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제86화. 계약의 끝, 그리고 (2)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이제 볼일 다 봤으니까 짐 싸서 나가시겠다? 나랑은 깔끔하게 이혼 기사 내고 끝내고?"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했잖아요." "약속?!" 쾅!! 도진이 주먹으로 아일랜드 식탁을 거칠게 내리쳤다. 대리석 상판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엄청난 굉음이었다. 채원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지만, 물러서지 않고 도진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네. 약속이요. 우리는 철저하게 필요에 의해 묶인 비즈니스 관계였으니까요. 그 선을 넘지 않기로 한 건 도진 씨와 제가 처음에 합의한.
자신이 원래 입고 왔던 낡은 블라우스, 티셔츠, 편안한 트레이닝복 몇 벌만을 캐리어에 담았다. 옷을 다 챙긴 후, 채원은 화장대 위에 놓인 보석함을 열었다. 가장 한가운데 빛나고 있는 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결혼 발표를 하던 날, 도진이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던 약혼반지였다. 채원은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천천히 빼냈다. 반지가 빠져나간 자리가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는 반지를 보석함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갑을 열어 도진이 주었던 한도 없는
제85화. 계약의 끝, 그리고 (1) 한성그룹 본사, 회장실. 최고급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은 채원은 서류에 결재를 하려다 말고, 옆에 놓인 탁상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6월 10일.' 달력 위, 작게 동그라미가 쳐진 날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초여름의 수요일일 뿐이겠지만, 채원에게 이 날짜가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다. 정확히 1년 전 오늘.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 쫓겨나듯 집을 나와 갈 곳 없이 헤매던 자신에게 서도진이 손을 내밀었던 날이었다. [이 서류에 도장 찍어. 그럼 네가 원하는 복수, 내가 완
제84화. 여제(女帝)의 시대(2) 송미란 모녀 감방 가고 진짜 주인이 나타나니까 주가 오르는 것 좀 보소ㅋㅋㅋ 오늘 한성 따상 쳤다 가즈아!!! 네티즌들의 반응처럼,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한성그룹의 주가는 기자회견 시작과 동시에 폭등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상한가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마감했다. 오너 리스크가 해소되고, 유능한 신임 회장이 제시한 명확한 비전에 투자자들이 열광한 결과였다. 오후 3시. 한성그룹 본사 최상층, 회장실. 과거 송미란이 화려한 사치품으로 도배해 놓았던 회장실은 단 하루 만에 불필요한 장식품
박 상무의 비참한 비명이 로비를 울리다 밖으로 사라졌다. "......" 수백 명의 직원과 임원들은 그 광경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한 경고였다. 과거의 썩은 고름을 완전히 도려내겠다는 새 회장의 무자비한 선전포고. 이제 한성그룹에 '대충'이나 '줄서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기자회견장으로 가죠." 채원이 김 전무를 향해 짧게 지시했다. 김 전무는 바짝 얼어붙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대강당에 마련된 기자회견장. 단상 중앙의 마이크 앞에 채원이 앉았다. 수
제83화. 여제(女帝)의 시대(1) "긴장돼?" 도진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채원은 거울 앞에서 옷깃을 다듬던 손을 멈추고, 거울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진과 눈을 맞췄다. 오늘 채원이 선택한 옷은 새하얀 화이트 수트였다. 장례식장 상주 같았던 지난 주주총회의 올블랙 수트와는 완벽하게 대비되는 색상. 과거의 어둠과 복수를 끝내고, 한성그룹의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음을 알리는 완벽한 상징이었다. 채원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나도 안 떨려요. 오히려 피가 끓는 기분이에요." "다행
오전 9시. 한성그룹 25층 전략기획실.텅 빈 책상. 꺼진 모니터. 배정아의 지시대로 사내 인트라넷 접속 권한마저 차단된 한채원의 자리는 그야말로 고립된 무인도나 다름없었다. 직원들은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메신저로만 업무를 주고받았다.그러나 채원의 표정에는 일말의 초조함도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책상 위에 펼쳐진 개인 태블릿 PC의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제 서도진이 개인 메일로 꽂아준 한성그룹 전략기획실의 최근 3개월 치 ‘실패한 프로젝트’ 기밀 자료들이었다.“……머리에 든 게 없으니, 판을 엎는 방식도 참으로
오전 8시. 강남구 테헤란로, 한성그룹 본사 1층 로비.출근하는 직원들로 붐비던 로비의 공기가 일순간 차갑게 얼어붙었다. 회전문 너머로 들어선 한 여자의 등장 때문이었다.머리부터 발끝까지 떨어지는 완벽한 핏의 블랙 테일러드 수트. 날카로운 스틸레토 힐이 대리석 바닥을 찍어 누를 때마다 일정한 파열음이 로비 전체에 울려 퍼졌다.한채원이었다. 불과 얼마 전, 약혼식장에서 파혼당하고 빈털터리로 쫓겨났던 전 회장의 친딸. 그녀가 마치 왕좌를 되찾으러 온 여왕처럼 고개를 꼿꼿이 든 채 게이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어, 어……
화면에는 방금 전 도진이 열어준 SG 페이퍼컴퍼니 계좌의 실시간 잔고 증명서가 띄워져 있었다.[ 현재 잔액: 200,000,000,000 KRW ]정확히 2,000억 원. 화면에 찍힌 무수한 ‘0’의 행렬을 본 최 대표의 입이 경련하듯 벌어졌다.“이, 이게 대체…….”“현금입니다. 지금 당장 수표로 쏴드릴 수 있는 추적 불가능한 클린 머니. 자, 이제 누가 미친 건지 판단이 서십니까?”채원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서, 서도진…… 서도진이 움직인 거냐……?”최 대표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건조한 핑계. 하지만 그의 눈빛 속에 일렁이는 감정은 결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어제, 피투성이가 된 그녀를 안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처절한 공포와 분노. 도진은 그 감정의 정체를 굳이 채원에게 설명하지 않았다.“가. 가서 네 방식대로 물어뜯고 와. 사냥개는 내가 든든하게 풀어줄 테니까.”도진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채원은 주머니 속에 들어온 차가운 블랙 카드의 감촉을 느끼며, 핏기가 가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남자는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것도 벼락과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 악마의 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