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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혼을 위하여
완벽한 이혼을 위하여
Author: 유리구슬

1 화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6-24 15:39:37

제1화. 완벽한 파멸, 그리고 비 내리는 밤(1)

도어락이 열리는 경쾌한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게 들렸다.

삐릭- 덜컥.

한채원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피로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성그룹 전략기획실 본부장으로서 지난 한 달간 매달렸던 유럽 지사 인수합병 건을 마침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내일 오후 비행기로 귀국해야 했지만, 그녀는 일정을 무리하게 당겼다.

내일은 그녀의 약혼자, 강민호와의 교제 3주년 기념일이었으니까.

“민호 씨, 나 왔어요. 놀랐죠?”

현관에 구두를 벗어두며 조용히 불렀지만, 집 안은 고요했다. 채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호의 차는 분명 주차장에 있었는데.

거실로 들어선 그녀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 때문이었다.

민호의 짙은 네이비 넥타이.

그의 하얀 셔츠.

그리고…….

‘……빨간색 레이스 속옷?’

채원의 미간이 차갑게 굳어졌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속옷을 즐겨 입지 않았다. 무엇보다 집 안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낯설고 짙은 향수 냄새.

샤넬 No.5.

그녀의 이복동생, 한유라가 시그니처처럼 뿌리고 다니는 바로 그 향수였다.

채원의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지만 바닥에 점점이 이어진 옷가지들의 궤적은 정확히 2층, 채원과 민호가 함께 사용하는 침실로 향하고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정체불명의 신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 흣… 오빠, 더…….”

“유라야, 잠깐만… 미치겠네, 진짜…….”

채원의 발걸음이 안방 문 앞에서 멈췄다.

문은 아주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새로 적나라한 파열음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채원은 떨리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차갑게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쾅-!

문이 벽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침대 위에서 엉켜 있던 두 남녀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

“…….”

채원은 표정 없이 눈앞의 광경을 응시했다.

자신이 직접 고른 최고급 구스다운 이불 위에서, 자신의 약혼자 강민호와 자신의 이복동생 한유라가 벌거벗은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채, 채원아…….”

민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겨 자신의 하반신을 가리며 침대 구석으로 물러섰다. 평소 그토록 다정하고 지적이었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네가 어떻게… 오늘 안 오고 내일 온다고…….”

“그게 지금 네 입에서 나올 첫 마디니?”

채원의 목소리는 스스로가 듣기에도 섬뜩할 만큼 차분했다.

반면,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린 유라의 반응은 달랐다. 그녀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요염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 언니. 서프라이즈를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이렇게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면 어떡해?”

“한유라, 당장 거기서 안 기어 내려와?”

채원의 서늘한 일갈에도 유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호의 팔짱을 꼭 끼며 뻔뻔하게 맞받아쳤다.

“왜 화를 내고 그래? 언니가 오빠한테 너무 무심했잖아. 매일 회사, 회사, 일, 일! 오빠가 얼마나 외로워했는지 알아?”

“유라야, 그만해…!”

민호가 유라를 말리며 채원의 눈치를 살폈다.

“채원아, 오해야. 이건 그냥… 그래, 실수야! 내가 요새 프로젝트 때문에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고, 술을 좀 마셨더니 제정신이 아니었어.”

“내 침대에서, 내 동생이랑 뒹구는 게 실수라고? 강민호, 넌 쓰레기인 줄은 알았지만 멍청하기까지 하구나.”

채원은 천천히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적막한 방 안을 날카롭게 갈랐다.

“오빠, 변명할 필요 없어.”

유라가 민호의 어깨에 기대며 채원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차피 언니도 알잖아? 오빠가 언니 곁에서 얼마나 숨 막혀 했는지. 완벽한 척, 잘난 척하는 한채원 옆에서 껍데기 같은 약혼자로 지내는 거, 진저리난다고 했어. 안 그래, 오빠?”

유라의 말에 민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비겁한 침묵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채원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3년. 한성그룹의 혼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본가로 들어온 자신을 유일하게 위로해 주었던 남자. 그 다정함이 모두 가식이었고, 열등감의 발로였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그래, 알았어. 그 숨 막히는 약혼, 지금 이 순간부터 끝내줄게.”

채원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더 이상 저 더러운 것들과 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싶지 않았다. 역겨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채, 채원아!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민호가 허둥지둥 침대에서 내려와 채원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채원은 벌레를 털어내듯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더러우니까.”

“채원아, 제발……! 우리 곧 결혼이잖아. 주총도 얼마 안 남았는데, 여기서 파혼하면 너도 타격이 클 거 아니야!”

그의 입에서 나온 ‘주총’이라는 단어에 채원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결국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파혼 자체가 아니라, 파혼으로 인해 날아갈 한성그룹 사위라는 타이틀과 지분이었다.

“걱정 마. 타격은 나만 받는 게 아닐 테니까. 강민호, 너희 집안이 우리 회사에서 따낸 하청 계약들, 내일부터 전부 날아갈 줄 알아.”

채원은 핏기가 가신 민호의 얼굴을 뒤로하고 방문을 나섰다.

“언니! 어디 가! 아직 내 이야기 안 끝났어!”

뒤에서 유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채원은 무시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머리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당장 파혼 절차를 밟고, 저 두 인간을 어떻게 매장해버릴지 계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1층 거실로 내려온 채원의 발걸음은 다시 한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일찍 왔구나, 채원아.”

넓은 거실 한가운데.

최고급 가죽 소파에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중년 여성.

채원의 계모이자, 한성그룹의 안주인인 배정아였다.

그녀의 곁에는 그룹 법무팀장과 감사팀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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