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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봄가을
바로 전화를 끊은 한지훈의 주위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긴 다리를 번쩍 들어 지프차에 탄 한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부터 난 북양 총사령관 자리를 포기한다. 앞으로 난 군과 그 어떤 관련도 없는 민간인이야. 그리고 신룡전 애들한테 전해. 최대한 빨리 S시로 이동한다. 그리고 용오, 용육, 용칠, 용팔. 너희들은 산장에 남는다.”

“사령관님, 정말 전역하실 겁니까?”

용일이 다급하게 물었다. 북양왕, 현 시대의 가장 뛰어난 명장, 용국의 상징이자 8대 용장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 이대로 모든 걸 버린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앞섰다.

“그래. 이미 결정한 일이니 더 이상 토달지 마. 타워 팰리스로 출발한다.”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한 한지훈이 거세게 엑셀을 밟았다.

‘우연아, 조금만 참아. 내가 곧 갈게. 이제부터 넌 내가 지킬 거야.’

이에 용일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용일, 죽을 때까지 사령관님을 따르기로 맹세한 몸, 저도 파용군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신룡전 소속으로서 사령관님을 모시겠습니다!”

“용이 역시 죽을 때까지 사령관님을 따르기로 맹세한 몸, 저도 파용군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신룡전 소속으로서 사령관님을 모시겠습니다!”

뒤이어 용일부터 용팔까지 모든 8대 용장이 파용군의 직책을 내려놓고 오로지 신룡전의 8대 용장으로서 한지훈을 보좌하기로 선포한다.

신룡전, 비록 파용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간 비밀 조직일 뿐, 공식적으로 군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곳, 국가가 아닌 오직 한지훈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 모인 곳이기도 했다.

힘들 결정일 텐데 기꺼이 그의 뜻에 따라준 8대 용장을 바라보던 한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용국의 가장 신비로운 곳, 용각.

경계가 삼엄한 내각 대청의 원탁에 네 명의 중년 남자가 앉아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신한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어쩜 나이를 먹어도 변하는 게 없니. 여전히 고집불통이군.”

“왜요. 저쪽에서 먼저 끊은 겁니까?”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 금테안경이 인상적인 남자가 신한국을 향해 싱긋 웃었다.

“걔 성격 처음 안 것도 아니고 그냥 내버려두세요. 그럼 파용군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리고 거대한 금용 벽화 앞에 서 있던 강만용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파용군은 기태식 사령관에게 맡기는 걸로 하죠. 그리고... 전역에 대한 건... 그냥 무시하세요. 북양왕의 자리는 언제까지고 한지훈 그 아이만을 위해 남겨둘 겁니다.”

“휴, 그 동안 고생만 하다가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괜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잘못된 길을 걷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물론, 지금까지 용국을 위해 지훈이가 해온 게 있으니 그 부탁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S시로 근위대를 보내도록 하죠. 지훈이와 그 딸을 지킬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강만용의 제안에 다른 세 남자의 표정이 그나마 풀어졌다.

“네, 그래야죠.”

한편, 타워팰리스 럭셔리룸, 김태우를 센터로 수많은 남자들이 술을 따르고 있는 강우연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이때, 김태우가 갑자기 손을 뻗어 강우연의 손목을 홱 잡자 그녀는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술을 달싹였다.

“태우 씨...”

“하, 여기까지 와놓고 무슨 내숭이야. 자, 같이 러브샷 어때?”

김태우가 짧은 스커트 차림의 강우연을 홱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았다.

중심을 잃고 바로 그의 가슴팍에 쓰러진 강우연을 응큼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김태우가 긴 손가락으로 보드라운 그녀의 얼굴을 스르륵 쓸어내리더니 한술 더 떠 머리카락 냄새까지 깊게 들이마셨다.

“음, 좋은 향기네.”

소름 기치는 손길에 강우연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결국 모욕감을 참지 못한 강우연이 그를 밀쳐내고 다시 벌떡 일어섰다.

눈물과 공포로 얼룩진 눈으로 김태우를 바라보던 강우연이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죄송한데... 저 이만 딸 보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말을 마친 강우연이 핸드백을 챙기고 나가려 했으나 그녀의 손목을 홱 잡아당긴 김태우가 다른 한 손으로 거세게 강우연의 뺨을 날렸다.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거센 따귀에 강우연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퍽!”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김태우는 테이블까지 발로 엎어버렸고 술잔이며 술병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야, 강우연. 지금 네가 찬밥, 더운 밥 가릴 때야? 나 정도 되는 남자가 좋다고 대시하면 대충 네 감사합니다라고 따라올 것이지. 언제까지 튕길 건데. 내가 확실히 얘기해 두는데. 오늘 나 만족 못 시키면 살아서 이 문 못 나갈 줄 알아. 알겠어?”

허리를 숙인 김태우가 큰 손으로 강우연의 턱을 움켜쥐었다.

눈물로 얼룩진 강우연을 노려보던 김태우가 말을 이어갔다.

“잊었어? 네 딸 목숨, 내 손에 달린 거나 마찬가지야. 내 말 한 마디에 네 딸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거야. 그런데도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야?”

“안 돼! 제발... 제발요. 제 딸은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이제 겨우 4살 밖에 안 된 애잖아요. 제발...”

고통스러운 얼굴로 오열하던 강우연이 털썩 주저앉아 김태우에게 애원했다.

‘아, 힘들다... 제발 단 한 명이라도 나랑 우리 딸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바로 그때, 또 다른 접대녀 양예나가 룸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김 대표님, 좋은 날 왜 이렇게 화를 내세요. 이제 일을 새로 시작해서 좀 서툰 것 같은데 제가 제대로 혼내고 올게요.”

양예나의 노련한 대처에 김태우도 코웃음을 지으며 일어서고 그 사이에 재빨리 강우연을 부축해 룸을 나선 양예나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괜찮아? 그러게 왜 김태우 저 자식한테 반항을 해. 저 자식 성질머리 잘 알면서. 괜히 건드리지 말고 대충 비위 맞추면 되잖아.”

하지만 나무람도 잠시, 상처로 얼룩진 강우연의 얼굴을 바라보던 양예나가 핸드백에서 소독용 면봉을 꺼내 볼과 입가에 난 상처를 살짝 닦아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애 얼굴을 이렇게 만드니.”

거울 속 엉망이 된 얼굴을 생기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강우연이 결국 오열하기 시작했다.

“언니, 나 여기서 좀 내보내줘요. 우리 고운이 아직도 병원에 있단 말이에요. 내가 가서 보살펴줘야 해요.”

여자마저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눈동자에 눈물이 꽉 차오르니 양예나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우연을 꼭 껴안은 양예나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알잖아. 언니도 여기 묶여있는 몸이라는 거. 그리고 김태우 저 자식 성격 알지? 설령 네가 지금 도망친다 해도 평생 도망칠 수 있겠어? 넌 그렇다 치고 고운이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흑흑흑...”

한참을 소리내어 울던 강우연은 무슨 결심을 내린 건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알겠어요. 그럼 언니한테 부탁 하나 해도 돼요?”

“그래. 언니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도울게.”

“언니가 대신 병원으로 가줘요. 고운이가 나에 대해 물으면 엄마는 일하러 갔다고 말해 줘요. 일 끝나면 바로 만나러 갈 거라고.”

꼭 잡은 두 손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강우연의 애절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언니가 그렇게 말해 줄게.”

하지만 화장을 고친 강우연이 다시 복도로 나선 그때, 이를 악문 양예나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안 되겠다. 네가 이대로 지옥으로 뛰어드는 꼴, 나 더는 못 보겠어.”

양예나의 손에 이끌려 멍하니 몇 미터를 끌려가던 강우연이 우뚝 멈춰 섰다.

“언니, 언니! 잠깐만요. 정말 고마운데요... 이건 제가 선택한 일이에요. 그리고 언니한테 민폐 끼치는 것도 싫고요. 저 자식들 언니뿐만 아니라 정말 언니 가족들까지 건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 자식... 정말 널 죽을 때까지 괴롭힐 거야. 네 명에 못 살고 죽을 거라고. 네가 그렇게 시드는 거, 난 못 봐.”

마음이 급해진 양예나가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고개를 젓던 강우연이 씩씩하게 눈물을 닦아냈다.

“제 팔자가 이런가 보죠 뭐.”

지난 5년 간, 온갖 힘든 일을 겪어내며 절망에 잠기려 할 때마다 강우연은 이 말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냥... 이게 다 내 운명인 거겠지. 이러다가도 언젠가 다시 좋은 날이 오겠지.’

“강우연! 고운이 아빠는 지금 어딨어? 지난 5년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친 거,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 그런데, 애가 지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얼굴 정도는 비출 수 있는 거 아니니?”

다급한 마음에 양예나가 구두굽으로 바닥을 콱 내리찍었다.

“그 사람은 아마... 딸이 있다는 것도 모를걸요. 게다가 5년이나 지났는데... 저 같은 건 진작 잊었을 거예요.”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다시 닦아낸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언니, 그 동안, 나한테 잘해 줘서 고마워요.”

말을 마친 강우연은 행여나 마음이 약해질까 돌아섰다.

저 굳게 닫힌 문 너머에 지옥이 펼쳐져있다 해도 그녀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손잡이를 잡은 강우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긴 속눈썹에 달린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지훈 씨, 우리한테 딸이 하나 있어. 고운이라고 되게 예쁘고 착하고 똑똑한 애야. 오늘 그 전화... 정말 당신이 받은 거라면 부디... 여기로 와줘. 미안해, 내가 부족해서 우리 딸을 지켜내지 못했어. 고운아, 엄마가 미안해...’

유언이라도 남기 듯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던 강우연이 결국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룸에 앉아있는 남자들이 그녀를 향해 짓는 악마 같은 서늘한 미소가 강우연을 맞이했다.

방금 전 불 같이 화를 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향해 손을 젓던 김태우가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래,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 자, 아까 앙칼지게 군 벌로 벌주 한잔, 어때?”

술잔을 받아든 강우연은 술을 단번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핸드백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과도를 꺼내 김태우에게 달려들었다.

“내 딸 살려내! 살려내라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김태우는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결국 과도는 그의 팔에 긴 상처를 내는 데 성공한다.

“야, 너 정말 죽고 싶어?”

상황을 인지한 김태우가 강우연의 배를 걷어찬 뒤 허리춤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됐어. 다 필요없고, 그냥 죽어.”

“탕!”

귀청이 째질 듯한 총소리와 함께 발사된 총알이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강우연의 몸을 관통했다.

상처에서 튕긴 핏방울이 강우연의 하얀 원피스를 붉게 물들였다.

그 충격에 뒤로 물러나던 강우연의 머리가 창문을 깨고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멈춰선 채 상반신은 건물 밖으로 나온 아찔한 장면이 연출된다.

깨진 유리조각들이 그녀의 여린 얼굴과 팔뚝을 유린하며 흐른 핏방울이 화려한 야경을 비추었다.

‘참 예쁘다...’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이 뜬금없는 생각이 강우연의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같은 시각, 군용 지프차 몇 대가 빠르게 정적에 잠긴 밤거리를 가르며 빠르게 달리다 타워팰리스 정문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창밖으로 나온 한 여자의 상반신이 한지훈의 시야에 들어왔다.

10층 정도 되는 건물의 최고층에서 벌어진 사고라 피해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조차 힘들었지만 그 실루엣을 보는 순간 한지훈은 알 수 있었다.

‘아, 우연아... 우연이가... 지금 위험한 상황이구나.’

그리고 대뇌가 이 상황의 급박함을 인지하기도 전에 강우연은 그대로 스르륵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안 돼!”

그 순간, 한지훈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놀라온 점프력으로 차 위로 올라간 한지훈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억대를 호가하는 외제차 보넷이 일그러졌지만 그런 것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서 숨겨진 잠재력이 폭발한다고 했던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달려간 한지훈은 정말로 10층 높이에서 추락한 강우연을 받아내고 말았다.

한편,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강우연은 예상했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스르륵 눈을 떠보았다.

그리고... 지난 5년 간 수없이 그리워했던 그 얼굴을 본 순간, 한심스럽게도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정말... 와준 거야?’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언젠가 그녀를 만난다면 꼭 하고 싶었던 그 말, 지난 5년간 수없이 되뇌었던 그말, 한지훈이 떨리는 입술로 그 한 마디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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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말이 돼? 성진의 운명은 결코 이렇게 쉽게 파괴되는 것이 아니었다. 카논은 용월이 도망가는 틈을 타 로디웨이와 손 잡고는 용형을 공격하려 했다. 먼저 용형을 죽이고, 다시 함께 용월을 죽일 작전이었다. 그런데 용월이 이렇게까지 난폭하게 성진을 파괴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진법이야!”어느새 카논은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로디웨이를 도우러 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카논보다 용월이 더 놀랐다. 그녀는 신룡전에서 한지훈으로부터 받은 기록으로 스스로 연마한 진법이, 뜻밖에도 이렇게나 강력한 위력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하기 그지없는 버섯구름을 보면서, 용월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는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제... 제가 정말 이렇게나 강한 건가요?”용월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백 리 밖에서 지켜보던 주서진 역시 다가오는 열기를 느끼게 됐다. 옆에 서 있던 위국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수천 년 동안 연마해 온 천극팔문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성진의 운명을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용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절학을 파괴하다니? 이청도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고작 반보 인왕이 세자를 상대로 저렇게 짓밟아버리다니? 그 와중에 한지훈은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사실 로디웨이와 카논 두 사람은 세자의 신분이긴 하지만, 진법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이제 갓 원기를 느낄 수 있는 단계일 뿐이었다. 그들은 원기를 이용하여 진법의 위력을 증강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용월과 용형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휘두른 주먹과 검은 모두, 원기 급의 수법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두 세자와의 경계 차이를 메꿀 수 있었다. 이외에도, 그들의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다른 점은 바로 전투 경험이다. 그러나 용존과 전투 경험을 비교할 수 있는

  • 용왕사위   제3116화

    용월과 한지훈의 대화를 듣고 난 카넬은 단단히 화가 나 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고, 이청도 역시 얼이 나가 있었다. 용월은 반보 인왕의 경지에 불과하지만, 상대는 무려 세자일 뿐만 아니라 인왕계 1단계 강자라고! 살려둘지 말지는 강자가 정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곧이어 그 거대한 소용돌이는 갑자기 매우 빠른 속도로 카논이 서있는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소용돌이의 흡인력은 마치 세상 전체를 빨아들일 기세였다. 심지어 그 화룡은 소용돌이 앞에서는 마치 작은 지렁이라도 된 마냥, 순식간에 삼켜져 더 이상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한편 용형은 다시금 체내의 힘을 동원하여 한 줄기 유광으로 변하여, 곧장 로디웨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짧디 짧은 1초 사이에 두 사람은 몇 수 맞붙게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로디웨이와 용형은 비기게 됐고, 막상막하로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저... 저 놈은 분명히 반보 인왕이잖아!”구경하던 사람들조차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였고, 로디웨이 자신조차도 어안이 벙벙했다. 상대는 분명히 자신보다도 경계가 한 단계 낮고, 게다가 자신은 엄연히 세자의 신분이었기에 그동안 가문이 그에게 투입한 자원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보 인왕은 말할 것도 없고, 그와 같은 경지의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결코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을 거라 믿었다. 그의 신념대로라면, 그는 얼마든지 상대방을 손쉽게 깔아뭉갤 수 있고 참살할 수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뜻밖에도, 오히려 자신이 상대한테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의 실력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당사자인 로디웨이는 상대의 힘이 자신과 전혀 같은 차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동일한 무게의 면화와 포탄이 서로 맞붙는 듯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면화는 바로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때, 카논은 매우 빠른 속도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물러났다. 이내 그는 한 손으로 검을 들고는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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