은 가슴과 배에 전해지는 통증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신음을 들은 노지희는 깜짝 놀라 서둘러 물었다.“저기, 괜찮으세요?”김주훈은 몇 번 깊게 숨을 쉰 뒤에야 겨우 진정되어 노지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괜찮아요. 죄송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음식을 쏟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다시 사드릴게요.”너무도 자연스럽게 사과하는 모습에 노지희는 오히려 순간 멍해졌다.‘어떻게 다친 사람이 제일 먼저 사과하고 보상해 주려는 거지?’게다가 이 일은 전적으로 김주훈의 잘못도 아니었다.“괜찮아요. 제가 다시 사서 먹으면 돼요.”노지희는 바닥에 쏟은 국을 아쉽게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은 뒤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김주훈에게 건넸다.그러고는 김주훈의 옷에 묻은 얼룩을 가리키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가격이 얼마 안 하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뜨거운 국물이 튄 곳은 정말 괜찮으세요?”김주훈은 노지희가 건네준 휴지를 받아 조심스럽게 옷을 살짝 벌려 몸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낸 뒤에야 머쓱한 듯 노지희를 향해 웃어 보였다.그때 막 트레이를 내려놓고 돌아온 류영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무슨 일이야?”노지희의 설명을 간단히 들은 류영서는 한산한 식당을 한 번 둘러본 뒤, 눈앞에서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는 김주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하지만 노지희에게는 굳이 말해 주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잖아? 두 사람도 그런 건가 보네.”류영서는 그렇게 말한 뒤 몸을 숙여 노지희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생긴 것도 꽤 잘생겼는데? 어때? 연락처라도 교환해서 계속 연락해 볼래?”말을 마치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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