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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탄산요정
‘위약금을 감당할 수 없다고?’

남우는 은희를 너무 우습게 봤다.

은희는 망설이지 않았다. 두 손으로 악보 원고를 움켜쥐고 강하게 잡아당겼다.

두 사람이 붙잡은 악보는 그 자리에서 찢어졌다.

곧 은희는 몸을 낮춰 남은 악보까지 잘게 찢었다. 하얀 조각들을 남우의 머리 위로 흩뿌렸다.

“자, 가져가. 네가 원하던 악보야.”

그녀는 한 글자씩 뱉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로 폐까지 아팠고, 눈앞이 어지러웠지만 버텼다.

남우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우습게도 지난 6년 동안, 은희는 모든 약함을 이 남자에게 내보였다.

하지만 남우는 단 한 번도 다정한 곁을 내준 적이 없었다.

남우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완전히 격분했다.

그는 앞으로 다가와 은희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미쳤어?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은희는 몇 걸음 물러섰다. 몸이 휘청였다.

“안 미쳤어. 아주 또렷해. 이 곡은 절대 맑음이에게 안 줘.”

‘보미야, 엄마가 너를 위해 쓴 곡을 다른 아이한테 주지 않을 거야.’

‘절대로.’

어지럼은 더 심해졌다. 속이 뒤집히듯 울렁거렸다.

그녀는 벽에 기대섰다. 눈에는 여전히 남우를 향한 적의가 가득했다.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남우는 눈앞의 은희가 점점 어릴 때의 제멋대로인 모습과 닮아 간다고 느꼈다.

지난 6년간 조용히 남우의 말대로 따르며 살았던 모습은 진짜 은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멈칫한 뒤에도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래. 이제야 성질 좀 나오네?”

은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입술이 떨렸다.

“5천만 원은 낼 수 있어. 처음 의뢰받을 때 정한 위약금이니까.”

남우는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

“5천만 원? 작곡가님이 계약서를 제대로 안 읽었나 봐.”

그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미 납기일을 사흘이나 넘겼어. 지연 위약벌 조항까지 붙으면 열 배야. 5억.”

‘5억?’

은희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도 억지로 웃었다.

그런 돈은 은희에게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굴복하면 보미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그녀는 엄마 자격도 없게 된다.

“정말 이렇게까지 할 거야?”

남우는 한때 은희의 베개 옆에 있던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가장 아픈 데를 알고 깊이 찌른다.

남우는 은희에게 5억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이 남우의 첫사랑 딸, 맑음 때문에 벌어졌다는 사실이 또 비참했다.

그런데 보미는 사랑 하나도 받지 못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치우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남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얌전히 곡을 넘겼으면 아무 일도 없었어.”

은희는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웃었다.

“5억이면 5억. 천천히 갚을게. 하지만 너와 소영은 씨의 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말을 끝낸 그녀는 돌아서려 했다.

남우는 빠르게 따라가 은희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 여기서 나가면 이 일이 쉽게 끝날 줄 알아?”

그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보미도 불러. 보미로 날 협박할 생각하지 마.”

‘보미?’

그 이름을 듣자 은희는 비웃었다.

‘아직도 내 딸 보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보미에게 참 불행한 일이야.’

은희는 남우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몸이 다시 휘청였다.

“한 번만 말할게, 잘 들어. 보미는 죽었어. 네가 소영은 씨와 함께 소맑음 생일을 축하하던 그때.”

그 말을 또 들은 남우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는 은희의 팔을 다시 붙잡고 험악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정말 독한 여자야. 어떻게 친딸을 두고 몇 번씩이나 그런 말을 해? 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희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그녀는 그대로 남우의 품으로 쓰러졌다.

“이 수법은 안 통해. 너는 반드시 갚아야...”

남우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은희의 상태가 정말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효찬아!”

부르기도 전에 이미 효찬이 달려왔다.

남우의 품에 쓰러진 은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사람을 어떻게 몰아붙였길래 또 쓰러져? 벌써 두 번째야. 지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고.”

그의 시선이 남우에게 날카롭게 꽂혔다.

“너 진짜 집에서 아내한테 손찌검하는 거 아니냐?”

남우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치료나 해.”

효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은희를 침대에 눕혔다.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상실감이 심한 데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 쉬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몰아붙이면 쓰러질 수밖에 없지. 일단 영양 수액부터 맞혀야 해.”

그는 빠르게 의료 도구를 준비해 수액 라인을 잡았다.

남우는 침대 옆에 서서 종잇장처럼 창백한 은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돌아서서 은희가 찢어 버린 악보 조각을 하나하나 주웠다.

효찬도 놀란 듯 쳐다보았다.

“그걸 붙이려고?”

“응. 중요해.”

두 사람 사이의 일이라, 효찬은 더 묻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만큼 시간이 흐른 뒤, 은희가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과 침대 옆에 앉은 남우를 보자, 앞서 벌어진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남우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도우려 하자, 은희는 그의 손을 쳐냈다.

“나 만지지 마.”

목소리에는 짙은 혐오가 배어 있었다.

남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어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효찬이 들어왔다. 은희가 깨어난 걸 보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제 깼네요. 아직 몸이 많이 약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은희는 효찬을 보고, 다시 남우를 보았다. 차갑게 웃었다.

“내가 쓰러지니 겁났나 봐? 죽으면 위약금 못 받을까 봐?”

남우의 미간이 깊어졌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헛소리 그만해. 난 보미를 봐야겠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희가 말을 잘랐다.

“말했지. 다시는 못 본다고”

남우는 은희와 더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옆 테이블에서 죽 한 그릇을 집어 들었다.

“먹어.”

은희의 눈에는 그 친절마저 수상하기만 했다.

“싫어.”

두 사람이 또다시 부딪칠 기세가 되자, 효찬이 끼어들었다.

“두 분, 일단 그만하세요. 은희 씨는 아직 회복이 덜 됐습니다. 지금은 쉬어야 해요. 위약금 이야기는 몸부터 추스른 뒤에 하시고요.”

폭탄 같은 계약 조항으로 사람을 몰아붙여 쓰러지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는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위약금은 갚을게요. 한 푼도 빚지고 싶지 않아요.”

말을 끝낸 은희는 고집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남우는 불쾌한 듯 다시 그녀를 막아섰다.

“그 몸으로 어디 가려고? 고집부리지 마.”

그 고집스러운 얼굴을 보자 남우도 참을성이 바닥났다.

그는 한 손으로 은희의 얼굴을 붙잡고, 다른 손에 든 죽을 한 숟가락 떠 제 입에 넣었다.

금방이라도 입으로 넘겨 먹일 듯한 자세였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남우는 은희를 놓고 입안의 죽을 삼켰다.

익숙한 벨 소리였다. 영은이었다.

그는 전화받으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췄다.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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