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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화. 수술실 밖의 시간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7 20:56:12

은채는 당직표를 확인한 뒤 미경에게 설명했다.

“오늘 밤에는 문정원 교수님하고 제가 봅니다. 흉부 쪽은 강태오 교수님께 연락하고요. 아침에는 송현섭 교수님 팀으로 인계합니다.”

“동시에 다른 수술 들어가면요?”

은채가 다시 표를 봤다. 미경은 재촉하지 않았다.

“제가 응급실에 내려가 있으면 여기서 판단이 늦어질 수 있겠네요. 그 경우에는 당직 전문의 쪽으로 바로 연결되게 확인하겠습니다.”

“연락 순서가 분명해야 해요. 이분은 전화 기다리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말투가 살갑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은채는 외상팀 연락체계를 확인하고, 자기 호출기와 당직 연락처가 제대로 등록됐는지 직접 통화해봤다. 본원에서 쓰던 단축번호를 무심코 누를 뻔했다.

병원이 바뀌면 이런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임기석의 몸은 아직 차가웠다. 보온과 수혈, 반복 검사 결과를 살피는 치료가 이어졌다. 인공호흡기가 숨을 보냈고, 관을 통해 몸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각각 따로 기록됐다.

은채가 차트에 값을 적으려 하자 미경이 짚어줬다.

“그 값은 마지막 수혈 직후에 잰 겁니다.”

“이전 기록은요?”

“여기 같이 보세요.”

그녀가 직전 기록을 가리켰다. 수혈과 처치가 있었던 시간이 함께 표시돼 있었다. 현재 혈압만 보면 조금 좋아 보였지만, 어떤 지원을 받으면서 유지되는지까지 봐야 했다.

은채는 자기 메모 옆에 시간을 적었다.

미경은 더 말하지 않고 다른 침대로 갔다.

밤 11시가 가까워졌을 때 소변량이 충분히 늘지 않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은채는 이전 경과와 수혈 상황을 다시 살피고 환자에게 갔다. 문정원도 함께 상태를 확인했다.

당장 더 무엇을 넣을지만 결정할 수는 없었다. 출혈이 계속되는지, 순환은 어떻게 유지되는지, 배가 불러오는 양상은 어떤지 따로 봐야 했다.

“복부 배액은 처음보다 줄었습니다. 흉관도 갑자기 늘지는 않았고요.”

당직 간호사가 기록을 보여줬다. 미경은 저녁 근무를 마치면서 관찰 내용을 이 간호사에게 인계해두고 갔다.

문정원이 환자를 진찰한 뒤 은채에게 추이를 정리하도록 했다. 한 번의 결과만으로 좋아졌다고 선언하거나, 곧바로 나빠졌다고 단정할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환자를 살폈다. 손은 아까보다 따뜻해졌지만, 소변량과 순환 상태는 계속 추적해야 했다.

태오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흉부 확인하겠습니다.”

그는 배액과 호흡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내용을 문정원과 공유했다. 가슴 쪽에서 다시 큰 출혈이 생겼다는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결된 관을 지금 빼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은채는 그가 적는 기록을 잠깐 봤다. 문장이 짧았지만 확인한 것과 아직 판단하지 않은 것이 구분돼 있었다.

문정원이 다른 환자를 보러 움직이자 태오가 물었다.

“식사는 했습니까?”

“아직이요.”

“먹을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은채는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결과 조금만 더 보고요.”

“문 교수님께 말하고 잠깐 다녀오면 됩니다.”

간단한 얘기였다. 그런데 은채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첫날부터 환자를 두고 밥을 먹으러 간다는 말이 입에 붙지 않았다.

태오가 덧붙였다.

“서 선생이 여기 서 있는 동안에만 감시하는 환자 아닙니다.”

은채가 그를 봤다.

“제가 간호사 선생님들을 못 믿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싸움을 이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흉부 쪽 기록을 마치고 담당 간호사에게 변화 시 연락할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은채는 조금 더 서 있다가 문정원에게 식사하러 다녀오겠다고 했다. 문정원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다녀오라고 답했다.

휴게실 자판기에서 산 샌드위치는 차가웠다. 은채가 포장을 뜯다가 휴대전화를 봤다. 점심 무렵 온 대출 상환 안내가 아직 화면에 남아 있었다.

서울 원룸 보증금 일부가 돌아오면 먼저 갚을 생각이었다. 이곳 관사에서 6개월을 버티면 적어도 월세는 줄일 수 있었다.

6개월.

그 안에 부당한 평가를 바로잡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 떠나기 전에는 목표가 선명했다.

지금 머릿속에는 임기석의 다음 검사 시간이 먼저 떠올랐다.

은채는 샌드위치 포장을 접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15분을 다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새벽이 깊어지면서 임기석의 체온은 조금씩 올라왔다. 반복 검사에서도 나쁜 쪽으로만 가던 변화가 멈췄다.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지원을 늘려야 했던 상황은 일단 지나갔다.

은채는 그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좋아졌다는 짧은 단어 하나로 줄이지 않았다.

오전 6시, 짧은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문정원이 경과를 확인했다. 밤사이 다른 외상환자는 별도 당직팀이 맡았고, 은채는 임기석의 수술 후 치료와 인계를 계속 준비했다.

“전신 상태가 이 정도로 회복되면 오전에 추가 평가도 진행할 수 있겠다.”

문정원이 말했다.

“처음에는 못 본 손상도 다시 확인하고. 재수술은 내일 오전을 목표로 잡자. 오늘 경과 나빠지면 바로 바꿀 수 있게 하고.”

은채는 준비해야 할 내용을 적었다. 이송 직후 검사를 다 할 수 없었던 이유와 이제 다시 살펴야 할 부위가 연결됐다.

오전 7시가 지나자 인계 공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모든 의료진이 한꺼번에 모이는 것은 아니었다. 환자 곁에 남는 사람을 두고, 각 팀이 필요한 사항을 짧게 주고받았다.

센터장 오경환은 종이컵을 손에 든 채 들어왔다.

“어제 항만 환자, 강 교수 고생했네.”

태오가 차트를 넘기다가 고개를 들었다.

“문 교수님 팀하고 같이 했습니다.”

“그래. 흉부 출혈이 꽤 컸다면서.”

오경환이 요약 화면을 보았다. 맨 위에는 전원받을 당시의 주진단이 남아 있었다. 우측 혈흉. 그 아래에 추가된 복부 수술 기록은 펼쳐야 보이는 상태였다.

은채가 입을 열었다.

“간 손상도 컸습니다. 복부는 임시 폐쇄 상태이고 재수술이 남아 있습니다.”

오경환의 눈이 명찰로 향했다.

“서은채 선생?”

“네.”

“어제 왔다고 들었어. 첫날부터 바빴네.”

그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본원에서 파견 인계가 늦어져서. 적응할 시간은 줘야겠다 싶었는데.”

무슨 내용을 전달받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은채는 지금 열린 환자 화면을 먼저 가리켰다.

“이 환자 인계에는 복부 상태가 바로 보이게 수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세부 수술 기록은 다 있지 않나?”

“첫 화면에 재수술 예정이 안 보입니다. 다음 팀이 이 화면부터 볼 겁니다.”

은채는 표시한 곳에서 펜을 떼지 않았다. 이름을 기억해달라는 말은 삼켜도, 남아 있는 수술까지 접을 수는 없었다.

오경환의 입매가 조금 굳었다.

문정원이 끼어들었다.

“내가 확인할게. 현섭 선생, 지금부터 복부 쪽 인계받고. 흉부는 태오 선생이 계획 공유해주고.”

담당이 바뀌는 대화 속에서도 태오는 요약 화면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복부 평가 때문에 수술 범위를 같이 준비했습니다. 그 부분이 빠지면 다음 팀이 처음 경과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은채를 쳐다보지 않고 기록을 말했다.

은채가 펜 끝으로 표시해둔 복부 항목이 화면 위로 올라왔다. 본원에서는 이런 말을 꺼내고 나면 자신이 왜 나섰는지까지 설명해야 했다. 이번에는 태오가 같은 기록을 짚었고, 현섭이 수정할 화면을 열었다.

송현섭이 요약 화면을 고치고 수정된 내용을 읽었다.

“이제 됐습니다.”

은채는 올라온 복부 항목을 직접 읽었다. 임시 폐쇄와 재수술 계획이 모두 보였다. 태오가 말을 보태기 전 자신이 먼저 요구한 내용이었다.

인계가 끝나자 문정원이 은채의 메모를 덮었다.

“오후 근무 전까지 쉬어. 오전 평가 결과는 다음 근무 들어올 때 확인하면 돼.”

“제가 오전까지만 보고…….”

“인계받을 사람 없어서 남아야 하는 거야?”

은채는 송현섭을 봤다. 그가 차트에서 눈을 들고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서 선생.”

거절할 말이 없었다.

복도를 나가다가 태오와 마주쳤다. 그는 은채가 들고 있는 두툼한 메모를 봤다.

“본원 기록도 그렇게 적습니까?”

“거기는 다른 사람이 안 물어보면 설명할 자리가 별로 없어서요.”

대답하고 나니 필요 이상으로 속을 보인 느낌이 들었다.

태오가 잠깐 말이 없었다.

“여기서는 먼저 말해도 됩니다.”

은채는 그 말을 듣고서야 새벽 내내 그에게 먼저 알려준 변화가 몇 번이었는지 떠올렸다.

돌려받은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나왔다. 아침 햇빛이 눈에 부셨다. 바다 쪽에서 축축한 바람이 불어왔다.

휴대전화에는 관사 입실 안내가 도착해 있었다.

301호.

은채는 방 번호를 확인한 뒤 화면을 껐다. 오늘 처음으로, 다음 호출이 아니라 자신이 누울 침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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