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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4 15:39:47

제2화. 완벽한 파멸, 그리고 비 내리는 밤(2)

“어머니가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제 개인 사저에는 발도 들이지 않으시던 분이.”

채원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위층에는 바람난 약혼자와 이복동생. 아래층에는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계모와 회사 임원들.

타이밍이 너무 기가 막히게 들어맞지 않는가.

배정아는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 위에 달그락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네가 귀국을 앞당겼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왔지. 그리고, 처리해야 할 중요한 문제도 있고.”

배정아가 턱짓을 하자, 감사팀장이 두꺼운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직접 열어 보렴.”

채원은 미간을 좁히며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수십 장의 은행 거래 내역서와 해외 페이퍼 컴퍼니의 설립 인가서, 그리고 자금 이체 승인 내역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서류를 빠르게 훑어 내려가던 채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건… 이번 유럽 지사 인수 대금 아닙니까? 이 자금들이 왜 정체불명의 유령 회사로 흘러 들어간 거죠?”

“그걸 왜 나한테 묻니? 승인권자가 바로 너, 한채원 본부장인데.”

“네?”

채원은 황당하다는 듯 서류의 맨 뒷장을 넘겼다.

최종 결재란.

그곳에는 분명히 ‘한채원’이라는 그녀의 친필 사인과 함께, 그녀만 소지하고 있는 개인 보안 OTP 승인 코드가 정확히 찍혀 있었다.

횡령액 자그마치 500억 원.

“말도 안 돼… 이건 조작입니다! 저는 이런 서류에 결재한 적 없습니다!”

“조작? 감사팀이 일주일 밤낮을 새워 교차 검증한 자료다. 네 IP 주소, 네 보안 코드, 네 필적까지 모든 게 완벽하게 일치해. 네가 회장님 몰래 비자금을 조성하려고 유럽 인수 건을 이용했다는 명백한 증거지.”

배정아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채원은 숨을 헐떡이며 서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어머니가 꾸미신 짓이군요. 제가 이번 건만 성공시키면 후계 구도에서 유라가 완전히 밀려날 테니까!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입 닥치지 못해?!”

배정아의 날카로운 호통이 거실을 울렸다.

“어디서 감히 어미한테 누명을 씌워! 핏줄이 천박하니 하는 짓도 천박하기 그지없구나. 쥐새끼처럼 회삿돈이나 빼돌리다니!”

“당장 회장님께 연락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이따위 허접한 조작에 속으실 것 같습니까?”

채원이 떨리는 손으로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수고할 필요 없다. 네 아버지, 한 시간 전에 쓰러지셨어.”

“……뭐라고요?”

“네가 500억을 횡령했다는 감사팀의 보고를 받으시고 충격으로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다. 지금 VIP 병동에 의식 불명 상태로 누워 계시지.”

채원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주던 바람막이가?

그제야 채원은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위층에서 뻔뻔하게 자신을 조롱하던 유라.

그리고 보안 토큰.

자신의 사생활을 유일하게 공유하고, OTP 카드가 있는 금고 비밀번호를 아는 단 한 사람.

“강민호…….”

채원이 이를 악물고 위층을 노려보았다.

계단 중턱에 가운만 걸친 채 서 있는 민호와 유라가 보였다. 유라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채원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민호는 채원의 시선을 피했다.

저 쓰레기 같은 새끼가 자신의 보안 토큰을 빼돌려 배정아에게 넘긴 것이다.

자신이 유럽에 가 있는 동안, 이 완벽한 덫을 짜기 위해서.

“이 더러운 인간들… 나 혼자 죽을 것 같아? 경찰에 신고해서 끝까지 파헤칠 거야. 네년들 짓이라는 거, 내가 무조건 밝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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