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22화. 예령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8 09:39:00

예령의 손이 멎었다.

혼례를 치른 뒤로 두 사람은 같은 방에서 잔 적이 없었다. 황도 집에서는 서실을 사이에 두고 방이 나뉘어 있었고, 북행 길에 역참 방이 하나뿐이었던 밤에도 무겸은 문 앞에 앉아 밤을 보냈다.

여기에는 방이 둘이었으나, 하나는 군무를 보는 방이었다.

“……한 채만 깔아.”

연화의 눈이 커졌다.

“한 채요?”

“두 채를 깔면 장군이 군무 보는 방에서 자겠다 하실 거야. 이 추위에.”

말해 놓고 예령은 제 귀가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문 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무겸이 문턱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연화가 이부자리를 내려놓고 재빨리 물러났다.

“……들으셨습니까?”

“추위 이야기만 들었소.”

거짓말이었다. 귀 끝이 붉었다.

무겸이 방 안으로 들어와 화로에 손을 쬐었다. 그러고는 마당 쪽 창을 한 번 보았다. 눈이 담장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봄까지는 싸울 일이 없소.”

“예.”

“쫓을 사람도, 열 굴도 없소. 장계는 이미 떠났고, 답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22화. 예령

    예령의 손이 멎었다.혼례를 치른 뒤로 두 사람은 같은 방에서 잔 적이 없었다. 황도 집에서는 서실을 사이에 두고 방이 나뉘어 있었고, 북행 길에 역참 방이 하나뿐이었던 밤에도 무겸은 문 앞에 앉아 밤을 보냈다.여기에는 방이 둘이었으나, 하나는 군무를 보는 방이었다.“……한 채만 깔아.”연화의 눈이 커졌다.“한 채요?”“두 채를 깔면 장군이 군무 보는 방에서 자겠다 하실 거야. 이 추위에.”말해 놓고 예령은 제 귀가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문 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무겸이 문턱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연화가 이부자리를 내려놓고 재빨리 물러났다.“……들으셨습니까?”“추위 이야기만 들었소.”거짓말이었다. 귀 끝이 붉었다.무겸이 방 안으로 들어와 화로에 손을 쬐었다. 그러고는 마당 쪽 창을 한 번 보았다. 눈이 담장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봄까지는 싸울 일이 없소.”“예.”“쫓을 사람도, 열 굴도 없소. 장계는 이미 떠났고, 답이 오려면 눈이 녹아야 하오.”무겸이 화로에서 손을 내렸다.“그러니 겨우내 내가 이 방에 있는 시간이 길 거요.”“……예.”“불편하면 말하시오. 군무 보는 방으로 자리를 옮기겠소.”“불편하지 않습니다.”대답이 너무 빨랐다. 예령은 괜히 등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화로에서 숯이 한 번 내려앉았다. 주판이 놓인 탁자, 두 칸 선반, 한 채만 깔린 이부자리.겨울은 길 것이었다.저녁상은 연화가 관사 부엌에서 차려 왔다. 군영 취사장에서 얻어 온 국과 밥, 상단 수레에서 꺼낸 마른 대추 한 접시였다.마주 앉아 먹는 것도 처음이었다. 황도 집에서는 무겸이 늘 늦게 돌아왔고, 북행 길에서는 각자 마차와 말 위에서 끼니를 넘겼다.무겸이 제 그릇의 고기를 덜어 예령의 밥 위에 올렸다.“저는 많습니다.”“너무 말랐소.”예령은 젓가락을 멈췄다.“나는 낮에 취사장에서 먹었소. 그러니 드시오.”병사들 줄 끝에 서 있던 모습이 떠올라 예령은 더 사양하지 못했다.상을 물린 뒤, 예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21화. 눈이 길을 닫다

    군영에 닿은 것은 해가 높아졌을 때였다.무겸은 연무장에 상자를 내려놓게 했다. 뚜껑을 열자 화살촉이 겨울 햇빛을 되쏘았다. 창날 묶음이 그 옆에 세워졌다.배승이 끌려 나왔다.무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상자 하나를 밑면이 보이게 돌려 세웠다.나무에 찍힌 관의 인이 배승의 눈높이에 왔다.배승의 무릎이 먼저 꺾였다.“……저는 소금만 알았습니다.”연무장을 메운 병사들이 그 말을 들었다.“소금은 창고에서 새는 것이라, 눈감아 주면 겨울 한철 넘어가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허나 병장기는 제 손을 거치지 않았습니다.”“그럼 누구를 거쳤느냐.”“모릅니다. 상자는 사람이 따로 왔습니다. 저는 길만 열어 주었습니다.”“그 사람이 무엇을 보이더냐.”배승이 입술을 물었다. 한참 뒤에 나온 말은 낮았다.“병부 문서였습니다.”무겸은 그 말을 되묻지 않았다. 삼 년을 기다려 온 말이었다.“네가 사흘을 달라 했을 때, 나는 네 장부를 기다렸다.”배승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장부보다 이것이 먼저 왔다. 네 손으로 내놓을 기회는 그것으로 끝났다.”곽진이 배승을 끌어냈다.“뇌옥[(牢獄)군영 안에 죄인을 가두어 두는 옥]에 넣겠습니다. 우영 장수였으니 칸은 따로 쓰게 하지요.”“따로가 아니라 멀리 떨어뜨려라. 굴에서 잡아 온 우두머리와 말을 섞게 하면 내일 두 사람의 말이 같아진다.”그날 무겸은 장계[(狀啓)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 문서]를 썼다. 굴에서 나온 상자가 몇인지, 낙인이 어떤 모양인지, 생포한 스물넷의 이름, 그리고 배승이 한 말을 그대로 적었다. 예령이 옆에서 소금 자루 수를 세어 주었다.해 질 녘에 위량이 말에 올랐다.“고갯길이 닫히기 전에 넘어야 합니다.”“상자 하나를 수레에 실어 같이 가져가라.”“문서만으로는 부족합니까?”“종이에 그린 낙인은 꾸며 낸 것이라 우길 수 있다. 상자를 눈앞에 놓아야 그 말을 못 한다.”위량이 떠난 뒤, 밤부터 눈이 쏟아졌다.이튿날 아침 초소에서 사람이 왔다. 남쪽 고갯길이 사람 키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20화. 소금이 아니었다

    위량이 눈길을 내려갔다.“장호. 너는 여기 남아 부인 곁을 지켜라.”“……예.”무겸이 담 쪽 어둠으로 돌기 전에 예령을 돌아보았다.“여기 계시오. 곽진이 오면 능선에서 손을 들어 알리시오.”무겸이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리고 수를 세시오. 이백을 세기 전에 돌이 치워질 거요.”그가 인장을 예령의 손에 돌려주었다.“이것이 오늘 내 군사 오십보다 나았소.”무겸의 등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초소 앞에서 개가 짖었다. 누군가 횃불을 들고 나왔다.예령은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위량이 군령을 내밀었다.스물, 서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동안 수만 늘었다. 여든을 넘길 무렵 손이 떨려서, 예령은 눈 위에 손바닥을 붙였다.문서가 펴졌다. 횃불이 인영 위에 멈췄다.“우영에서 왔다면 아래 길로 왔을 텐데?”“아래 길은 막혔소. 정북장군의 군사가 올라오고 있소.”횃불이 흔들렸다.“장군께서 물건을 하나도 남기지 말라 하셨소. 자루 수를 적어 오라 하셨고. 모자라면 여기 남은 자들이 물어야 하오.”그 말이 가장 잘 들었다. 사내가 돌아서서 소리쳤다.“돌을 치워라!”돌무더기가 낮아졌다.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그 연기 속으로 위량이 횃불을 들이밀었다. 안을 들여다본 그가 그대로 굳었다.굴 안에 쌓여 있는 것은 소금 자루가 아니었다.나무 상자였다. 뚜껑이 열린 것 하나에서 쇠붙이가 횃불을 되쏘았다. 화살촉이 상자 안에 가득했다. 그 옆에는 창날 묶음이 세워져 있었다.소금을 말과 바꾼 것은 밀매였다. 병장기를 넘기는 것은 이름이 다른 일이었다.“이게 무슨…….”위량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군령을 든 사내의 눈이 그 순간 달라졌다.“우영 사람이 이걸 보고 놀랄 일이 없지.”사내의 손이 칼자루로 갔다.그 손이 칼을 반도 뽑지 못했다.담 안쪽 어둠에서 나온 칼이 사내의 손목을 쳤다. 칼이 눈 위에 떨어졌다. 무겸이 그 앞에 서 있었다.“정북장군 한무겸이다. 칼을 버려라.”굴 입구의 다섯이 돌을 놓고 몸을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9화. 우영의 군령

    군영 문을 나서기 전에 무겸이 걸음을 멈췄다.“곽진. 오십을 추려 뒤따라와라. 수레는 두고, 빈 말 다섯을 여벌로 끌고 오고.”“예.”“그리고 어제 생포한 둘의 군복을 벗겨 와라. 지금.”예령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무겸은 설명하지 않았다. 말에 오르며 한마디만 했다.“오십을 세우는 데 반 시진이다. 반 시진이면 저들은 굴을 비운다.”예령이 제 말에 오르려 할 때, 무겸이 고삐를 먼저 잡았다.“그 걸음으로는 밤길을 못 따라오오.”예령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상단 마차는 수도 없이 탔어도, 말은 낮에 몇 번 얻어 탄 것이 전부였다. 얼어붙은 산길을 밤중에 달리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무겸이 먼저 말에 올랐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앞에 타시오.”예령이 그 손을 잡았다. 한 번에 끌어 올려지는 힘에 숨이 멎었다. 안장 앞자리에 앉히고 나서 그는 제 겉옷을 벗어 앞으로 둘러 여몄다. 등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이러시면 장군께서…….”“추운 쪽은 내가 맡겠소.”낮은 목소리가 귀 뒤에서 들렸다. 예령은 앞만 보았다. 바람은 여전히 찬데 볼이 뜨거웠다.고삐를 쥔 두 팔이 그녀의 양옆을 지나갔다.“고삐는 잡지 마시오. 내 팔만 잡으면 되오.”그날 밤 초소로 향한 것은 세 필이었다. 앞장선 위량이 길을 짚고, 장호가 뒤를 막았다. 안장 뒤에는 우영의 군복 두 벌이 실려 있었다.말발굽 소리를 눈이 먹었다. 그 대신 예령의 귀에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등 뒤에서 오는 심장 소리였다. 처음에는 제 것인 줄 알았다.날이 트기 전, 넷은 마지막 능선 위에 엎드렸다.아래로 초소가 보였다. 무너진 흙담, 막사 셋. 그 옆 산 밑동에 검은 입이 하나 벌어져 있었다. 굴이었다.불은 두 군데에서 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루를 끌어다 불 속으로 던졌다. 스물이 넘었고, 그 너머에 말이 열 필쯤 매여 있었다.굴 입구에는 다섯이 돌을 쌓고 있었다. 벌써 사람 허리 높이였다.그중 하나가 불붙은 나뭇단을 아직 트인 윗틈으로 던져 넣었다. 다른 하나가 그 위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8화. 북이 울리면

    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렸다. 교위가 다시 예를 갖췄다. 아까보다 훨씬 깊은 예였다.“군영에서 다시 뵙겠습니다.”그 말을 남기고 그는 말에 올랐다.행렬이 다시 움직였다.예령은 말없이 무겸의 옆을 따라갔다. 심장은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창끝이 내려와 있던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그리고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저들이 노린 것은 잡아 둔 둘만이 아니었다. 반나절이든 하루든, 우리를 이 길 위에 붙잡아 두는 것. 여기서 하루를 뺏기면 굴에 갇힌 두 사람에게 남은 날이 하루 줄어든다.“무서우셨겠소.”먼저 말을 건넨 쪽은 무겸이었다.“무서웠습니다.”예령은 솔직하게 답했다.“그런데 뒤에 서 있지는 않았습니다.”무겸이 그녀를 보았다.“저는 장군의 뒤가 아니라 옆에 있었습니다. 저들이 그걸 봤으면 좋겠습니다.”“보았을 거요.”무겸이 말했다.“나도 보았소.”예령은 앞만 보았다. 그런데도 옆에서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말의 걸음을 늦춰 그녀의 말과 나란히 맞췄다.해가 기울 무렵 군영의 깃발이 보였다.그리고 그 깃발 아래, 아까 돌아갔던 기병 서른이 먼저 와서 서 있었다.그들 앞에 붉은 띠를 두른 장수 하나가 말을 탄 채 기다리고 있었다.마흔쯤 되었을까. 낯빛이 붉고 목이 굵은 사내였다. 열린 군영 문을 등지고, 길을 막아선 자세였다.“우영 장군 배승입니다. 먼 길 오셨습니다.”그가 말에서 내리며 웃었다.“오늘은 늦었으니 쉬시지요. 지휘권 인수는 내일 아침에 격식을 갖춰 올리겠습니다.”예령은 저도 모르게 고삐를 쥐었다. 낮에 교위가 길을 막아 반나절을 뺏겼다. 이번에는 하룻밤이었다. 격식을 갖춘다는 말로 하루를 미루는 솜씨가 낮의 그 교위와 똑같았다.그 하루는 굴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서 떼어 오는 하루였다.예령은 배승의 얼굴을 보았다. 웃고 있는데 눈이 웃지 않았다. 황기문에게서 본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무겸은 대답 없이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배승을 지나쳐 군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배승의 웃음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7화. 창끝

    새벽에 위량이 초소를 한 번 더 살피고 돌아왔다.“문은 안에서 걸렸소. 넷이 안에 있고, 담은 높소. 담을 넘는 데 시간이 걸리면, 그사이 굴 안에 있는 자들부터 없앨 거요.”“안을 아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군.”“그렇소. 굴 입구가 어디인지, 다른 통로가 있는지 우리는 모르오. 곽삼은 지고 나르는 쪽이라 위에만 있었소.”무겸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군영으로 간다.”“군을 더 얻으러 가십니까.”“사람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저 초소의 상관이 우영 장군이다. 그자를 먼저 잡아 두지 않으면, 우리가 담에 닿기 전에 굴을 비우라는 전갈이 먼저 닿는다.”무겸이 고삐를 고쳐 쥐었다.“군량을 바로잡으라는 것이 교지에 적힌 명이다. 저 창고가 그 명의 한가운데에 있다.”“며칠이나 걸리겠소.”위량이 물었다.“닷새.”아무도 다시 묻지 않았다.예령은 그 말을 들으며 굴을 생각했다. 눈이 녹기 전이라고 했다. 하루를 벌면 하루가 사라지는 셈이었다.곡식 수레는 벌써 군영에 닿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곳 병사들이 굶지는 않는다. 그 생각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행렬은 아침 일찍 움직였다. 군영까지 이틀 거리였다.곽삼은 수레에 자리를 만들어 눕혔다. 예령은 떠나기 전에 짧은 서신을 써 황도로 보냈다. 곽삼이 살아 있다는 것, 그 아내에게 먼저 알려 달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병사들이 제 겉옷을 벗어 바닥에 깔아 주었다. 어제 눈밭에서 그를 끌어낸 것이 자기들이라는 것을 아는 얼굴들이었다.정오 무렵, 앞서 가던 위량이 말머리를 돌려 달려왔다.“앞이 막혔소.”길 한가운데에 기병 서른이 늘어서 있었다. 창을 세우고 말을 나란히 세워 길을 완전히 막은 진이었다.무겸의 뒤에는 백이 있었다. 숫자로는 이쪽이 많았다. 그러나 저쪽은 같은 나라의 군복을 입은 자들이었다.맨 앞의 장교가 말에서 내려 예를 갖췄다. 서른쯤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목소리는 공손했고, 눈은 무겸의 뒤쪽 수레를 훑고 있었다.“정북장군을 뵙습니다. 변경 수비군 우영의 교위[(校尉)병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