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제44화. 무대 위에서 발가벗겨진 도둑(2) “아, 해킹. 조작. 뻔한 변명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채원이 강민우의 말을 가볍게 끊어버리며 서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무대 구석의 방송 콘솔 부스를 향해 손짓했다. 그곳에는 채원의 지시를 받은 오 대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음향 기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럼, 이 오디오 파일도 조작인지 다 같이 들어보죠. 어젯밤, 한성 어패럴 지하 3층 주차장에서 녹음된 파일입니다.” 지잉-. 스피커에서 거친 잡음이 일더니, 곧이어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볼룸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그 완벽한 승리의 순간. “그 철학, 참 얄팍하네요.” 장내의 스피커를 찢을 듯이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가 멈췄다. 플래시 불빛도 사그라들었다. 수백 명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일제히 쏠렸다. 무대 바로 아래, 단상 앞. 마이크를 쥔 채원이 싸늘한 얼굴로 유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채원……! 네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유라가 마이크를 쥔 손을 덜덜 떨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VIP석의 배정아와 강민우도 놀라 자리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질의응
제43화. 무대 위에서 발가벗겨진 도둑(1) 찰칵! 찰칵, 찰칵! 눈이 멀 것 같은 수백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한성호텔 그랜드 볼룸을 대낮처럼 하얗게 물들였다. 한성 어패럴 F/W 신제품 런칭 발표회. 국내 굴지의 패션 대기업이 사활을 건 메인 컬렉션을 공개하는 자리인 만큼, 장내에는 주요 언론사 기자들과 패션계 VIP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무대 뒤 대기실. “야! 드레스 어깨선이 왜 자꾸 우는 거야? 똑바로 못 잡아?!” 유라가 전신 거울 앞에서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수석 재단사가 땀을 뻘뻘
“강민우가 오 대리를 접촉했을 때부터, 사모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오 대리는 사모님의 최측근입니다. 아마도 사모님께서 일부러…… ‘가짜 정보’ 내지는 ‘치명적인 덫’이 숨겨진 디자인을 강민우 측에 넘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진의 굳어있던 표정이 서서히 풀리며, 입가에 실소가 번졌다. “하. 그렇지. 한채원이 순순히 당할 리가 없지.” “현재 한유라 측은 그 디자인이 완벽한 원본인 줄 알고, 당장 내일모레 열릴 런칭 발표회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마우스에 손을 얹고, 진짜 런칭 발표회에 올릴 ‘진짜 디자인’ 파일의 암호를 해제했다. 전쟁의 서막이었다. 밤 10시. 한성 어패럴 본사 지하 3층 주차장. 인적이 끊긴 어두운 구석. 강민우의 벤츠 조수석 문이 열리고 오 대리가 황급히 올라탔다. “가, 가져왔습니다. 실장님.” 오 대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은색 USB를 내밀었다. 민우가 신경질적으로 낚아채며 실내등을 켰다. “안 걸렸지? 한채원 그 독사가 눈치는 못 챘고?” “네, 넵! 오늘 팀장님이 외부 미팅 가신 틈을 타서 금고 열고 복사했습니다.
제42화. 썩은 미끼를 문 쥐새끼들(2) 같은 시각. 한성 어패럴 본사, 수석 디자이너실. 블라인드가 굳게 쳐진 어두운 사무실 안. 채원은 모니터의 푸른 불빛만을 의지한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서늘하고 창백한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소름 끼치도록 차갑고 고요할 뿐이었다.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팀장님. 저 오 대리입니다.” “들어와.” 채원의 건조한 목소리에 오 대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
평창동을 오르는 산길. 양옆으로 늘어선 수십 년 된 소나무들이 기괴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롤스로이스 팬텀의 뒷좌석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어제는 꽤 볼만했어.”침묵을 깬 것은 서도진이었다. 그는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건조하게 입을 열었다.“신라호텔을 발칵 뒤집어놓고도 넌 아주 평온하게 잠들더군. 벼락 맞은 강민호와 한유라의 표정이 아직도 아른거리는데 말이야.”“쓰레기들을 분리수거장에 처넣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흥분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저 당연한 수순이었을
서울 도심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신라호텔 영빈관 다이너스티 홀. 대한민국 재계를 주름잡는 VVIP들과 유력 언론사 기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이곳에서는, 오늘 한성그룹의 경사가 열리고 있었다.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 최고급 샴페인 잔이 쉴 새 없이 부딪치는 소리가 홀 안을 가득 채웠다.“호호, 감사합니다. 우리 유라가 워낙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워서 걱정했는데, 강 서방 같은 훌륭한 짝을 만나 어미로서 시름을 덜었지 뭡니까.”한성그룹 회장의 후처이자 현재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배정아가 특유의 우아한 미소
오전의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펜트하우스의 다이닝룸.하지만 한채원의 시선은 창밖의 풍경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 놓인 세 장짜리 서류에 고정되어 있었다.[ 혼 인 계 약 서 ]가장 상단에 적힌 다섯 글자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망막을 찔렀다.채원은 천천히 손을 뻗어 서류를 집어 들었다. 최고급 특수 용지의 사각거리는 촉감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불과 어젯밤까지만 해도 길바닥에 버려진 빈털터리였던 자신이, 지금은 대한민국 재계 1위 JS그룹 후계자의 아내 자리를 제안받고 있다.이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도 채원의 머리
새벽 3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JS 타워 펜트하우스.게스트룸의 두꺼운 암막 커튼 밖으로는 여전히 거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을 채우는 것은 오직 태블릿 PC 화면을 두드리는 건조하고도 빠른 마찰음뿐이었다.탁, 탁, 타닥. 탁.한채원은 젖은 몸을 씻어내고 펜트하우스 전담 메이드가 내어준 넉넉한 사이즈의 남성용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은 상태였다.메이드가 구급상자를 가져와 피투성이가 된 맨발을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주었지만, 그녀는 상처를 내려다볼 여유조차 없었다.'시간이 없어.'도진이 준 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