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지하 3층 주차장을 뚫고 엘리베이터 도착 알림음이 낮게 울려 퍼졌다.서강현은 느릿한 걸음으로 나와 대기 중이던 검은 세단 뒷좌석에 올랐다. 문이 닫히고 외부 소음이 끊기자, 운전석의 김 기사가 룸미러 너머로 강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집으로 바로 모실까요, 대표님?”강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댄 그는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겨 느슨하게 풀었다.집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없는 거실과 불 꺼진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그곳에 혼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그 근처로 가주세요. 도착하면 차는 두고 퇴근하셔도 됩니다.” “유설화 씨 댁 말씀이십니까?”짧게 숨을 내쉬었다. 더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김 기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럽게 미끄러진 세단이 도심의 아스팔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차창 밖으로 짙게 깔린 가을밤 하늘이 빠르게 스쳐 갔다. 까만 허공과 옅은 구름 사이로 희미한 별 하나가 유리창 너머에 외롭게 떠 있었다. 강현은 그 빛을 잠시 바라봤다.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혼자 버텨야 하는 밤에, 그 별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빛났다.하루 종일 이재영의 지시를 듣고,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웃으며 앉아 있었다. 같은 표정과 같은 말, 끝나고 나면 남는 불쾌한 냄새까지.카르테시아에서 스친 유경의 향수 냄새가 아직 재킷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강현은 미간을 누르다 손을 내렸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대답은 바로 나왔지만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잠겨 있었다.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대표님, 도착했습니다.”김 기사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강현은 그제야 유리창에 두었던 시선을 천천히 거두었다.차에서 내린 강현은 낡은 가로등 아래에 우뚝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5층, 설화의 집 창문은 아직 어둡게 꺼져 있었다.“먼저 들어가세요.”김 기사가 떠난 뒤에도 강현은 곧장 돌아서지 않았다. 가로등 아래 서서 담배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설화의 이름이 들리는 순간, 강현은 먼저 손안의 감각부터 확인했다. 말려 있던 손가락이 손바닥을 깊게 누르고 있었다.이재영이 특정한 사람을 입에 올리는 데는 늘 이유가 있었다. 호기심처럼 던진 말 뒤에는 사람을 끌어들이거나 밀어내려는 계산이 붙었다.“다음에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이재영은 만족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그래. 눈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볼수록 신기하더군.”강현의 시선이 차갑게 굳었지만,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설화를 감싸는 순간 그 이름은 곧바로 약점이 됐다.“다른 지시가 없으시면 가보겠습니다.” “오늘 만나는 아이도 잘 좀 밀어줘. 내가 특별히 눈여겨보는 애니까.” “알겠습니다.”강현은 흐트러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왔다. 박 보좌관이 따라붙으려 했지만, 손을 들어 저지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에야 턱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렸다. 낡은 철제 벽에 비친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손목 아래로 도드라진 핏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건물 밖으로 나오자, 강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스무 살짜리 배우를 뒤에서 밀어주면서도 겉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인 척하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오래 봐도 역겨움에 익숙해지지는 않았다.손목시계는 오후 다섯 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쉴 틈도 없네.”짧게 혀를 차고 차에 올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마트폰 액정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오 실장: 다음 일정은 오후 7시입니다. 카르테시아, 용산 F타워 37층.]강현이 화면을 운전석 쪽으로 들이밀었다. 김 기사는 말없이 핸들을 돌렸다.북부간선도로를 달리는 동안 한강의 불빛이 차창 밖으로 길게 흘렀다. 강현은 눈을 감았지만, 이재영이 불렀던 이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유설화.그 이름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무엇을 확인하려는지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이재영의 눈이 닿은 순간부터 설화는 더 이상 자신만 아는 변수가 아니었다.***용산 F타워 37층, 카르테시아.프라이빗 룸의 문이
여름을 밀어낸 선선한 가을바람이 블라인드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고요한 창가를 맴돌았다. 낮게 스며든 오후의 볕이 대표실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길게 긁고 지나갔다.서류 위를 겉돌던 서강현의 시선은, 어느새 북악에 서 있던 그날 유설화의 얼굴에 멎어 있었다. 입술 끝에 매달려 있던 여자의 희미한 미소와 귓가로 파고들던 목소리가 뇌리에서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대표님이 사라지는 게, 저한테는 더 무서울 것 같거든요.가볍게 던진 농담이라 치부하기엔 얕게 끝날 무게가 아니었다. 당돌한 고백이었을까, 아니면 경계를 허무는 위험한 무장 해제였을까. 짧은 순간 강현은 그 말의 끝을 집요하게 좇아가 보고 싶었지만,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처음엔 그 얼굴이 싫지 않은 정도였다.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조금 더 벼랑 끝으로 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어코 울렸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지독하게 파고들어 그녀를 안았다. 그때만 해도 이 모든 감정을 날 선 욕망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하지만 설화는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 그래서 지키고 싶다가도, 보고 있으면 이유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곁에 두고 싶다는 욕심도 결국 또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그 사실을 자각한 강현의 입꼬리가 자조적으로 비틀려 올라갔다.똑, 똑.짧은 노크 소리에 강현은 얼굴에 걸려 있던 서늘한 웃음기를 단숨에 지워내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대표실 문이 열리며 결재판을 든 오 실장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들어왔다.“대표님, 오늘 일정 보고드리겠습니다.”올려진 보고서를 다 읽기도 전에 강현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 서류 최상단에 박힌 문장 하나가 신경을 거슬렀다.“이건 뭡니까.”짧은 물음에 오 실장이 마른침을 삼켰다.“이재영 의원님께서 오늘 지역구 사무실로 들르라고 하셨습니다.”강현은 말없이 관자 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폐부에 맺힌 깊은 숨을 한 번 내뱉고는 다시 무감한 시선을 내리깔았
퇴근길, 백화점 건물 뒤편의 좁은 출입구를 나서자 차가운 밤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낮 동안 정유라가 던지고 간 말들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긁힌 자국은 생각보다 깊었다.“하필이면 여기서 또 그 여자를 보냐고.”꿍얼거리며 걷던 설화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은 주차 라인 끝에 검은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었다. 시트에 걸터앉아 헬멧을 들고 있는 남자. 조명 아래 드러난 얼굴은 서강현이었다.늘 반듯한 슈트와 정돈된 머리, 감정을 지운 얼굴로 나타나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짙은 가죽 재킷 아래로 넓은 어깨가 드러났고, 헬멧에 눌린 머리카락은 평소보다 더 거칠게 흐트러져 있었다.그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설화는 말이 막혔다. 강현은 아무 설명도 없이 턱짓으로 오토바이 뒷자리를 가리켰다.“끝났어?”설화가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대표님이 여긴 왜…….”강현은 대답하지 않고 여분의 헬멧을 들어 보였다.“타.”짧고 단호한 말이었다. 설화가 선뜻 움직이지 못하자 그가 직접 다가왔다. 헬멧을 씌우고 버클을 채우는 긴 손가락이 턱 끝을 스쳤다. 접촉은 잠깐이었지만 설화는 숨을 한 번 늦게 내쉬었다.“어디 가는 건데요?” “가 보면 알아.”강현은 먼저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엔진음이 낮고 거칠게 울렸다.“잡아.”설화는 조심스럽게 뒷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가죽 재킷 끝만 붙잡았지만, 오토바이가 도로로 빠르게 진입하자 결국 두 팔로 강현의 허리를 감았다. 단단한 체온이 손바닥에 닿았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 정유라 때문에 눌려 있던 답답함이 속도감에 밀려 조금씩 뒤로 흩어졌다.도심의 불빛이 길게 번졌다. 강현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속도를 올릴 때마다 설화의 손이 풀리지 않도록 몸을 낮췄다. 설화는 그의 등에 얼굴이 닿지 않을 만큼만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가, 급한 커브에서 팔에 힘을 주었다.오토바이가 멈춘 곳은 서울이 한눈에
알람 소리에 눈을 뜬 설화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봤다. 전날 백화점에서 보낸 하루와 진우와의 저녁, 그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 뒤엉킨 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협탁 위를 더듬었지만, 스마트폰은 잡히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기기를 주워 화면을 열었지만, 너무도 조용했다. 부재중 전화도, 알림 숫자 하나도 없었다.왜 아무 연락이 없지.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설화는 입술을 다물었다. 단순히 빚으로 엮인 사이라면 이런 조바심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째 이어지는 강현의 부재는 생각보다 선명하게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출근이나 하자.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으니까.”보름이라는 시간도 어느새 절반을 넘겼다. 설화는 몸을 일으켜 옷장을 열었다. 고깃집 냄새가 밴 오래된 티셔츠 대신 잘 다려 둔 셔츠를 꺼내 입고, 거울 앞에서 입술에 옅은 색을 얹었다.거울 속 얼굴은 전보다 조금 단단해 보였다. 강현이 없는 시간 동안에도 하루는 굴러갔고, 자신은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오늘도 버티자.***W백화점 정문 앞에 도착한 설화는 차가운 가을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5층 버튼을 누른 뒤에는 습관처럼 주머니 속 스마트폰으로 손이 갔다. 화면은 여전히 어두웠다.“바보 같이.”허탈한 실소가 입술 틈으로 새어 나왔다. 대단한 연락이라도 기다렸던 사람처럼 구는 자신이 우스워 고개를 작게 저었다. 미련처럼 목을 조여 오는 낯선 감정을 억지로 바닥으로 욱여넣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설화 씨,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부탁드릴게요.”의류 상자를 안고 지나가던 동료가 이마의 땀을 훔쳤다.“오늘 물량 엄청나게 들어왔어요. 오픈하자마자 정신없을 것 같아요.” “옷만 갈아입고 바로 도울게요.”설화는 직원 대기실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처음에는 뒤꿈치를 까지게 만들던 구두도 이제는 제법 익숙했고, 포스기 조작과 손님에 따라붙는 입담도 늘어있었다.오픈과 동시
팽팽하게 이어지던 하루는 오후 여섯 시가 지나서야 느슨해졌다.설화는 직원 대기실에서 땀과 먼지가 밴 유니폼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울 속 얼굴에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가방에서 립밤을 꺼내 입술 위에 덧바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누군가와 저녁을 먹기 위해 퇴근 준비를 하는 일이 낯설었다. 업무도 거래도 아닌 약속이었다.매니저와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정문으로 나가자, 난간에 기대선 진우가 보였다. 설화를 발견한 그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오래 기다렸어요?” “여섯 시라더니 삼십 분은 더 지난 것 같은데요.”진우의 투정 섞인 말투에 설화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죄송해요. 마감 정리가 늦어져서요. 뭐 드실래요?” “일단 걸어요. 배고픈 사람이 메뉴 고르는 게 제일 빠르니까.”진우가 앞장섰고, 설화는 그의 옆에 맞춰 걸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하루 종일 달아올랐던 얼굴을 식혀 줬다. 백화점 안의 기계음과 안내 방송이 멀어질수록 발걸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저는 검사님처럼 지갑이 두둑하지 않아서 비싼 곳은 안 돼요.” “제가 그렇게 속물처럼 보입니까?”진우가 웃으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저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삼겹살 먹고 싶네요.”삼겹살이라는 말에 설화의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 불판 앞에 서서 손님들의 고기를 뒤집고, 기름 냄새가 밴 옷으로 집에 돌아가던 날들이 떠올랐다. 진우는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도 모른 척 계속 걸었다.“근처에 아는 곳 있으세요? 저는 이 동네를 잘 몰라서요.” “자주 가는 데가 있어요. 분위기는 기대하지 말고.”백화점 뒤편 골목으로 들어서자 낡은 네온 간판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진우가 멈춘 곳은 ‘생삼겹살 전문’이라는 환한 간판이 걸린 식당 앞이었다.문을 열자 고기 굽는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설화는 잠시 입구에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냄새였지만, 오늘은 앞치마를 두르지 않아도 됐다.직원이 물병과 물수건을 내려놓으며 진우
일상적인 며칠이 지나갔다. 여름 햇살의 열기는 여전했고, 매미 소리도 여전히 귀가 따가울 만큼 울어댔다. 골목을 채운 낡은 빌라들, 담벼락 위로 엉켜 늘어진 전선, 쓰레기봉투 옆을 지나쳐가는 고양이까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다른 건 하나뿐이었다.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고, 낯선 사람들이 집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압수수색영장입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낮고 딱딱한 목소리가 좁은 현관을 파고들었다. 설화는 처음에는 그 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압수수색. 영장. 협조. 뉴스에서나 들었을 법한 단어들이,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사무적인 목소리. 정중한 척했지만, 그 안에 숨기지 못한 냉랭함이 섞여 있었다. 설화는 허리를 들고 돌아서 남자를 올려다봤다. 서류가방을 든 남자가 슈트 차림 그대로 서 있었다. 딱 봐도 용건이 무엇인지 말해 주는 얼굴이었다."네, 맞는데요.“남자는 설화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안 볼을 혀로 밀었다.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가방에서 하얀 종이를 꺼내 설화 앞으로 내밀었다."내용증명입니다. 확인해 보시죠.“흰 종이 위에는 채무자 유설화라는 이름이 박혔고, 그 아래로 선명하게 찍힌 주식회사
경기도 외곽에 자리한 사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빈소 안에는 향 냄새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문객보다 빈 곳이 더 많았다. 한때는 아버지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 안달 나던 사람들조차 아무도 없었다. 이름도 낯선 몇 명만이 어색한 얼굴로 다녀갔다. 설화는 영정 사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생전에 집 안에서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얼굴이었다. 온화한 미소가 이상하게 낯설어서, 설화는 헛웃음만 나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갈 거면서. 이렇게 다 놓고 갈 거면서. 그동안 엄마와 나를 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여름의 문턱을 먼저 넘어와 있었다. 인문관 계단은 오후 햇살을 오래 머금어 뜨끈했고, 문을 나서는 순간 에어컨의 냉기는 금세 뒤로 밀려났다. 잔디밭 위로 흘러가는 바람마저 미지근했다. "아… 더워. 진짜 여름 됐네." 설화는 손에 든 과제물을 부채처럼 파닥이며 인문관을 나섰다. 프린트 가장자리가 손바닥을 스칠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 강의실 안에서 교수님 목소리에 졸음 섞인 집중을 붙들고 있던 애들이 맞나 싶게 캠퍼스는 벌써 한껏 풀어진 분위기였다. 잔디밭에는 삼삼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