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선생님!"

남지훈이 다급히 물었다. "혹시 착오가 생긴 건 아닌가요? 어제 1800만 원을 이미 납부했는데요!"

그는 더 이상 소연이한테 돈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또 손을 벌린다면 소연은 자신을 도둑놈 취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착오라니요?"

의사가 말했다.

"이건 저희 병원 장부에 적힌 금액입니다. 1800만 원은 단지 수술 비용이에요. 환자의 상태에 따라 투약하는 약물이 다르고 시술이 달라집니다. 추가 비용이 드는 건 당연한거고요"

남지훈은 의사가 건넨 납부서를 받아서 훑어보았다.

1800만 원은 단지 수술비용이였고 오늘까지 수백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남지훈은 불안한 얼굴로 김명덕을 바라보았다. 김명덕은 그런 남지훈을 바라보며 뿌듯한 듯말했다.

"지훈 씨, 설마 고작 880만 원 때문에 이렇게 진땀을 흘리는 거예요? 날 때릴 때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하지 않았나요? 왜요? 돈이 없어요?

날 때렸던 것처럼 용기를 가져요! 의사도 한방에 날려보내야죠! 그러면 남은 병원비는 제가 대신 청산해 줄게요!”

남지훈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의사가 아닌 김명덕을 때리고 싶었다.

'저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어!'

"선생님! 병원 장부를 확인해야겠어요! 분명 계산에 실수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남지훈이 말했다.

하루에 1000만 원 가까이 되는 병원비는 말도 안 되었다.

그는 김명덕과 의사가 짜고 치고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명세서를 확인해야 했다.

"확인한다고요?"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안 될 건 없지만 지불 하시 전에 환자 약부터 끊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는 더 이상 환자에게 약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남지훈은 애가 탔다.

'김명덕과 의사가 짜고 치는 판이 확실해. 약을 끊어버리면 아버지는 어떡하라고!'

"지훈아!"

이때 최선정이 급히 나서서 돈을 남지훈의 손에 쥐어줬다.

"빨리 가서 네 아버지 병원비부터 납부해!"

"어머니?"

그의 손에 쥐어진 건 다름 아닌 최선정의 약 값이었다.

최선정의 약 값으로 병원비를 낸다면 그녀는 한동안 약 없이 지내야 했다.

약이 없으면 그녀 또한 위태로워질 것이다.

"안돼요!"

남지훈은 고개를 저으며 김명덕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남지훈은 사과하기로 했다.

잔인한 현실 앞에서 그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여서 부모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숙일 수 있었다.

"하하하하!"

김명덕은 크게 웃었다.

"지훈 씨, 사과가 저한테 먹힐 것 같아요? 사과가 뭘 해결해 주는데요? 사과를 하면 법이 왜 필요한거죠? 어른으로서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죠!"

김명덕은 기분이 좋아졌다.

남지훈의 여자친구도 빼앗았고 그의 부모님의 목숨 줄도 자신이 쥐고 있으니 자신의 손에 남들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사실이 꽤나 짜릿했다. 심지어 흥분되기도 했다!

남지훈은 입술을 깨물고 김명덕의 앞으로 걸어갔다.

"사장님, 아직도 노여움이 풀리시지 않으셨다면 절 한대 때리세요! 사장님 컴퓨터 모니터도 제가 회사 열심히 다니면서 꼭 배상해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김명덕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우리 회사 직원을 때릴 수 있겠어요? 컴퓨터 모니터는 당연히 배상해야 하는 거고, 그게 얼마 짜리인줄 알아요? 근데... 이미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이 어떻게 일해서 갚겠다는 거예요?"

남지훈은 절망했다. 김명덕은 남지훈에게 어떤 틈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김명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어요! 이번 기회를 잡을지 말지는 당신 선택이지만요!"

"사장님, 말씀만 하세요!"

남지훈은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김명덕이 말한 기회의 뜻을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을 생각이었다.

김명덕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간단해요.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려서 빌면 돼요! 그리고 동시에 개처럼 왈왈 짖으면 지훈 씨랑 저 사이의 일은 없던 일로 해줄게요!"

"뭐라고요?!"

남지훈은 고개를 쳐들고 김명덕을 노려보았다.

'개처럼 짖으라고?'

자신에게 모욕감을 주려는 것이다.

"왜 째려보는 거죠?"

김명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째려보면 하늘에서 돈이라도 떨어진대요?"

"김명덕!"

남지훈은 화를 내며 주먹으로 김명덕의 얼굴을 내리쳤다.

"꺼져! 이 새끼야!"

김명덕이 자신을 결코 살려두지 않을 거라는 걸 남지훈은 그제야 눈치챘다.

무릎을 꿇고 개처럼 왈왈 짖는 건 김명덕이 남지훈의 목덜미를 잡기 위한 또 다른 수작이었다.

얼굴을 맞은 김명덕은 몸을 휘청거렸다. 그는 손으로 남지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 선생님! 당장 얘 아버지 약부터 끊으세요! 저 양반 죽게 내버려 두세요!"

그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

남지훈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의사가 말했다.

"알겠어요. 당장 투약을 멈추겠습니다."

"하하하하!"

김명덕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남지훈 씨, 그쪽 아버지는 곧 죽을 겁니다! 그쪽 때문에 죽는 거라고요. 이제 아버지 죽음에 책임져야겠죠? 하하하!"

그는 남지훈이 평생 동안 죄책감에 살았으면 했다.

"선생님! 사장님!”

털썩!

그때 최선정이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뭐 하시는 거예요?"

남지훈은 황급히 자신의 어머니에게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최선정은 그의 손길을 홱 뿌리쳤다.

최선정은 의사에게 간절히 빌었다. "제발 약은 끊지 말아 주세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제발 약만 끊지 마세요!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니 절 탓하세요! 제가 지훈이를 대신해 사과드릴게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어머니!"

남지훈의 두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 빨리 일어나세요!”

남지훈은 자신의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힘을 썼다.

"어머니 그만하세요! 이러지 않아도 병원비 낼 수 있어요!"

어머니의 애원하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그는 소연이에게 다시 한번 돈을 빌려야 했다.

뻔뻔하지만 소연이한테 돈을 빌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어머니가 병원에서 무릎 꿇고 비는 일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훈아!"

최선정은 눈물을 흘렸다.

"우린 빚투성이야! 누가 우리한테 또 돈을 빌려주겠어?"

남지훈이 말을 꺼내기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시끄럽나요? 환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원장님!"

병원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 선생은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갔다.

하지만 최선정의 속도가 그보다 더 빨랐다!

"원장님!"

최선정이 병원장 앞으로 달려가서 무릎을 꿇으려 했으나 오히려 병원장이 그녀를 막아섰다.

"뭐 하시는 거예요?"

"저희 남편 약을 끊으려 하잖아요! 원장님! 제발 부탁드려요! 제발 살려주세요!”

최선정이 울부짖었다.

"약을 끊다니요?"

병원장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남편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리고 약을 끊다니요?”

최선정이 황급히 말했다.

"저희 남편은 남용걸이에요! 저기 유 선생님이 저희 남편 약을 끊겠다고 하셔서!"

병원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용걸? 소씨 가문에서 VIP 병실로 옮겨달라고 요청한 환자잖아?'

"어머님, 진정하세요!"

원장은 서둘러 말했다.

"환자를 살리는 병원에서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진... 진짜요?"

최선정은 간절한 눈빛으로 병원장을 바라보았다.

“그럼요!"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장인 제가 장담 드립니다!"

병원장은 유 선생을 노려보며 말했다.

"일 좀 똑바로 해! 내가 1분만 더 늦게 왔어도 당신 큰일 났어! 가서 처분 받을 준비해!"

"원... 원장님?"

유 선생은 어리둥절했다!

"원장이라도 부르지도 마! 너한테 그럴 자격도 없어!"

원장은 분노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남용걸 님은 VIP 병실로 옮겨서 각별히 신경써도 모자랄 판에 감히 약을 끊겠다고? 미쳤어?"

"VIP 병실이요?"

유 선생은 어리둥절했다.

VIP 병실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라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 들어가는 사람을 향해 무리수를 던진 꼴이다.

김명덕과 이효진 그리고 남지훈도 덩달아 멍해졌다.

그때, 남지훈의 머릿속에 소연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제 병원에 다녀간 그녀가 오늘 병실을 옮겨준 것 같았다.

"고마워, 소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