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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화. 가장 멀쩡한 사람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7 20:56:16

조혜린은 통화를 끝내고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처음에는 여기만 아팠어요.”

그녀가 안전벨트 자국이 있는 아랫배를 가리켰다. 은채는 먼저 설명을 듣고 진찰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요?”

“계속 같은 데인 줄 알았는데, 누워 있으니까 옆으로도 당기는 것 같아요. 원래 멍들면 그렇죠?”

“멍 때문에 아플 수도 있습니다. 다른 변화가 있는지도 확인할게요.”

침대 주위의 가림막을 치고 담요를 필요한 만큼만 걷었다. 은채는 아픈 부위를 피한 곳부터 천천히 살폈다. 처음 평가가 어땠는지는 기록으로 읽었지만, 지금 손끝에서 느껴지는 상태도 따로 기억했다.

혜린의 숨이 짧아졌다.

“여기가 더 아프네요.”

“아까보다요?”

“네. 아까는 누르면 아픈 정도였는데.”

은채는 진찰을 마친 뒤 담요를 덮어줬다. 바로 수술실로 가야 할 만큼 명확한 소견은 아직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과 달라지고 있다는 설명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차트에 적힌 첫 CT 시각은 오전 9시 50분이었다. 지금은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영상에는 큰 장기의 뚜렷한 손상은 보이지 않았다. 장을 지지하고 혈관이 지나는 장간막 주변에 가벼운 변화와 소량의 액체가 있어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남아 있었다. 아랫배의 안전벨트 자국도 처음부터 기록돼 있었다.

그래서 혜린은 집에 가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있었다.

“사고 날 때 운전석이셨어요?”

“네. 앞에서 갑자기 멈춰서 저도 섰는데 뒤에서 받았어요.”

혜린은 작업실에 가져가던 종이 상자들이 차 안에 쏟아졌다고 했다. 차에서는 직접 걸어 나왔고 구급대원에게도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이 온 할아버지는 바로 처치실 들어가시던데, 저는 이렇게 기다려도 되니까 괜찮은 건 줄 알았어요.”

은채는 의자를 가까이 당겼다.

“처음에 급하게 수술해야 할 근거가 없었던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시 확인해야 해서 관찰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 아직 모르는 거예요?”

“지금 더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혜린이 뒤집어놓은 휴대전화를 다시 집었다. 화면에 메시지가 여러 개 떠 있었다. 은채가 몸을 조금 물리자 혜린은 급히 화면을 껐다.

“죄송해요. 제가 작은 출력소를 하는데 오늘 마감이 있어서요.”

“연락하셔도 됩니다. 다만 몸 상태가 바뀌면 통화 중이어도 말씀해주세요.”

“직원 혼자 남겨놨어요. 이런 날 하필 주문이 몰려서.”

은채는 당장 퇴원 계획을 잡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확인을 마칠 동안 먹거나 마시지 않도록 안내했다. 통증과 메스꺼움도 의료진에게 말해달라고 했다. 아픔을 참아야 검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혜린은 물병을 내려놓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안 다쳤는데.”

은채는 그 말을 반박하는 대신 물었다.

“생각보다 안 다쳤다는 건, 걸을 수 있어서요?”

“그것도 그렇고, 피도 안 나고.”

담요 위에 올라온 손에는 작은 찰과상만 있었다.

“그런데 안쪽은 겉에서 다 보이지 않습니다. 배가 어떻게 변하는지 조금 더 봐야 해요.”

혜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은채는 시간을 적고 가림막 밖으로 나왔다.

송현섭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때요?”

“처음 기록보다 압통이 넓어졌습니다. 맥박도 아침보다 빨라졌고요. 혈압은 유지됩니다.”

“진통제는?”

“투여 시점과 반응까지 확인하겠습니다.”

송현섭은 낮 동안의 변화와 자신이 마지막으로 진찰했을 때의 상태를 설명했다. 잠깐 통증이 줄어 보인 때도 있었지만 귀가시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은채는 그 경과와 방금 확인한 소견을 이어 읽었다.

“같이 한 번 더 보고, 재촬영 여부 결정하죠.”

송현섭이 말했다.

두 사람이 환자 쪽으로 움직일 때 다른 침대에서 호출이 왔다. 손목 골절 환자의 협진 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이었다. 류민재가 전화기 두 개 사이에서 시선을 옮겼다.

“제가 정형외과 쪽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그가 말하자 은채가 불렀다.

“류 선생, 조혜린 씨 초기 영상 열어둘 수 있어요?”

“네. 이상 없었던 영상 말씀하시는 거죠?”

은채는 차트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판독문 끝까지 읽어주세요.”

은채가 화면 아래를 가리켰다.

“이상 없었다고 적혀 있지는 않아요.”

민재의 시선이 내려갔다. 그가 판독문의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큰 장기 손상은 없지만 장간막 주변 변화가 있다는 거네요.”

“그것 때문에 관찰하고 있었고요.”

은채는 목소리를 낮췄다. 환자에게 들릴 거리에서 후배를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다.

“이상 없음이라고 줄이면 나중에 달라진 것도 보기 어려워요. 남아 있는 의심이 뭔지 같이 봐주세요.”

“알겠습니다.”

민재는 영상을 열고 첫 검사 결과를 나란히 띄웠다. 은채는 그에게 부탁한 일을 한 번 더 확인하려다가 멈췄다. 이미 정확하게 펼쳐놓은 화면이었다.

혜린은 다시 전화하고 있었다.

“봉투에 넣기 전이면 됐어요. 앞장만 다시 출력하면 돼요.”

그녀는 의료진이 다가오자 손으로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표시를 했다. 송현섭은 침대 옆에서 기다리며 혜린의 얼굴을 살폈다. 통화가 끝나자 지금 상태를 다시 보겠다고 설명했다.

진찰 뒤 두 사람은 추가 평가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검사 하나가 모든 것을 결정해주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긴 변화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상황이었다.

은채가 영상의학과에 연락했다. 첫 영상과 현재 소견을 정리하자 담당 의사가 영상을 함께 보겠다고 했다. 혈관과 조직을 더 뚜렷하게 보이게 하는 조영제를 쓰는 검사에 필요한 사항도 다시 확인했다.

혜린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침에 한 걸 또 해요?”

“네. 지금 증상이 변했고, 처음 검사에서 지켜봐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때 못 찾으신 거면…….”

혜린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불안이 질문보다 먼저 올라오는 얼굴이었다.

은채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처음 검사에서 당장 수술해야 할 손상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어서, 계속 보고 있던 겁니다.”

“제가 움직여서 더 나빠진 건 아니죠?”

“지금 확인한 내용으로는 그렇게 말할 이유 없습니다.”

혜린은 옆으로 접어둔 가방끈을 만지작거렸다.

“아까 직원이 종이만 가져다달라고 해서 잠깐 나갈까 했거든요. 안 가기는 했는데.”

“여기 계셨으니까 변화를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은채는 지금은 외출이나 퇴원을 생각하기보다 평가를 마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혜린이 가방을 침대 머리맡으로 밀어뒀다.

대신 휴대전화에서 번호를 골랐다.

“정민 씨, 오늘 내가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말투가 아까보다 낮았다.

“최종 파일은 메일에 있어요. 비밀번호는 다시 보내줄게요.”

은채가 조금 떨어져 서 있는 동안 혜린은 직원에게 일을 넘겼다. 무엇을 먼저 처리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누구에게 연락하면 되는지 차근차근 말했다.

통화가 끝나자 은채가 연락받을 가족이 있는지 물었다.

“언니요. 아침에는 차만 좀 망가졌다고 했어요.”

“검사 뒤에 치료 계획이 바뀔 수도 있으니 연락해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설명이 필요하면 같이 해드릴게요.”

혜린은 언니의 번호를 찾았다가 문자창을 열었다. 몇 글자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차보다 제가 좀 더 봐야 할 것 같다고 보냈어요.”

그녀가 화면을 내려놓았다. 은채는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도록 번호를 확인하고, 자세한 설명은 혜린의 동의를 받아 하기로 했다.

문자를 보낸 뒤 혜린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채는 그동안 검사 준비를 진행하며 기다렸다.

은채는 자신이 아침에 인계를 마치고도 남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혜린이 통화를 마쳤다.

“이제 끝났어요.”

그녀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으려다 멈췄다. 팔을 조금 뻗는 동작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은채가 바로 다가갔다.

“지금 어떻게 아팠어요?”

“움직이니까…….”

혜린의 손이 아랫배 가운데에서 옆으로 옮겨갔다. 방금까지 유지하던 자세도 풀렸다. 그녀는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은채는 다시 상태를 살폈다. 혈압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통증이 더 넓어졌고 맥박도 빨라져 있었다. 검사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두고 볼 상황은 아니었다.

송현섭이 호출을 받고 돌아왔다. 은채는 달라진 부분만 짧게 말했다.

그가 환자를 다시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 바로 진행하고, 그동안 수술 가능성도 열어두죠. 이동 중에도 상태 확인하고요.”

혜린이 은채의 소매를 손끝으로 잡았다.

“선생님.”

“네.”

“저, 이제는 아까처럼 안 괜찮은 것 같아요.”

은채는 그 손이 놓일 때까지 잠깐 멈췄다.

“말해주셔서 다행이에요. 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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