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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Author: 라율

1화. 루틴의 시작

Author: 라율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20 13:31:54

[이 연애는… 감정이 아니라 알고리즘으로 굴러갑니다.]

말은 시멘트인데 행동은 다정한 ISTJ 남자친구.

말은 빠르고, 판단도 빠른 ESTJ 여자친구.

둘은 서로에게 “뭐해?”를 묻지 않는다.

대신 기상–출근–업무–이동–취침.

하루를 ‘보고서’처럼 교환한다.

오차가 생기면 갈등도 생기고,

문장 끝의 물결 하나가 하루의 기분을 결정한다.

이 빈틈없는 알고리즘이…

과연 언제까지 완벽하게 굴러갈 수 있을까?

***

휴대폰 진동이 미세하게 손목을 스쳤다.

새벽의 찬 공기가 이불 끝자락을 파고드는 시간.

희수는 반사적으로 눈을 떠 화면을 확인했다.

익숙한 이름, ‘재원’.

그녀의 메시지 창에는 어김없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로그(Log)가 쌓여 있었다.

[기상] 06:12

[출근 준비할게] 06:13

[출근해서 일하는중] 07:30

정확하고 간결하다.

단 1분 1초의 오차도 없는, 칼 같은 메시지들.

이것이 바로 재원의 루틴이었다.

감정이나 여운 같은 건 없고 오직 ‘정보’만 전달하는 문장들.

가끔 물결(~)표 하나가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일탈이랄까.

“아—오늘도 잘 일어났군.”

희수의 입가에 피식,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이 규칙적인 데이터 값이, 오늘도 그가 ‘정상 작동’ 중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치 습관처럼, 재원의 다음 루틴이 찍히기 전에 그녀의 메시지가 발송되었다.

[나도 이제 일어났어! 출근 준비할게!] 08:03

새벽 6시의 재원과는 다르게, 그녀의 메시지에는 활기찬 감탄사와 느낌표가 가득했다.

밝고,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

시니컬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긍정 에너지.

그게 바로 ESTJ 희수의 기본값(Default)이었다.

세안을 하고 머리를 질끈 묶은 뒤, 화장으로 생기를 불어넣고 집을 나섰다.

정류장에 도착해 휴대폰을 켠 희수는 자연스럽게 다음 보고를 전송했다.

[나 버스 기다리는 중~] 09:00

이건 둘 사이의 오랜 합의이자 굳건한 약속이었다.

✔ “뭐해?” 금지 (비효율적 질문)

✔ 서로의 위치 직접 묻기 금지 (보고된 정보로 추론 가능)

✔ 그러나 ‘장소 이동 = 즉각 보고’ (데이터 업데이트 필수)

대화는 짧지만, 정보 공유는 정확하고 투명해야 하는 관계.

팩트 기반의 재원과, 효율을 중시하는 희수에게 이 방식은 최적이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희수는 익숙한 길로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문제는 바로, 그 평범했던 ‘거기서’ 시작되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몰아치는 일상.

청소, 예약 손님 응대, 재고 체크, 상담, 미용 준비…

시간은 물 흐르듯 삭제되었고, 희수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줄도 몰랐다.

그녀의 머릿속은 오직 일과 손님, ‘업무 효율’만으로 가득했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탁!’ 하고 강렬하게 진동했다.

평소처럼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재원의 점심 루틴.

[밥먹고 쉰다~] 12:30

안심하며 다음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희수의 심장이 얼음물에 담긴 듯 차갑게 식었다.

[버스를 3시간 동안 기다리나 보네.] 12:30

“…아.”

망했다.

재원이 점심시간에 폰을 확인했을 때, 희수의 마지막 보고는 오전 9시 ‘버스 기다리는 중’이었다.

ISTJ식 논리 계산은 단순했다.

9시 (버스 정류장) → 12시 (업데이트 없음) → 3시간 경과

= 결론: 아직도 버스 정류장.

설명 없이 ‘정보 공백’이 생기면, 재원은 그 공백을 그대로 ‘사실’로 확정해 버린다.

이건 명백한 희수의 ‘입력 오류’였다.

물론 아직도 버스 정류장일리 없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을 터, 이것은 정보 공백이 생겼으니 빨리 니 상태를 보고 하라는 재원식 표현이었다.

희수는 허겁지겁 답장을 날렸다.

[아냐!!!! 방금 봤어ㅠㅠㅠ 손님 많아서 연락을 못 했어 진짜ㅠㅠ]

10분 뒤.

재원의 말투가 떨어졌다.

[예예]

두 글자.

짧고 건조하며, 정확하게 ‘서운함’을 내포한 말투.

“…오늘 완전 꼬였다.”

재원은 화를 내지 않는다.

서운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말투의 온도로만 감정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예예’는 명백한 ‘대화 종료’ 신호였다.

그 미묘한 온도 차이를 읽어내는 건 희수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복구’와 ‘유지’였으니까.

[나 일 하는 중이야~쉬다가 일해요 ^^; ]

오후 내내 정신없이 미용 작업에 몰두하던 희수의 휴대폰에는 재원의 루틴이 쌓였다.

[집도착] 15:40

[쉴게] 15:40

희수는 확인 즉시 답장을 보냈다.

[웅~ 쉬어여~ 퇴근할 때 연락할게🙂]

이후는 온전히 ‘재원만의 시간’. 

이 시간엔 어떤 메시지를 보내도 그는 답하지 않는다.

ISTJ 특유의 ‘혼자만의 회복 시간’이었다.

[이제 퇴근할게!] 19:08

[집 도착~ 씻고 누웠다!] 20:12

희수는 마지막 보고까지 마친 후, 폰을 내려놓았다.

잠들기 직전, 재원의 메시지가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다.

[나 잔다] 22:30

[내일보자] 22:30

평소와 같은 문장. 일정한 호흡.

희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큰일 날 뻔했네.”

다행이다. 그의 일정한 루틴이 도착했다는 것은 시스템이 복구 되었단 신호였다.

[나두 이제 잘게 자기야♡ 잘자~] 22:46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켠 희수는, 가장 위에 떠 있는 재원의 루틴을 확인했다.

[기상] 06:11

[출근 준비할게] 06:12

정확한 시간. 일정한 루틴.

어제의 일탈은 이미 그의 질서 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진 듯했다.

희수는 피로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아, 오늘도—

루틴이 정상으로 돌아왔구나.

그 말은 곧,

둘의 관계도 다시 ‘안정권’에 진입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희수의 가슴에 남은 재원의 [예예] 계속 찜찜한 느낌을 희수는 그냥 넘길 순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이 오늘은 어떤 하루를 선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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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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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잼나요^^ 다음회가기대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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