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지금 주하가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수술?”
시우는 제 귀를 의심했다.
수술? 무슨 수술? 또?!!
“실험 중에 다쳐 한 시간 전, 긴급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현시우가 급하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주하가 막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왼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목에는 흰 거즈와 함께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회복실 앞에 서 있던 주세인이 눈에 들어왔다. 현시우는 곧장 다가가 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넌 가드면서 뭐 했어!!”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나왔다.
“….”
“말해. 주하가 왜 저렇게 되었는지!”
세인은 눈을 질끈 감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엇을 완성했는지 이제 알았거든.”
“뭐??!”
시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렸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현시우는 떨리는 입가를 손으로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오열을 이곳에서 토할 것만 같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자, 이내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 앉았다.
‘그냥 모르고 있지….’
모른 척 넘어가지.
유주하.
사랑하는 내 주하.
그렇게 약해지면 안 돼.
그럼 너만 힘들어져.
한참 뒤에야 다시 몸을 일으켰다.
‘미안. 오랫동안 곁에 있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헤어질 시간이 빨리 올 것 같아.’
너를 더 빨리 만났어야 했는데.
다음엔 내가 더 용기를 내볼게.
다음엔 내가 더 빨리 네게 다가갈게.
다음에 내가 더 빠르게 지켜줄게.
주하, 너만 괜찮다면.
네가 나보다 하루라도 더 많이 살 수 있다면 그게 좋아.
그랬으면 좋겠어.
하루라도 더 마음껏 네가 살 길.
주라헬의 그물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길.
내가 없어도,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많길.
그리고 말이야,
널 이렇게 보내야 하는 나를,
나중에 다시 사랑해줄래?
***
그날 밤.
감겨있던 주하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시야에 들어온 건 익숙한 병원 천장과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였다.
‘망할 주화병원.’
살렸네.
“유주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주하는 홀린 듯 고개를 돌렸다. 현시우가 다정한 미소를 내비쳤다.
‘미안해. 시우야.’
내가….
내가 하면 안 되는 걸 했어.
그래서….미안해.
정말 미안해.
울음이 차오르며 목소리를 삼켰다.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눈물만 흘러 관자놀이 쪽으로 번지자, 시우의 따뜻한 손길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닦아냈다.
“미안, 주하야. 네게 부담을 줘서.”
그의 손이 주하의 뺨에 닿았다.
평소처럼 눈매가 예쁘게 휘어진 눈웃음이었지만 무언가 달랐다. 애절한 슬픔을 담은 웃음.
그 웃음이 주하의 마음에 차디찬 말보다 더 깊숙이 파고들어, 가슴을 잔인하게 도려내는 것 같았다.
영영 아물지 못하는 상처가 생긴 것처럼 아팠다.
“…왜…네가 그런 말을 해.”
목소리가 떨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해야 하는데. 왜 네가 해? 너 바보야? 다 알면서 !”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은데 그저 심술이 섞인 모진 말이 튀어나왔다.
“응. 바보인가 봐.”
시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주하는 가슴이 턱 막혔다.
“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현시우씨가 바보라고 인정해? 그거 아니잖아. 이상하잖아. ”
툴툴거리는 말에 시우의 굳어 있던 눈매가 풀렸다. 불안의 소용돌이 안에 있던 자신이 점차 안정되었다.
“너니까.”
시우는 주하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너만 괜찮으면 되니까.”
***
6개월 후, 2026년의 끝자락.
시리고 시린 한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자기 방 침대 머리맡에 간신히 몸을 세운 현시우 앞에 주라헬이 나타났다.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우리 대~단한 현무가의 가주님도 별거 아니구나.
주라헬은 최근 몇 년 사이 있었던 일 중 지금이 가장 즐거웠다.“어때?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는 기분은?”
“하아…. 미친.”
현시우는 피 묻은 입가를 닦았다.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주라헬을 노려봤다.
“너도 느껴봐야 하는데.”
“하하하. 정말 재미있어.”
주라헬이 시원하게 웃었다.
“역시 그래도 가주는 가주야. 곧, 전 가주가 될 테지만. 죽는 길에 선물 하나 줄게.”
그녀가 몸을 살짝 비켰다.
“ 소개할게. 너를 대신할 현무가의 가주.”
그러자 방 밖에 있던 한 남자가 그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 시우형.”
시우의 눈이 커졌다.
“…너였어?”
눈앞의 얼굴을 바라보던 시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라헬은 웃으며 다가와 그 남자의 목에 주사를 놓았다.
“읏!!”
“괜찮아. 이것 가지고.”
그녀의 미소가 짙어졌다.
“나중엔 더 아플 텐데.”
순간 그 말에 시우의 머릿속에 주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젯밤 늦게, 현겸에게서 주하의 동선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중 하나가 학교 체육관 수영장.주하가주로 나타나는 시간에 맞춰 바로 이곳에 왔다.‘물놀이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던 애가 물을 무서워했다고?’마음 한편에 무거운 추가 매달린 듯했다.그날 이후 바뀐 걸까.
살아 있는 듯, 진한 붉은 색의 피가 넘실거리는 연보라색 튜브.주라헬이 연보라색 튜브를 들어 올려 형광등에 비춰보며 의미심장한 눈길로 바라봤다.“이거란 말이지.”“네.”“그럼 진행해. 정말 겨울이 맞는지 확인해 봐.”“네. 결과는 나오
가슴에 맺힌 말들이 차오르다가 사라졌다. 시우는 숨을 천천히 고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현진과 아는 사이면… 같은 랩이야?”“어.”주하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시우의 가슴은 그 짧은 대답에도 반응하며 두근거렸다.‘
현성은 혈액 샘플을 들고 가는 길에 1층에 있던 현진과 마주쳤다.“어째 누나의 표정이 좋아 보인다?”괜히 배알이 조금 꼴려 현성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어. 그렇지.”현진은 1층 카페를 바라보며 흐뭇한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 살짝 거리를 벌렸다.“누나 왜 그래? 무섭게. 여기에 누구 발라 죽일 사람 있어?”“아니.”현진은 여전히 카페를 바라봤다.“ 가주님은 바나나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1층 카페마다 바나나 우유 메뉴를 만들라고 지시했을까?”“어. 맞다. 그때 말이 많았지. 단 걸 먹지도 않으면서 굳이 왜 그러냐고.”
머쓱해진 주하는 서둘러 빨대로 라떼를 들이켰다. 차갑고 달콤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머리를 짓누르던 어지러움과 울렁거림이 씻은 듯이 가라앉았다.‘아….이제 살 것 같다.’굳어 있던 주하의 얼굴이 그제야 풀리자, 시우의 눈웃음이 더 깊어졌다. 그 모습을 본 현진의 눈이 더 커졌다.시우는 잠시 주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맞은 편에서 걱정 어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유주하!”주하는 고개를 들어, 아는 얼굴이 보이자 긴장이 풀리며 입꼬리가 올라갔다.“어? 현진언니.”현진은 창백하게 질린 주하의 얼굴을 보고 놀라며 황급히 다가왔다. “너 왜 그래?”“어지러워서.” 지친 기색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나자, 현진은 곧장 주하의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주하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카페로 갈 거지? 같이 가자.”“언니는 샘플 가지러 가는 거 아냐?”“괜찮아. 너 데려다주고 금방 다녀오면 되니까.”“고마워.” “너 밤새웠어?”“아니. 추가 검사로 피를 많이 뽑던데?”그 말에 현진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추가…검사?’ 현진은 주하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현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갑자기 튀어나온 현시우가 주하 곁에 섰다.‘가주님? 여긴 왜?’현진은 잠깐 멈칫했지만,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주하를 계속 부축했다. 현시우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내가 도와줄게.”“??!”현진은 얼굴을 구겼다. 눈빛으로는 사납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고 싶은 듯했다.주하는 아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다시 다가오자 신경이 쓰였다.그래서 현진의 팔을 조금 더 세게 붙잡았다.“실례합니다만 잠시 도와드릴게요.”“아뇨. 전.”주하가 거절하려 하자, 현진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괜찮아. 내 사촌이야.”“……”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시우가 주하의 어깨를 받쳐 부축하자,주하의 몸이 시우 곁에 가까워졌다.그 순간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코끝으로 들어왔다. 방금까지도 속에서 일렁이며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이 조금씩 가라앉았다.‘뭐지?’커피 말고도 몸을 안정시키는 게 있었어?‘나중에 언니에게 물어봐야겠다.’“입원 안 해도 돼?”시우가 걱정스럽게 묻자 주하가 냉큼 대답했다.“커피면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