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을 받들겠나이다.”강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예를 올리며 답했다.이 소식이 선왕부로 전해지자, 다들 표정이 무거웠다. 경무제는 분명 선왕부와 한진 장공주 세력이 다투는 것을 용인하기에, 강준을 옹주로 보낸 것이다. 두 세력이 힘을 소모할 수록, 황제 입장에선 나쁜 일이 아니니 말이다.선왕부는 분명 황제에게 있어 중요한 존재나, 한진 공주부에게 힘을 조금 빼는 것이 경무제에게는 최선의 결과였다.“강준아, 만약 네가 한진의 뿌리를 건드리면, 한진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선왕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강준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저택으로 돌아왔다.“세자 저하, 옹주 한진 장공주부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말을 꺼낸 강현심은 강준의 부하였다. 늘 선왕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한진 공주부에서 서신이 도착하자, 강현심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강준는 그를 힐긋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서신을 펼쳐 훑어보았다.“한진 공주부는 이방 대인의 일과 관련해 다소 조급한 모습을 보입니다. 혹시 세자 저하와 조건을 논하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강현심이 상대의 의도를 분석했다.“신중히 판단하십시오.”서신의 내용은 그저 옹주에서의 일상과 식사
소은이 답했다.“저와 그사이에는 사모의 정이 없습니다.”소은은 주명에게 그날의 일을 고백했다. 본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끝까지 비밀을 품어야 했지만, 고민을 토로하고 싶었는지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하지만 상대가 강준인 것은 비밀로 했다.“세자이냐?”주명은 부화몽이란 말에 바로 눈치를 챘다.소은은 눈을 내리깔고,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주명은 약간의 아쉬움을 품고,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경성에서 생긴 일은 이제 잊거라. 옹주에서는 아무도 너를 탐탁지 않게 보지 않으니.”하지만 소은은 걱정되었다. 외할머
소은은 아직 혼사에 뜻이 없었기에, 애교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외할머니마저 저를 시집보내려 하는 것입니까?”한진은 평소 부드럽고 애교스러운 여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곁에 있는 이들도, 그녀 앞에서 감히 나긋하게 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소은의 애교에 한진은 싫어하긴커녕, 오히려 마음에 쏙 들었다.“네가 원치 않으면, 강요하지 않으마. 심심풀이로 사내라도 부르면 그만이지. 옹주는 잘생긴 사내가 넘쳐나.”소은이 정말 외할머니가 시킨 대로 했다간, 그녀가 국공부로 돌아가는 것을 어머니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
“소인은 신준이라 하옵니다. 장공주의 명을 받들어, 넷째 아가씨를 모시러 왔습니다.”젊은 공자가 답했다.소은은 공손히 웃으며 말했다.“고맙네.”성안으로 들어서니, 상점들이 즐비하였다. 옹주는 도성만큼 번화하지는 않았으나, 길에서 본 다른 지방보다 훨씬 더 나았다.마차는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장공주부에 이르렀다. 소은이 마차에서 내리니, 위엄 가득한 눈빛을 가진 부인이 앞에 서 있었다. 곧게 서 있는 부인은 강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고 곁에 있는 사람들은 공손한 모습이었다.소은은 보자마자 단번에 외조모인 것을 알아보았다.
“세자께서도 본인의 검을 쓰심이 좋을 듯하오.” 호규가 냉소적으로 말했다.강준이야 전략에서는 자신보다 나을 수 있겠지만, 일대일 무력 대결에서는 결코 자신을 이기지 못할 거라 믿고 있었다.그러자 강준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다, 이 검이면 충분하다.”“만약 패배한다면, 달심을 내게 넘기는 것은 어떠냐?”달심은 원래 호규에게서 도망친 여인이었다.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라 그가 몇 년을 기억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당시 그녀를 아끼고 있었지만, 결국 그녀를 직접 차지하지 않았기에 지금 그녀는 강준에게 넘어가게 된
“이번에는 이방의 사건으로 그 칼날을 그녀에게 돌리는 건 어떨까?” 강민이 제안했다.하지만 강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진왕의 현 상황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진왕이 무너지기 전에, 그녀는 공주부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무슨 수라도 쓰려 할 거야. 수년간 쌓아온 인맥도 여전하니, 지금은 건드릴 때가 아니야.”강민도 그 말에 동의했다. 한진이 그리 만만한 인물이라면, 경무제가 진작 손을 썼을 것이고 굳이 그녀를 옹주로 보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손녀의 혼사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훗날 황태자에게 시집보내려는 속셈이겠지.
강준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렇게 돌아온 걸 보면 모든 일이 해결되었단 뜻이지 않겠어?”“오라버니들 대화에 왜 네가 끼어드는 것이냐?” 선왕비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이마를 찌푸렸다.강미는 입을 다물고는 억울함 가득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다 다시 강분을 바라보았다. 강준이 그녀를 위해 한마디 해줄까 싶었지만, 그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끼리인데 그리 격을 차릴 필요는 없잖아요.” 강민은 아무렇지않게 넘겼다. 그는 강미와 늘 이렇게 지내왔기 때문이다.선왕비는 강미가 나쁜 의도는
소은은 옹주로 떠나기 전에, 봄 학연에서 모은 은전을 모두 기부하도록 사람을 보냈다.공부는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고, 역사를 알게 하며, 서민이 출세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했다.그 외에도 소은은 개인 돈을 들여, 먹과 붓, 종이와 벼루도 함께 기부하려고 했다.심지연은 해마다 봄 학연 때마다 이 일을 해왔기에, 그녀를 서점에서 마주쳤을 때도 소은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소은아.”심지연은 조금 망설이는 듯 했다.“오랫만이군요.”소은도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심지연은 함께 붓과 종이를 고르며 말했다.“가급적 싼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