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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당신이 사라지며 남긴 박자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Last Updated: 2026-03-09 23:13:56

“사라지는 게 아니라… 네 안으로 스며드는 거다. 네가 노래를 부르면, 나는 다시 살아난다.”

“그럼 계속 노래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럼… 결국 제가 노래할수록 당신이 더 흩어지면 어떡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허밍을 짧게 흘렸다.

방 안 공기가 은빛으로 번지고, 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밤이 깊었다.

나는 기타를 무릎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코드를 잡았다.

오늘은 세 곡 중 마지막 곡을 다시 불러봤다.

“바람은 네 이름을 흘리고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네”

노래가 끝났을 때, 그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더 희미해졌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해서 곡을 완성하면,  결국 당신이 사라지는 거 아니에요?”

그는 내 옆에 앉아, 나를 바라봤다.

“설령 사라진다 해도…  네 노래에 내가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의 말은 위로 같았지만, 동시에 칼날 같았다.

내가 꿈꾸던 무대와, 지켜내고 싶은 존재가

서로 다른 길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녹음실 문을 닫자, 세상과는 다른 공기가 감돌았다.

벽은 하얀 스펀지로 덮여 있고, 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헤드폰을 귀에 쓰는 순간, 나는 내가 더 이상 평범한 알바생이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묘한 떨림을 느꼈다.

“준비됐나요?”

재운이 유리창 너머에서 물었다.

단정한 셔츠, 꼿꼿한 어깨,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타를 무릎에 올리고 숨을 고르자, 빨간 불빛이 켜졌다.

레코딩 시작.

“창문 틈 바람 사이 오늘이 나를 부르면”

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공간을 채웠다.

처음에는 떨렸지만, 곡이 흐를수록 조금씩 안정됐다.

그러나 후렴으로 넘어가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단어 하나가 목구멍에 걸렸고, 손끝이 순간 흔들렸다.

그 순간 아주 익숙한 낮은 허밍이 귓가를 스쳤다.

공기가 살짝 뒤집히며, 방금의 불안정이 사라졌다.

나는 다시 박자를 맞춰 노래를 이어갔다.

녹음이 끝나자, 재운이 천천히 마이크를 껐다.

“좋습니다. 조금 거칠었지만, 힘이 있었어요.”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동시에 두 눈이 무겁게 젖어들었다.

허밍의 주인을 떠올리는 순간,

내 옆에 서 있던 김한의 손끝이 이미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를 붙잡았다.

“왜 또 그렇게 했어요? 제가 실수하면 그냥 넘어가도 되잖아요.”

그는 조용히 웃었다.

“네가 무대에서 멈추는 걸 보고 싶진 않았다.”

“근데 그럴수록… 당신이 사라지잖아요.”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창가에 기대어 바람을 마시듯 숨을 내쉬었다.

“흩어지는 게 두렵지 않다. 두려운 건… 네 노래가 멈추는 거다.”

“저는 달라요. 제 노래보다, 당신이 멈추는 게 더 무서워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도시 불빛이 창문에 비치며 우리 얼굴 위에 깜빡였다.

그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와, 마치 오래된 약속을 건네듯 말했다.

“나는 네 노래 속에서 살아남을 거다. 그러니 노래해라.

내가 사라진다 해도, 네가 부르면 나는 돌아온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그의 손등을 꼭 붙잡았다.

그러나 그 손은 점점 차갑고 가벼워지고 있었다.

며칠 뒤, 다시 녹음실. 이번에는 세 곡 중 마지막 곡이었다.

내 마음에 가장 가깝고, 동시에 그와 함께 만든 곡.

헤드폰을 쓰고, 기타를 잡는 순간 알았다.

이 노래는 그와 나 사이에 놓인, 가장 소중한 증거라는 걸.

“바람은 네 이름을 흘리고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네”

노래가 끝났을 때, 내 눈가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서 재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곡입니다. 수정 씨의 진짜 목소리.”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근데 그 목소리를 만든 건, 내 옆에 없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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