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가마의 문이 열리고, 눈이 부실 정도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여인이 내려섰다. 얇은 비단 옷을 휘날리며 허리를 곧게 편 여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이 마을에 온달이라 불리는 사내의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산기슭 끝자락에 있는 허름한 흙집을 가리켰다. 공주의 시선이 산기슭 위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덩치 큰 사내, 즉 강진우에게로 향했다.
바람이 불어와 공주의 비단 옷자락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지독하게 얽혀 들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역사적 운명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굳건한 표정으로 공주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 공주님과 바보의 기묘한 동거
마을 어귀를 메운 흙먼지 사이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화려한 비단옷을 펄럭이며 걸어오는 여인의 걸음걸이는 거친 흙길 위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궁궐에서 자란 이 특유의 기품은 짚신을 신은 마을 사람들의 초라한 차림새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진우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산지게의 거친 나무 감촉과 코끝을 스치는 진흙 냄새가 이것이 꿈이 아님을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진짜 평강공주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나오던 그 공주가 내 눈앞에 서 있다.'
공주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진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먼 길을 걸어온 듯 비단 옷자락 끝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여린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진우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창공처럼 투명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네가 온달이냐?"
맑고 차분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진우는 허리를 곧게 펴고 공주를 내려다보았다. 현대 대학원생 시절, 밤샘 학회 발표와 까탈스러운 지도교수의 압박 질문 앞에서도 떨지 않았던 배짱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그렇습니다만... 공주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진우의 입에서 나온 말에 마을 사람들은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바보 온달이 감히 공주 마마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머뭇거림 없이 말을 받아서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방 안에서 더듬거리며 문을 열고 나온 노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온달아! 이게 무슨 소리냐? 공주님이라니? 네가 또 사내아이들과 장난을 치다가 괴상한 소리를 하는 게냐?"
노모는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했으나, 주변의 서늘해진 공기와 마을 사람들의 숨죽인 소리를 통해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평강공주는 부드러운 걸음걸이로 노모에게 다가가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왕실의 고귀한 신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주저함이 없는 행동이었다.
"어머님,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궁에서 나온 평강이라 합니다. 전하의 뜻을 거스르고 온달 님과 인연을 맺고자 찾아왔습니다."
"공, 공주님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십니까! 내 자식은 세상이 다 아는 바보요,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입니다. 궁궐의 귀한 공주님께서 어찌 이런 흙구덩이에 들어오신단 말입니까!"
노모는 손을 파르르 떨며 바닥을 짚었다. 황송함과 두려움에 몸을 어쩌지 못하는 노모의 모습에 공주는 품속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놓았다.
비단 주머니가 열리자, 그 안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금팔찌와 보석 장신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제가 궁을 나올 때 가지고 나온 금팔찌입니다. 이것으로 우리 세 사람이 먹고살 터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받아주십시오."
주변에 있던 마을 주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생 구경도 못 해본 거대한 순금 장신구가 흙바닥 위에 굴러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진우는 냉철한 이성으로 상황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밀도와 광택을 보아하니 최소 24K에 가까운 순금이다. 중량은 대략 500그램 이상. 고구려 당시의 물가와 화폐 가치를 고려할 때, 저 정도 자본이면 시골 부락 하나를 통째로 사들일 수 있는 유동성 자금이다. 하지만...'
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재무 관리의 기본도 모르는 위험한 행동이다. 자산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는 무지한 시골 사람들에게 저런 고가의 자산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건, '강도짓 해달라'고 광고하는 꼴 아닌가?'
진우는 주저 없이 앞으로 걸어가 공주가 놓은 비단 주머니를 덥석 낚아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사방을 둘러보며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공주님, 경제적 가치 평가와 리스크 관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으시군요."
"뭐, 무엇이라?"
평강공주는 온달의 입에서 나온 생소하고 이상한 단어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알던 '미친 바보'의 반응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전율하며 절을 하거나, 진짜 바보라면 금을 돌멩이 취급해야 맞았다. 그런데 이 사내는 자신을 질책하는 눈빛으로 단어조차 생경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수많은 관중 앞에서 고가치 자산을 노출하는 것은 범죄 표적이 되기 딱 좋은 행동입니다. 게다가 마을 전체의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실내로 들어가서 지출 계획과 리스크 대책부터 세워야겠습니다."
진우는 공주의 팔을 살짝 잡고 다 쓰러져가는 흙집 내부로 그녀를 안내했다.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봤어? 온달 저 바보 놈이 공주님한테 '리... 뭐시기'라고 이상한 주문을 외웠어!"
"역시 온달이 저 놈은 미친 게 틀림없어! 공주님도 먼 길을 오시느라 정신이 어떻게 되신 게 분명해!"
주민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진우는 공주와 노모를 흙방 안에 앉혔다.
방 안은 습하고 서늘했다. 벽면에는 균열이 가 있었고, 단열재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외부의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있었다.
진우는 정색하며 공주를 바라보았다.
"공주님, 정식으로 묻겠습니다. 정말로 제 처가 되실 생각입니까?"
평강공주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정좌했다. 그녀의 눈빛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다.카이스트 기계공학동 연구실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카이스트가 공동 주관하는 국가적 대형 프로젝트인 '고구려 대기술경 정밀 해제 및 현대 기술 재구성 사업'의 공동 연구진이 도착한다는 전갈이 들려왔다.진우는 실험실 중앙의 대형 정밀 측정기 앞에서 황동 기어의 유격 상태를 조율하고 있었다."강 박사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원으로 파견된 신임 박사님이 도착하셨습니다."연구원 조교의 목소리에 진우는 손에 쥐고 있던 회전 측정기를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실험실의 투명한 유리문이 조용히 열리며, 한 여인이 정갈한 베이지색 정장 차림으로 걸어 들어왔다.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맑고 곧은 눈동자, 그리고 품에 고구려 대기술경 영인본 상자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그 여인이 실험실 안으로 발을 내디븠을 때, 현대의 차가운 연구실 내부 전체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전자기적 파동과 뜨거운 가슴의 소동으로 가득 찼다.진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진우의 눈동자와, 문 앞에 멈춰 선 여인의 시선이 공중에서 완벽하게 일치했다.여인은 진우를 바라보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자료 상자를 놓칠 뻔하며 자리에 굳어버렸다. 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내였으나, 사내의 단단한 어깨와 눈빛을 보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눌려 있던 수천 년 동안의 그리움과 눈물이 쏟아져 내릴 듯 폭발했기 때문이다.여인의 가슴에 걸린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입증에는 세 글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수석연구원 연평강]진우는 숨을 죽인 채 천천히 연평강 박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진우의 발걸음 소리 하나하나마다 고구려 평양성의 대동강 물소리와 가평 자치 영지의 온돌 구들장에서 피어오르던 따스한 온기가 되살아나는 듯했다.진우가 연평강의 코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연평강 박사는 떨리는 입술을 사르르 떨며 진우의 얼굴을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맑은 눈동
모니터 구석의 디지털시계는 진우가 고구려의 세계로 끌려 들어갔던 그 밤의 시간에서 불과 네 시간 남짓 지나있었다."하아... 하아..."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어보았다. 현대의 익숙한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으나, 피부 아래 고구려 전장에서 3세대 강철 거포 V3를 지휘하고 고풍로 용광로의 뜨거운 열기를 버텨내며 다져진 단단한 근육의 감각과 서늘한 강철의 기운은 여전히 생생하게 몸에 아로새겨져 있었다.진우는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가 폈다. 손바닥 안에는 차가운 감촉의 쇳조각 하나가 쥐여 있었다. 그것은 고구려 국립 천문대의 자격루에서 떨어진 낡은 황동 톱니바퀴 조각이었다. 푸른빛 전자기장의 잔재가 은은하게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황동 조각을 바라보는 진우의 두 눈에 붉은 열기가 고였다."꿈이 아니었다... 나는 정녕 고구려에서 온달로서 살아냈고, 백성들을 구했으며, 평강을 만났다."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끌어당겼다. 모니터 화면의 검색창에 '고구려 온달', '평강공주', '아단성 전투'라는 단어들을 빠르게 입력했다.화면에 떠오른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의 학술 기록을 확인하던 진우의 입가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기존의 역사 교과서에 적혀 있던 슬프고 허망한 전설, 즉 바보라 놀림받던 온달이 평강공주와 혼인하여 장수가 되었으나 아단성 아래에서 화살을 맞고 비극적으로 전사했다는 기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새로 재편된 정사 기록들이 수천 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고구려 평원왕 대의 태대형 온달과 평강공주는 독수리 골짜기와 요하 전선에서 과학
평강은 진우의 목을 감아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서방님... 만약 하늘이 서방님을 다른 세상으로 불러간다 해도, 저 역시 무슨 수를 써서든 서방님을 찾아낼 것입니다. 시공간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제 영혼은 오직 당신만을 향해 흘러갈 것입니다. 약속해 주십시오, 다른 세상에서라도 저를 다시 알아보시겠다고!"진우는 평강의 촉촉한 입술에 깊고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약속하오, 평강. 천년의 세월이 지나고 시공간이 바뀐다 해도, 나는 반드시 부인을 다시 찾아내어 내 품에 안을 것이오. 이것은 내 영혼을 건 영원한 맹세요."두 사람의 입술이 은은한 촛불 아래서 포개어졌고, 서로를 향한 영원한 사랑과 서약이 밤하늘의 별빛 아래서 찬란하게 타올랐다.그날 밤, 두 사람은 새로 지은 사저 안방의 따뜻한 황토 구들장 위에서 서로를 향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깊고 아련한 사랑을 나누었다. 훈훈한 구들장의 열기 위로 두 사람의 아련한 숨소리가 어우러졌고, 서로의 몸을 단단히 껴안은 채, 영원한 부부로서의 포옹을 풀지 않았다.다음 날 밤, 마침내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평양 국립 천문대와 대동강 군기시 중앙 고풍로 V4 주변 밤하늘에 기이하고 장엄한 천문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구름 한 점 없는 가을 밤하늘 중앙에 칠색의 전자기적 광륜이 거대한 고리 모양으로 피어오르며, 별자리들의 위치가 기하학적 수식처럼 오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특수 희토류 광석의 자기장과 진우가 집필한 대기술경의 차원 공명이 반응하며, 고구려의 밤하늘에 시공간의 문(空間歪曲)이 환하게 열린
진우는 평강의 손을 꼭 쥐며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부인. 기술이란 어느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법이오. 사람이란 언젠가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지지만, 정밀하게 기록된 지혜는 책이 되어 영원히 살아남아 백성들을 지켜주는 법이지요. 내가 만든 이 공학의 원리들이 이 책으로 남아 고구려의 기틀을 천년 동안 단단하게 지켜줄 것이오."평강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사내는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는 장수가 아니었다. 민초들의 삶을 진심으로 아끼고, 이 나라의 미래를 천년 앞까지 내다보는 진정한 성현이었다.평강은 곁에 놓인 먹돌을 집어 들고 차분하게 먹을 갈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서방님, 저 역시 곁에서 붓을 들겠습니다. 서방님께서 구술하시고 도면을 그리시면, 제가 정갈한 문체와 이두로 정리하여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목판본 책자로 완성하겠습니다.""부인이 나와 함께해 준다면 이보다 더 뛰어난 대기술경이 없겠소."진우와 평강은 은은한 촛불 빛 아래서 서로의 눈을 깊게 응시했다.촛불이 아련하게 흔들리는 누각 안에서, 두 사람은 함께 붓을 들었다. 진우가 현대 공학의 수학적 원리와 수식을 고구려의 언어로 풀어내면, 평강은 특유의 명민한 수리 감각과 정갈한 문장력으로 이를 완벽한 장부와 지침서 형태로 정돈해 나갔다.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붓을 움직이는 소리와 황동 자격루의 톱니바퀴 소리가 밤의 정적을 달콤하게 채웠다.가평의 초라한 흙집 툇마루에서 처음 만났던 바보 온달과 쫓겨난 공주. 온갖 오해와 귀족들의 음모,
수도 평양성을 중심으로 번져 나간 과학과 기술의 불꽃은 이제 고구려 5부 전체와 각 지방 관아, 그리고 변방의 작은 시골 부락에까지 거대한 문명적 혁명의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대동강 하류에 위치한 국립 군기시와 제련 단지는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었다. 가평에서 처음 제작되었던 1세대 고풍로를 넘어, 이제는 수차 여덟 대가 직렬로 연결되어 사시사철 압도적인 풍량을 뿜어내는 초대형 용광로 V4가 고구려 전역에 수십 좌나 세워졌다.그 가마에서 흘러나오는 순도 높은 강철은 무기나 갑옷에만 쓰이지 않았다. 백성들의 손에 들린 단단한 낫과 쟁기, 자갈밭을 가볍게 개간하는 강철 보습, 그리고 튼튼한 도로를 건설하는 철제 구조재로 탈바꿈하여 나라의 기초 체력을 근본부터 바꿔놓았다.진우가 도입한 유체역학 기반의 수차 양수기와 질소 퇴비 정제법은 고구려의 농업 생산량을 예년의 다섯 배 이상으로 튀겨내었다.상습 가뭄 지역이었던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의 논밭마다 청량한 물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곡식 창고마다 만대 이상의 보리와 쌀이 빽빽하게 쌓여갔다. 거리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구걸하던 유민의 모습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백성들은 추위와 기근 대신 따뜻하게 개량된 황토 온돌 기와집에서 비단 옷을 입고 배불리 밥을 먹으며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름을 칭송했다."태대형 마마께서 내리신 강철 쟁기 덕분에 우리 마을 자갈밭이 모조리 기름진 옥토가 되었다네!""평강공주 마마께서 장부를 명확히 정비해 주신 덕에 관아의 수세관들이 쌀 한 톨도 사사로이 수탈하지 못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내린 태평성대가 아니겠는가?"백성들의 환호는 날마다 주작대로를 메아리쳤다.
진우의 품격 높고 겸손한 답변에 뒤에 서 있던 문무백관 수백 명이 일제히 탄성을 내뱉으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과거 상부 고씨 가문 편에 서서 온달을 바보라 업신여기던 일부 대귀족들조차, 이제는 진우의 압도적인 공적과 백성들의 절대적인 추앙 앞에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평원왕은 주작대로 한복판에서 고구려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왕명을 정식으로 선포했다."백관과 온 나라 백성들은 들으라! 오늘부로 부마 온달 대형을 고구려 최고 관직인 정1품 태대형이자 전군을 통솔하는 국가 총사령관에 명하노라! 또한 평강공주를 국가 재정과 산업을 총괄하는 국립 문교 총감으로 임명하여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게 하노라!"수십만 백성들과 대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태대형 마마 만세!""문교 총감 마마 만세!"장엄한 함성이 주작대로를 타고 평양성 전체로 파도처럼 피어올랐다.그날 밤, 안학궁에서 열린 대규모 승전 연회가 끝난 뒤, 진우와 평강은 궁궐 북쪽 언덕 위에 새로 건조 중인 평양 국립 천문대 및 기계 시계탑 공사 현장으로 올라섰다.황토와 내화 벽돌로 단단히 정비된 공사 현장 위에는 수차와 연결된 거대한 황동 톱니바퀴 구동축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아래로는 수십만 기와지붕이 늘어선 평양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백성들이 승전을 축하하며 피워 올린 등불들이 대동강 물줄기 위에 황금빛 은하수를 이루고 있었다.북방의 차가운 저녁바람이 두 사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