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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여자랑 잤죠?

작가: 명모
잠시 뒤, 윤재가 팬들을 돌려보내고 대기실에 들어오자 채림이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백채림이라고 해요.”

“백채림이요?”

윤재는 살짝 귀찮은 듯 말했다.

“어디에 사인해 줄까요?”

채림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우선 저 좀 볼래요? 저 모르겠어요?”

“씁.”

‘와, 몸매 죽이네.’

윤재는 코에 걸려 있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채림을 위아래로 쭉 훑었다.

“굿. 지팡이도 신선하고. 내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어요. 저녁에 사용하면... 꽤 재밌겠는데요?”

윤재가 말하면서 지팡이를 툭툭 건드리자 채림은 언짢은 듯 손을 뿌리쳤다.

“윽.”

윤재는 지팡이에 맞은 손을 입가에 갖다 대며 살짝 핥았다.

“성깔 있네? 마음에 드는데?”

그 순간 채림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

‘왜 어제랑 완전히 다르지? 어제는 말도 안 하고 무게감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술 좋아하고 여자 밝히는 가벼운 한량 같네.’

약간 넋을 잃은 채림을 보며 윤재는 눈을 깜빡였다.

“오늘 밤에 나랑 같이 B국 갈래요?”

그 말에 채림은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아니요. 다들 성인이니 어젯밤 일은 책임을 묻지 않을게요. 하지만 간단한 조건이 있어요.”

“어젯밤? 왜 난 기억이 없죠?”

윤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 역시 남자들이란.’

입 싹 닦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윤재의 뻔한 속셈에 채림은 싸늘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가 증거를 남겼으니 망정이지.’

채림은 침착하게 핸드폰을 꺼내 자기는 희미하게 나오고 남자만 선명한 사진 두 장을 골라내 윤재에게 보여주었다.

“어젯밤, B국 가든 호텔, 8868호실. 기억 안 나면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줄까요?”

놀란 듯 눈을 땡그랗게 뜨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윤재는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어... 어젯밤 B국 가든 호텔에 있었던 거 확실해요?”

“호텔 CCTV 영상도 있어요.”

채림은 귀찮은 듯 말했다.

“간단한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돼요. 문윤재 씨한테 큰 피해는 안 갈 거예요. 하지만 끝까지 잡아뗄 생각이라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못 믿겠으면 어디 해봐요.”

순간순간 변하는 윤재의 표정은 너무나 다채로웠다. 이윽고 윤재는 채림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망칠 것처럼 몸을 돌렸다.

“실례할게요.”

한참 뒤, 구석진 곳에서 약 2분간 통화하던 윤재는 다시 돌아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원하는 거 있으면 뭐든 말해요. 게다가 최근 H시에서 미스 글로벌 파티에 참석할 아가씨를 선발한다던데, 그쪽 이미지가 딱인 것 같거든요. 한 번 시도해 볼래요?”

‘그렇게 허세를 부리더니 바로 태도를 바꾸네.’

채림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윤재를 바라봤다.

물론 윤재가 아직도 꺼림칙하지만 얼마 전 원후가 분명 사나와 윤재의 합작을 서둘러 사나를 미스 글로벌 파티 오디션에 내보내겠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게다가 이번 오디션의 최종 결정권이 MS 그룹에 있으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MS 그룹에 줄을 대 사나를 밀어주겠다고 했었다.

이번 오디션이 사나와 관련 있는 것이라면 채림도 당연히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번 파티는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 탑 10에 드는 럭셔리 파티에 속하기에, 마침 자신이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했다는 걸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제 다리가 온전치 못한데, 그래도 딱이라고 생각해요?”

채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올해 미스 글로벌 파티 주제가 ‘드림걸’이에요. 불구인 여자는 꿈을 좇지 말란 법 있나요?”

일리 있는 말에 채림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한참 뒤, 다시 넌지시 물었다.

“제가 시도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시도만 하면 당연히 결과는 좋을 거예요! 알잖아요!”

윤재는 채림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그러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채림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다시 물었다.

“혹시 이게 입막음 비용인가요?”

MS 그룹은 몇 세대를 거쳐 발전해 왔기에 그만큼 실력 있고 규모가 있는 기업이었다. 그런 기업을 이끄는 오너 일가의 마음은 당연히 무척 복잡하고 알기 어려울 테고. 때문에 거래 조건이 간단할수록 오히려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채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돼요.”

윤재의 표정은 약간 우스꽝스러웠다.

그때 채림이 깔끔하게 약속했다.

“그래요. 미스 글로벌 파티에 무사히 참석할 수 있게 해준다면 사진 모두 지워줄게요.”

채림의 확답을 받자 윤재는 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아까 부탁이 있다던 건 뭔가요?”

“아주 간단해요. 백사나 회사와 약속했던 미팅 취소해요. 이유를 묻는다면 스케줄이 변동되어 나중에 따로 약속 잡겠다고 대답하고요. 알았죠?”

“그럼요, 알겠어요!”

씩씩하게 뒤돌아 떠나는 채림의 모습에 윤재는 턱을 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아까 윤재는 사실 집사에게 전화해 어젯밤 둘째 삼촌 문지후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그런데 지금 또 다른 호기심이 발동하여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

그 시각, MS 그룹 맨 위층 회의실 안, 본부의 모든 부서 임원진은 회사 대표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전 세계 지사와 화상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들리는 핸드폰 진동음에 비서실장 원강현이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 한참 뒤, 공손하게 그 내용을 전달했다.

“대표님, 윤재 도련님이 급한 일로 찾으십니다.”

“스피커폰으로 해봐.”

지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옆을 흘깃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자식이 하면 얼마나 진지한 얘기를 하겠어.’

그때, 윤재의 흥분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삼촌! 어제 여자랑 잤죠?]

“...”

회의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이상해졌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표정을 관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지후는 얼른 핸드폰을 들어 스피커폰 모드를 끄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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