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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Author: 이레나

1화 평범했던 여름

Author: 이레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7 16:05:15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여름의 문턱을 먼저 넘어와 있었다. 인문관 계단은 오후 햇살을 오래 머금어 뜨끈했고, 문을 나서는 순간 에어컨의 냉기는 금세 뒤로 밀려났다. 잔디밭 위로 흘러가는 바람마저 미지근했다.

​"아… 더워. 진짜 여름 됐네."

​설화는 손에 든 과제물을 부채처럼 파닥이며 인문관을 나섰다. 프린트 가장자리가 손바닥을 스칠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 강의실 안에서 교수님 목소리에 졸음 섞인 집중을 붙들고 있던 애들이 맞나 싶게 캠퍼스는 벌써 한껏 풀어진 분위기였다. 잔디밭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은 학생들이 있었다.

​편의점 아이스커피를 들고 수다를 떠는 애들과 슬리퍼를 벗어 둔 채 그늘 아래 퍼져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축제는 진작 끝났는데도 한쪽에는 아직 철거하지 못한 현수막이 여름 바람에 축 늘어진 채 매달려 있었다.

​유설화도 그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시험이랑 과제, 알바 시간표, 그리고 가끔 친구들 연애사까지. 그런 걸로 하루가 일상인 스물한 살.

​"야, 유설화!"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설화가 고개를 돌리자 채유정이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뛰어온 사람치고는 숨보다 표정이 먼저 앞섰다. 유정은 오자마자 설화 팔을 덥석 붙잡았다.

​"너 어디 가? 지금 다 같이 카페 간다는데."

"나 알바."

"또?"

"응."

​설화가 너무 태연하게 말하며 픽 웃자, 한순간 유정의 표정이 구겨졌다.

​"너 진짜 알바가 네 연인인 줄 안다?"

"연인은 돈 주는 쪽이 맞지."

"아, 진짜 얘 말하는 거 봐."

"돈 벌어야 살아. 누가 대신 벌어주냐."

"너는 매번 말을 해도 꼭."

​설화는 어깨를 으쓱했고, 유정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고는 괜히 운동화 끝으로 잔디를 툭툭 찼다.

​"너 오늘도 야근 알바야?"

"응."

"미쳤다. 사람 사는 거 맞냐?"

"사람이니까 가는 거지."

"하여간 한마디도 안 져."

​유정이 한숨을 푹 쉬었다. 설화는 그런 반응이 익숙했다. 안쓰럽다며, 힘들겠다며 바라보는 얼굴. 설화는 그래서 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너야말로 어디 가는데? 카페?"

"그놈한테 사과받으러."

"남친한테 그놈이 뭐야."

"됐고, 네가 뭘 알아."

"그래. 내가 뭘 알겠냐. 너희는 싸우고 붙고 싸우고 붙고 아주 바쁘던데."

"그게 연애야."

"연애의 달인 나셨네."

​설화가 혀를 차자 유정이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 눈에 큰 힘은 별로 없었다. 채유정, 김민철. 학과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시끄러운 커플이었다. 싸우는 것도 요란했고, 화해하는 것도 요란했다. 둘이 지나간 자리는 늘 작은 드라마 한 편이 지나간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설화는 손에 든 과제물을 다시 흔들며 툴툴거렸다.

​"징그럽다. 적당히 좀 싸워.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냐."

"애인 없는 네가 승자일 수도 있어."

"방금까지 사과받으러 간다는 사람이 할 말이냐?"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연애? 해봐. 생각보다 별거 없다."

"별거 아닌 걸 왜 그렇게 난리 치는데."

​유정이 잠깐 말문이 막힌 얼굴을 했다. 그러다 곧 입꼬리를 씰룩이며 설화의 팔을 툭 쳤다.

​"너 은근히 사람 찌르는 거 잘한다?"

"아니, 순수하게 궁금해서."

"순수 같은 소리 하네. 너도 남친 생기면 안다."

"뭘?"

"좋다가도 짜증 나고, 짜증 나다가도 보고 싶고. 그러다 내가 미친 건가 싶고."

"복잡하네."

"응. 복잡해. 그러니까 하지 마. 언니 말 들어."

"그럼 좋은 건 하나도 없어?"

​설화가 장난스럽게 묻자, 유정이 슬그머니 한 걸음 다가서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지금 뭐가 듣고 싶은데?"

"그냥… 좋은 거."

"이게. 홀랑 까져가지고."

"야!"

​둘은 동시에 웃었다. 별것도 아닌 농담인데 웃음이 쉽게 났다. 유정의 볼은 더워진 공기 때문인지, 방금까지의 연애 타령 때문인지, 설화도 손등으로 뺨을 한번 문질렀다. 뜨거웠다.

​매미 소리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캠퍼스 어디선가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났다. 그늘 아래 앉은 학생들은 앞으로도 이런 오후가 계속될 것처럼 느긋했다.

​설화는 그 소란 속에서 잠시 걸음을 늦췄다.

​곧 아르바이트에 가야 했다. 유니폼을 걸친 채, 웃는 얼굴을 꺼내고, 계산대를 지키고, 끝나면 늦은 밤 버스를 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캠퍼스 안이었다. 과제물이 손에 들려 있었고, 친구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여름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야, 진짜 간다. 늦으면 점장님 또 잔소리해."

"끝나면 연락해."

"네 남친 욕 들어주는 건 추가 요금이야."

"그래, 돈독 오른 인간아. 진상 조심하고."

"너나 조심해. 화해하다 쓰러지지 말고."

​설화가 농담을 던지며 손을 흔들자, 유정은 얼굴을 붉히며 꿍얼거렸다.

​"야, 너 지금 그 말 일부러 했지?"

​설화는 웃기만 한 채 뒤돌았고, 유정은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와 입술만 깨물었다.

​이 시끄러운 매미 소리와 눅진한 오후, 친구와 주고받은 별것 아닌 농담들이 그저 평범하게 여름의 한 장면으로 남을 줄만 알았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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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보기엔 가벼운 농담이 오가는 술자리였지만, 설화는 숨이 막힐 듯 불편했다. 태연한 얼굴의 진우와 달리, 강현은 유독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소주잔을 쥔 그의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옅게 솟아올라 있었다.설화가 조용히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갈 무렵, 맞은편에 앉은 진우가 턱을 괸 채 그녀를 응시했다.“자선 파티 때부터 생각했는데.”불쑥 던져진 말에 설화가 눈을 깜빡였다. 진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설화 씨는 왜 그렇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요.”시선은 설화를 향해 있었지만, 날이 선 말끝은 다분히 강현을 겨누고 있었다.그 순간 강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잔을 움켜쥔 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진우는 그 굳은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입가만 느슨하게 풀었다.“보통 그런 자리는, 제대로 준비된 사람들만 넣지 않나. 꽤 위험한데.” “…….” “설화 씨를 굳이 거기 둔 이유가, 난 좀 궁금해서.”테이블 위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위험한 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밀어 넣은 강현의 모순을, 진우가 노골적으로 파고들어 균열을 내고 있었다.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입꼬리만 아주 얕게 비틀었다. 웃음인지 경계인지 모를 서늘한 무표정이었다. 짧고 숨 막히는 대치 끝에 의자가 바닥을 거칠게 긁는 마찰음이 울렸다. 강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잠깐 바람 좀 쐬고 오지.”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든 강현이 턱짓했다. 명백히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강현이 먼저 등을 돌리자, 진우는 물을 한 모금 삼킨 뒤 설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심기 불편한가 본데, 금방 다녀올게요.”***가게 밖 흡연구역에 선 강현은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는 짧은 순간에도 손끝이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뚜껑이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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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0화 세상은 언제나 문을 닫았다.

    뭐가 이렇게 불편한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여자 하나가 방 안에 잠들어 있을 뿐인데, 그런데도 손끝에 닿았던 설화의 부드러운 살결과 입술의 촉감이 기어이 잔상처럼 달라붙었다.아주 오래전 닫아 둔 문 안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손잡이를 건드리는 것처럼.비가 내렸다. 회색 하늘 아래, 굵은 빗방울이 낡은 식당 문을 쉼 없이 때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고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그 작은 식당 앞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열 평 남짓한 식당은 젊은 여자와 어린 소년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엄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9화 닫힌 문 안쪽에서

    설화가 차가운 기운을 느꼈는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더 둥글게 웅크렸다. 강현의 커다란 재킷 아래로 가냘픈 어깨가 파묻히고,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강현은 그 위태로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강제로 시선을 뚝 끊어냈다. 그런데도 의지는 배신하듯 다시 고개가 돌아갔다.확인하듯, 아니면 상황을 부정하려는 사람처럼.……이건 아니야.그는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눈물처럼 붙어 있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닿는 순간마다 감각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고, 단단히 손끝에 들어가 있던 통제력은 허무하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8화 비에 젖은 여자

    축 늘어진 설화를 품에 안은 채, 강현은 빗속을 가로질렀다. 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의식 없는 몸 하나쯤 옮기는 일에 버거움을 느낄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품 안에 닿은 체온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런데도 그 작고 힘없는 무게가 불쾌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강현은 설화를 조수석에 눕힌 뒤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벨트가 가느다란 몸 위로 걸리는 순간,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마치 그 멈칫거림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그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뒷좌석의 재킷을 집어 들었다.축축하게 젖은 상체 위로 재킷을 덮어 주는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7화 비 속으로 걸어온 남자

    설화는 다리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빗방울이 머리카락을 타고 목덜미 아래로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손끝은 점점 차가워지고, 온몸이 젖어들수록 오한이 몸을 감싸 안았다. 가로등 불빛마저 거센 빗속에서 흐릿하게 번져 눈앞을 어지럽혔다.그 순간, 머리 위로 툭— 소리와 함께 암전처럼 검은 우산이 펼쳐졌다."그래서… 여기서 끝낼 생각이야?"낯설지만 낮고 묵직하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 설화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리며 천천히 남자를 응시했다.우산 아래 서 있는 남자는 빗물에 젖은 검은 셔츠 사이로 단단한 어깨를 드러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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