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짙은 약재 향이 가득한 한의원 안에서 약사들은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영업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는데도 대기실은 여전히 사람으로 가득했다.어민경의 옆에 앉은 두 중년 여성은 서로 아는 사이인지 함께 진료와 약을 받으러 온 듯했다.둘은 이 지역 사투리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민경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그녀는 대신 약을 조제하는 약사들을 바라봤다.그들은 약 처방전을 전부 외운 듯 한 번만 훑어봐도 엄청 빠르게 약을 담고 있었다.그때 지형민의 제자 한 명이 진료실에서 나오더니 어민경의 곁으로 와서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선
그때, 작은 풍차를 든 남자아이가 신나게 이쪽으로 뛰어왔다.어민경은 막 사진을 찍고 일어나 뒤로 몇 걸음 물러났는데, 아이가 너무 빨리 달려오느라 미처 멈추지 못했다.부딪히기 직전, 변영준이 성큼 다가와 어민경을 확 끌어당겼다.어민경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변영준의 품 안으로 떨어졌다.은은한 송진 향이 훅 밀려왔다.어민경은 순간 멍해졌다가 급히 고개를 들고 변영준의 깊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그녀의 팔은 아직도 변영준 손에 단단히 잡혀 있었다.커다란 그의 손은 가느다란 그녀의 팔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옷 너머로도
차에서 내리자 아주머니가 다가왔다.“도련님,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선생님께 말씀은 드렸어요?”“아니요.”변영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친구 한 명 데리고 외할아버지께 진료받으러 왔어요.”아주머니의 시선이 즉시 어민경에게 향했다.막 차에서 내린 어민경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은 상태라 맑고 예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변영준은 그녀를 소개했다.“외할아버지 곁을 오래 지켜주신 분이에요. 연세도 외할아버지 또래라 우리 집 후손들은 다 금자 할머니라고 불러요.”어민경은 바로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 금
변영준이 이런 부분까지 생각해줄 줄은 몰랐던 어민경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심장이 콩닥콩닥 뛰었고, 곧 감동이 밀려왔다.변영준을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그는 계속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다.분명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도 남을 챙기는 방식은 늘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다.고귀하고 차가운 사람 같으면서도, 자신 같은 작은 존재를 기꺼이 도와주었다.어민경은 변영준이 일반적인 자본가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거의 완벽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인데, 이런 남자를 만나고도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그녀는 누군가를
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남성 공항에 착륙했다.어민경은 비행기에서 내려 수하물을 찾은 뒤 밖으로 나왔다.휴대폰을 꺼내 변영준에게 전화하려던 순간,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배터리가 다 되어 자동 종료되었다.급하게 나오느라 충전을 안 한 것도 모자라 충전기까지 안 챙겨왔다.그동안은 외출할 때 항상 임예빈이나 스태프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혼자 멀리 다닐 일이 거의 없었다.지금은 얼굴도 꽁꽁 가린 상태이지만 누군가에게 충전기 좀 빌릴까 해도 혹시 알아볼까 봐 고민해야 했다.그렇게 난감해하고 있을 때, 커다란 손 하나
어민경은 멈칫했다.“그러네... 그럼 아래에 내려놓아 볼까? 누가 가져갈 수도 있잖아?”“부겐빌레아를 북성에서 누가 가져가.”임예빈은 어민경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누가 미니멀 라이프 한다고 했더라? 이것도 못 버리고 저것도 못 버리고!”“에헤헤...”어민경은 민망하게 웃었다.“절약이 습관 돼서 그래.”“그건 절약이 아니라 버리기 장애야. 됐어. 그냥 원래 자리 갖다 놓을게. 알아서 살아남아라. 빌레아야!”임예빈은 부겐빌레아를 다시 갖다 놓고 돌아왔다.그런데 나오자마자 작은 캐리어를 끌고 완전 무장한
한밤중, 차가 요월 팰리스에 들어섰다.마당에는 검은색 벤틀리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차 번호판을 본 주승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벤틀리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고 홍운학이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주승희는 손에 쥔 가방을 꽉 쥐었다.“장 매니저, 차를 차고로 몰고 가고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네.”주승희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홍운학도 차에서 내려 차체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밤빛 아래, 남자의 얇은 입술에 담배가 물려 있었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주승희를 내려다봤다.주승희는 그를 보며 부드러운 목
심지우는 멍하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엄마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임혜주가 남편을 빼앗았다고?’천천히 눈을 감은 강미란의 눈가에서 눈물이 툭 떨어지며 입으로는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우야, 미안해. 엄마가 무능한 탓이야. 엄마 탓이야...”심지우는 몸을 굽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반짝이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지우 여기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우리 다 잘 살 거예요.”“지우야, 엄마는 너무 화가 나. 이번 생은 실패한 인생이야. 왜 하필 임혜주 딸인 걸까
그래서 심지우가 윤영이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 사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물론 다소 상실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심지우는 윤영이만 사랑했고 그에게는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으니까.심지우가 본인의 아이가 생겨 더 이상 그라는 아들이 필요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아빠가 방금 말한 건 무슨 뜻일까?’변현민이 물었다.“지우 엄마는 이미 윤영이가 있지 않나요?”변승현이 아이를 돌아보았다.“당시 두 아이를 임신했는데 난산으로 한 아이를 잃었어. 변현민, 원래 너에겐 남동생이 있었는데 저 여자가 죽였어.”변현민은
스윗 팰리스.염하나가 마스크를 쓴 채 감기로 인해 열이 나는 몸을 이끌고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감기에 걸린 지 3일이 되었지만 변현민을 돌보는 일은 한 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심지우는 그녀가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윤영이를 데리고 운귀에 머물렀다.윤영이가 감염될까 봐 걱정된다는 이유를 대니 변승현도 말릴 수 없었다.염하나는 변승현이 이 일로 자신에게 화를 낼까 봐 두려워서 이틀 동안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밖에서 차 소리가 들리자 염하나는 가스 불을 최대로 줄인 뒤 손을 닦고 부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