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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화. 옆방입니다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7 20:56:14

관사는 병원 뒤편 언덕에 있었다.

지도에는 도보 7분이라고 나왔지만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니 이야기가 달랐다. 마지막 계단 앞에서 은채는 손잡이를 놓고 잠깐 숨을 골랐다.

이사 안내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문장이 없었다.

은채는 계단 위로 캐리어를 한 칸씩 끌어올렸다. 앞으로 6개월, 출퇴근할 때마다 지나야 할 길이었다.

301호의 문을 열자 작지만 깨끗한 방이 나왔다. 침대와 책상, 옷장. 문 안쪽에는 혼자 쓰는 욕실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병원 건물의 측면이 보였다.

그녀는 신발부터 벗었다.

서울 원룸에서는 책상에 앉으면 침대 모서리가 종아리에 닿았다. 여기는 의자를 뒤로 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은채가 캐리어를 눕혔다. 옷 몇 벌을 꺼내고 세면도구를 욕실에 놓은 뒤, 가져온 베개 커버를 바꿨다. 나머지는 일어난 뒤에 해도 됐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배에서 소리가 났다.

샌드위치를 먹은 지 몇 시간이 지나 있었다. 잠들기 전에 무언가 조금 먹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다시 열었다.

복도 끝 공용 주방에는 냉장고 두 대와 전자레인지, 작은 식탁이 있었다. 찬장마다 구역을 나눈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은채는 입실 안내문에서 자기 호실의 수납공간을 확인했다.

빈 칸이었다.

당연했다. 어젯밤 이곳에 와서 짐을 풀 예정이었지만 수술실로 먼저 갔으니까.

그녀는 가방에서 즉석밥과 컵국을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밥을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잠금 표시가 떴다.

버튼을 한 번 더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그건 길게 눌러야 합니다.”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은채가 돌아봤다.

강태오가 물병을 들고 서 있었다. 병원에서 보던 수술복 대신 회색 티셔츠와 편한 바지 차림이었다. 마스크도 가운도 없는데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은채의 손이 버튼 위에서 멈췄다.

“여기 왜 계세요?”

“삽니다.”

“이 건물에요?”

“302호.”

그녀는 자신이 나온 방향을 봤다. 자기 문 바로 옆이었다.

“관사 배정 확인 안 했습니까?”

“제 방은 확인했죠. 옆방 사람까지는 안 물어봤습니다.”

“이제 아셨네요.”

태오는 냉장고에서 반찬 통을 꺼냈다. 은채는 그가 가르쳐준 대로 버튼을 길게 누른 뒤 밥을 데웠다.

잠이 깬 것 같았다.

하필 저 사람이 옆방이라니. 병원에서만 보고도 충분히 긴장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집에서까지 잘못된 판단을 지적받을 생각은 없었다.

태오가 식탁에 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거기 서서 먹을 겁니까?”

“의자에 앉을 겁니다.”

은채가 먼저 의자를 당겼다. 서두른 탓에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태오의 시선이 닿았다.

“지적하실 거예요?”

“뭘요?”

“소리 크다고.”

“그렇게까지 예민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작은 접시를 하나 꺼내 은채 앞쪽에 놓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을 나누어 담았다.

은채가 접시를 봤다.

“제 것까지는 안 주셔도 되는데.”

“어차피 덜어야 합니다.”

태오는 자기 앞에도 같은 접시를 놓았다. 두 사람 사이에 반찬 통을 두는 대신 각각 나눠 담는 모양이었다.

“잘 먹을게요.”

은채가 밥 뚜껑을 열었다. 태오가 숟가락 통을 그녀 쪽으로 밀어줬다.

둘은 몇 분 동안 조용히 먹었다. 병원에서 질문을 주고받을 때는 떠오르지 않던 것들이 신경 쓰였다. 반찬을 삼킨 뒤에야 말을 꺼내고, 은채가 대답할 때는 물컵을 들려던 손을 멈추는 것 같은 일들.

은채는 쓸데없는 관찰이라고 생각하며 컵국을 들었다.

“첫 근무였는데 바로 수술 들어올 줄은 몰랐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저도 첫날부터 교수님을 볼 줄은 몰랐어요.”

“청해병원 근무하는 건 몰랐습니까?”

“학술 모임에서 소속까지 자세히 안 봤습니다.”

그날은 마지막 질문을 던진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분이 나빴다.

태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날 기분 나빴습니까?”

은채는 국을 삼킨 뒤 답했다.

“네.”

그렇게 직접 물을 줄 몰랐지만, 아닌 척할 생각도 없었다.

“지원 인력이 없었다는 걸 변명처럼 보시는 것 같아서요. 그때 제가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 불렀습니다.”

“그 설명은 발표 뒤에 들었습니다.”

“질문하실 때는 모르셨다는 거네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은채가 그를 봤다.

태오는 바로 말을 이었다.

“다만 질문이 서 선생 개인한테만 향한 것처럼 들렸을 수 있겠네요.”

쉽게 예상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옳았다는 설명만 이어가지 않았다.

“그 상황을 개인이 계속 버티게 두면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그쪽도 같이 물어봐주셨어야죠.”

은채는 자기 목소리가 조금 굳어진 것을 느꼈다.

“지원이 왜 안 왔는지도요.”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습니다. 지원이 안 온 이유까지 물었어야 했습니다.”

은채는 이어 말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그가 방금 짚은 것이, 발표장에서는 끝내 설명할 기회가 없었던 대목이었다.

은채는 밥을 한 숟가락 더 먹었다. 그가 인정했다고 해서 그날의 얼굴이 바로 잊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시 마주 보고 따질 말은 줄었다. 덜 미워해도 되는 사람인지, 그쪽이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태오는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오늘 오후에도 나갑니까?”

“4시부터요. 오전은 송 교수님 팀이 맡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자야겠네요.”

“밥 먹고요.”

“먹는 중인 건 보입니다.”

은채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국으로 삼켰다. 저 사람은 가끔 일부러 저러는 건지, 정말 저 말밖에 할 생각이 없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식사를 마치자 각자 쓴 그릇을 씻었다. 태오가 물기를 닦은 접시를 수납장에 넣었다. 은채는 자기가 쓰던 자리를 행주로 닦다가, 그의 옆구리에 손등이 닿지 않도록 몸을 물렸다.

주방이 좁아서 둘이 동시에 움직이기에는 애매했다.

“먼저 지나가세요.”

“서 선생부터 하세요. 저는 끝났습니다.”

태오가 충분히 비켜섰다. 은채는 그 틈으로 나왔다. 수술실에서는 어깨 가까이 서도 의식하지 않았는데, 잠깐 스친 비누 냄새가 남았다.

그녀는 접시를 얻어먹은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바로 옆에서도 잠금장치 소리가 났다.

정말 옆방이었다.

***

은채는 샤워를 마친 뒤 알람을 맞췄다. 침대에 누웠는데도 손끝이 조금 긴장돼 있었다. 베개 옆에 둔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가 다시 껐다.

밤사이 작성한 기록을 확인할까 했다. 그러나 지금 임기석을 맡고 있는 사람은 송현섭이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정해진 연락체계로 연락할 것이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잠들기 직전, 학술 모임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돌아가는 복도에서 동료가 괜히 저 사람과 부딪히지 말라고 했었다.

은채는 그때 태오를 좋아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떠오르는 건 발표장의 질문보다, 지원이 왜 안 왔는지도 물었어야 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이었다.

은채는 그 얼굴을 밀어내려다 그냥 눈을 감았다.

오후 2시 40분에 알람이 울렸다.

은채는 한동안 천장을 봤다. 여기가 서울 원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다리는 무거웠지만 눈앞이 흐릿할 정도의 피로는 가셨다.

옷을 갈아입고 캐리어에서 남은 짐을 꺼냈다. 전공서 한 권, 필기해둔 노트, 구겨진 우산. 마지막으로 본원 인사팀에서 보낸 봉투가 나왔다.

파견 기간 6개월. 8월 1일부터 이듬해 1월 31일까지.

파견을 명령한 이유는 지원 진료였다. 그 문장 어디에도 좌천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녀는 봉투를 책상 서랍 안에 넣었다. 이의 신청에 필요한 자료는 이미 제출했다. 같은 문장을 매일 들여다본다고 답이 빨리 오는 것은 아니었다.

공용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은채는 태오가 정리해둔 칸에서 컵을 꺼내 커피를 탔다. 복도에는 다른 방에서 알람을 끄는 소리만 났다.

출근 전 편의점에 들러 작은 반찬을 샀다. 자신이 먹을 것 두 개와, 아침에 받은 접시를 떠올리며 하나를 더 골랐다.

계산대에 올린 뒤 잠깐 고민했다.

결국 세 개를 모두 샀다. 출근해서 반찬 뚜껑에 301호를 적고, 의국 휴게실의 음식용 냉장고에 넣어뒀다.

***

오후 4시, 외상 진료구역으로 들어서자 낮 근무를 마무리하던 송현섭이 차트를 열어줬다.

“임기석 씨는 큰 재출혈 소견 없이 유지 중입니다. 오전 추가 평가에서도 당장 계획을 바꿀 만한 손상은 없었고요. 폐 타박상은 계속 봐야 합니다.”

은채는 밤사이와 오전의 경과를 연결해 읽었다. 내일 오전 재수술 계획은 유지됐다. 오늘 저녁 상태에 따라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송현섭이 다른 환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관찰 중인 환자 한 명 있습니다. 오늘 아침 교통사고로 온 분인데, 복부 다시 봐주세요.”

조혜린, 35세.

은채는 새 이름과 첫 검사 시간을 확인했다.

침대에 앉은 여자는 휴대전화를 한쪽 귀에 대고 다른 손으로 배를 받치고 있었다. 목소리는 또렷했다.

“거기 제목 글씨만 조금 작게 해주세요. 아니, 제가 파일 다시 보내드릴게요.”

은채가 다가가자 여자가 통화를 잠깐 멈췄다.

“선생님, 저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요?”

은채는 먼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아까와 비교해서, 배가 어떻게 아픈지부터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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